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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 깨물어도 될까요 (29)화 (29/123)

29화 낭만적인 산책이 있는 오후 (1)

미오는 위기에 처한 지오프리를 보면서 다리를 덜덜 떨었다. 사실 용감한 척했지만, 그녀는 싸움에는 전혀 소질이 없었다.

‘저건 마물인가?’

숲에서도 본 적이 없는 커다란 짐승에 두려움을 느꼈다.

‘지오프리는 왜 달아나지 않는 거지?’

침을 꿀꺽 삼킨 그녀는 짐승의 눈을 가만 바라봤다.

‘제발 좀 통해라.’

수인이 된 이후로 좋은 점은 하나도 없었지만, 가끔 짐승과 말이 통했다. 이것도 안 되는 날이 더 많아서 재주라고 치기는 어려웠지만…….

지오프리는 무기 하나도 없이 커다란 짐승 가까이 다가서고 있었다. 잔뜩 흥분한 짐승의 입가로 진득한 액체가 뚝뚝 흘러내렸다.

‘전쟁의 신’이라고 불리는 지오프리조차 이런 마물 앞에서는 한낱 평범한 인간에 불과했다.

‘뭐야. 무서워서 몸이 얼어 버리기라도 한 거야?’

몸을 돌려서 이대로 모르는 체할까 하던 그녀의 입에서 비명이 터졌다. 앞발을 번쩍 든 짐승이 날카로운 발톱으로 지오프리를 공격할 것처럼 굴었다.

“공작님, 조심해요!”

그러면서도 미오는 짐승에게 계속 대화를 시도했다.

‘나를 좀 봐. 내가 가까이 갈 거야.’

천천히 지오프리가 있는 곳으로 다가선 미오가 그의 앞을 막아섰다. 그녀의 등장에 지오프리가 놀라서 움찔대는 것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공작님, 뒤로 물러나요.”

“뭘 하는 거지?”

“자꾸 말하지 말아요. 저 녀석을 더 자극해서는 좋을 게 없으니까…….”

미오는 짐승의 퉁방울 같은 눈을 응시한 채로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짐승은 앞발로 바닥을 파헤치더니 꼬리를 천장으로 마구 휘둘렀다. 꼬리 끝에는 곤봉 같은 것이 달려서 흔들릴 때마다 바닥이 움푹 파였다.

“착하지? 우리는 너를 해치지 않을 거야.”

펼친 양손을 아예 내미는데 어깨가 덜덜 떨렸다. 대화가 안 통한다면 이 작전은 성공할 가능성이 희박했다. 그때 커다란 손이 미오의 어깨를 붙들었다.

“나를, 나를 지켜 주려는 건가?”

“……말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모르긴 해도 어릴 때도 말을 진짜 안 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때 그녀의 손바닥으로 짐승의 침이 뚝 떨어졌다.

크르르, 크르릉.

울부짖는 게 조금 얌전해진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딱 맞붙은 두 사람의 앞에 짐승이 배를 발랑 까뒤집었다. 누운 채로 꼬리를 좌우로 흔들어서 사방에 먼지가 자욱했다. 콜록대던 미오가 짐승을 가리키면서 격앙된 음성을 냈다.

“……이거 보여요?”

완벽한 복종의 뜻을 밝히는 짐승을 보면서 미오는 감동했다. 대화가 통한 것도 있지만, 이렇게 커다란 짐승이 미오의 보이지 않는 힘에 굴복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한바탕 소란이 정돈되자 미오가 몸을 돌려서 그를 올려다봤다.

“도대체 왜 이렇게 위험한 짐승이 후원에 있는 거죠?”

“아, 이 녀석은 내가 숲에서 구해 온 개인데…….”

‘소위 말하는 멍줍, 냥줍이란 건가.’

하지만 사람들이 길에서 주웠다는 짐승은 보통 작고 귀여운 편이었다.

‘저렇게 몸집이 큰 짐승은 들어 본 적이 없어.’

그들을 위협하던 개는 여전히 바닥에서 몸을 데굴데굴 구르고 있었다. 하는 행동은 개와 비슷해 보였지만, 외양이 아무리 봐도 개는 아니었다.

“저게 개라고요?”

지오프리의 시력이 무척 의심스러운 순간이었다.

“앙겔라스라고 이름도 지었지.”

그의 말에 미오는 한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이름까지 지어 준 거 보면 구조한 뒤 아예 반려동물로 삼았다는 거야?’

그녀도 개나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과 함께하고 싶었다.

‘부드러운 털을 잔뜩 헤집어 주거나 몰랑한 배를 쓸어 주고 싶어.’

그러면 외로움을 조금 잊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었다.

가끔 길고양이라도 만나는 날에는 너무 행복했다. 하지만 보육원 시절에는 불가능했고, 성인이 된 후 살게 된 고시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건 좀…….’

먼지가 좀 가라앉자 짐승을 제대로 관찰할 수 있었다.

일단 털이라고 없는 울퉁불퉁한 피부에 눈은 툭 튀어나왔고, 귀는 거의 퇴화한 것 같았다. 무기가 달린 꼬리는 가만있는 법이 없었고, 이빨은 여러 겹이었다.

‘물리면 뼈도 못 추리겠는걸?’

이런 엄청난 녀석을 제어했다는 생각에 어깨가 자꾸 위로 올라갔다.

“보다시피 좀 무섭게 생겨서 고용인 누구도 근처에 오려고 들지 않더군.”

“누가 오겠어요? 저 이빨을 좀 봐요.”

게다가 그르렁대는 소리에 머리가 쭈뼛 설 것 같았다. 잠시 사라졌던 지오프리는 후원의 작은 창고에서 말린 고기를 꺼내 가지고 왔다.

‘아, 먹이를 주려고?’

그의 태연스러운 행동에 미오는 고개를 갸웃댔다.

제대로 제어할 수도 없는 저런 맹수를 이곳에서 키우는 이유가 뭐지.

“이걸 저 녀석에게 던져 줘.”

지오프리는 고기를 그녀에게 슬쩍 건넸다. 하지만 미오는 손사래를 치면서 뒷걸음쳤다.

“공작님, 제가 개랑 별로 친하지 않아서요.”

이상하게 미오는 갯과의 짐승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숲에서도 늘 들개에게 쫓겼고, 늑대에게는 물릴 뻔한 적도 있었다. 그녀의 말에 지오프리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가? 나는 고양이가 별론데…….”

“왜요? 고양이는 어딜 봐도 사랑스러운데요.”

갑자기 고양이가 별로라고 하는 그의 말에 미오가 발끈했다.

“……글쎄.”

그럼 지오프리는 개가 더 낫다는 걸까?

미오는 여기에서 더 따지고 들면 이상해 보인다는 것을 잘 알았다. 하지만 가만있자니 분통이 터져서 견딜 수 없었다. 땅을 툭툭 차는 미오를 지켜보던 지오프리는 고개를 돌려서, 앙겔라스에게 고기를 던져 주었다.

‘이상하다는 말이야.’

산책하다 이곳에 온 것은 다분히 충동적인 일이었다. 성의 누구도 이 근처에 올 생각을 하지 않았고, 지오프리도 앙겔라스를 소개할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먹이를 다 먹은 개는 지오프리를 향해서 꼬리를 미친 듯이 흔들었다.

‘앙겔라스는 어째서…….’

미오 앞에서 온순하게 구는 걸까.

앙겔라스는 지오프리가 아니면 누구에게도 머리를 조아리지 않았다.

‘왜 그녀는 나를 구해 준 거지?’

주먹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하던 지오프리의 머릿속은 실타래처럼 뒤엉켰다.

아까 앙겔라스가 그를 덮치는 것처럼 보인 것은 단순히 장난이었다. 덩치는 크고 흉포하게 생겼지만, 안기거나 업히는 것을 좋아하는 녀석이었다. 앙겔라스와 그의 관계를 모르는 상태에서 그 앞을 막아서는 것은 무모한 짓이었다.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왜 그녀는 그를 구하려 들었을까.

‘공작님의 팬이에요! 정말 좋아해요!’

순간 미오의 고백이 귓가에 크게 메아리쳤다. 그는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감정을 믿지 않았다. 지오프리가 손을 들어서 한쪽 어깨를 살짝 훑었다. 아물지 않은 상처를 쓸어내리자 가벼운 통증이 전신에 번졌다.

‘내 몸에 상처를 내더니, 이번에는 나를 구하려 들었다는 건가.’

도무지 그 속을 알 수 없는 미오의 정체를 고민하는데, 갑자기 그녀가 비명을 질렀다.

“공작님! 공작님! 얘를 좀 말려 주세요!”

먹이를 다 먹은 앙겔라스가 미오 근처에 다가가서 풀쩍풀쩍 뛰어오르고 있었다. 놀아 달라는 몸짓인지 모르는 미오는 그녀를 공격하는 줄 알고 질겁했다. 그 모습에 미오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까 나를 구해 주지 않았나?”

“……그러니까요! 이번에는 공작님이 나를 좀 도와주세요. 가서 무기가 될 법한 거라도 좀 가져다주세요.”

진짜 생명의 위협을 느낀 미오의 등으로 진땀이 줄줄 흘렀다. 아까는 운이 좋아서 짐승을 막을 수 있었다손 쳐도, 이번에도 그럴 수 있을 거라는 보장이 없었다. 하지만 얄미운 지오프리는 그 자리에 서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도대체 뭐 하는 거야!’

미오가 그를 잔뜩 노려보자, 지오프리가 고개를 갸웃했다. 바람에 걸친 흰 셔츠가 펄럭였고 앞머리가 부드럽게 흔들렸다.

‘이런 순간에도 저렇게 잘생길 일인가.’

“그리고 혼자 충분하지 않나? 아까 보니까 꽤 강하던데. 안 그래?”

그렇게 말하는 지오프리가 손으로 그의 입술을 훑으면서 가지런한 이를 드러냈다. 그 모습에 볼이 확 달아오른 미오가 얼른 고개를 돌렸다.

‘절대로 기억 상실은 아닌가 보네.’

여태 말을 안 해서 혹시 디아나 여신이 그녀의 소원을 제대로 들어준 것은 아닌가 하고 실낱같은 바람을 가졌었다.

“……아. 진짜!”

이대로 가만 서서 당하고만 있는 건 적성에 맞지 않았다.

‘싸울 힘이 없을 때는 삼십육계 줄행랑이 최고니까!’

드레스 양쪽을 말아 쥔 그녀가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더 흥분한 앙겔라스는 미오를 금방 추월해서 앞을 가로막았다.

“공작님, 이렇게 위험한 짐승을 왜 이곳에 두는 거예요?”

짐승이 미오의 발 앞에서 얌전하게 엎드리는 것을 확인한 그녀가 숨을 헐떡댔다.

“말하지 않았나? 숲에서 구해 왔다고?”

“하지만…….”

미오가 짐승의 눈을 외면하면서 말을 흐렸다. 어쩐지 무서운 외양 때문에 앙겔라스를 나쁘게만 생각하는 게 마음에 걸렸다.

‘저 녀석이 여기에 버티고 있으면 든든하기는 할 것 같아.’

“새끼 때 이미 무리에서 낙오된 녀석이라 숲에 아직 돌아갈 수 없고, 이대로 나가면 곧장 사냥꾼에게 쫓길 거다.”

“……아.”

지오프리의 말에 품었던 의문이 죄다 풀렸다.

아직 어린 짐승을 이곳에 살게 하는 건 그를 보호하는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지오프리의 배려에 미오는 앙겔라스를 무섭게만 생각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내가 앙겔라스랑 뭐가 다르다고…….’

미오나 그나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게 같았다.

털썩 주저앉은 그녀는 짐승의 눈을 가만 들여다봤다.

‘……미안.’

미오의 속마음이 들리기라도 하는지 짐승이 혀로 그녀의 드레스를 핥았다.

“기다려.”

벌떡 일어선 그녀는 지오프리가 가져왔던 통에 남은 작은 고기 한 점을 주워서 짐승에게 내밀었다. 그는 한 입 거리도 되지 않을 고기를 순식간에 삼켰다. 그것을 지켜보던 미오가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인 채 활짝 웃었다.

“입으로만 하는 사과는 진정성이 없잖아. 안 그래?”

답이라도 하는 것처럼 짐승이 푸르르 소리를 냈고, 둘을 지켜보던 지오프리의 얼굴이 한 방 먹은 것처럼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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