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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 깨물어도 될까요 (2)화 (2/123)

2화 미친개는 주인을 물 수 있다

―크르르.(미친 것은 내가 아니라 네 녀석이겠지.)

등의 털을 바짝 세운 채 그녀도 모르게 송곳니까지 드러냈다. 하지만 지오프리는 그대로 어깨를 으쓱할 뿐, 미오에게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어쩌지. 이런 반응은 예상하지 못했는데…….’

준비했던 계획이 어그러지자 미오의 몸이 그대로 굳었다. 그때 냇가에서 물을 떠 온 사무엘이 모습을 드러냈다.

“공작님. 냇가에 살얼음이 낀 탓에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물통을 지오프리에게 건넨 사무엘은 근처에서 잔뜩 성질을 내는 작은 짐승을 보게 되었다.

“맙소사, 어린 북극여우군요.”

그가 미오를 보자마자 안쓰러운 시선을 건넸다.

“뭐야. 들개가 아닌가?”

지오프리가 건성으로 대꾸하자, 사무엘이 헛기침했다.

“좀 마르기는 했지만, 꼬리가 저렇게 풍성한걸요. 저렇게 있다가는 사냥당하기에 십상일 텐데 어쩌다 혼자가 된 걸까요?”

두 사람의 대화를 가만 듣고 있던 미오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이렇게 지오프리가 그녀를 찾아온 것도, 저런 주변 인물을 맞닥뜨린 것도 처음이었다.

‘이번엔 아무래도 이상해.’

그래도 어쨌거나 그녀를 제대로 알아봐 주는 사무엘의 등장은 좋은 징조였다.

도도하게 고개를 쳐든 미오가 사무엘 근처로 살랑살랑 걸어갔다. 아무것도 먹지 못해서 움직이려니 하늘이 빙글빙글 돌았지만, 어금니를 꽉 물었다.

‘야! 잘 봐.’

미오가 꼬리를 크게 부풀렸다.

‘어때? 나를 안고 싶어서 야단법석을 피우려나.’

새침하게 눈을 위로 쳐드는데, 사무엘이 그녀를 측은하게 바라봤다.

“주인님, 아무래도 손을 탄 야생 짐승인 것 같습니다.”

어린아이가 숲에서 발견되는 새끼를 집에 가져가서 놀다가 다시 돌려 놓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지금 보면 녀석이 인간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잖아요. 사람 냄새가 묻어나는 새끼는 어미가 죽이거나 이렇게 버린다고 하더군요.”

미오는 낮게 펄쩍펄쩍 뛰어올랐다.

―크르르.(그런 거 아니야! 나 다 컸어!)

그녀의 이런 열띤 노력에도 지오프리는 쌀쌀맞기만 했다.

“사무엘, 그런 쓸데없는 이야기는 그만하고 돌아가자.”

“어디로 가십니까.”

“……카스피언 성으로.”

‘뭐야. 이런 필살 애교를 보고도 그냥 간다는 거야?’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미오는 급하게 돌아가는 사정에 침이 다 말랐다. 지금 따라가지 못하면 새로운 계획을 세우기도 전에 그녀는 죽고 말 것이다.

‘저 녀석의 간식거리가 될지도 몰라.’

며칠 전부터 미오의 머리 위를 빙글빙글 도는 독수리의 울음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아무것도 해 보지 않고 죽는 것은 싫어!’

죽는 것은 다 싫었다. 게다가 인간도 되지 못한 채 내장이 뜯겨 나가는 상상은 너무 끔찍했다.

‘좋아. 일단 해 보자.’

미오는 젖 먹던 힘을 다해서 풀숲에 놓인 짐꾸러미를 향해 돌진했다.

“이제 슬슬 가자꾸나.”

사무엘이 풀을 씹고 있던 말의 고삐를 끌었고, 지오프리가 먼저 말에 올라탔다. 그리고 사무엘 역시 천천히 바닥에 내려 두었던 가방 두 개를 말에 실은 후 말을 출발시켰다. 모두가 떠난 겨울 숲에는 작은 짐승이 머물렀던 낙엽 침대만이 덩그러니 남겨졌다.

* * *

카스피언 공작저로 돌아가서 준비를 마친 지오프리가 곧장 황제가 있는 황궁으로 향했다. 본래 사람이 많은 곳은 질색이었지만, 그는 사무엘의 눈물 어린 호소에 두 손을 드는 척했다.

‘불참해도 내내 신경 쓰이겠지.’

갑옷을 벗어 던진 지오프리는 눈보다 더 새까만 벨벳 천으로 맞춘 짧은 망토를 걸쳤다. 흰 재킷 위로 새시를 둘렀는데 움직일 때마다 탄탄한 가슴 근육이 돋보였다. 검은 바지에 감싸인 긴 다리 역시 눈길을 사로잡았다.

“카스피언 공작님 드셨습니다.”

지오프리의 등장 소식에 시끌벅적했던 연회장이 잠시 조용해졌다. 3년 만에 귀환하는 그는 연회장의 사내 중 단연코 빛이 났다. 큰 키와 넓은 어깨에 감출 수 없는 위험한 매력이 전신에서 풍겼다. 미혼 기혼을 막론하고 대부분 여성이 그를 향해서 노골적인 관심을 보였다.

‘눈을 마주치면 기절할지도 몰라.’

‘소문은 무섭지만, 그래도 진짜 잘생기긴 하셨어.’

그때였다. 연회장 상석에 있던 황제가 입을 뗐고, 주변의 웅성거림이 한순간에 잦아들었다.

“오! 지오프리. 무사 귀환을 축하한다.”

“황제 폐하, 신 지오프리. 이렇게 인사를 드립니다.”

그가 한쪽 무릎을 꿇고 예를 갖추는데, 허리에 찬 검이 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났다.

“우리 사이에 이런 격식을 갖추지 않아도 된단다.”

황제가 지오프리의 어깨를 가벼이 두드리면서 인자한 미소를 건넸다. 이에 지오프리도 희미한 미소로 화답했다. 그는 천천히 새어머니이자 현 황후인 카트리나를 향해서 허리를 굽혔다.

“황후 폐하께 인사 올립니다.”

“카스피언 공작,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서 반갑군요.”

다정한 미소를 띤 황후가 지오프리를 향해서 인사를 건넸다.

“사무엘, 선물을 가져오도록.”

그는 기다란 상자를 이복동생이자 황태자인 벤의 발치에 두었다.

“황태자 전하, 생신 경하드립니다.”

황좌 옆에 마련된 화려한 자리에 비스듬하게 앉아 있던 사내가 천천히 일어났다. 벤은 뭔가 트집을 잡으려는 것처럼 지오프리의 전신을 샅샅이 훑었다.

“그래. 우리 카스피언 공작이 무엇을 가져왔는지 한번 볼까.”

시종에게 상자를 열어 볼 것을 지시하더니, 무감한 눈으로 내부를 들여다봤다.

“마물의 꼬리뼈라니 굉장히 흥미롭군.”

검으로 만들면 위력이 엄청난 마물의 꼬리뼈는 병사 서넛이 덤벼서 겨우 얻어 낸 것이었다.

“공작, 선물 잘 받지.”

귀한 선물에 대한 감사 인사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이것은 분명 예법에 어긋난 것이었으나, 누구 하나 지적하는 사람이 없었다.

‘미칠 노릇이군.’

허리춤에 찬 검으로 지오프리의 손이 절로 움찔댔다.

‘얼마나 참아 왔는데, 지금 일을 그르칠 수는 없다.’

오만불손한 이복동생의 태도에 인상을 쓰지 않으려 애썼다. 자칫하면 다시는 수도로 돌아올 수도 없을뿐더러, 더 끔찍한 일을 당할지도 모른다. 애써 표정을 갈무리한 그를 향해 벤이 물었다.

“설마 연회에 혼자 온 건가? 공작.”

“그게…….”

지오프리는 대동할 파트너를 구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게다가 돈을 들인다고 해도 지오프리와 무도회에 설 귀족 영애가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런 사정을 빤히 아는 금발의 황태자는 푸른 눈을 빛내면서 씩 웃었다.

“연회에 와서는 춤곡 하나 추는 게 예의이거늘…….”

벤의 지적에 카트리나 황후가 중간에 나서서 말을 건넸다.

“전장에만 있던 사람이니 어찌 유행이나 예법을 알겠습니까.”

부채를 살랑살랑 흔드는 황후가 유행이 한참 지난 예복을 걸친 지오프리를 곁눈질했다. 대놓고 지적하는 벤보다 황후의 태도가 더 짜증 났다.

‘나 따위가 참석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건가?’

모멸감에 찬 시선에 토악질이 치밀었다. 가까스로 실례를 범하는 것을 참은 그가 손을 가슴에 댄 후 입을 열었다.

“허락해 주신다면, 잠시만 실례하겠습니다.”

“오랜만의 연회라서 피곤할 만도 하죠. 허락하겠습니다.”

황후가 선심이라도 쓰듯 입을 떼자, 지오프리가 예를 갖춘 후 천천히 등을 돌렸다. 그를 중심으로 연회장이 갈라졌다. 묘한 시선을 던지는 귀족을 바라보는 지오프리의 얼굴에는 온갖 감정이 흘렀다.

‘거창한 승전식 같은 것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3년을 천막에서 동고동락한 병사와 함께 수도로 돌아온 날이 눈에 선했다. 상처를 입은 몸을 이끌고, 지친 표정으로 수도의 관문을 통과하는데, 황궁에서 준비한 축하 행사나 환영 인파 따위는 없었다. 그저 바삐 일하던 백성들만이 그들을 향해 꽃을 던져 주었다.

‘당신들은 내가 돌아오는 것에 관심이 없었겠지. 어쩌면 돌아오지 않기를 더 바랐던 건가.’

지오프리의 아버지인 황제의 태도를 보자 모든 게 명확해졌다.

‘나는 역시 변방을 지키는 개에 불과한 거였나.’

씁쓸하게 고개를 돌리는데, 부채를 부치는 척하면서 추파를 던지는 몇몇 여인과 눈이 마주쳤다. 다시 속이 부대끼는 것을 간신히 참아야 했다.

‘차라리 무관심이 낫겠군.’

그가 곧장 향한 곳은 연회 중에 귀족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방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다.

‘빌어먹을 예법에 어긋나니까.’

지금 황후에게 괜히 트집 잡힐 짓은 하지 않는 게 좋았다.

“사무엘, 누구도 들지 못하게 하라.”

“알겠습니다.”

지오프리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걸치고 있던 망토를 벗어서 긴 소파에 집어 던졌다. 속이 울렁거려서 바로 서 있기 힘들었다. 그의 어머니를 죽음으로 몰고 갔던 장본인과 아무렇지 않은 척 인사를 나누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지오프리는 소파에 몸을 내던졌고, 긴 다리를 쭉 뻗었다.

피와 살이 썩는 냄새가 진동하는 전장에서 밤마다 그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눈을 감으면 억울하게 죽어야 했던 어머니 생각이 났다. 그리고 여전히 위태로운 그의 목을 더듬고는 했었다.

“그런 건 괜찮아…….”

죽음은 하나도 두렵지 않았다.

그가 몸통을 조여 오는 재킷 위로 두른 붉은 색의 새시를 풀어낸 후 바닥에 던졌다. 그래도 몸의 열기가 가시지 않아서 레이스 장식의 셔츠도 벗어서 구겼다.

“……하하, 미치겠군.”

그리고 팔을 뻗어서 눈을 가렸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자 마음이 조금씩 진정되었다.

‘두려운 것은 원수의 가슴에 검을 박아 넣지 못하는 거야.’

복수도 하기 전에 먼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지나치게 긴장을 했는지 그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곧 지오프리의 한 손이 아래로 축 처졌다.

‘뭐야. 옷을 막 벗어서 놀랐잖아.’

지오프리의 뒤를 쫓은 것은 작은 여우 미오였다. 그녀는 사무엘의 가방에 은밀하게 숨어든 후 이곳까지 올 수 있었다. 숲에서 그녀의 귀여움에 사로잡힌 인간들이 당연히 그녀를 집으로 데려가 줄 줄 알았는데, 그 작전은 실패했다.

‘하긴 지오프리하고 내가 통할 리가 없잖아.’

어떻게 생각하면 이게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미오는 몸 이곳저곳에 묻은 먼지 뭉치를 떼어 냈다.

‘저런 변태인 줄은 몰랐지 뭐야.’

옷을 벗으면서 혼자 막 신음을 내는 지오프리를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흥분을 이기지 못하고 홀로 잠드는 꼴이 아주 우스웠다.

‘그래도 공과 사는 구분해야지.’

이름도 입에 담기 싫은 저 원수가 밉긴 했어도, 지금 여우 모습에서 벗어나려면 저 인간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미오는 그림자처럼 벽에 붙어서 혀로 털을 깨끗하게 정돈했다. 아까 지오프리 앞에서 어설픈 애교를 부리던 모습은 위장술의 일종이었다.

‘이제야말로 나의 참모습을 보여 줄 차례군.’

미오의 호박색 눈이 소파에 누운 사냥감을 향해서 음험하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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