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든 애로우 (121)화 (121/146)

121. 그림과 전쟁은

‘그림과 전쟁은 떨어져서 바라보는 편이 좋다.’

잉그린트의 유명한 속담 중 하나다.

사무엘은 속담을 인용하며 말하는 사람들을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해 왔다. 바로 더비 백작부인과 같은 사람 말이다.

그러나 오늘, 사무엘은 꼭 더비 백작부인처럼 저 속담을 반복해 말했다. 그림이 아니라 전쟁에 방점을 찍어서.

그가 그렇게 말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실제로 전쟁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자국도 아닌 타국에서, 그것도 잉그린트로 돌아갈 배의 승선을 불과 며칠 앞두고 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사무엘은 자신이 운 나쁜 사람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 없는, 지극히 긍정적인 사고의 소유자였다.

데본셔 가문처럼 잉그린트를 좌지우지하는 집안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는 잉그린트 남부에 영지를 가진 스태포드 남작가에서 태어났고, 귀족치고 사이좋은 부모의 삼남으로 태어났다.

형 두 명은 짜증 나긴 하지만 중요한 순간에는 똘똘 뭉치는 나름 나쁘지 않은 인간성을 소유한 사람들이었고, 제 밑의 여동생은 하르모니아만큼은 아니어도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

일찌감치 데본셔 공작의 사생아의 친구로 발탁되는 바람에 그와 더불어 잉그린트 최고의 교육을 받았다. 또, 그 사생아가 행운의 여신에게 사랑받는 대단히 잘난 놈이었기 때문에 도토리를 챙겨 저장하는 다람쥐처럼 지방 귀족의 삼남이 가질 수 없을 법한 재산을 모아 두기도 했다.

사생아 친구는 재수 없지만 그럼에도 마음이 가는 구석이 있었고, 어느새 그와 사무엘은 리던 사교계에서 남색을 하는 사이라고 오해받을 만큼 친밀해졌다. 그 소문은 거슬렸지만, 어쨌든 그들이 가까운 친구라는 뜻이기도 했다.

이루어지지는 않겠지만 그에게도 늦게 깨달은 첫사랑이 있었다. 그리고 첫사랑의 성장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은 영광이었다.

그녀가 글을 쓰면서 행복해하는 것도 보기 좋았다. 또, 혹평에 좌절하는 그녀를 제 나름의 방식으로 위로해 주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럭저럭 살 만한 인생이었다는 말이다, 지금까지는.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건 이미 예감했다. 프시케 캐번디시를 얼른 배에 태워 잉그린트로 보내 버리려 했던 것도 그 이유였다.

비록 자신은 감옥에 갇힌 친구 때문에 남기를 선택했지만, 그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위기에 처한 친구를 두고 홀로 도망가는 건 귀족의 덕목이 아니고, 사무엘 스태포드는 긍지를 가진 잉그린트의 귀족이었으니까.

그런데 예고도 없이 에우로스가 돌아왔다. 잉그린트 정부에서는 제 예상보다 더 급박하게 파병을 결정했던 것이다.

사실 의외였다. 의회가 돌아가는 꼴로 봐서는 감옥에 갇힌 자들이 백발이 성성해질 때쯤에나 구하러 올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친구가 돌아온 것은 매우 기쁘고 경사스러운 일이었으므로, 사무엘은 이번에도 역시나 자신은, 에우로스만큼은 아니더라도 나름 중박은 치는 운을 타고났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잉그린트로 돌아갈 배표 다섯 장을 구입했던 날, 잠시 잠깐의 위기 구간이 끝난 뒤 평화로운 일상으로의 회귀를 꿈꾸며 사무엘은 행복했다.

잉그린트 군대를 배에 싣고 온 클라이브 중령은 합리적인 이성을 가진 사람이었다. 요컨대, 무리한 전쟁을 벌일 사람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는 일단 수감된 자들을 무사히 구출한 뒤, 그 이후의 상황은 적당히 눈치 봐 가며 진행하려는 의지가 강했다. 전투라는 건 적군의 피해뿐 아니라 아군의 피해도 전제하기 때문이었다.

웃달라 태수는 협상 테이블에 앉는 것을 거부하지 않았다. 제대로 전쟁을 할 거였으면 애초에 자치령에 있는 군인들을 전부 죽여 버렸을 것이다. 그가 거느린 병사들의 숫자를 고려해 보면 불가능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수가 윌리엄 요새에서 사람들을 잡아다 가두기만 한 것은, 지금 당장은 전쟁을 할 생각이 없다는 우회적인 표현이었다. 비록 그의 부하들이 오해하여 수감 인원의 9할이 넘는 사람들이 유명을 달리하긴 했어도, 그건 태수의 의도가 아닌 실수였다.

태수는 인더스에 대한 잉그린트의 독점적 무역 상황을 해소하기를 바랐다. 더하여 불법으로 자행되는 아편 밀매와 인신매매의 금지 또한 촉구했다.

하지만, 세상 어느 누가 나만 퍼먹을 수 있었던 꿀단지를 남과 나눌 수 있단 말인가. 그건 절대로 안 될 말이었다. 그러므로 전자는 곧바로 총독 선에서 기각되었다.

한편 총독의 입장에서 후자는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그는 불법 무역을 근절하는 것을 태수 못지않게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잉그린트 본토에서야 남의 집 불구경이지만, 인더스에 사는 잉그린트인들에게 그런 위험 요소들은 언제고 위협이 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편과 인신매매에는 이미 너무 많은 이권이 개입되어 있었다. 벌어들이는 돈도 정상적인 무역에 비해 많았다. 그래서 총독 또한 감히 손을 댈 수 없어 어영부영 모른 척 넘어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국 총독은 강하게 거부 의사를 표하다가, 자치령 바깥에서 압박하듯 줄지어 서 있는 코끼리 떼들을 보며 판단을 유보했다. 그리고 잉그린트로 사람을 보내 이 사실을 알리고 결정권을 떠넘겼다.

잉그린트로 전령이 가는 시간, 의회가 난상 토론을 할 시간, 왕이 승인을 할 시간, 그리고 전령이 다시 돌아올 시간을 어림잡으면 아무리 빨라도 두어 달은 필요했다.

그리고 웃달라 태수는 백 명 가까운 잉그린트인들이 죽었던 것을 감안해, 너그러이 그 기간 동안 협상을 미루었다.

그런 이유로 에우로스와 프시케, 사무엘과 클라리사, 그리고 닐이 잉그린트로 안전하게 떠날 수 있는 시간은 넉넉히 확보되었다. 배를 타기 전까지 그들은 오랜만에 찾아온 여유를 만끽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엉뚱하게도, 전쟁은 데이모스 캐번디시로 인해 비롯되었다. 그는 죽어서도 존재감이 남다른 자였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 네메시스호의 분위기는 무척 흉흉한 상태였다. 부사령관인 데이모스 캐번디시 대위가 실종되었기 때문이었다.

데이모스는 지휘관이었고, 병사들의 눈먼 존경을 받는 자였으며, 데본셔 소공작이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데본셔 소공작이라는 사실이었다. 잉그린트 최고 귀족이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후, 클라이브 중령은 패닉에 빠졌다.

마땅히 함대 내에 얌전히 있었어야 할 데이모스 캐번디시는 윌리엄 요새 탈환 및 블랙홀 수감자 구조 작전이 있던 날 오후부터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클라이브 중령은 함대 내의 모든 인원들을 추궁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날 데이모스에게 부탁을 받고 보트를 내려 준 병사 하나의 자백을 받아 냈다.

클라이브 중령은 어지간해서는 욕을 하지 않는 근엄한 성격이었다. 그러나 이때만큼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그가 알고 있는 모든 종류의 상스러운 말을 끊임없이 내뱉으며 데이모스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문제는 데이모스 캐번디시가 그날 밤에도, 그다음 날에도, 며칠이 지난 뒤까지도 함대에 돌아오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그가 보트를 타고 단독으로 네메시스호를 벗어난 때로부터 만 하루가 지난 이후부터, 클라이브 중령은 총독의 도움을 구해 칼카트 전역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 탈영으로 여겼던 일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모두가 그의 실종을 심각한 사안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데이모스 캐번디시가 그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와중에 칼카트의 장물 시장에 엄청난 매물이 나왔다. 무려 잉그린트 데본셔 가문의 인장 반지였다. 처음으로 찾은 데이모스 캐번디시의 흔적이었다.

인장 반지는 그것 자체로도 대단한 의미를 지니는 물건이다. 신분과 소속을 증명하며 사용하는 동시에 법적인 효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그 반지를 내다 파는 일은 웬만해서 일어나지 않았다. 몰락 귀족도 아니고 데본셔 소공작이 그럴 리는 더더욱 없었다.

그러므로 장물 시장에 인장 반지가 돌아다닌다는 것은, 데이모스 캐번디시가 어떤 식으로든 범죄에 연루되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아주 높은 확률로 그가 범죄의 피해자가 되었음을 가리키는 증거가 되었다.

클라이브 중령은 병사들을 풀어 진상을 조사했다. 그런 도중 예상하지 못한 일이 발생했다.

탈을 일으킨 것은 다름 아닌 잉그린트 병사들이었다. 네메시스호에 승선했던 병사들의 다수는 데이모스 캐번디시 대위에 대한 충정으로 가슴이 끓는 사람들이었고, 그게 문제의 시발이었다.

존경하는 이를 잃은 잉그린트 병사들은 칼카트 시내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수상쩍다는 이유로 죄 없는 사람들을 괴롭히고, 심지어는 그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급기야 중령이 지시한 조사와 아무 상관도 없는 짓들을 자행하기 시작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부녀자들을 상대로 한 강간이었다. 잉그린트 육군의 수준은 고작 그 정도였다.

그 사실을 보고받은 웃달라 태수는 곧바로 자신의 군대를 보내어 잉그린트 병사들을 제지하도록 했다. 그러자 흥분한 양국의 젊은 병사들이 거리에서 충돌하게 되었고, 서로를 향한 모욕과 저주가 아낌없이 퍼부어졌다. 이때, 누구의 것인지 모를 첫 총격이 있었다.

당연히 그다음부터는 난사였다. 이성을 잃은 병사들은 숨이 끊어지기 직전까지 적들을 겨냥해 총을 쏴 댔다. 그 결과 그 자리에 있던 병사들 대부분이 죽었고, 길 가던 평범한 인더스인들도 목숨을 잃었다.

그다음 날, 태수는 선전포고와 함께 무력으로 잉그린트 자치령을 점령했다. 클라이브 중령이 이끄는 부대는 네메시스호에 있었고, 자치령을 지키던 병사들 중 상당수는 블랙홀에서 죽었기 때문에, 인더스 군은 이번에도 손쉽게 승리했다.

자치령 점령 후, 태수는 전쟁 중 민간인 학살을 금한다는 그 나름의 원칙을 성실히 이행했다. 영내 잉그린트인들이 인질로서의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사무엘을 포함한 방갈로의 다섯 사람이 살아남은 이유였다.

유리도 없이 뻥 뚫린 방갈로의 창밖으로 총을 찬 인더스 군인들이 열을 맞추어 행진하는 것이 보였다. 믿을 수 없게 가끔 코끼리도 지나다녔다. 네모난 모양의 창문이 전시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사실화를 담은 액자 같았다.

그래서 사무엘은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그림과 전쟁은 떨어져서 바라보는 편이 좋으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