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 악귀의 최후
데이모스가 질문했다.
“너, 정체가 뭐지?”
그 말을 들은 매슈 아담스가 데이모스의 눈앞에 그의 얼굴을 들이밀었다.
“빨리도 물어보는군.”
매슈의 날카로운 눈매가 더 사나워졌다. 무언가를 참는 것처럼 가슴이 세차게 오르내렸다.
“내 얼굴, 어디서 본 적 없어?”
데이모스는 땀을 뻘뻘 흘렸다. 몸이 망가지고 있었다. 피부에는 한기가 들이닥쳤지만 입안은 불 속에 있는 것처럼 더웠다. 벌컥 짜증이 났다.
“모르겠다고!”
데이모스가 네 번째로 내지른 큰 소리와 동시에 다시 총알이 날아왔다. 왼쪽 발등이 늘어졌다. 이제는 총상으로 인한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데이모스는 땅바닥에 엎드린 채 경련했다.
“내 형님이 알면 기뻐하실지도 모르겠군. 너 같은 새끼가 기억해 주는 건 싫을 테니까.”
매슈는 엎드려 있는 데이모스의 허리를 걷어찼다. 꿈틀하던 몸이 다시 바닥에 철퍼덕 붙었다.
“나이젤, 로스……?”
갈라진 목소리가 먼지를 머금고 희미하게 올라왔다. 매슈가 쯧쯧 혀를 찼다.
“이런, 형님이 불쾌해하시겠네.”
“너, 나이젤 로스의, 동생, 이야?”
데이모스가 가쁘게 숨을 쉬며 물었다.
기름하고 살짝 올라붙은 날카로운 눈매, 뾰족한 턱과 솟아오른 광대. 나이젤 로스를 처음 만났을 때 저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었던 것도 같았다.
당연한 일이지만, 고문이 시작되자마자 그 이목구비는 형체를 잃었다. 거꾸로 매달아 죽을 만큼 패 놓으면 모든 사람의 얼굴은 동일해진다. 그래서 잊고 있었다.
“응. 반가워, 데이모스 캐번디시.”
매슈가 데이모스를 돌려 눕혔다.
초록색 눈동자에 햇빛이 따갑게 쏘아지자, 시든 나뭇잎처럼 생기가 점점 사라졌다. 데이모스는 눈을 스르르 감았다.
“마음 같아서는 네가 사람들에게 했던 짓을 고스란히 되돌려 주고 싶은데,”
매슈가 데이모스의 턱을 쥐고 입을 벌렸다. 그러고는 흙을 한 움큼 쥐어 데이모스의 입 안에 처넣었다.
“아쉽게도 여기는 랑글로우 고문실처럼 시설이 좋지 않네.”
마른 입안에 건조한 흙이 들어가자 기침과 구역질이 올라왔다. 매슈는 데이모스의 입이 벌어지지 않도록 턱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태어났을 때 이후로 젖어 본 적 없는 데이모스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데이모스.”
매슈가 서서히 일어났다. 데이모스는 거세게 들이켜던 숨을 참았다. 매슈가 다시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리 하나는 기가 막히게 골랐어. 너는 찬달라들보다도 못한 버러지니까. 여기가 딱 너에게 어울리는 장소야.”
덜그럭거리며 탄창을 갈아 끼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 후에는 총성만이 연거푸 튀었다.
입안 가득 흙을 문 데이모스는 어떤 소리도 내지 못했다. 질투와 열등감으로 늘 형형했던 초록 눈동자가 눈물을 머금은 숲처럼 짙어졌다가 곧 바싹 말라 들었다.
“살려…….”
데이모스가 목구멍 안쪽에서 중얼거린 마지막 말은, 고문실에서 죽어 가던 사람들이 그에게 가장 많이 했던 말이었다.
벌집처럼 구멍 난 그의 시신은 다음 날 맨손으로 똥을 푸고 온 찬달라 노인에 의해 발견되었다. 노인은 구더기가 끓는 손으로 데이모스의 옷과 반지를 벗겨 냈다. 횡재한 노인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떠올랐다.
마땅히 그는 데이모스의 죽음을 고발하지 않았다. 찬달라는 누구에게도 먼저 말을 걸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노인의 손에서 데이모스의 시체로 옮겨 간 구더기들은 제 본분을 다했다. 들개들과 까마귀들도 찾아왔다.
잉그린트에서 가장 지위가 높았던 데이모스 캐번디시는 인더스에서 가장 지위가 낮은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 가장 비참한 방법으로 해체되어 사라졌다.
인생은 마치 오솔길과 같다. 걷다 보면 수없이 많은 갈래를 만나고, 선택을 해야 한다. 가끔은 아무 이유 없이, 가끔은 신중하게, 사람들은 방향을 정해 몸을 튼다. 짙은 장미 향이 데이모스가 숨어 있던 나무 뒤에까지 뻗쳐 오던 그날, 처음 갈래 길을 만났던 데이모스는 계속 잘못된 방향으로 다리를 뻗었다.
1)
욕망에서 시작한 죄는 서서히 몸피를 부풀려 종래에는 악귀의 형상이 되었다.
욕망은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다 자라면 죽음을 낳는다.
악귀는 결국 벼랑 끝에 내몰려 죽음으로써 심판받았다. 데이모스 캐번디시는 언제나 절벽으로 가는 길만 골랐으니까.
* * *
티모시 로스는 햇빛이 눈부셔서 데이모스를 쐈다. 그리고 죄책감 따위는 느끼지 않았다.
2)
제 형이 당한 만큼의 반의반이라도 되돌려 주고 싶었다. 그렇게 빨리, 편하게 죽게끔 하고 싶지 않았다.
어느 한 곳이라도 부러트리고, 야비하게 번들거리는 눈동자도 뽑아 버리고, 주제를 모르고 큰 소리를 내는 목구멍을 졸라 버리고 싶었다. 계획은 그랬다.
그러나 티모시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고문 끝에 이용당하고 결국 거꾸로 매달려 눈도 감지 못하고 죽은 제 형, 나이젤 로스 때문이었다.
블랙워치의 본거지를 소탕한 뒤, 잉그린트 정부에서는 스코틀린 내 친 잉그린트 가문에 한해 반군의 시신을 찾아갈 것을 허락했다. 오래 고민하던 아버지는 자신을 데리고 죽은 차남의 유해를 수습하러 갔다.
나이젤은 죽은 모습 그대로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햇빛 한 방울 떨어지지 않는 습한 음지에서 눈과 엉겨 붙은 모습으로, 그렇게 형이 거기 있었다. 추운 겨울 날씨 탓에 나이젤의 시체는 썩지도 않았다.
집으로 데려와 수의로 갈아입히기 위해 나이젤의 옷을 벗겼을 때, 어머니 로스 후작부인은 오열을 멈추지 못하고 탈진해 버렸다. 나이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아버지와 큰형마저 눈이 벌게져 입술을 짓씹었다.
그 후로 티모시는 햇빛을 보는 것이 힘들어졌다. 밝은 곳에 서면 가슴이 조여들었다. 빛 하나 들지 않는 그림자 속에서 죽어 간 나이젤에게 미안해서였다. 나이젤의 죽음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
나이젤을 외면했던 아버지와 큰형을 증오했다. 잉그린트에 기생해 잘 먹고 잘 살아온 자신도 혐오스러웠다. 티모시는 몇 달 동안 식음을 전폐한 채 폐인처럼 살았다.
그때 말콤 월레스가 몰래 찾아왔다. 나이젤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동지인 말콤. 블랙워치의 수장이자 유일한 생존자, 이제는 용병이 된 자였다.
티모시는 두말없이 말콤을 따라나섰다. 그리고 그에게 총칼 쓰는 법을 본격적으로 배웠다.
후작저에서 교육을 받았다면, 말콤에게서는 훈련을 받는 셈이었다. 다행히 그는 몸 쓰는 데에 소질이 있는 편이었고, 1년 만에 상당히 좋은 실력을 갖춘 용병이 되었다.
에우로스 캐번디시의 존재를 알게 된 건 얼마 전이었다. 부인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탐문하던 중, 자존심을 완전히 내려놓은 그가 스코틀린 곳곳을 누비는 말콤에게까지 연통을 넣었던 것이다.
그때까지 말콤은 아무것도 모르던 상태였다. 그러다 에우로스가 보낸 서신을 통해 데이모스의 반역 조작 및 프시케의 잠적 소식을 접한 그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했다.
그렇게 데이모스는 나이젤의 동생인 티모시와 프시케 캐번디시를 사랑한 말콤 월레스 모두에게 보복의 대상이 되었다.
그때 블랙홀에 대한 소식이 리던에 전해졌다. 비보를 듣자마자 황금화살 클럽의 매니저는 에우로스를 구하기 위해 인더스에 보낼 용병을 수소문했다.
마침 리처드 스펜서가 시기적절하게 의뢰를 해 왔고, 매니저는 스펜서 소백작의 의뢰를 가장 성공적으로 수행해 낼 사람으로 말콤이 추천한 티모시 로스를 선택했다. 원한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동기가 되기도 하니까.
그리하여 티모시 로스는 매슈 아담스 일병이 되었다. 그리고 인더스로 향하는 네메시스호에 올랐다.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간단했다. 에우로스를 구조하고, 데이모스의 오른손을 너덜너덜하게 만들어 준 뒤, 각서와 스타킹을 찾아 스펜서 소백작에게 전달하면 되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이른 새벽, 비밀 통로를 이용해 잠입한 블랙홀에서 에우로스 캐번디시는 멀쩡하게 살아 있었고, 목적한 대로 안전하게 구출했으며, 그의 친구인 사무엘 스태포드에게 무사히 인계했다.
그리고 함대로 돌아가 데이모스 캐번디시의 방을 뒤졌다. 각서와 그 망할 스타킹을 찾는 것은 말도 안 되게 쉬웠다.
얼마나 많이 펴 봤는지 손때가 묻은 각서와 누런 액체가 굳어 딱딱해진 스타킹은 어이없게도 베개 아래에 있었다. 그만큼 데이모스는 조심성도, 수치도 없는 인간이었다.
마지막 임무를 완수할 차례였다. 의뢰받은 대로 티모시는 데이모스의 오른손을 향해 총을 쐈다.
겨우 총 한 발 맞았다고 난리를 치는 걸 보니 웃음이 나왔다. 아마 데이모스도 제게 고문받던 나이젤을 보며 웃었겠지.
여기까지가 매슈 아담스의 일이었다. 그리고 일을 마친 매슈 아담스는 티모시 로스로 돌아왔다.
티모시 로스는 데이모스 캐번디시의 죽음을 원했다. 죽어 마땅한 인간을 죽이는 것에 죄의식 따위는 없었다.
태양은 뜨겁게 입김을 불어 댔다. 그늘 하나 없는 땅 위로 지열이 이글거리며 올라왔다. 어지러웠다.
데이모스 캐번디시와 이야기할수록 기분은 더 바닥을 쳤다. 고작 이런 자에게 목숨을 잃은 나이젤을 생각하자 토할 것 같았다. 온기 하나 없던 어둠 속의 시신이 거꾸로 매달린 채 눈앞에서 삐걱삐걱 흔들렸다.
그래서 쏘고 또 쏘았다. 햇빛이 눈부셔서.
1) 가톨릭 성경, 야고보서 1장 15절 수정 인용.
2) 알베르 카뮈 《이방인》 일부 수정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