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거미가 준 교훈
일주일 동안 사람들은 계속해서 죽어 나갔다. 생존한 이들은 시체들을 좁은 방 한구석으로 몰아 놓고 탑처럼 쌓았다.
죽는 사람들의 수가 많아질수록 살아 있는 사람들의 자리가 조금씩 넓어졌다. 때때로 들어오는 물과 음식 때문에 싸울 일도 줄어들었다. 전부 죽은 자들 덕분이었다.
시체 썩는 냄새와 오물 냄새가 문틈과 창문을 타고 번지자, 블랙홀을 감시하던 태수의 수하들마저 견딜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러자 총칼을 찬 사람들이 인상을 쓰며 자물쇠를 풀었다.
인더스인들이 시체들을 문밖으로 끌어내는 동안, 그 누구도 그들에게 대항하지 못했다. 난동을 부리던, 그리고 난동을 부릴 만한 자들이 누구보다 빨리 죽었기 때문이었다.
에우로스는 눈을 감고 미약하게 웃었다.
가장 절실하게 살고 싶어 날뛰던 사람들이 제일 먼저 죽었다. 힘이 소진되고, 의지가 깨져 버린 것이 이유였다.
간절히 바라는 것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또 한 번 인생의 진리를 깨닫는 순간이었다.
열이 들끓었다. 처음에는 그것이, 방 안이 너무나도 더워서라고 생각했다. 낮지 않은 기온, 사람들이 뿜어내는 열기, 시체가 썩으며 올라오는 뜨거운 발악 때문이라고.
열띤 환청이 들렸다. 처음 들은 순간부터 그의 인생을 지배한 신탁의 목소리.
“괜찮니?”
“아프지 않니?”
자신이 했던 대답들도 곧이어 들렸다.
신경 끄라며 퉁명스레 내뱉었던 대답, 그리고 신경 쓰게 해서 미안하다던 사과.
그러나 그건 정답이 아니었다. 정말 하고 싶은 말은 그런 게 아니었다.
“괜찮니?”
아니, 괜찮지 않아.
“아프지 않니?”
아파. 나는 지금 너무 아파.
그렇게 말했어야 했다. 그렇게 대답했어야 했다.
그러니까 네가, 그대가, 부디 계속 그렇게 안아 주었으면 좋겠다고. 그러면 괜찮아지고 아프지 않을 것 같다고.
시큼하고 매캐하게 들이치던 시체들의 냄새가 사라졌다. 비로소 진심을 털어놓은 에우로스에게 낯설지 않은 향기가 스며들었다.
달콤하고, 보드랍고, 따뜻하고, 간질거리는 향기. 어린 프시케에게서도, 지금의 프시케에게서도 같은 향기가 났다.
술에 절여져 몽롱하던 시야에 찬연하게 남은 짙푸른 드레스가 바삭바삭 소리를 내며 그를 감쌌다. 처음의, 그의 인생 최초의 색채. 흐리멍덩하던 눈동자에 스며들어 새파란 수레국화 들판을 만들어 준 그날의 빛이었다.
그렇게 죽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좋은 향기와 예쁜 색깔 속에서.
“이봐요.”
그때 누군가 에우로스의 몸을 옆으로 돌려 눕혔다. 비틀어진 목에 조심스레 헝겊 뭉치를 괸 뒤 퀴퀴한 냄새가 나는 소맷단으로 그의 얼굴을 닦기 시작했다.
“죽지 말아요.”
지극히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처음 이곳에 갇혔을 때부터 당신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의 말에 에우로스는 미간을 조금 찡그리고는 힘겹게 눈을 떴다. 자신에게 계속해서 말을 걸고 있는 사람은 눈매가 깊은 중년의 사내였다.
“아, 오해는 말아요. 그저 흥미로워서 관찰한 것뿐이니까.”
남자는 픽 웃었다. 그러고는 계속 말을 이었다.
“여기 들여보내진 순간부터 사람들은 제각기 바빠졌지요. 화를 내기도 하고, 몸부림을 치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말입니다. 조용해 보이는 사람들도 나름대로는 애쓰면서 버티고 있었어요. 살아야 하니까, 살고 싶으니까.”
“…….”
에우로스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남자는 크게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그저 자신이 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찬찬히 들려줄 뿐이었다.
“그런데 당신은 달랐어요. 살고 싶어 하는 절박함이 보이지 않았죠. 그게 눈에 띄었습니다.”
“…….”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페이스트리처럼 켜켜이 쌓여 있는 와중에, 전혀 모르는 사람의 마음에까지 관심을 두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에우로스는 공감할 수 없는 농담을 듣는 기분으로 그저 귀를 기울였다.
“나는 지금껏 여러 번 참전했어요. 한때는 나도, 당신처럼 모든 걸 놓아 버린 것처럼 살았던 적이 있습니다.”
“…….”
그의 시선이 천장으로 향했다. 여기저기 늘어져 있는 거미줄을 유심히 보며 남자는 계속해서 말했다.
“전투가 있을 때마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죽어 나갔거든요. 잉그린트 정부는 매번 승리에만 초점을 두고 사람들을 선동하지만, 알려지지 않은 패배들도 많습니다. 동료를 잃는 게 가장 쓰라린 패배죠.”
“…….”
남자는 목덜미로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 내며 씁쓸하게 웃었다.
정부가 전 세계에 식민지를 거느리겠다고 선포한 이래, 붉은 코트를 입은 잉그린트 군대는 대륙을 옮겨 다니며 전투를 치렀다. 그리고 위대한 국가사업을 위한 일에 보잘것없는 죽음들이 제물이 되어 바쳐졌다.
“살고 싶다는 생각이 차츰 사라지는 게 문제였습니다. 차라리 죽어 버리는 게 낫다고 생각한 적도 많습니다. 동료들이 죽지 않게 해 달라고 아무리 기도해 봐야 전투가 끝나면 신에게 버림받았다는 사실만 깨닫게 되었지요. 그랬더니 어떤 것에도 절실해지지 않더군요. 사는 게, 그저 연극 같은 느낌이었달까요. 그때의 저는 아마도, 부인들이 많이 호소하는 신경증 같은 병에 걸렸던 것 같군요.”
“…….”
“어느 날, 비 때문에 하루 종일 막사에 틀어박혀 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날씨 때문인지 당장에라도 목을 매고 싶은 충동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급하게 밧줄을 꺼내 놓고 천장을 둘러봤죠. 줄을 고정시킬 곳을 찾기 위해서요.”
“…….”
“그때 마침 거미 한 마리가 줄을 치고 있는 게 보이더란 말입니다. 평소 같았으면 바로 걷어 내 버렸을 거예요. 그런데 죽기를 결심해서인지 자비심이 생기더군요.”
“…….”
“그래서 잠시 밧줄을 내려놓고 그 거미를 지켜봤습니다. 살려 준 보람도 없이 그놈은 계속 줄을 연결하는 데 실패했어요. 무려 일곱 번이나요.”
“…….”
“이제 그만 저놈도 죽이고 나도 죽자, 그런 마음이 들어서 그 거미 쪽으로 다가갔습니다. 축축 늘어진 거미줄을 걷어 내고, 거미도 밟아 죽일 작정이었어요. 한심한 죽음에 동반자라도 생긴 기분이었죠.”
“…….”
“그런데 놀랍게도, 그 순간, 거미가 성공한 겁니다. 제 몸길이보다 몇 배는 멀리 떨어진 기둥으로 실을 이은 거예요.”
“…….”
“그때 알았습니다. 내가 하찮다고 여겼던 것들이 어쩌면 대단히 중요한 것일 수도 있다고. 사람들이 간절해지는 데는 이유가 있는 거라고.”
“…….”
“갈구하는 것은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내 마음 같지는 않으니까요. 하물며 나를 지은 신도 내 마음을 몰라줄 때가 많지요. 하지만 그 거미처럼, 여섯 번, 일곱 번 실패했어도, 그다음에는 안식을 주는 튼튼한 집을 만들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왜 그런 이야기를 나에게 하는 겁니까?”
에우로스가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 그 와중에도 의식은 점점 가물가물 옅어졌다.
“그러니까 포기하지 말라는 겁니다. 물을 주면 마시고, 빵을 주면 먹어요. 가끔은 숨도 크게 쉬고요. 살아서 이 지옥에서 나가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면 되는 겁니다.”
남자의 목소리가 차츰 멀어져 갔다.
에우로스는 아주 오랜만에 울음이 나올 것 같은 기분이었다. 싫지 않았다. 어쩌면, 긴 잠에서 깨면, 시원하게 울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면 그날처럼 파란 드레스를 입은 소녀가 통통 튀어와 보드랍고 달콤한 향기를 풍기며 자신을 안아 줄지도 모를 일이다.
그때는 꼭 다른 대답을 들려주리라. 의식이 몸을 감추며 작게 속삭였다.
* * *
“정신이 듭니까?”
누군가가 에우로스의 어깨를 쥐고 흔들었다. 잠들기 전, 마지막으로 들었던 남자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에우로스는 두어 번 눈을 깜박거린 뒤 눈꺼풀을 완전히 들어 올렸다.
“여기는 어디입니까?”
에우로스가 물으며 주변을 천천히 살폈다. 눈을 감기 전, 질식할 것 같던 때와 달리 사람들이 드문드문 앉아 조용히 저를 지켜보고 있었다.
“시체가 너무 많아져서, 살아남은 사람들을 다른 방으로 옮겨 주더군요. 그쪽은 정말 운이 좋았습니다.”
앞에 앉은 남자가 억지웃음을 지으며 에우로스를 내려다봤다. 그와 잠시 눈을 마주친 후, 에우로스가 물었다.
“그때, 그 사람은?”
“그 사람이라니, 누구를 말하는 거죠?”
“나를 돌봐 줬던 사람 말입니다.”
“아.”
남자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눈을 내리깔고 엄숙하게 대답했다.
“로버트 브루스 장군 말씀이시군요.”
로버트 브루스. 잉그린트 국민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전쟁 영웅의 이름이었다. 에우로스는 그 생각을 잠시 밀어둔 채 잠자코 다음 말을 기다렸다.
“처음부터 부상을 입은 상태였고, 상처에 감염이 생기는 바람에…….”
남자는 말을 다 맺지 못했다. 에우로스는 한참 시간이 지나서야 그가 삼킨 말이 무엇이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눈을 감자 이내 뺨이 축축해졌다.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내게 절실함을 알려 주어 정말 감사하다고. 눈을 뜨자마자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괜찮습니까?”
에우로스의 눈물에 남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괜찮지 않습니다.”
에우로스가 말했다. 주저 없이 단순한 답이었다. 그러자 남자가 그의 이마를 짚었다.
“아직도 아픈 겁니까?”
“그래요. 아픕니다. 정말로요.”
에우로스는 투정 부리듯 남자의 손에 기대어 울며 웃었다.
정말 쉬운 거였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는데, 고작 그게 뭐라고.
약 3주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블랙홀은 백 명 가까운 사람들을 다른 세계로 빨아들여 소멸시켰다. 놀랍게도 에우로스는 블랙홀의 몇 안 되는 생존자 중 하나였다. 정신을 잃은 와중에도 절실한 거미처럼 악착같이 검은 구멍 바깥으로 실을 타고 기어오른 덕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