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든 애로우 (67)화 (67/146)

67. 새로이 올리는 연극

황금화살 클럽의 내실에 짙은 고민이 담긴 표정의 에우로스와 매니저가 마주 보고 앉았다. 에우로스는 지금 막 전달받은 서신을 훑어 내리며 물었다.

“이게 전부야?”

“조금 더 조사해 보고 있습니다.”

에우로스의 질문에 매니저가 침을 꿀꺽 삼키며 대답했다.

에우로스는 침묵했다. 데이모스에 대한 정기적인 보고는 받아 왔지만, 이제껏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

생각보다 데이모스는 랑글로우에서 잘 적응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더러운 진창과 그는 꽤나 잘 어울리는 조합이기는 했다.

여자들을 제 방으로 끌어들여 실컷 놀다가 돈을 쥐여 주고 버리는 거야 리던에서도 무수히 했던 짓이었다. 일과의 대부분을 고문실에서 반군들의 사지를 비틀며 보내고, 상관에게 건방지게 행동하는 것도 데이모스의 포악한 성격을 고려하면 충분히 수긍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방금 전달받은 서신의 내용은 에우로스조차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스코틀린 총독 제임스 몽고메리의 딸, 아비게일 몽고메리 납치.]

“데이모스가 제임스 몽고메리를 알고 있던가?”

“그건 아닙니다. 스코틀린 총독은 총독 임명을 받았던 때를 제외하고는 잉그린트에 방문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시기에는 데본셔 소공작이 리던에 없었습니다.”

“프레이아 고든레녹스와 총독은?”

“고든레녹스 총리의 부인이니 총독 임명식 때 왕궁에서 한 번 만난 적은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둘의 접점을 유추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몽고메리 총독이 원한을 살 만한 행동을 한 적은?”

“제가 알기로는 없습니다. 원한을 산다면 스코틀린 사람들의 원한이지, 데이모스 캐번디시의 원한을 살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그렇군.”

에우로스는 불가해한 상황에 침음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데이모스가 아비게일 몽고메리를 납치할 이유가 없었다.

아비게일의 아버지인 제임스 몽고메리는 죽은 잉그린트 여왕의 충직한 개였다. 그런 자의 딸이 잉그린트에 위협이 될 만한 일을 했을 리 없다. 게다가 아비게일과 데이모스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다.

그때 누군가 내실의 문을 다급하게 두드렸다. 빠르고 일정한 규칙성을 띤 노크였다. 매니저는 문 쪽을 힐긋 보고는 에우로스에게 눈짓했다.

“가 봐.”

에우로스의 허락을 받은 매니저가 허리춤의 권총을 확인하고 문을 살짝 열었다. 문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매니저의 시선이 닿은 바닥에 서신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그는 곧장 그것을 주워 들고 에우로스의 손바닥 위에 올렸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느라 살짝 일그러졌던 에우로스의 미간은 두 번째 서신을 읽고 나자 더 심하게 구겨졌다.

“데이모스가 고문하던 반군 하나가 탈출했다고 하는군.”

“예? 그게 사실입니까?”

매니저는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껏 그가 전해 들었던 데이모스의 고문 실력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났기 때문이었다. 몇백 년 전 마녀들을 산채로 화형시켰던 것이 차라리 자비롭게 느껴질 정도였다.

데이모스의 고문은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난 것이었다. 그뿐인가, 그렇게 고문하고 나서 반군이 고통스러워하며 입을 열어도 절대로 살려 주지 않았다. 고문에 지쳐 입을 열었던 자들을 실컷 조롱하고 다시 고문했던 것이다.

데이모스가 있는 제13보병연대는 스코틀린 출신 반군들을 잡아다 족치는 일에 유구한 역사를 자랑했다. 체계적이고 엄격한 감시 속에서 극도로 고문당하던 사람이 쉽게 탈출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럴 수 있는 몸 상태도 아닐 테지만, 만에 하나 탈출 시도를 했다고 해도 잡히는 건 시간문제였다. 데이모스에 의해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뛰어 봐야 뒤에서 박혀 드는 총알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그건, 좀 이상한데요.”

“그래. 많이 이상하지.”

에우로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서신의 뒷장에 적힌, 탈출했다던 반군의 신상 정보를 살폈다.

[나이젤 로스. 블랙워치 부대원. 로스 후작가의 차남. 스코틀린 총독인 제임스 몽고메리의 딸 아비게일과 정혼자였으나 반군 입대 후 이별. 블랙워치의 사실상 수장인 말콤 월레스의 지기.]

“이 사람의 신상에 대해 또 누가 알고 있지?”

“이 정보는 제13보병연대에서 수집한 것입니다. 연대장과 장교들이 공유하던 내용을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그 외에는 우리밖에 모릅니다. 살아 계셨다면 여왕도 아셨을 테지만, 지금 워낙 정세가 복잡해 의회나 왕궁 쪽은 스코틀린에 전혀 신경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고든레녹스 총리도 프로센 국왕 때문에 애를 먹고 있는지라…….”

“하!”

에우로스가 나지막이 탄식하고는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고문당하다 말고 도망갔다던 나이젤 로스와 데이모스가 납치했다던 아비게일 몽고메리가 정혼했던 사이라는 걸 알고 나자, 허탈하리만큼 모든 의구심이 사라졌다. 그는 금세 상황을 파악해 내기 시작했다.

아비게일을 미끼 삼아 반군을 구슬릴 셈인 모양이다. 지금쯤 데이모스는 여자에게 더러운 짓을 하겠다고 협박해 반군을 제 편으로 만든 뒤 블랙워치를 일망타진하겠다는 단꿈에 빠져 있을 것이다.

아무리 한심해도 에우로스가 관여할 수 없는 일이었다. 스코틀린 반군에 대한 처분은 온전히 잉그린트 군대의 몫이었다. 반군이 탈출을 했든, 혹은 풀려났든, 그것은 에우로스와 아무 상관 없었다.

“이후 상황에 대해서도 계속 보고하라고 해.”

“예.”

“그만 가 봐.”

매니저를 물리며 서신을 반듯하게 접으려던 손가락의 움직임이 갑자기 멈추었다. 다시 빳빳하게 펴진 종이 한쪽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에우로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잠깐만.”

“예? 왜 그러십니까?”

“탈출한 반군과 말콤 월레스가 친구 사이잖아.”

“예? 아, 예. 그렇지요. 그 부대원들은 거의 다 귀족 자제들이라 어렸을 적부터 서로 알고 있었을 확률이 높습니다.”

매니저는 고개를 기우뚱했다. 말콤 월레스. 이미 익숙한 이름이었다.

‘월레스’라는 성 자체가 각자 다른 의미로 잉그린트와 스코틀린에서 유명했다. 그리고 말콤 월레스가 블랙워치 소속 부대원이라는 사실도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조사를 하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은 일이었다. 에우로스가 갤러웨이 성에 다녀온 이후, 말콤 월레스에 대한 신상을 파악해 가져오라고 했던 것이다.

당시 조사에 의하면 프시케 스튜어트, 그러니까 현재는 에우로스 캐번디시의 아내인 프시케 캐번디시와 말콤 월레스는 어렸을 적부터 결혼 이야기가 오갔던 사이였다.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는 건가. 매니저는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새신랑이니 그럴 법도 한 일이지. 그는 애매한 미소를 지으며 에우로스를 살폈다.

그런데 에우로스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그 표정이 담은 것은 적당한 질투가 아닌, 복잡하고도 미묘한 감정이었다.

“왜 그러십니까?”

“간단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겠어.”

“그렇다면……?”

“데이모스가 꾸미는 일이, 단순히 반군을 응징하는 것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뜻이야.”

데이모스가 국경 주둔 군대에 있다는 건, 이미 블랙워치의 주요 대원인 말콤 월레스의 신상 또한 꿰고 있음을 의미했다. 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반군들의 정보를 줍는 것이니까.

그 와중에 운 좋으면 반군을 생포해 더 고급 정보를 듣고, 운 나쁘면 교전 중에 죽게 되는 것이 국경 지역 육군의 운명이었다.

그렇다면 말콤 월레스의 신상 정보에도 프시케의 이름이 당연히 올라 있을 것이다. 나이젤 로스의 정보에 아비게일 몽고메리가 있듯이.

실제로 그 둘이 정혼했던 것은 아니니 여왕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것이었다. 하지만 데이모스는 그렇게 넘길 놈이 아니었다.

데이모스가 프시케의 이름을 보고 그냥 지나쳤을 리 없다. 분명히 제가 저지른 짓은 잊고, 복수심에 불타 대갚음해 주겠다며 저주를 내뱉었겠지. 그리고 나이젤 로스를 고문하면서 복수 계획을 구체화했을 터였다.

따지고 보면, 데이모스가 귀찮음을 무릅쓰고 스코틀린 반군을 소탕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는 애국심이 투철하지도, 보직에 충실한 인간도 아니었다.

그러니까 어쩌면 데이모스에게는 반군보다 프시케, 그리고 자신을 일망타진하는 것이 더 간절한 일일지도 모른다. 아니, 확실히 그럴 것이다.

“블랙워치의 동향은 어떤지 알고 있나?”

“지금까지는 별로 특별한 점이 없습니다. 탈출한 나이젤 로스가 무사히 복귀한다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아비게일 몽고메리가 아직 데이모스의 부대 내에 있는지, 제임스 몽고메리는 어쩌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조사하도록 해. 데이모스와 블랙워치에 대해서는 하루 한 번, 아니, 하루 두 번이 좋겠군. 하루 두 번 반드시 보고해.”

“예. 알겠습니다.”

또 시작이다.

1막 아비게일 몽고메리를 이용한 나이젤 로스의 포섭

2막 나이젤 로스의 배반 행위

3막 반역 음모 및 프시케와 말콤 사이의 관계 폭로

4막 프시케와 에우로스의 몰락

데이모스는 나이젤 로스와 아비게일 몽고메리를 기용해 새로운 연극을 기획했다.

그 인간이 만드는 연극의 주제는 한결같이 ‘프시케의 몰락’이다. 그의 첫 연극이 프시케만을 겨냥했다면, 이번에는 에우로스 본인도 과녁 안쪽에 포함될 것이라는 점이 달랐다.

에우로스가 모르는 사이, 연극의 1막이 끝났고 2막이 무대 위에 올랐다. 그러나 그전에도 그랬듯, 데이모스는 그 연극을 끝까지 해내지 못할 것이다.

무엇보다 그 연극에 프시케는 절대로 데려가지 않을 것이다. 예전처럼 그녀가 그 무대에 억지로 오르는 일은 없어야 한다.

아니, 그 연극의 존재 자체에 대해 알리지 않을 것이다. 프시케 캐번디시는 연극이 벌어지는 무대 뒤편, 검은 장막 속에서 아무것도 몰라야 한다.

에우로스는 받았던 서신을 벽난로에 집어넣었다. 종이가 완전히 다 타 버려 재가 될 때까지 그는 벽난로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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