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불길한 징조
몰리는 하르모니아가 키우는 작고 흰 강아지의 이름이다.
강아지는 매일 앙앙 소리를 내며 짖고, 짧은 다리로 이쪽저쪽을 뱅글뱅글 돌아다니다가 지치면 하르모니아의 발치에서 몸을 웅크리고 잠이 들었다. 제법 평안한 일상이었다.
그러나 몰리는 오늘 오후, 약 예순네 번째 자다 깨기를 반복하는 중이었다. 하르모니아의 한숨 소리 때문이었다.
“하아.”
예순다섯 번째 한숨이었다.
강아지의 눈에도 하르모니아는 한숨 쉴 일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주인이었다. 좋은 것만 먹고, 좋은 옷만 입었다. 청소나 요리를 하는 사람들은 주인의 강아지인 몰리에게도 지극정성으로 대했다.
그런 그녀가 어제부터 한숨만 푹푹 내쉬고 있는 것이다. 몰리의 귀가 다시 쫑긋했다.
하르모니아는 우울했다. 왜 우울한지 본인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우울이었다.
그녀가 신사복을 갖추어 입고 황금화살 클럽에 드나든 지도 꽤 오랜 시일이 흘렀다.
“조지 샌드.”
황금화살 문장이 번쩍이는 호화로운 클럽의 문을 열고 그녀가 소곤거리면, 그 앞을 지키고 있던 경비는 비밀스럽게 그녀를 데리고 계단을 올라 메자닌으로 갔다. 그곳에는 정해진 사람들만 드나들 수 있었고, 아래층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특별실이 있었다.
난간 뒤편에 앉아 신사들을 관찰하는 것은 정말이지 신나는 일이었다. 지금껏 제가 알던 신사들의 모습은 장님이 만진 코끼리의 꼬리에 불과했다.
하르모니아는 특별실에서 남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때로는 메모했다. 그러다 보면 시간은 훌쩍 지나갔다.
늦은 밤이 되기 전에는 저택으로 돌아갔어야 했는데, 어제 그녀는 특별실 소파에서 깜박 잠들어 버렸다. 그러다 눈을 뜬 건 아래층에서 울리는 피아노 소리 때문이었다.
왕립 극장을 후원하는 대귀족의 자녀들이 으레 그러하듯이 하르모니아 또한 음악에 조예가 깊었다. 극장에 가면 데본셔 가문 전용석이 있었고, 언제든 보고 싶은 공연이 있으면 관람할 수 있었다. 원한다면 음악가를 저택으로 데려와 연주를 요청할 수도 있었다.
그런 그녀의 귀를 번쩍 뜨이게 할 정도의 연주를 사교 클럽에서 듣게 될 줄은 몰랐다. 하르모니아는 그 피아노 소리에 영혼의 떨림까지 느낄 정도였다.
그래서 그녀는 난간 위로 몸을 내밀어 간이 무대 쪽을 살폈다. 샹들리에 아래, 피아노를 치는 남자가 보였다.
왜소한 체격에 창백한 얼굴, 예민하면서도 초연해 보이는 표정의 남자였다.
테이블의 신사들 중 그의 연주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술을 마시며 이야기하거나, 카드 게임을 하고, 내기 당구를 했다. 그 연주를 듣는 사람은 특별실의 하르모니아, 아니, 조지 샌드 한 명밖에 없었다.
웅성웅성한 소음 속에서 피아노 연주는 꽃이 피듯 겹겹이 울렸다. 하르모니아는 그 향기로운 음색에 금세 매료되었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주눅 들지 않고 건반을 두드리는 남자의 옆모습에는 신성한 분위기마저 감돌았다.
“여기서 뭘 해?”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자 하르모니아가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았다. 에우로스가 미간을 찡그린 채 그녀를 보고 있었다.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클럽에 있으면 안 돼.”
하르모니아는 허겁지겁 주머니에서 회중시계를 꺼냈다. 자정이 다 되어 가는 시간이었다.
“피아노 연주를 듣다 보니 그랬어.”
“앞으로 또 이러면 클럽에 출입 못 하게 할 거야.”
에우로스가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르모니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사실을 어머니에게 들켰다가는 자신도, 에우로스도 힘들어질 것이었다. 그리고 에우로스가 자신 때문에 곤란해지는 것은 원치 않았다.
그녀는 에우로스와 함께 마차를 탔다. 멀리서 12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뎅뎅 울렸다.
마부가 마차의 문을 닫으려는 순간 하르모니아는 황금화살 클럽에서 나오는 누군가를 발견했다. 악보가 든 가방을 품에 안은 피아노 연주자였다.
“에우로스, 저 사람 알아?”
“프레데릭?”
“이름이 프레데릭이야?”
“그럴걸.”
“저 사람에 대해 더 말해 줘.”
에우로스가 마뜩잖은 표정을 지었다.
“그건 왜?”
“음, 같은 예술가로서의 동질감이랄까?”
“같은 예술가?”
“아무 관심도 받지 못하는 소설가와 아무도 듣지 않는 연주를 하는 음악가니까.”
“허무맹랑한 소리를 하는구나.”
에우로스는 하르모니아의 볼을 툭툭 치다가 어설프게 붙인 콧수염을 잡아 뜯듯 떼어 냈다. 그러자 하르모니아가 빽, 소리를 질렀다.
“아프잖아!”
씩씩대는 그녀를 보며 에우로스가 입을 열었다.
“이름은 프레데릭, 성은 말해 주지 않았어. 스물여섯 살이고, 폴스카에서 왔다더군.”
“폴스카?”
“그 이상은 몰라.”
“언제 연주하러 와?”
“그건 왜 물어?”
하르모니아는 입을 다물었다. 에우로스의 표정을 보니 조금만 더 물었다가는 정말 클럽 출입을 금지당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르모니아는 마차의 창문을 열었다. 비쩍 마른 남자의 등이 구부정했다. 그의 뒷모습에서 어쩐지 애잔한 피아노 선율이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그녀와 에우로스를 태운 마차는 프레데릭이 걷는 방향의 반대편으로 달렸다. 그가 점점 멀어져 갔다.
가난한 음악가가 사는 이스트엔드와 데본셔 공작저가 있는 웨스트엔드. 그 사이의 거리는 아주 많이,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