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스러진 별을 위하여
공작의 마법사가 들이닥치기 전.
오퓨커스는 쓰러진 미렌이 누워 있는 방 안을 지키고 있었다. 영주 성 바깥에선 황제의 군사와 베르디움 공작의 전쟁으로 인해 커다란 소음들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전쟁이 시작된 지 벌써 시간이 제법 흘렀다. 그러나 미렌은 일어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연기를 너무 과도하게 마신 탓일까.
오퓨커스가 마지막으로 조금만 더 힐링 마법을 그녀의 몸으로 주입했을 때였다.
“……라이……언.”
미렌의 입술이 움직이며 나직이 황제의 이름을 불렀다. 그것을 들은 오퓨커스가 번쩍 고개를 쳐들었다.
눈을 감은 미렌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로 라이언을 찾고 있었다.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던 오퓨커스가 조심스레 손을 들어 그녀의 몸속 마나를 살폈다.
“황후 전하, 제 목소리가 들리십니까?”
“…….”
그녀는 그저 눈을 찌푸리기만 할 뿐 전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것을 알아차린 오퓨커스가 경악에 질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마법이 뒤집혔어.”
뒤집힌 마법. 그것은 흔히 마법사들 사이에서 ‘실패한 마법’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성공한 마법은 가끔 아주 적은 확률로 ‘뒤집혀’ 버리기도 한다. 시전한 마법사가 원하는 방향이 아닌 반대로 마법이 시전되기 때문이다.
미렌 우드가 겪고 있는 증상 또한 그것과 비슷했다.
단순하게 말해서, 미렌은 현재 ‘미렌 우드’가 아니라 ‘미렌 에드가’의 몸을 찾고 있다.
마법이 뒤집힌 이유까지는 오퓨커스조차도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녀가 깨어나기 위해선 미렌 에드가의 몸이 필요하단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미 미렌 에드가는 죽어 땅속에 묻혔건만.
“폐하께, 폐하께 알리러 가야겠다.”
창문을 통해 바깥의 상황을 살피던 오퓨커스가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섰다. 알페카든, 멜리크든 찾기만 한다면 폐하를 모셔 오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리라.
그 순간이었다.
방 안의 공간이 무너지며 누군가의 신형이 드러났다. 로브를 쓰고 있으니 마법사임은 분명했으나 오퓨커스로선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오퓨커스의 얼굴에도 경계심이 생겨났다. 영주 성은 현재 잠시 탈환했을 뿐이라 보안 마법이 취약했다. 특히나 프레니티 영주가 베르디움 공작과 내통하고 있었을 확률이 높았기에 더욱 그러했다.
“찾았다.”
사내의 입술이 벌어지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로브 속 그의 눈길이 침대 위를 향하는 것 같자 오퓨커스가 그 앞을 막아섰다.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어서!”
“오퓨커스? 서쪽 마탑의 주인인가?”
상대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은 오퓨커스는 그 대신 마법을 영창 했다. 비록 치료 마법의 대가이긴 하나, 그녀도 기본적인 전투 마법에 대해 배운 바가 있었다.
오퓨커스가 재빠르게 불덩이들을 만들어 날리려 했을 때였다.
사내의 입에서 믿지 못할 말들이 나왔다.
“남쪽 마탑의 주인은 이미 내 주인에게 죽어 버렸건만. 서쪽 마탑주도 죽고 싶나 보지?”
“……죽었다니? 헤겔이…… 죽었다고?”
로브 속 사내가 비스듬히 웃었다. 고개를 들어 오퓨커스와 눈을 마주한 그는 그녀에게 주지시키듯 똑똑히 말했다.
“불에 타 죽었더군. 황후와 황제만 겨우 살려 보내고 자신은 탈출하지 못한 모양이야.”
오퓨커스의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저건 거짓말이다. 거짓말이 틀림없었다.
도저히 믿지 못할 이야기들이었다. 헤겔 카르너가…… 그 헤겔 카르너가 죽었다니?
누구보다 재능이 뛰어났던 사내다.
멜리크는 가장 늦게 마법을 배운 헤겔을 보고 ‘천재’라고 칭했고, 알페카는 대단하다며 존경했다. 오퓨커스 또한 헤겔의 마법적 재능만은 인정하지 않았던가.
그런 헤겔 카르너가 고작 불에 타 죽어 버렸다고.
“거짓말……. 헤겔 카르너가 그렇게 쉽게 죽었을 리가……!”
“뼛가루라도 모아 보여 줄까? 아아, 그 잿더미 속에선 뼛가루도 찾기 힘들겠지만.”
오퓨커스가 혼란스러워할 때였다. 로브 속 사내는 기다렸다는 듯 이야기해 왔다.
“황제와 황후를 살리려다 죽은 거야. 멍청하게도.”
그 한마디에 오퓨커스의 숨이 멈췄다. 숨이 더 쉬어지지가 않았다.
황제에게 황후가 살아 있다 알린 것은 자신이었다. 이후 헤겔이 자신을 미워할 것을 알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량한 제 죄책감으로 인해 보고했다.
그게…… 헤겔 카르너를 죽게 만들었다.
그 찬란하게 빛나던 마법사를.
제 친우를.
“그럴, 리가 없어…….”
저벅, 저벅.
다가온 사내가 오퓨커스의 멱살을 잡아챘다. 오퓨커스는 충격에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힘없이 딸려 왔다.
사내와 눈이 마주치자 그가 오퓨커스를 비웃었다.
“헤겔 카르너는 죽었어.”
확정적인 통보에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자신의 친우를 제 손으로 죽여 버렸다는 죄책감이 오퓨커스의 온몸을 덮쳐 내렸다.
사내는 그대로 오퓨커스의 몸을 바닥으로 내던졌다. 가구에 부딪힌 오퓨커스가 그대로 쓰러져 내렸다.
그녀가 속수무책으로 당하자 사내는 침대로 다가서 쓰러진 미렌 우드의 몸을 안아 올렸다. 이윽고, 오퓨커스가 반응을 하기도 전에…….
방 안에서 사라졌다.
홀로 남은 오퓨커스는 여전히 몸을 가누지 못한 채로 천장을 올려다봤다.
죽어 간 헤겔의 기억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또 하나의 별이 스러져 가고 있었다.
***
“오퓨커스!”
전쟁이 일단락되고 가장 먼저 오퓨커스를 찾아온 이는 알페카였다.
황제와 함께 온 듯 그의 바로 뒤에서 라이언이 따라 들어오고 있었다.
곧 라이언의 눈에도 엉망이 된 방 안과 구석에 쓰러져 있는 오퓨커스가 보였다. 그가 한달음에 달려왔다.
라이언은 모든 것을 미뤄 둔 채 가장 먼저 물었다.
“미렌……. 미렌은 어디 있지?”
멍하니 바닥을 바라보던 오퓨커스가 눈을 든 것은 그때였다. 그녀가 황제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폐하.”
“…….”
“폐하, 헤겔이……. 헤겔 카르너가, 죽었습니까?”
오퓨커스를 부축해 일으키던 알페카도 움직임을 멈췄다. 그게 무슨 소리냐며 알페카가 오퓨커스를 타박하려던 때였다.
그녀를 내려다보던 라이언이 나직이 말했다.
“죽었다던가?”
“……예. 미렌 우드를 납치하던 자가, 그리 말했습니다.”
“그럼, 죽었겠지.”
남은 마나를 겨우 쥐어짜 우리를 내보낸 것 같았으니.
라이언의 마지막 한마디가 덧붙여지듯 따라왔다. 도저히 헤겔 카르너를 향한 애도가 담겨 있다고 믿기엔 어려웠다.
격한 반응을 보인 건 오퓨커스보다도 알페카였다. 단숨에 다가선 그가, 감히 황제의 목을 잡아챘다.
“지금, 그게…… 무슨 말입니까?”
“듣지 못했나. 헤겔 카르너가 죽었을 거라고.”
“헤겔이 왜 죽습니까!”
알페카는 라이언이 황제라는 것도 잊어버린 듯 소리를 질러 댔다. 비록 괴팍한 성미를 가졌으나 제 소중한 친우였다.
그가 죽었다니.
아니, 그보다도 자신을 위해 죽어 갔다는데, 이 황제는 동정마저 하지 않는단 말인가.
“폐하께선, 헤겔에게 미안하지도 않으십니까……?”
“원망할 곳이 없나?”
그의 새까만 눈이 알페카와 오퓨커스를 향했다. 그는 고조 없는 눈빛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나를 원망해도 좋다.”
“…….”
“헤겔 카르너뿐만 아니라 이 전쟁으로 인해 죽어 간 무수히 많은 생명들이 있겠지. 아무렴, 살아남은 모든 이들이 나를 원망해도 좋아.”
알페카의 입이 벌어졌다. 그는 저도 모르게 잡아챘던 황제의 옷깃을 탁, 놓아 버렸다.
라이언은, 황제인 그는 단호하고도 명확하게 대답했다.
“그에 대한 애도는…… 이 전쟁이 끝나고 하겠다.”
그 순간 오퓨커스의 눈에서 눈물이 터져 내렸다. 황제의 한마디로 하여금 헤겔의 죽음이 뺨에 와 닿은 것이다.
그러나 망연히 황제만 원망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헤겔이, 죽어 가면서까지 지키고자 했던 것을 도와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대답하라, 오퓨커스 경.”
“……예, 폐하.”
“미렌은, 어디 있지?”
그의 두 눈은 오로지 미렌을 향할 때만 비로소 살아 움직였다.
그 사실을 알페카와 오퓨커스 또한 알고 있었다. 황제인 그가 움직이는 모든 이유가, 사명이, 오로지 ‘미렌’만을 위한 것임을.
하지만 반대로 말해서 그는 미렌만 살아 있다면 무엇이든 해내고 말 사내였다. 막중하디 막중한 황제의 자리마저도 그녀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해내고 말 터였다.
그래서 오퓨커스는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 집착적인 사랑이 진심임을 알기에, 헤겔의 마지막 바람쯤은 간단히 해내고 말 테니까.
“베르디움 공작이…… 데려갔습니다. 살아남은 그의 수하로 보이는 마법사였습니다.”
“방향은?”
“이동 마법의 마지막 흔적은 프레니티 산맥의 끝, 테룬 공국과의 국경 부근입니다.”
보고를 들은 라이언은 그대로 돌아섰다. 전투를 위해 입은 그의 망토가 등 뒤로 휘날렸다.
밖으로 나가며 그는 장갑 끝을 이로 물어 그것을 벗어 냈다. 순식간에 드러난 라이언의 맨손은 이미 피로 잔뜩 젖어 있었다.
그것에 그의 피인지, 아니면 그가 베어 낸 이들의 피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아니, 아무 상관 없었다.
미렌이 납치되었단 소식을 들은 뒤부터 심장이 불안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그것을 잠재우기 위해서 라이언은 피에 젖은 제 손을 바라보며 그것을 꾹 쥐었다 펴길 반복했다.
아직 미렌은 살아 있다.
죽지 않았어.
그는 몇 번이고 자신에게 세뇌했다. 그래야만 했다. 그래야 이 두 다리가, 머리가, 두 손이 살아 움직일 테니까.
침착함을 잃는 것은, 패배와 다름없다.
그녀를 지키기 위해 평생을 살아온 사내는 그렇게 평정을 유지했다.
오로지 그녀만이 제 숨을 쉴 수 있게 만들었다.
꿈만 꾸면 시한부 황후에 빙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