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화
별자리
오퓨커스는 초조했다.
그녀가 얼마나 당당한 여성인지를 아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기함할 일이었다. 오퓨커스는 늘 자신의 선택과 결정에 대해 후회하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 프레니티 영주 성으로 향하고 있는 지금, 그녀의 미간은 풀어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오퓨커스의 앞에선 이미 황제가 가장 선두에 서서 영주 성의 문을 향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혼자서.
“투항하는 자는 포로로 데려간다. 그렇지 않은 자는 죽여도 좋다.”
“예, 알겠습니다!”
황제의 손짓 한 번으로 기사들과 병사들이 달려 나갔다. 황제 또한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영주 성 안에서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이 달려 나옴과 동시에 전장이 엉망으로 뒤섞였다. 황제는 그 한가운데 서서 무감각한 얼굴로 검을 움직이고 있었다.
오퓨커스는 자신의 마법을 이용해 전투를 지원하면서도 황제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건 아마 헤겔이 떠난 직후부터 내내 그랬을 것이다.
“폐하! 상대는 현재 모두 폐하만을 노리고 있습니다! 제발 뒤로 물러서십시오!”
로이아 테넷이라고 했던가.
황제는 자신의 기사인 이올라오스 트리온조차 두고 왔기에 부단장인 로이아 테넷이 그를 모셨다.
그러나 로이아 테넷이 아무리 외쳐도 황제는 들은 척조차 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상대를 베고 있는 황제는 이미 모든 세상의 소리를 단절해 버린 것만 같았다.
그러니까 꼭…… 죽고 싶은 사람처럼.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오퓨커스는 제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다 결국 알페카를 불렀다.
“알페카!”
“응, 오퓨커스. 무슨 일이야?”
“폐하께 다녀와야겠어.”
“뭐? 지금 저 난리 속으로 들어가겠…… 오퓨커스!”
오퓨커스와 같은 마법사들은 모두 후방에 모여 기사와 병사들의 전투를 지원해 주고 있었다. 그러니 마법사들이 저 지옥 같은 전쟁터의 전방으로 발을 들이는 경우는 거의 전무했다. 전선이 무너지지 않는 이상은.
하지만 오퓨커스는 더 이곳에서 기다릴 수 없었다.
황제가 전쟁터를 휘젓고 다니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살아남고 싶은 게 아니라 죽고 싶어서 검을 휘두르는 것 같았으므로.
“폐하!”
죄책감이라 해도 좋았다. 오퓨커스는 자신이 알아 버린 이 사실에 대해 도무지 숨길 수가 없었다.
그게 저 황제에게 어떤 의미인진, 아무리 제3자인 오퓨커스라도 알 수밖에 없었으니까. 황제는 그렇게도 간절해 보였다.
오퓨커스의 발걸음이 급해졌다. 그나마 보호 마법을 두른 덕분에 황제에게 빠르게 다가갈 때까지 크게 위험한 일은 없었다.
“폐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어쩌면 이후에 이 사실을 안 헤겔이 오퓨커스를 다시는 보지 않겠다고 할지도 몰랐다.
오퓨커스와 헤겔, 알페카, 멜리크는 나이는 다르지만 모두 같은 스승 아래에서 마법을 배웠다. 가장 먼저 스승을 만난 건 멜리크였지만, 폐쇄적인 그는 스승을 가까이서 따르지 않았다.
그러니 스승을 곁에서 가장 오랫동안 지켜본 이는 오퓨커스였다. 그녀는 제 스승의 말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욕심을 위해 열두 살의 어린아이와 어머니마저 죽이려 들었던 스승. 그 때문에 매일같이 죽음의 위협에서 살았던 그 어린아이는, 지금 황제가 되었다.
그래서 오퓨커스는 현 황제에게 기묘한 감정이 남아 있었다. 현 황제가 자신의 스승의 목을 벨 때를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다.
웃지도, 울지도 못하던 그 얼굴을.
“오퓨커스 경, 할 말이라도 있나.”
“……폐하, 로이아 경의 말이 들리지 않으십니까? 조금이라도 조심…….”
“그게 마법사단 소속인 경이 이곳까지 나올 이유가 되는가.”
오퓨커스의 걱정을 짧게 일축한 라이언은 그대로 돌아섰다. 또다시 저 죽음의 전장으로 들어가려는 것이다.
결국 눈을 질끈 감은 오퓨커스가 외치고 말았다.
“황후 전하께서……! 살아 계시다면, 그래도 이러실 겁니까?”
돌아섰던 라이언은 날카롭게 세우고 있던 검을 천천히 내렸다. 타칵……. 바닥에 부딪힌 검이 듣기 싫은 소음을 내었다.
끼익. 끼이익.
검이 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오퓨커스의 귓가에는 선연히 들렸다. 라이언은 그대로 돌아서 오퓨커스에게 다가왔다.
그녀의 앞에 선 라이언은, 까맣게 죽은 눈으로 오퓨커스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오퓨커스 경.”
“…….”
오퓨커스가 잠시 대답을 미루고 침을 삼켰다. 가까이서 마주한 황제는 멀리서 볼 때보다도 더 죽음에 가까운 이 같았다.
덜컥 두려움이 스친 오퓨커스는 그의 눈을 보지 않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황후 전하께서…… 살아 계신대도…….”
“다시 말해 봐.”
“네, 네? 황후 전하께서…… 윽!”
라이언이 단숨에 오퓨커스의 목을 잡아챘다. 때문에 그녀는 어쩔 수 없이 그의 눈을 마주해야만 했다.
그런데 이상하지.
죽은 것 같다고만 생각했던 그의 눈동자가, 어째서 산 사람의 것처럼 느껴지는 걸까. 붉게 충혈되기 시작한 눈은 그제야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미렌이…… 살아 있어?”
“저도, 저도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제 추측으로…….”
뒷말을 애매하게 하다 만 오퓨커스가 짧게 고개만 한 번 끄덕였다. 그러자 라이언은 그거면 되었다는 듯 오퓨커스의 목을 놓아줬다.
“살아 있었어. 그래, 죽었을 리가 없지. 미렌이, 미렌이…….”
제 손을 까닥거리며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리던 라이언이 두 눈을 홉떴다. 황제는 제 아내가 살아 있단 소식을 들은 뒤부터 정신이 나가 버린 사람처럼 굴었다.
이윽고 그는 오퓨커스에게 한 걸음 더 다가섰다. 순식간에 태도가 바뀐 라이언은 꼭 오퓨커스에게 이 세상이라도 모두 줄 것처럼 굴었다.
“어디, 지금, 어디에…….”
“폐하, 진정하세요. 제 추측으론, 이유는 알 수 없으나 현재 황후 전하께선 미렌 우드와 이어져 계십니다.”
“……뭐?”
라이언의 동공이 크게 확장됐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오퓨커스를 내려다봤다.
채앵, 챙……. 데구루루.
황제의 손에서 검이 떨어져 내렸다. 그의 손이 눈에 보일 정도로 덜덜 떨리고 있었다. 평생을 검사로 살아온 그가, 제 손으로 검을 놓아 버린 것이다.
미렌 우드.
자신이 고작 미렌이라 부르기 위해 찾았던 이.
베르디움 공작이 뒤를 쳤다는 소식에 아주 잠시 미렌 우드라는 이름이 스치고 지나갔지만 회군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녀는 미렌 에드가의 대용일 뿐 제 아내는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데, 그 미렌 우드가…… 미렌 에드가였다고.
“그게, 사실인가?”
“……현재로선, 제 추측은 그렇습니다.”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절망으로 물들었다. 아주 잠시간 맛보았던 희망은 더욱더 그를 절망으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뒤를 치기 위해 온 베르디움 공작의 손속에서 그녀가 살아남을 확률은 얼마던가. 아니, 그렇게 만든 건, 다름 아닌 자신이었지 않았나…….
문득 이곳에 도착하기 전 헤겔 카르너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그게 우리가 돌아가야 할 이유가 되나?’
‘그곳엔, 미렌 우드와 이올라오스 경이 남아 있습니다!’
‘이올라오스는 나의 명령으로 그곳에 남았다. 베르디움 공작이 지금 움직일 줄은 몰랐지만.’
헤겔 카르너의 부탁과도 같은 외침에 자신은 외면했다. 미렌 우드가 생각이 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그녀 하나쯤 죽어도……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제 목숨마저 놓아 버린 지 오래였으니까. 타인의 목숨마저 생각해 주기엔, 라이언은 이미 더 이상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미렌 우드는요? 미렌은 어떻게……!’
‘그녀를 미렌이라 부르지 마라.’
아아.
아아…….
실소가 터져 나왔다. 미렌 우드를 ‘미렌’이라는 이름으로 부르지 말라 명한 것은 자신이었다. 그녀는 몇 번이고 자신을 ‘미렌’이라 소개해 왔는데도.
‘제 이름 또한, 미렌입니다.’
‘어찌하여…… 부르셨습니까?’
그녀는 제게 무수히 많은 단서를 주었다. 자신이 조금만 더 주의 깊게 미렌 우드를 살폈더라면, 알아채고도 남았을 단서들을.
미렌이 죽을 때까지 말하지 못했던 게 무엇인지, 그 이유는 왜인지 깨닫고 말았다. 자신이…… 다른 사람도 아닌 황제였으니까.
하지만 미렌.
“폐하, 지금 베르디움 공작이 초소를 완전히 장악했단 소식입니다.”
이건 내게 너무도 가혹하지 않아…….
참담한 얼굴로 눈을 감았다 뜬 라이언이 그 즉시 걸음을 옮겼다. 그가 찾아간 이는 다름 아닌 리케이아 헤르메스였다.
리키, 라고 가볍게 불리는 사내가 현 마법사들 중에서 가장 워프 마법에 탁월하단 것은 라이언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는 오퓨커스와 로이아를 버려두고 리키를 찾아가 부탁했다.
그 ‘황제’가, 머리를 조아린 것이다.
“지금 당장…… 날 보내 다오.”
“네? 폐, 폐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베르디움 공작이 장악한 그곳으로 날 보내 달란 말이다.”
말을 타고 이동하기엔 늦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이대로 제 목이 시시각각 조여 오는 것 같은 감각을 매단 채 말을 탈 수는 없으니까.
리키는 당황스러워하면서도 자신이 해야 할 말을 하나씩 해 갔다.
“폐하, 죄송하지만 이동 마법에는 좌표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미 떠나온 기지로 옮겨 드리기엔, 좌표가…….”
특정한 영지나 건축물이라면 그것을 좌표로 마법을 실현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리키는 임시로 지어 둔 전쟁용 막사에는 좌표를 생각해 두지 않았다.
해 봤자 그 근처로 옮기는 게 전부일 터다. 그러나 황제는 지금, 그런 걸 바라는 것 같지는 않았다.
리키를 바라보던 황제가 이를 악문 채 말했다.
“그럼 명령하마.”
“네……?”
“네 상관의 곁으로 날 보내도록. 그쯤은, 할 수 있겠지.”
헤겔 카르너. 라이언은 리키가 가장 잘 알고 있을 좌표로 그를 지정했다.
꿈만 꾸면 시한부 황후에 빙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