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
헤겔의 손에서 빛이 터지자 기사 두 명이 동시에 몸을 돌렸다. 그들이 목격한 것은, 한 손에 일렁이는 빛을 머금은 남자였다.
“……마법사인가?”
“마법사가 여기 왜 있어?”
그들 중 한 명이 헤겔을 향해 검을 겨눴다. 그를 제압하기 위해 순식간에 기사 하나가 달려 나갔다.
왜인지 다른 기사는 함부로 나서지 않았다. 이유야 단순했다.
저 마법사의 손에서 일렁이는 빛이 일반적인 마법사들의 수준과는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그는 예전에 마법사를 상대해 본 적이 있었다.
“이봐! 기다……!”
퍼억.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살이 터지는 소리가 났다. 흰 빛이 앞서 나간 기사를 감싼 것과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리고, 그 빛이 꺼졌을 때에는.
“윽, 으아아악!”
살아남은 기사가 제 발바닥까지 흘러온 핏물을 바라보며 뒤로 주저앉았다. 제 발치에 도저히 사람의 형체로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나동그라져 있었다.
그가 눈을 들어 앞을 바라봤다.
저 멀리, 여전히 빛을 머금은 마법사가 서 있었다. 그의 손에서 나는 빛은 아직 꺼지지 않은 채였다.
“사, 살려 주십시오.”
저벅.
헤겔이 한 걸음 다가섰다. 그들 머리 위로 이제는 슬슬 동이 트고 있었기에, 기사의 눈에도 헤겔이 어떤 얼굴인지 빼곡히 들어왔다.
그의 낯빛엔 감정이 없었다.
헤겔은 대꾸조차 없이 손을 들어 보였다. 그의 기다란 손가락이 기사를 가리키려 할 때였다.
“헤겔!”
머리 위에서 미렌의 나지막한 부름이 터져 나왔다. 그 순간 헤겔은 저도 모르게 손을 멈칫하고 말았다.
그와 동시에 허점을 잡은 기사가 허겁지겁 일어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발치에 검은 버려 둔 채였다.
그는 제 동료도, 덫에 잡힌 먹잇감도 잊어버린 것처럼 저 멀리 달아났다. 결국 사위가 잠잠해지자 헤겔의 손에서도 빛이 꺼트려졌다.
그러나 주위는 이미 엉망이었다. 헤겔의 발치엔 피 웅덩이가 가득했다.
주위를 둘러보던 헤겔이 순간 숨을 들이켰다. 모든 상황을 바라보고 있었을 미렌이 뒤늦게 떠오른 것이다.
덜덜 떨리는 손끝을 겨우 가다듬었다. 헤겔은 답지 않게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 감정이 종식된 것은, 우습게도 미렌의 한마디 덕분이었다.
“윽, 뭐 해요. 이것 좀 도와줘요!”
“어?”
“아파 죽겠습니다!”
“어…… 어.”
헤겔이 서둘러 팔을 내뻗어 미렌을 묶어 둔 올가미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단단하게 그녀의 발목을 문 철제 클립을 풀기 위해선 마법을 이용해야만 했다.
그렇게 제법 시간이 흘러 겨우 덫을 풀어냈다. 떨어지듯 내려오는 미렌을 헤겔이 품 안 가득 받아 내었다.
처음으로 미렌을 품 안에 안아 들어 봤던 헤겔은 순간 그 사실을 깨닫고 잠시 숨을 멈췄다. 물론 미렌이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내려 달라 한 덕에 얼마 안 가 바닥에 내려 두어야 했지만.
“헤겔 씨, 아까 챙긴 약초들 좀 주겠어요?”
“어떤 거?”
“파란색에 잎이 다섯 개밖에 없는 거요.”
어렵지 않게 해당하는 약초를 찾아낸 헤겔이 그것을 내밀었다. 미렌은 순식간에 그 약초를 짓찧더니 제 발목에 발랐다. 꽤 익숙한 움직임이었다.
“……괜찮아?”
“어렸을 때 뛰어 놀다 덫에 걸린 적이 몇 번 있어서요. 이 정도야 괜찮아요.”
찌익.
마지막으로 그녀는 여분의 천을 찢어 단단히 발목을 동여맸다. 급한 응급 처치는 모두 끝낸 것이다.
“돌아갈 때까지 짐만 들어 주세요. 제가 들다간 모두 떨어트릴 것 같아서.”
“그래.”
당차게 말한 미렌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는 다소 절뚝이긴 했지만 혼자만의 힘으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헤겔이 뒤늦게 그녀를 따라가며 물었다.
“왜 아무 말도 안 해?”
“무슨 말이요? 이제껏 계속 말했는데?”
“내가…… 사람을 죽였잖아. 네 눈앞에서.”
마법사는 경외 받는다. 동시에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손짓 한 번으로 사람을 죽이는 모습을 보고 나면, 어떤 사람이 두려워하지 않을까.
그 말을 듣던 미렌이 덤덤하게 말했다.
“저보다 헤겔 씨가 더 실감이 안 나셨나 봐요.”
“그게 무슨 소리야?”
“이건 전쟁입니다.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이요.”
이미 수많은 프레니티 영지민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건 아마 테룬 공국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전쟁이란 원래 그러했다.
“죽이지 않을 수도 있었어.”
“그랬으면 제가 죽었겠죠.”
지지 않고 들어오는 반박에 헤겔이 허탈하게 웃었다. 미렌은 제 발목을 눈으로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확실한 건 거기 더 오래 있었다간 제 발목이 괴사했을 겁니다.”
“위로해 주려고 그래?”
“설마요. 오히려 그 반대죠.”
“그게 무슨 말이야?”
“고맙다고요.”
나지막한 인사가 전해졌다. 그 한마디에 헤겔의 마음이 덜컹거렸다.
이미 미렌은 약초를 전해 주기 위해 다시금 뒤돌아 갈 길을 가고 있었다. 홀로 남은 헤겔만이 한쪽 눈썹을 찌푸린 채 제 심장을 부여잡았다.
“……하.”
그는 알고 있었다.
올가미에 걸린 미렌은 그가 두 번째 기사마저 죽이려는 순간, 겁에 질린 목소리로 헤겔을 불러 세웠다.
전투 마법사라는 이유로 전쟁에 참여해 본 적이 있던 헤겔에겐 당연했지만 평범한 사람인 그녀에겐 그렇지 않았을 터다. 그러나 미렌은 구태여 그것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렇게 무서워했으면서.
그가 고개를 들어 앞서가는 미렌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절뚝이는 저 모습마저도 이상하게, 정말 이상하게도 단단해 보였다.
***
“나머지는 우리가 할 테니 미렌, 그리고 헤겔 씨. 좀 쉬어요. 아침 식사도 준비해 놨어요.”
미렌과 헤겔이 초소에 돌아왔을 때에는 완전히 동이 튼 뒤였다. 그녀의 어머니가 저 멀리 모여 식사하고 있는 아이들을 가리키며 손짓했다.
아이들을 보살피고 싶었지만 어머니는 단호하게 그것을 거절했다. 이대로 미렌과 헤겔이 쓰러지기라도 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큰 문제라는 이유에서였다.
결국 포기한 미렌이 식사를 하기 위해 걸어갔다. 그 뒤에선 헤겔이 따라오고 있었다.
간단하게 만들어진 감자 수프를 뜬 미렌과 헤겔은 간이 식탁 위에 접시를 놓았다. 의자를 당긴 그녀가 자리에 앉으려던 때였다.
“누나!”
“그렌, 괜찮아?”
“응! 나 이제 괜찮아. 형이랑 누나는요?”
“우린 아무렇지도 않지.”
달려온 그렌이 미렌의 품에 폭 안겼다. 동시에 아이가 은근히 헤겔을 살피자 그도 가볍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겨우 안심한 그렌은 눈을 내리깔며 중얼거렸다.
“누나랑 형이 우리 때문에 산에 갔댔어요. 한숨도 못 자고…….”
“그게 아니라 잠이 안 와서 산책 다녀온 거야.”
“거짓말.”
“정말인데?”
미렌이 웃으며 그렌의 머리를 흩트렸다. 그렌은 그게 거짓말인 걸 알면서도 더는 반박하지 못하고 입술만 댓 발 내밀었다.
“누나는 맨날 혼자서 하려 해.”
“내가?”
“나도 이제 다 컸단 말이야. 나도 산에 데려가!”
“그렌이 다 컸어? 으음, 그러고 보니 좀 무거워진 것도 같다.”
그렌의 엉덩이에 손을 받쳐 짧게 들었다 올리자 정말 전보다 꽤 많이 컸다는 것이 느껴졌다. 미렌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엔 데려가 줄게.”
“정말이야? 정말로?”
“응.”
“형아도 약속해!”
갑작스레 그렌의 타깃이 헤겔로 돌아갔다. 말없이 스푼을 움직이던 헤겔은 갑작스레 자신이 불리자 놀라 고개를 들었다.
“마법 가르쳐 준다고 했잖아요. 꼭 가르쳐 주세요!”
“어? 음, 그래. 무슨 마법이 배우고 싶은데?”
“이동 마법이요!”
타악, 데구루루…….
순간 헤겔이 스푼을 놓쳤다. 그의 발치로 떨어진 스푼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바다에도 가 보고, 이 세상을 잔뜩 돌아다닐 거예요. 형아 같은 마법사처럼요!”
“……마법사라고 해서 다 돌아다니는 건 아닌데.”
“으응, 그래도요.”
아이의 투정 섞인 말에 헤겔이 고개를 끄덕였다. 허리를 숙여 스푼을 주워 든 그가 꽤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래. 내가 가르쳐 줄게.”
“정말요?”
“그렌, 자꾸 귀찮게 굴면 안 돼.”
“그치만……!”
“약속할게. 여기서 나가면 마법을 가르쳐 주기로.”
그렌의 얼굴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미렌이 헤겔에게 약속을 함부로 하면 안 된다고 말하려 고개를 돌렸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헤겔이 따스하게 웃으며 그렌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친구들한테 자랑해야지!”
폴짝 뛰어내린 그렌이 저 멀리 달려 나갔다. 미렌이 한숨을 폭 쉬며 그 모습을 지켜볼 때였다.
톡톡.
“미렌? 식사는 다 했니?”
뒤에서 다가온 그녀의 어머니가 시름 어린 표정으로 미렌을 바라보고 있었다.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미렌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엄마? 무슨 일 있어요?”
“그게…….”
미렌은 가면서 이야기하자며 반쯤 먹은 수프를 내버려 둔 채 걸음을 옮겼다. 그건 헤겔도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대부분의 아이들이 열이 내리고 있단다. 그런데 딱 한 아이만 오히려 열이 더 오르지 뭐니.”
“한 아이만요?”
“응. 들어 보니 원래 몸이 약한 아이더구나. 애 엄마가 많이 울다 탈진을 해 버려서 지금은 내가 보고 있어.”
초소에 돌아가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덩치가 큰 제 아버지의 뒷모습이었다.
누군가 들어온 것을 느낀 아버지께서 몸을 돌리셨다. 그의 품에는 미렌도 아는 얼굴의 조그만 여자아이가 안긴 채였다.
“이 아이예요?”
딱 한 명.
열이 내리지 못한 아이는 바로 어제 헤겔이 안아 주었던 그 아이였다.
그녀가 다가가 살피자 아이가 가물가물 눈조차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정신을 잃어 가고 있는 게 보였다. 아버지께선 아이를 품에서 추어올리며 대답했다.
“하아. 약초가 소용이 없는 모양이야. 먹으면 바로 토해 내고 말아.”
“……애 아버지는요?”
아이의 어머니가 탈진했다면 아버지라도 근처에 있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미렌의 아버지는 조용히 고개만 저어 보였다.
“여기 오기 전에 잡혀갔다더구나.”
‘엄마랑 아빠의 집이 다시 생기는 거요.’
시무룩하게 말하던 아이는 분명 아빠의 이야기 또한 했었다.
아마도 그건 아버지가 곁을 떠나간 게 집이 사라져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리라. 아이는 집이 생기면 아빠가 돌아올 거라 생각했다.
미렌이 손을 뻗어 식은땀이 흐르는 아이의 이마를 닦아 주었다.
안쓰러운 건 사실이었지만 당장 해 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이런 열악한 환경으로는 고작해야 몸을 닦아 주고 약초를 먹여 주는 게 전부였다.
그 순간 뒤에 있던 헤겔이 한 걸음 나섰다.
“……헤겔 씨?”
“아이를 데리고 나갔다 올게.”
그는 묘한 얼굴로 쓰러진 아이를 내려다봤다. 그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약속을 했거든.”
“헤겔 씨, 한숨도 못 잤잖아요. 조금이라도 쉬었다 가는 게…….”
“이 정도의 고열이면 애들은 못 버틴다며.”
헤겔이 팔을 뻗어 그녀의 아버지께 양해를 구했다. 아버지는 묵묵히 아이를 그의 품에 넘겨주었다.
“다녀올게. 걱정하지 마.”
품에 안은 아이의 무게가 너무도 가벼웠다. 헤겔은 아이를 놓치지 않도록 꼭 품에 안아 보였다.
그리고 헤겔은 초소를 벗어나 떠났다. 이동 마법을 사용하려면 여기서 꽤 멀어져야만 했다.
“무사히 다녀오겠지?”
“그럼요, 아버지.”
누구보다 대단한 마법사인걸요.
아마도 헤겔이라면 무사히 아이를 살려 돌아올 터였다. 약속대로 그에 대한 걱정은 미뤄 둔 미렌이 제 아버지와 함께 초소를 빠져나왔다.
“식사는 하셨어요?”
“이제 아침이다, 미렌. 네 엄마가 새벽부터 아침 식사를 하라고 들들 볶더니 너까지 그러기야?”
“알겠어요, 저까진 안 그럴게요. 대신 아빠, 식사를 하고 나면 나무를 패러 가요. 제가 도울게요.”
아버지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둘이서 함께 산을 돌아다닌 적이 꽤 되었던 두 부녀는 오늘도 열심히 나무를 패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날 정오, 그들이 머물던 임시 초소에 누군가 불을 질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