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어 가는 태양
라이언은 그때, 정무 회의에 참석하고 있었다.
국경이 뚫린 이유도 알아냈으니 회의가 막힐 이유라곤 전혀 없었다.
오전 중으로 회의를 끝낸 그는 곧장 미렌에게 다녀올 생각이었다.
아마 라이언이 돌아올 때까지 미렌은 일어나지 못할 터였다. 아직 해가 중천에 다다르지도 못한 터라 그녀가 일어나기엔 이른 시간이었다.
그걸 알고 있는데도 자꾸만 걸음이 급해졌다. 매번 이렇다.
미렌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라이언은 어렸을 때처럼 제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고 자꾸만 달리고 싶었다.
요즘 들어서는 건강이 좋아져 낮에도 무난히 움직일 수 있게 된 미렌이었다. 그는 오늘 아침도 함께할 생각에 미소를 머금으며 걸어갔다.
그렇게 황후의 침실에 다다랐을 때였다.
“아아아악!”
누군가의 절규에 가까운 비명이 들렸다. 방향은 미렌의 침실이었다.
그 순간 라이언의 심장이 쿵,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그는 저도 모르게 황제라는 본분을 잊고 달려 버렸다.
그의 뒤에서 따라오던 모든 시종들이 놀라 급하게 그를 따라가려 했지만, 라이언의 속도를 맞출 수는 없었다.
그는 숨이 벅찰 정도로 달려 황후의 침실 바로 앞까지 도착했다.
“흐으으, 흐으……. 전하, 전하. 일어나세요, 전하……!”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속삭임에 라이언이 손을 들어 문고리를 잡았다. 그런데 이상하지. 아무리 손을 움직여도 문이 열리지 않았다.
그는 눈을 내려 제 손을 확인했다. 형제들의 목을 베어 낼 때도 떨지 않았던 손이 지금, 벌벌 떨리다 못해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기묘했다. 분명 아직 눈으로도, 귀로도 확인한 것이 없건만 그의 타고난 직감이 계속해서 속삭여 대고 있었다.
죽었어.
죽은 거야.
죽어 버렸어.
라이언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겨우 문을 열었다. 쾅, 떨어져 나갈 듯 문이 열림과 동시에 그 안의 광경이 모조리 눈에 들어왔다.
마리아의 품에 안긴 새하얀 얼굴이 보였다. 그녀는 꼭 잠이 든 것처럼 고요했다.
“폐, 폐하, 흐윽…….”
“비켜.”
비켜라.
주저앉은 그녀에게 다가간 라이언이 서늘한 얼굴로 말했다. 당장이라도 비키지 않았다간 아무리 미렌이 아끼던 시녀라 할지라도 어떻게 할지 몰랐다.
그 분위기를 눈치챈 마리아가 붉게 달아오른 눈가를 숨기지 못하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라이언은 이제 혼자가 되어 미렌을 멀거니 내려다봤다.
“미렌.”
무릎을 꿇었다.
깊은 잠에 빠진 것처럼 고요한 모습에 그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숙인 그는 제 귀를 그녀의 심장 위로 가져다 댔다.
…….
…….
언제나 그를 안심시켜 주었던 미약한 박동 소리가, 이제는 들리지 않았다.
어렴풋하게 남아 있는 온기로 살아 있음을 알려 주던 그 체온이,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미렌, 일어나.”
고개를 떼어 낸 라이언이 무섭도록 표정 없는 얼굴로 그녀의 어깨를 흔들었다.
툭, 투욱.
처음엔 그저 흔드는 것에 불과했던 손짓이 다음 순간엔 바닥에 진동이 느껴질 정도로 거세졌다. 그는 처음으로 제 아내에게 윽박질렀다.
“그만 자. 이제 일어나야지, 미렌. 미렌!”
제 아내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과는 별개로, 라이언의 뺨 위로 굵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는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며 서둘러 말했다.
“내가, 잘 자라고 해서 그런가?”
“…….”
“아니면, 감히 당신이 건강해진 뒤를 상상해서 그러해?”
당신이 내게 이럴 수는 없어.
두고 가지 않겠다고 했잖아.
혼자 두지 않겠다고…… 그리 약속했잖아.
그의 속사포 같은 속삭임이 새어 나왔다. 아직 그녀에게 하지 못한 말이 많았다.
해야 할 일도, 해 줘야 할 말도 이토록 많은데.
라이언이 서둘러 바닥에 누운 미렌의 등 아래로 손을 넣었다. 그녀를 받쳐 제 품에 껴안은 그가 잘 나오지 않는 숨을 몰아쉬며 하지 못한 말을 전했다.
이제 그는 황제, 아니 사람보다는 짐승에 가까웠다. 나약한 맹수는 제 하나뿐인 아내를 잃고 절망에 빠졌다.
라이언의 뒤에 서 있던 시종들을 비롯해 미렌의 시녀들은 그런 황제의 모습을 바라보다 고개를 숙였다.
이따금씩 그가 성난 듯 소리를 지를 때면 두려움에 꼭 눈을 감기도 했다. 그건 그들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목줄이 풀려 버린 맹수를 달래 줄 주인이 이제는 없다는 사실을.
***
황제가 황후의 침실에서 나오지 않은 지 어언 일주일이 흘렀다. 미렌 에드가가 사망한 지도 일주일째였다.
놀라운 사실은, 미렌 에드가의 사체 또한 아직 그 방에서 나오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시종 몇 명은 꺼림칙한 얼굴로 굳게 닫힌 황후의 침실 문을 바라보기도 했다.
그러나 당장 워로덴 제국은 전쟁을 앞두고 있었다. 언제까지 라이언이 정무를 손 놓은 채 지낼 수는 없었다.
황후의 침실 앞으로 그 언젠가의 과거처럼 신하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모두 무릎을 꿇은 채 침실에 틀어박힌 황제를 부르짖었다.
“오늘로 벌써 사흘째인가.”
“테룬이 전쟁 물자를 사들이고 있다는 소문이 퍼질 대로 퍼졌네. 이대로 있다간…….”
무릎 꿇은 신하들은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며 저들끼리 대화를 나눴다.
그들의 말이 옳았다. 이대로 황제가 나오지 않았다간 테룬 공국의 기습으로 무너져 내려도 이상하지 않았다.
일주일.
이제는 미룰 수도 없기에 신하들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커졌다. 만일 오늘도 나오지 않는다면 베르디움 공작과 트리온 백작이 나서 직접 문을 열기로 결정한 터였다.
“폐하.”
트리온 백작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그와 동시에 수군거리던 귀족들의 목소리도 조용해졌다. 트리온 백작은 문 앞에 서서 고개를 조아린 채 말했다.
“이제는 돌아오셔야 할 때입니다.”
그 바로 뒤에 선 베르디움 공작 또한 차가운 얼굴로 묵묵히 기다렸다. 귀족파, 황제파를 나누지 않고 모든 대신들이 라이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끼이익…….
일주일간 굳게 닫혀 있던 황후의 침실 문이 느릿하게 열렸다. 트리온 백작의 눈이 일순 커졌다.
그러나 황제는 곧장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다만 그 작게 열린 문틈 사이로 기묘한 대화가 들렸을 뿐이다.
“응, 미렌. 다녀올게.”
“…….”
“오늘은 조금만 자도록 해. 내일은 함께 아침 식사를 해야 하니까.”
“…….”
“그래, 나도 일찍 돌아오지. 밀린 정무가 많아 큰일이야.”
그것을 대화라 부를 수 있을까.
안에서 들려온 것은 오로지 라이언의 목소리밖에 없었다. 그러나 황제는 꼭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처럼 말을 해 댔다.
조금밖에 열리지 않았던 문이 곧 완전히 열릴 때까지, 라이언은 침실 안쪽에서 고개를 떼지 않았다. 끝까지 그는 안쪽의 누군가가 살아 있는 것처럼 인사를 전했다.
쿵.
“폐하, 이제는 돌아오십시오!”
“폐하, 돌아오십시오!”
라이언이 침실 문을 닫고 밖으로 나오자 기다리고 있던 대신들이 뒤늦게 고개를 숙이며 외쳐 왔다.
분명 침실에는 죽은 사람밖에 없다는 것을 모든 귀족들이 알았지만, 그들은 나무랄 수 없었다. 일단 황제가 밖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무릎 꿇은 대신들 앞에 선 라이언은 그들을 한 번씩 내려다보다 이내 말했다.
“곧 회의를 속행할 터이니 모두 물러가라.”
죽은 아내를 둔 이답지 않게 무척이나 고요하고 침착한 한마디였다.
그 모습을 답답한 눈으로 바라보던 트리온 백작이 결국 한 걸음 앞에 나섰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조심스럽게 물었다.
“폐하, 돌아가신 황후 전하는 이만 놓아주십시오.”
“그게 무슨 소리지?”
“……산 사람은 살아야 할 게 아닙니까. 이만 그분을 놓아주시고…….”
“아니, 그 전에. 뭐라고 했나?”
트리온 백작은 왜인지 제 심장이 불안함으로 쿵쿵 뛰어 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황제가 물은 이상 대답을 하지 않을 순 없었다.
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돌아가신 황후…….”
황후. 트리온 백작은 거기까지밖에 말하지 못했다.
소리 없이 검을 빼어 든 라이언이 트리온 백작의 긴 머리카락을 잘라 냈기 때문이다.
눈앞에서 머리카락이 후드득 떨어지는 것을 목격한 트리온 백작이 두 눈을 크게 떴다.
“살아 있는 황후를 두고 죽었다니. 트리온 백작, 죽고 싶은 건가?”
“……폐하.”
“귀 공의 노고를 보아 머리카락에서 멈추었다. 다시는 살아 있는 황후를 두고 입을 함부로 놀리지 말라. 알겠는가.”
“폐하……!”
그는 이미 죽은 지 오래되어 벌레가 꼬이고도 남았을 황후를 두고 자꾸만 살아 있노라 칭했다.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보았다면 황후가 정말 살아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정도로, 단호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트리온 백작은 이미 알고 있었다. 제 아들인 이올라오스가 이미 황제의 품에 안긴 채 죽은 황후의 모습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지난 일주일간 황제는 오로지 이올라오스의 방문만을 허락했다. 아들은 들어갔다 나올 때마다 황후의 시체에서 썩은 내가 심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 모든 사실을 알고 있던 트리온 백작은 마침내 결심했다. 이대로 황제를 내버려 둘 순 없었다.
비록 지고하신 황제 폐하이나 제 아들과 마찬가지로 어린 시절부터 보아 온 아이였다. 그는 라이언이 이렇게 무너지도록 둘 수 없었다.
그렇게 트리온 백작이 굳게 결심한 채 고개를 들었을 때였다.
“……!”
죽을 각오로 조언하려 했던 트리온 백작의 입이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그는 입을 열지 못했다.
일주일 만에 본 황제의 얼굴이 망가지다 못해 죽어 있었기 때문이다.
새카맣게 죽은 눈. 툭 튀어나온 광대. 새파란 입술.
그는 당장이라도 죽을 날을 앞둔 사람처럼 병들어 있었다. 그 얼굴 위로 병색이 짙었던 황후의 얼굴이 스쳐 지나가자 트리온 백작의 온몸으로 소름이 끼쳤다.
“다시는, 황후가, 죽었단 말을, 꺼내지 말라.”
“…….”
“알겠는가?”
“예, 폐하…….”
마침내 트리온 백작으로부터 대답을 들은 라이언은 휙 뒤돌아 복도를 걸어갔다.
그런 트리온 백작에게 베르디움 공작이 다가왔다. 공작은 여전히 표정 없는 얼굴로 무감하게 말했다.
“드디어 폐하께서 미치셨군.”
“공작, 그 무슨 무례한……!”
“그럼 자네의 눈에는 정상으로 보이나?”
점차 멀어지는 라이언의 뒷모습이 트리온 백작에게도 훤히 보였다. 그는 백작의 머리카락을 베기 위해 꺼내 든 검을 다시 넣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질질 끌며 걸어갔다.
누군가 잠시라도 제 심기를 거슬리게 했다간 당장 베어 버릴 것처럼.
트리온 백작은 결국 공작의 물음에 아무 답도 하지 못했다. 공작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황제파 귀족들에게도 모두 전하시게.”
“……무엇을?”
“목이 날아가고 싶지 않다면, 황후 전하의 이야기를 꺼내지 말라고.”
워로덴의 가장 고귀한 태양. 신이 내린 성군. 백성들의 아버지.
미렌 에드가가 생전 몹시도 원했던 그 모든 칭호들은, 그녀가 죽은 순간 라이언이 직접 제 손으로 없애기 시작했다.
황후가 죽은 지 겨우 일주일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