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
우산을 품에 안은 채 뒷산을 내려가던 미렌은 저 멀리 오래된 2층집이 보이자 걸음을 재촉했다.
어느 순간 평지에 다다랐을 때에는 이미 달리고 있었다.
불이 났다는 말과는 달리 그녀의 집은 온전해 보였다. 벌컥, 큰 소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미렌?! 여보, 미렌이 왔어!”
“네? 그게 무슨 소리예요? 미렌이 여길 왜……!”
가장 먼저 눈이 마주친 건 아버지와 그렌이었다.
아버지의 다리 뒤에 숨은 그렌은 여전히 어렸고, 아버지 또한 그녀가 떠나기 전과 그대로였다.
달려 나온 어머니가 놀란 얼굴로 미렌을 맞이했다.
그 온전한 모습들에 미렌은 왈칵 눈물이 나는 것을 느꼈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그렌이 무사하다는 것에 얼마나 안도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녀가 눈물을 흘리는 것도 잠시, 미렌은 제 등에 내리쳐진 어머니의 손길로 인해 파드득 놀랐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머니를 바라보자 그녀가 성난 얼굴로 씩씩댔다.
“이제껏 소식 한번 없다가 돌아오긴 왜 돌아와!”
“어, 엄마. 왜 돌아왔냐니. 그야 남쪽에서 전쟁이 일어났다고 해서…….”
“그랬으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망갔어야지!”
어머니의 눈가가 순식간에 젖어 들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분을 삭이지 못한 채 미렌을 때리려 들었다.
결국 보다 못한 아버지가 나서 어머니를 끌어안아 주었다.
그가 미렌에게 눈짓하며 말했다.
“미렌, 일단 들어오렴. 네 엄마가 많이 흥분한 것 같구나.”
아버지의 품에 안긴 어머니는 속상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 채 안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미렌도 결국 안에 들어섰다.
부모님을 따라가지 않고 기다리고 있던 그렌이 뒤늦게 달려와 그녀의 허벅지를 폭 끌어안았다.
“누나, 잘 다녀왔어?”
“응, 그렌. 그동안 어머니, 아버지 말 잘 듣고 있었지?”
“응. 그래야 누나가 돌아온댔단 말이야.”
“잘했어.”
그렌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주저앉은 미렌이 아이의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전에 봤을 때보다 키가 제법 커져 있었다.
얼마나 불안했는지 모른다.
점차 커 가는 그렌의 모습을 더 이상 보지 못할까 봐.
미렌은 코끝이 시큰해지려 하는 것을 겨우 가다듬었다.
“그렌, 친구들은? 친구들은 잘 있니?”
“아니……. 보면 안 돼.”
“왜?”
“아빠가 숨어 있어야 한댔어. 지금은 나가면 안 된대.”
입 안이 썼다. 다행히 집과 가족들이 온전하긴 했지만 안심할 상황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렌을 달래 방에 들어가게 한 미렌이 서둘러 부모님이 계신 주방으로 따라갔다.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 어두운 얼굴로 앉아 계셨다.
그런데 식탁 위엔 평소와 달리 편지지들이 잔뜩 널브러져 있었다.
다가간 그녀가 그것을 들어 보자 모두 비슷한 내용이었다.
미렌에게, 엄마로부터.
미렌에게, 아버지로부터.
모든 내용이 그녀에게 고향으로 돌아오지 말라는 말을 전하고 있었다.
그러나 보낼 수단이 막혀 모두 전해지지 못한 편지들이었다.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했단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엄마.”
“프레니티로 들어오는 길도, 나가는 길도 모두 막혔다는 소식에……네가 나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그렇게 생각했어.”
아버지는 묵묵히 널브러진 편지들을 모았다.
침묵하는 것을 보면 그 또한 그렇게 생각해 온 것이 분명했다.
“엄마.”
“엄마는 네가 이곳에 돌아오지 않았으면…… 했단 말이야.”
“어머니.”
어머니가 결국 손바닥에 얼굴을 묻으셨다. 그녀의 턱 끝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촌장님도, 다른 이웃 사람들도 모두 도망쳤다. 도망치지 못한 사람들은 산속에 숨어 있단다. 테룬의 병사들이 우릴 가만두지 않아.”
“미렌, 대체 어떻게 여길 들어온 건진 모르겠다만 너라도 나갈 수 있다면 어서 나가거라. 엄마, 아빠 걱정은 하등 하지 말고.”
아버지는 어머니의 등을 약하게 두드리며 위로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두 눈만은 미렌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토록 힘들어하고 계시면서도 두 분은 미렌의 걱정만 해 댔다.
그 마음이 이해가 가면서도 속이 상한 미렌이 입술을 꼭 깨물었다.
결국 미렌은 메고 있던 가방을 벗어 바닥에 내려 뒀다. 그리고 나직이 말했다.
“여기가 아니면 제가 갈 곳이 어디 있어요.”
“……미렌.”
“우리 집이 여기인데, 제가 어디로 가냐고요.”
둘의 뒤로 다가간 미렌이 부모님의 등으로 고개를 묻었다.
어느새 많이 연로하신 부모님의 어깨가 어릴 때와 달리 무척이나 가늘어져 있었다.
그녀에겐 하나뿐인 부모님이었다. 미렌 에드가로 상처 받을 때에도 사랑받고, 사랑하는 법을 알려 주셨던.
이들을 포기하고 혼자 떠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미렌은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두 분과 그렌을 버리고 떠나면…… 그럼 저는 행복할 것 같아요?”
미렌의 한마디에 어머니가 결국 소리 내어 우셨다. 아버지 또한 씁쓸한 얼굴로 둘을 껴안아 줄 뿐이었다.
대단한 해결법을 가지고 돌아온 게 아니다. 기막힌 탈출법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저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가족들을 생각하는 순간, 앞뒤를 따질 새가 없었다.
미렌과 부모님은 오래도록 서로를 끌어안아 주었다.
***
“전하, 황후 전하! 일어나자마자 어딜 가세요?”
“프레니티 영지민들을 구제할 방법을 찾아봐야겠다. 일단 구제품들을 우선적으로 보내고…….”
“마리아 시녀장님을 모셔 올게요. 그러니 전하, 조금만 기다려 주셔요.”
일어나자마자 움직이려 하는 미렌을 막아선 시녀가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당장 움직이려 했던 미렌은 제 옷차림을 내려다보고 허탈하게 앉았다. 그녀는 잠옷 차림이었다.
저쪽 몸의 여파가 여기까지 번져 당연히 제대로 옷을 입은 줄로만 알았다. 방금 전 그녀는 그만큼 정신이 없었다.
“프레니티 영지민들이 꽤 남아 있었지.”
침대에 앉은 그녀는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침대 시트 위를 검지가 톡톡 두들겼다.
잡화점 아저씨의 말대로 불이 난 건 사실이었지만 다행히 인명 피해는 많지 않았다. 촌장님을 비롯해 여러 사람들이 산속에 숨어 있는 것도 확인했다.
일단 가장 먼저 프레니티 영지민들을 구출해야만 했다.
현재 테룬 공국 병사들이 프레니티 영지를 점령하다시피 한 터라 시간이 없었다.
다행히 국경은 파견대로 인해 막기야 하겠지만, 그 뒤부터는 전쟁이었다.
국경이 막힌 것을 안 테룬 공국은 마음이 급해질 테니까.
“전하, 마리아 시녀장님이십니다.”
“들어오도록.”
탁. 타악…….
마리아의 낮은 굽 소리가 미렌의 침실을 울렸다.
평소와 다름없이 머리를 틀어 올리고 들어온 마리아가 그녀를 향해 고개를 숙여 보였다.
다급한 건 미렌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가 마리아에게 서둘러 명령했다.
“마리아, 먼저 치장을 준비해야겠어. 폐하께 가 봐야겠다.”
“……급한 일이 생기셨습니까?”
“그래. 자세한 건 움직이며 설명하지.”
미렌이 막 발걸음을 떼었을 때였다.
드르륵.
어디선가 트레이 끌리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내밀어 확인하자 마리아의 뒤로 익숙한 은색 트레이가 보였다.
그 위에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찻잔이 올라가 있었다.
눈을 내리깐 마리아가 그것을 밀며 미렌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나직이 말했다.
“전하, 우선 아르테미스를 드실 시간입니다.”
“아, 벌써 그렇게 되었나?”
“예, 전하께서 일어나실 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리아가 두 손으로 찻잔을 들어 그것을 미렌에게 건네었다.
받아 든 찻잔은 마시기 좋은 온도로 따뜻했다. 평소와 다를 것이라곤 하등 없었다.
그것을 마시기 직전, 미렌이 문득 마리아에게 물었다.
“이제 몇 잔이나 남았지?”
“그게 마지막입니다, 전하.”
“그런가.”
잠시 찻잔 속 내용물을 내려다보던 미렌이 이윽고 그것을 모두 삼켜 냈다.
그리고 평소대로, 조금 더 힘이 나야…….
챙. 채앵…….
바닥으로 추락한 찻잔이 데구루루 굴러갔다.
미렌은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 털썩.
다리에서 힘이 풀렸다.
미렌의 몸 또한 바닥으로 추락했다.
머리부터 부딪치지는 않았으나 꼭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처음에는 팔이었으며, 그다음엔 다리였다.
그리고 몸이 이상하단 판단이 들었을 때에는 입조차 잘 움직이지 않았다.
“마리, 아…….”
미렌이 겨우 입을 열어 그녀를 불렀다. 그런데 이상했다.
마리아는 쓰러진 미렌을 그저 내려다보고 있을 뿐, 아무런 동요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이 소름 끼칠 정도로 무감각했다.
손가락이 벌벌 떨렸지만 미렌은 애써 그것을 들어 마리아에게 뻗으려 노력했다.
마리아의 눈동자가 부들부들 떨리며 자신에게 향해 오는 손가락으로 내려갔다.
그녀가 한쪽 무릎을 굽혀 그 손가락을 잡아 주었다.
그러나 잡아 준 것은 오로지 손가락뿐이었다.
마리아는 그녀를 일으켜 주거나 사람을 불러오지 않았다.
이윽고 그녀가 나직이 한마디를 내뱉었다.
“전하.”
“마, 리아……. 왜…….”
“좋은 꿈 꾸세요.”
이제는 소리조차 내지 못하게 된 미렌이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곧 숨이 가빠 오기 시작했다.
파르르. 마리아를 향해 뻗었던 손가락 끝이 쉴 새 없이 흔들렸다.
연약한 숨이 끊어질 듯 가늘어지자 마리아가 완전히 무릎을 꿇었다.
미렌에게 다가온 마리아는 그녀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다정히 쓰다듬었다.
마리아의 입으로 미렌 또한 알고 있는 나지막한 자장가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 순간.
털썩, 하는 소리와 함께 올라갔던 미렌의 손이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곧이어 미렌의 온 세상이 암전됐다. 까맣게 시야가 물들며 그녀는 생각했다.
라이언.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미안해요.
***
눈을 감은 황후를 내려다보던 마리아가 두 무릎을 꿇었다.
이윽고 그녀는 고개를 숙여 황후의 심장 위에 귀를 가져다 대었다.
…….
황후의 숨이 끊어졌다.
심장은 더 이상 미약한 박동 소리도 내지 못했다.
그것을 확인한 마리아가 다시금 허리를 폈다.
그녀는 표정 없는 얼굴로 죽은 황후를 내려다봤다.
“부디 그곳에선 악몽은 꾸지 마시길.”
천천히 무릎을 펴고 자리에서 일어난 마리아가 그녀를 내려다봤다.
그리고 다음 순간.
마리아가 손을 움직여 트레이를 세게 밀쳤다.
벽에 부딪친 트레이가 큰 소음을 내며 바닥을 굴렀다.
그와 동시에 마리아의 절규가 시작됐다.
바깥에 있던 시녀들이 서둘러 달려온 것은 당연했다.
하급 시녀들이 목격한 것이라곤, 자신들의 시녀장이 쓰러진 황후를 껴안고 통곡하고 있는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