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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만 꾸면 시한부 황후에 빙 (14)화 (14/133)

사기꾼 말고 사 자 직업입니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예요?”

미렌의 질문에 어머니는 차마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이윽고 어머니가 식탁 위에 올려 뒀던 손을 들어 제 얼굴을 가려 버렸다.

다가간 미렌이 어머니를 다그치듯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요.”

“마을 사람들이 모두 테룬 공국에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의견을 모았다더구나. 그럴 만해. 우리는 그때 너무 힘겹게 살아갔으니까……. 이제야 간신히 제국민이 되었는데, 다시 공국으로 돌아가라니!”

“잠깐만요, 어머니. 그러면 지금.”

“그래. 수도에서 프레니티 영지민 모두 공국으로 돌아가라는 명령문이 내려왔단다.”

미렌이 얼굴을 찌푸렸다. 그녀가 알고 있는 정보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돌아가고 싶다면 허락해야겠지. 상서도 계속 올라오고 있어. 영지는 귀속하되 사람들은 보내는 쪽으로. 마을 측에선 모두 의견을 모았다더군.’

분명 라이언은 마을 사람들이 모두 돌아가고 싶다는 의견을 모았다고 했는데.

그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으니 정보가 중간에 잘못된 걸지도 몰랐다.

이상해. 이건, 어딘가 잘못됐어.

“테룬 공국이 우릴 받아 줄 리도 없어. 벌써 20년이란다! 공국에서 프레니티 영지 사람들을 두고 뭐라 부르는지 아니? 배신자라더구나. 그런데 우리가 돌아갈 곳이 어디 있다고.”

그간 스트레스를 받으셨는지 어머니의 얼굴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누구보다 힘들었던 것은 다름 아닌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그들과 같은 이주민들이었다.

포로처럼 따라와 겨우 자리를 잡았지만 아직 정식 제국민은 아니었으며, 그렇다고 돌아가기엔 너무 먼 길을 왔다.

이곳에서 20년간 지낸 이들이 어쩌면 터전을 잃고 헤매야 할 수도 있었다.

얼굴을 구긴 채 고민하던 미렌이 다가가 어머니의 등을 토닥였다.

“제가 조금 알아볼게요.”

“……되었어. 너는 당장 수도로 올라가. 올라가서, 아무 남자나 잡고 결혼해. 그러면 너라도 여기서 지낼 수 있지 않니.”

“저 혼자 제국민으로 지내서 뭐 해요?”

“……미렌.”

“어머니, 아버지를 두고 저 혼자 살면 뭐 해요. 엄마, 제가 누누이 말했잖아요.”

불쑥, 어머니의 앞으로 손을 내민 미렌이 그녀의 눈가를 엄지로 닦아 냈다.

그러다 문득 눈이 마주치자 씩 웃었다.

“가족보다 소중한 건 없어요.”

***

끔뻑, 끔뻑.

침대에 가만히 누워 눈을 깜빡이던 미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리가 약간 어지럽긴 했지만 그래도 평소에 비하자면 몸 상태가 좋은 편이었다.

최근엔 매번 이러네.

몸 상태가 좋아도 너무 좋으니 한편으로는 불안했다.

미렌은 작은 불안을 접어 한쪽으로 미뤄 둔 채 침대 아래로 발을 내렸다.

알아볼 것이 있어 다른 날보다 일찍 잠이 든 참이었다.

아직 초저녁이라 그런지 바깥에서 인기척이 제법 느껴졌다.

매번 미렌이 일어나던 한밤중과는 다른 분위기에 그녀가 먼저 일어나 바깥으로 향했다.

마리아를 찾을 요량이었다.

“마리아, 거기 있나?”

“전하, 찾으셨습니까.”

방 밖에 나가자 기다리고 있던 마리아가 그녀를 향해 고개를 숙여 왔다.

평소와 달리 일찍 자리에서 일어난 황후에 그녀가 놀란 것 같기도 했다.

“마리아, 폐하께서는…….”

미렌이 문득 말을 멈췄다.

고개를 숙인 마리아의 등 뒤에는 바깥이 훤히 보이는 커다란 창이 있었는데, 아직 초저녁인 탓에 붉은 햇살이 들어오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곳에 흰색의 머리를 가진 사내가 서 있었다.

어제도 보았던 남자였다.

어두운 곳에서 볼 때와 달리 주변이 밝자 사내의 얼굴이 잘 보였다.

그는 미렌이 알고 있는 그 헤겔 카르너가 맞았다.

그가 미렌을 향해 웃으며 손을 들어 보였다.

순간 얼굴을 찌푸린 미렌이 무어라 말을 하려는 순간, 마리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전하, 무슨 일 있으십니까?”

“……아니, 별일 없네.”

헤겔이 검지를 들어 제 입 위로 올리더니 마리아를 한번 가리켰다.

그것이 비밀로 해 달라는 말임을 안 미렌은 자연스럽게 변명을 하려다가 얼굴을 찌푸렸다.

내가 왜 헤겔의 편을 들어 주고 있던가.

저놈도 여간 미친놈이 아니었다.

황제의 검을 받은 바로 다음 날 당장 똑같은 죄를 저지르러 오다니.

기사들에게 발각되었다간 당장에 수감될 터였다.

“전하, 몸이 편찮으십니까?”

“오늘은 유달리 몸이 가벼워. 걱정하지 않아도 좋아.”

“다행입니다. 마침…….”

몇 분간 가만히 서서 그녀를 지켜보던 헤겔이 이내 손을 흔들었다.

인사를 한 헤겔이 휙 뒤돌아 가자 저도 모르게 그를 불러 세우려던 미렌이 몸을 움찔 떨었다.

“당신, 어딜……!”

“전하?”

고개를 내리자 마리아가 의아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상함을 감지한 마리아가 제 뒤를 바라보려 했지만 미렌이 먼저 움직였다.

큰 키로 위에서 마리아의 어깨를 감싼 그녀가 방 안으로 들어갔다.

아직 저 멀리 헤겔이 보였다.

“이만 들어가지. 안에서 할 이야기가 있어.”

“네, 전하.”

미렌이 불안한 눈으로 멀어져 가는 헤겔의 등을 살폈다.

저렇게 돌아다니다 들키면……. 아니, 됐다. 고작 한 번 닿은 인연에 그렇게까지 걱정해 줄 필요는 없으니까.

안으로 들어간 미렌이 생각을 마치고 먼저 입을 열었다.

“폐하께서는 아직 업무 중이시던가.”

“네, 아직 회의가 끝나지 않으셨습니다. 전하, 폐하께 말씀을 올릴까요? 분명 바로 오실 겁니다.”

“아니, 괜찮아. 오늘 밤에 이야기해도 충분하네.”

그런데 그것을 거절하자 도리어 마리아가 불안한 눈으로 그녀를 올려다봤다.

언제나 얌전한 마리아에게서 그런 모습을 처음 본 미렌이 의아하게 고개를 까닥였다.

“마리아, 무슨 일이라도…….”

“아니요, 그저 주제넘게 한마디만 올려도 될까요?”

“말하도록 해.”

“전하.”

대체 무엇을 말하려는 건지 몇 번이고 망설이던 마리아가 이내 침을 한번 삼키고 그녀를 올려다봤다.

그녀가 긴장했음을 안 미렌이 고개를 한 번 끄덕이자 그제야 입을 열었다.

“말씀을 올리면 폐하께서 무척이나 좋아하실 겁니다.”

“……폐하께서?”

“네, 늘 기다리셨으니까요.”

“나를 말인가?”

미렌이 믿지 못하겠다는 듯 몇 번이고 웃자 내내 냉정한 얼굴이었던 마리아가 짧게 웃었다.

웃자마자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딱 한 시간 뒤에 말씀을 드리지.”

“한 시간 뒤에요?”

당장도 아니고 딱 한 시간 뒤라니.

마리아가 의아한 듯 말끝을 올리자 미렌이 고개를 모로 돌렸다.

병약한 얼굴 위로 미약하게 곤란해하는 기색이 감돌더니 중얼거리듯 말이 이어졌다.

“회의 중이시잖은가.”

“……회의도 관두시고 곧바로 달려오실 텐데요.”

하아.

마리아의 말에 미렌이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안 된다는 말이야.”

폐하께서는…… 그래선 안 되네.

가끔 미렌이 일찍 일어나면 종종 있는 일이었다.

눈을 뜬 그녀를 확인한 마리아가 당장에 보고를 올리면 라이언은 모든 일을 미루고 그녀에게 달려왔다.

물론 미처 마치지 못한 업무는 모두 다음 날로 밀려났다.

그로 인해 몇 번은 시녀들 사이로 괜한 소문이 돌기도 했다.

몸이 약해 나오지 못하는 미렌을 두고 황제를 홀려 업무도 보지 못하게 하는 황후라고.

그 말도 안 되는 소문을 떠올린 미렌이 눈을 찌푸렸다.

당장도 아니고 한 시간 뒤에 보고를 올리면 라이언도 업무가 마쳐 갈 즈음이겠지.

“전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말하게.”

그렇게 말하는 마리아의 기색이 제법 진중해 보였다.

덩달아 미렌도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며 그녀의 말에 집중했다.

그러는 사이 마리아가 고개를 숙인 채 뒤로 물러섰다.

멈춰 선 곳은 방문 앞이었다.

“실은 폐하께서 전하의 진찰을 맡으실 분을 모셨습니다. 오늘 저녁부터 오시기로 한 참인데, 마침 깨어 계실 때 진찰을 받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음. 또 주치의가 바뀌었단 말인가?”

“아니요, 주치의님은 그대로십니다. 그저 특별하게 관리를 해 주실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그건 다행이네. 또 불호령을 들으신 건가 싶었어.”

현재 주치의는 여든에 가까운 할아버지셨다.

그를 볼 때마다 이야기로만 들은 제 할아버지가 생각나 마음이 가던 미렌은 주치의가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에 먼저 안도했다.

……특별하게 관리를 해 줄 사람?

미렌이 망설이는 사이 문으로 다가갔던 마리아가 문을 열겠다는 말을 올렸다.

이미 기다리고 있던 건가? 언제부터?

고민은 미뤄 둔 채 고개를 끄덕이자 양문이 열렸다.

방 한쪽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있던 미렌은 들어오는 이를 살폈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흙이 조금 묻은 구두였다.

남자의 손이 하얗다 못해 색소가 빠진 것 같았다. 평민들이나 입는 흰 셔츠를 깔끔하게 입은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헤겔?”

“……전하?”

미렌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고 말았다.

멍하니 그의 얼굴을 바라보자 헤겔이 의아하단 얼굴로 미렌을 마주 보고 있었다.

기다란 백발을 가진 사람은 분명 헤겔이 맞았다.

머리의 반쯤을 뒤로 가져가 묶은 헤겔이 그곳에 있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전하. 남쪽 마탑의 마법사, 헤겔 카르너입니다.”

“……전하, 이쪽은 폐하께서 고용하신 특별한 치유 마법사로 건강을 관리해 주실 분입니다.”

“내 관리를 한다고요?”

저 게으른 놈이?

미렌이 저도 모르게 검지를 들어 그를 가리키자 헤겔이 우아하게 웃어 보였다.

말 그대로 곱게 미친 놈 같았다.

그러다 이내 앉아 있는 미렌을 향해 다가간 헤겔이 그녀의 앞에서 가슴 위로 제 손을 올리며 고개를 숙였다. 교과서다운 인사 방법이었다.

다시금 고개를 든 헤겔은 눈을 접어 웃더니, 나직이 말했다.

“진찰해도 되겠습니까.”

“아, 예. ……아니, 그래.”

그녀의 대답이 어딘지 석연치 않았지만 헤겔은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앉아 있는 미렌의 앞에서 무릎을 꿇은 그가 문득 손을 내밀었다.

미렌이 그저 그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만 봤다.

“……전하, 제 손을 잡으십시오.”

“손을? 아……. 그렇군.”

결국 손을 올렸다.

조심스럽게 맞잡은 손을 두고 눈을 감은 헤겔은 그렇게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않더니 이내 눈을 뜨며 말했다.

“무척 상태가 좋지 않으시군요.”

그건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가 다 알아.

……라고 한마디 하고 싶은 걸 마리아의 눈치를 봐서 꾹 참았다.

헤겔이 문득 제 안주머니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사실 폐하의 명을 받고 세상에서 하나뿐인 명약을 찾아왔습니다만.”

“……명약?”

“예. 이게 몹시도 찾기 힘들고 귀한 것인데 다행히 이 헤겔 카르너가 간신히 찾아내어.”

헤겔의 말이 이어졌다.

“이렇게 겨우 전하의 앞에 가져왔습니다.”

그가 꺼낸 것은 알고 있다 못해 익숙한 천이었다. 곱게 싸인 천을 거두자 미렌도 아는 그게 나왔다.

아르테미스였다.

“저 홀로 첩첩산중에 들어가 겨우 찾아낸 것입니다.”

……이 새X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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