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마법사는 냄새를 맡는다
“너…… 너 그렇게 웃지 마!”
“예? 왜요.”
“아무튼 웃지 말라고!”
복숭아 바구니를 바닥에 내려 둔 헤겔이 성큼 다가오더니 미렌의 올라간 입 꼬리를 잡고 주욱 내렸다.
순식간에 못생기다 못해 엉망이 된 얼굴로 그녀가 눈썹을 들썩거렸다.
“놓으세요.”
“엉? 아, 그래.”
헤겔이 손을 놓았을 때는 이미 평소와 같은 하얗고 말랑한 얼굴이었다.
그 모습을 보던 헤겔은 저도 모르게 아쉽다고 생각하다가 제 머리를 퍽 쳤다.
미친 거다. 미친 게 분명하다.
스물아홉 해를 살아오는 동안 보았던 늘씬한 미인들의 고백을 거절했던 게 몇 번이었던가.
그런데 저 말랑해 보이는 얼굴을 두고 예쁘다고 생각하다니?
“……뭐 하세요?”
제 머리를 한 번 치더니 이제는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다.
헤겔의 행동들을 바라보던 미렌이 그에게서 슬쩍 한 걸음 물러섰다.
가까이 갔다간 옮을 것 같았다.
어느새 머리에서 손을 떼어 낸 헤겔이 바닥에 내려 둔 바구니를 들고 먼저 돌아가기 시작했다.
물론 머리는 이미 새집을 지은 채 엉망진창으로 뻗은 뒤였다.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젓던 미렌은 방향이 제집이라는 걸 알고는 재빨리 따라갔다.
“거기 우리 집인데요? 왜 당연하게 그쪽으로 가십니까?”
“시끄러워.”
“저녁에 간다면서요.”
“아, 갈 거야! 내일!”
헤겔이 새끼손가락으로 제 귀를 후볐다. 물론 미렌이 서 있는 방향의 귀였다.
졸지에 헤겔을 또 제집에서 재우게 생긴 미렌이 슬쩍 중얼거렸다.
착수금으로 받은 골드가 다 헤겔의 숙박비로 나가겠다고.
그는 못들은 척 미렌의 집 안으로 발을 들였다.
들어가자마자 부엌 쪽에서 따뜻한 냄새가 났다.
미렌이 어머니를 부르기도 전에 헤겔이 먼저 선수를 쳤다.
“어머님, 오늘은 카레인가 봐요?”
“응? 오늘 간다면서?”
“아, 그게 말이죠……. 오늘까지만 신세 져도 될까요? 어쩌다 보니 날이 어두워져서…….”
순식간에 부엌에 들어간 헤겔이 슬쩍 가련한 모습으로 고개를 숙였다.
유난히 하얗고 겉에서 보기엔 말라 보이는 덕에 미렌의 어머니도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래요. 이 밤중에 떠났다간 무슨 일이 있을 줄 알고? 내일 아침도 먹고 가요. 응?”
“하하, 예! 어머니 솜씨가 너무 좋아서 밥이 술술 넘어간다니까요.”
“그런가? 아이 참. 우리 집 사람들은 다 애교가 없다 보니까, 헤겔 씨가 그래서 좋아!”
“별말씀을요.”
미렌이 능숙하게 웃어 보이는 헤겔을 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저래 보여도 그는 대마법사였고, 그러니 밤에 산을 넘어간다 해도 위험할 일은 조금도 없었다.
거기다 말라 보이긴 하지만 벗겨 보면 생각보다 몸이 탄탄한 편이었다.
그런 사람이 밤이 어두워서 떠나지를 못하겠다고?
다른 마법사들이 들었다간 코웃음 칠 일이었다.
“곧 아버지 오시니까 기다렸다 같이 먹자꾸나.”
“아! 좀 전에 밭에서 10분 뒤에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그사이 헤겔과 어머니의 대화는 아버지 이야기까지 이어지더니, 헤겔이 눈을 끔뻑이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에 미렌이 고개를 들었다. 아버지와 이야기한 적이 없는데.
“언제 말했어요?”
“못 들었어? 아까 오신다고 하셨잖…….”
“여보! 나 왔소!”
쿵쿵거리는 소리와 함께 아버지가 돌아오셨다.
헤겔이 그것 보라며 잘난 척 웃자 미렌은 익숙하게 한심하단 눈빛을 건넸다.
“난 귀도 좋아. 어때?”
“어떻긴 뭐가 어때요. 정작 토끼는 내가 아니라 그쪽인가 보지.”
“이렇게 멋지고 잘생겼는데 어떻게 고작 토끼야?!”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계속 저를 토끼라 부릅니까?”
정확히 핵심을 찌르는 미렌의 말에 헤겔이 흠흠, 하고 시선을 피해 버렸다.
미렌은 이미 그를 무시하고 제 앞에 놓인 수저를 들었다.
얼마 가지 않아 손발을 씻은 아버지가 자리에 착석했다.
미리 준비해 둔 대로 어머니가 각자의 앞에 접시를 놓아 주자 내내 밭일을 하느라 고생했던 이들이 빠르게 식사를 시작했다.
식사가 끝나 갈 즈음이었다.
그녀의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헤겔 씨는 언제 가신다고?”
“요즘 밤길이 워낙 위험해서 내가 내일 가라고 했어요. 당신도 괜찮죠?”
“나야 좋지! 오늘 헤겔 씨가 있어서 얼마나 도움이 됐는데. 내가 옮기던 걸 잠깐 쉬는 사이에 다 옮겨 놨지 뭔가?”
“어머, 정말요?”
헤겔이?
미렌이 문득 고개를 돌려 헤겔을 바라봤다.
막상 시선을 받은 헤겔은 실실 웃으며 이미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웃음을 보자 순간 칭찬하기가 싫어졌다.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분명 헤겔은 복숭아밭에서 내내 미렌 뒤를 졸졸 따라다닐 뿐 별다른 일은 하지 않았었다.
더군다나 벌레가 붙을까 봐 종종 그녀를 귀찮게 하기도 했다. 그런데 아버지의 일을 도왔다니.
그러다 문득 기억이 났다.
‘화장실 좀 다녀올게.’
‘그러게 복숭아 그만 먹으라니까.’
‘……그것 때문 아니거든!’
새침하게 말한 헤겔은 복숭아나무가 제게 닿으려 하면 어깨를 툭툭 털며 빠르게 그 사이를 빠져나갔다.
그리고 돌아온 게 30분 뒤였다.
미렌은 그런 헤겔을 두고 화장실을 만들어 다녀왔냐고 농담을 던졌다.
물론 헤겔은 조용히 제 가운뎃손가락을 올리고서 다시 그녀의 뒤를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그때였던 모양이다. 그가 아버지를 도와줬던 게.
“헤겔 씨 같은 직원 한 명만 있으면 참 좋을 텐데. 여보, 우리도 한 명 고용할까?”
“저렇게 작은 밭에 직원은 무슨! 우리 먹고살 만큼만 벌면 됐어요.”
“으음. 그럼 헤겔 씨를 100실버에 고용할까? 그러면 되나? 하하!”
그 말을 듣고서야 미렌은 자신이 그의 딸이 맞음을 깨달았다.
마법사를 100실버에 고용하려는 뻔뻔한 부녀는 아마도 아버지와 저밖에 없을 터였다.
그런데 미렌의 말에는 까칠하게 대답했던 헤겔이 이번에는 씩 웃으며 능청스럽게 굴었다.
“100실버나요? 전 복숭아 다섯 개면 됩니다.”
“아이고, 자네는 성격이 어찌 그리 구김이 없어? 응?”
“너무 아쉽다. 으응? 성적 취향만 맞았어도 우리 미렌이랑 이어 주는 건데!”
“……어머님, 그게요.”
어머니는 그가 남자를 좋아한다는 발언을 철석같이 믿고 무척이나 아쉬운 눈으로 헤겔을 바라봤다.
헤겔이 정정하려 했지만 이미 그의 발언 기회는 지나간 뒤였다.
열심히 식사를 하던 그렌이 스푼을 떨어트리는 통에 대화가 뚝 끊겼다.
“……흐윽.”
“그렌, 수저는 씻어서 다시 쓰면 되지. 응? 왜 울고 그러니.”
“엄마, 죄송해요.”
그렌이 입술을 툭 내밀며 어머니로부터 스푼을 받았다.
스푼을 떨어뜨린 자신이 바보 같다며 그렌이 시무룩하게 말했다.
옆에 앉아 있던 헤겔이 픽 웃으며 그렌의 머리를 잔뜩 헝클였다.
“그럼, 안 떨어뜨리게 해 줄까?”
“어떻게요?”
“이렇게.”
헤겔의 말이 끝나자 그렌의 손에 잡혀 있던 스푼이 허공으로 둥실 떠올랐다.
그의 손짓 한번에 스푼은 공중에서 한 바퀴 돌았다가 다시 그렌의 손으로 안착했다.
그걸 보던 그렌의 눈이 둥그렇게 변했다.
“가르쳐 주세요!”
“이건 마법이라는 건데, 의지만 있으면 배울 수 있지.”
이야기를 듣던 미렌이 슬쩍 헤겔에게 몸을 붙이며 속삭였다.
언제는 천재들만 배울 수 있는 거라면서요.
헤겔은 아무렇지 않게 대응했다. 응, 넌 천재 아니라서 안 돼.
그 대답에 미렌의 눈썹 한쪽이 들썩거렸다.
그러는 사이 그렌은 이미 마법사가 될 꿈에 부풀었는지 헤겔의 소매 한쪽을 덥석 붙잡았다.
그러자 헤겔이 움찔거렸다.
“……아.”
갑작스레 헤겔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얼떨결에 그의 소매를 놓친 그렌을 비롯해 가족들이 모두 그를 바라보자 헤겔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 잠시 밖으로 나갔다.
영문 모를 일에 모두 눈을 끔뻑거리다가, 이내 다시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식사 도중 나간 헤겔은 식사가 끝날 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설거지까지 마치고서도 그가 돌아오지 않자 미렌이 먼저 그를 찾아 밖으로 나갔다.
집 안에서는 헤겔이 보이지 않은 탓이었다.
“……헤겔 씨?”
“어. 왜 나왔어?”
“어머니가 떠밀어서요.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래요.”
“더럽게 솔직하네. 이럴 땐 그냥 ‘걱정돼서’라고 하면 안 되냐?”
미렌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 당당한 반응에 헤겔이 픽 웃고 말았다.
헤겔은 마당 한가운데에 있는 긴 나무 의자에 앉은 터라 미렌도 그 옆에 앉았다.
어쩐지 그의 분위기가 당장 집 안으로 들어갈 것 같지 않았다.
그녀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짧게 읊조렸다.
“예, 헤겔 씨가 걱정되어서요.”
“……미치겠네.”
“뭐가요.”
“너 말이야, 너. 이거 알고 보니 토끼 말고 여우 아니야?”
그가 옆에 앉은 미렌의 이마를 꾹 밀었다.
그러자 미렌은 익숙하게 그의 검지를 잡아 내렸다.
어느새 헤겔과의 이런 장난이 익숙해져 있었다.
“그래서 진짜 무슨 일인데요?”
“있잖아, 나.”
“없는데요.”
“재미없어.”
그러자 미렌이 퍽 아쉽다는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헤겔은 가만히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중이었다.
하늘에 유난히 별이 많았다.
그녀가 있는 곳이 프레니티 영지 중에서도 가장 산골짜기에 있는 터라 별이 많이 보일 수밖에 없었다.
미렌도 그의 시선을 따라 하늘을 올려다봤을 때였다.
“동생을 잃었어.”
“……언제요?”
“10년 전에. 동생이 딱 그렌 나이였거든. 그래서 아까 네 동생이 내 옷소매를 잡는데, 어쩐지…….”
기분이 이상하네. 헤겔이 픽 웃으며 덧붙였다.
헤겔의 동생은 키가 작았다.
그래서 키 차이가 많이 나는 형을 붙잡으려면 언제나 옷소매나 잡는 게 겨우였다. 그러면 헤겔이 동생을 번쩍 들어 올려 안고 다녔다.
그 말을 끝으로 둘 사이에 잠시 침묵이 오갔다.
미렌은 헤겔의 말을 묵묵히 들어 줄 뿐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미렌이 그의 어깨를 툭 쳤다.
“괜찮냐고 안 물어도 되죠?”
“……뭐?”
“하나뿐인 동생이 죽었는데 어떻게 괜찮아.”
미렌은 매번 그랬다.
언제나 무심한 듯 굴지만 구석구석 살펴보면 다정한 이였다.
헤겔이 그 말에 멈칫하자 미렌이 한 번 더 말을 이었다.
“들어가요. 춥다.”
“……위로도 안 해 주냐?”
“해 드려요?”
그녀가 의아하단 얼굴로 물었다.
미렌의 말이 옳았다.
헤겔에겐 더 이상 의미 없는 위로는 필요 없었다.
벌써 동생이 죽은 지 10년이었고, 그는 오랫동안 고통스러웠다.
때때로 의미 없는 위로는 이미 아문 상처마저 파고든다.
미렌이 먼저 의자에서 일어서자 헤겔도 그를 따라 일어섰다.
먼저 집에 들어가려던 미렌은 헤겔이 이번에는 따라오지 않자 제 뒤를 힐끗 바라봤다.
그러자 헤겔이 씩 웃으며 제 뒤를 가리켰다.
“나, 지금 가려고.”
“지금요? 늦었는데.”
“오늘 가기로 했잖아.”
헤겔의 뒤는 바로 대문이었다.
미렌은 그를 바라보며 눈을 한번 깜빡이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당장 떠나도 위험에 빠질 이는 아니란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그가 가는 모습은 보고 들어가려 했다.
그런데 헤겔은 당장 떠나지 않고 어딘지 망설이는 기색으로 머뭇거렸다.
결국 미렌이 먼저 질문을 던졌다.
“……안 갑니까?”
“갈 거야! 갈 건데……. 뭐 좀 물어봐도 되나?”
“물어보세요.”
나직한 허락에 헤겔이 그녀의 얼굴을 응시했다.
그리고 그가 이곳에 머무는 동안 내내 궁금했던 질문을 던졌다.
“너……. 왜 네 몸에 다른 사람의 마나가 흘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