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만 꾸면 시한부 황후에 빙 (1)화 (1/133)

사람은 죽으면 눈을 감는다

“얼마나 남았다고?”

“길어야 3개월……, 아니, 당장 한 달도 위험하십니다.”

“그래?”

자신의 시한부 소식을 들은 여자는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감정이 격해진 것은 그녀의 뒤에 시립해 있던 시녀였다.

“마리아, 왜 울고 그래? 그리 놀랄 일은 아니잖나.”

“전하……. 전하, 아닙니다. 그럴 리가 없어요.”

“질긴 목숨이 이제야 끝나는 모양이야.”

선고를 받은 이는 어쩐지 후련해 보였다.

의원은 별다른 약을 처방해 주는 대신 통증을 완화시켜 주는 약 하나를 남기고 방을 떠나갔다.

미렌 에드가 워로덴.

제국의 유일한 시한부 황후가 드디어 죽을 날짜를 받았다. 무척이나 고요하고 담담한 태도로.

“알고 있던 사실이었잖아. 내가 그리 오래 살지 못하리란 것을.”

“……부디 폐하의 앞에서는 그런 말씀 마세요. 많이 슬퍼하실 겁니다.”

“그런가? 폐하라면 그럴지도 모르겠어. 이상한 분이지. 내 짧은 수명 때문에 성사된 결혼이건만.”

미렌은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들어 제 머리를 넘겼다.

방금 먹은 약의 후유증이 심해서 손이 제대로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거기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아 때때로 거친 숨소리가 목구멍을 괴롭혔다.

그러나 그녀는 그 모든 것을 익숙하게 받아들였다.

오래된 일이었다. 이 몸이 이토록 나약한 것은.

“전하, 폐하의 마음은 진심이셨습니다.”

“알고 있어. 그래서 더욱 이상하지.”

그러니까 어째서 시한부 황후 따위를 좋아하냐는 말이야.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남자였다.

그녀가 태어났을 때에는 열 살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 했고, 열 살을 넘겼을 때에는 성인식을 치르지 못할 것이라 했다.

폐하, 그러니까 미렌의 남편은 그런 여자와의 결혼을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였다.

자신의 정치적 입지에 크나큰 손실을 입으리란 것을 앎에도 불구하고.

쿵. 쿵. 쿵.

벌컥!

때아닌 방문에 황후의 침실 문이 드세게 열렸다.

고개를 들어 문가를 바라보자 이제껏 하고 있던 이야기의 주인공이 보였다.

“미렌. 의원이 다녀갔다지?”

“오셨습니까, 폐하.”

“둘만 있을 때에는 라이언이라 부르기로 약속했잖아.”

“……마리아가 있어요.”

성큼성큼 다가오던 라이언은 미렌의 한마디에 고개를 돌려 문가에 선 마리아를 바라봤다.

그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마리아가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이제 침실에는 그의 말대로 둘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다가온 라이언이 너른 침대 가에 앉아 미렌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의 얼굴은 답지 않게 굳어 있었다.

“곧 주무실 시간이 아닙니까. 어쩐 일이십니까?”

“당신이 죽을…… 날짜를 받았다지 않아.”

라이언은 미렌의 죽음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힘에 겨운지 띄엄띄엄 말했다.

그가 투박한 손을 들어 미렌의 양 볼을 감싸 쥐었다.

차갑게 식은 손길이 느껴지자 미렌도 지그시 눈을 감았다.

손쉽게 부서지는 유리를 잡은 것처럼 남자의 손길은 조심스러우면서도 또한 간절했다.

“당신이, 죽어?”

“알고 있잖습니까, 라이언. 이제 더는…… 소용이 없다는 것.”

미렌이 허탈하게 웃었다.

그녀의 움푹 팬 뺨은 미소마저도 안쓰럽게 만들었다.

미약하게 남은 온기가 아니었더라면 산 사람처럼 보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떻게 그토록 쉽게 말해? 잠들어 있는 당신의 모습을 볼 때의 내가 어떤지는 아나? 당신에게 해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내가 원망스러워. 이 제국을 가지고도 당신 하나를 살릴 수 없어서…….”

“……라이언.”

“가끔은 죽어 버리고 싶어. 당신을 껴안은 채로 함께 눈을 감고 다시는 뜨고 싶지 않아. 미렌, 이게 정상인가? 눈을 감고 있는 당신이 점점 미워지는 내가……. 내가 정상이 맞는 건가…….”

결국 라이언은 미렌으로부터 제 손을 거둬들여 대신 자신의 얼굴을 감쌌다.

한심하기 짝이 없는 얼굴을 그녀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어째서 나 홀로 건강할까.

차라리 함께 죽어 버렸으면,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

미렌이 없는 삶은 그에게도 더 이상 필요가 없었다.

그는 자신의 그런 속내를 보여 줄 수 없어 입을 다물었다.

“라이언, 내일은 함께 저녁 식사를 할까요.”

“……식사를?”

“옆에서 수프나 겨우 넘길 수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도 괜찮다면요.”

라이언은 미렌의 제안 하나에 심장이 뛰어 대는 자신이 우스워 허탈하게 웃었다.

알고 있다. 이것이 그녀만의 위로 방법이라는 것을.

침대에 앉아 있던 미렌이 손을 뻗어 라이언의 머리 위를 매만졌다.

무엄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지만 그도, 그녀도 개의치 않았다.

“미렌, 당신은 아주 나빠.”

“제가요?”

“받아 주지도 않을 마음을 왜 자꾸만 건드려.”

미렌은 그 말에 대답 대신 웃었다.

이미 부부가 되어 버린 마당에 마음을 받아 주지 않는다는 것도 웃긴 일이었다.

다만, 그것이 그녀가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배려였을 따름이다.

아버지에게조차 버려진 목숨을 이토록 귀하게 여겨 주는 이는 라이언밖에 없었다. 그래서 미렌은 오랫동안 그의 마음을 무시해 왔다.

“졸린 건가, 미렌?”

“슬슬…… 잘 때가 되었나 봅니다.”

끔뻑, 끔뻑.

이미 시간은 새벽의 한가운데에 다다랐다. 곧 있으면 달이 지고 해가 뜰 시간이었다.

집무를 마치고 새벽마다 찾아오는 라이언과 함께 있다 보면 밤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쏜살같이 지나가는 시간이 아쉽게 느껴질 정도로.

감기는 눈을 가물가물 뜨며 미렌이 나직하게 말했다.

“라이언.”

“응, 미렌.”

“내가 죽는 건 당신 탓이 아닙니다.”

“…….”

“그러니, 오래 사셔야죠. 제 몫까지요.”

미렌의 말이 점차 느려졌다.

끄트머리에 이르러선 숨이 끊어졌다고 생각했을지도 몰랐다.

침대 머리맡에 앉은 라이언은 그녀를 가만히 내려다보다 미렌의 심장에 제 귀를 가져다 댔다.

쿵……, 쿵……. 그녀의 조그만 심장 소리는 곧 꺼질 듯했지만 끊어지지 않았다.

미렌이 잠에 들 때면 언제나 라이언의 심장은 무너져 내렸다.

라이언은 마침내 참지 못하고 침대 위로 완전히 몸을 올렸다.

미렌을 처음 만났던 열다섯 때와는 달리 190cm에 다다르도록 큰 그였으니, 그가 올라서자 침대는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미렌은 깨어나지 않았다. 라이언은 그녀의 옆에 누워 그저 미렌을 끌어안을 뿐이었다.

미렌은 매번 먼저 잠들었기에 언제나 라이언이 자신을 껴안고 잠들었다는 사실을 결코 알지 못했다.

긴긴 밤, 라이언이 몇 번이고 일어나 그녀의 심장 위에 귀를 가만히 가져다 댔다는 사실도 그녀는 조금도……. 조금도 알지 못했다.

***

“미렌.”

아, 그만 깨워요.

일어나기 싫어. 조금만 더 자고 싶어.

“미렌!”

벼락과도 같은 부르짖음에 미렌이 눈을 둥그렇게 떴다.

그러자 제 머리 위에서 노기 어린 얼굴로 저를 내려다보고 있는 이가 보였다.

미렌이 실망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잘 때는 깨우지 좀 말라니까!”

“지금 시간이 몇 신데 아직도 자는 거니? 닭이 운 지가 한참이란다!”

“그럼 이제 막 동이 튼 거잖아요!”

“아휴, 쟨 왜 이렇게 게으르나 몰라. 황후님이랑 이름도 같은데.”

황후라는 한마디에 이부자리를 정리하던 미렌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그러나 그녀는 곧 도리어 당당한 얼굴로 반박했다.

“엄마, 황후님도 게을러. 누워만 계시잖아.”

“어머? 네가 그걸 어떻게 아니?”

“황후님이 아픈 거 모르는 제국민도 있어?”

어깨를 으쓱한 미렌은 2층 제 방을 박차고 아래로 내려갔다.

그녀가 계단을 한 칸씩 밟을 때마다 오래된 나무 소리가 끼익거렸다.

문득 그녀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오래된 나무 계단의 벽에는 듬성듬성 거미줄이 쳐진 유리창이 존재했다.

분홍색 머리, 연분홍빛 눈, 거기다 혈색이 도는 건강한 얼굴까지. 그곳엔 대단한 미인은 아니더라도 제법 귀엽다는 소리를 들을 법한 여자가 서 있었다.

시한부 황후인 미렌 에드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생기였다.

“엄마, 빨래는요?”

“네 아빠랑 그렌이 널러 갔단다!”

“그럼 전 산에 좀 다녀올게요! 아버지 오시거든 점심에 밭으로 간다고 전해 주세요!”

“아침은 먹고 가지 그러니!”

2층에서 고개를 쏙 내민 어머니가 그녀를 붙잡았지만, 미렌은 고개를 내저었다.

어제 약방 영감님으로부터 부탁받은 일이 있어 마음이 급했다.

“다녀와서 먹을게요!”

현관문을 열고 나가자 아침 특유의 찬 바람이 쌩 불어왔다.

미렌은 바람에 밀짚모자가 날아가지 않도록 꾹 눌러썼다.

그래도 이토록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이 즐거웠다.

미렌은 기억도 나지 않는 시절부터 황후인 미렌 에드가와 평민인 미렌 우드의 몸을 오갔다.

고작 ‘잠’이라는 간편한 수단 하나로.

그게 벌써 25년째였다.

처음에는 자신이 특별한 줄 알지 못했다.

남들도 모두 이렇게 사는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부모님께는 특별히 말씀을 드리지 않았었는데, 어느 날 아버지께 그런 질문을 드렸었다.

‘엄마, 저는 왜 아버지가 둘이에요?’

‘뭐, 뭐어?! 얘는 헛소리를! 여보, 얘가 지금 뭐라는 건지.’

‘다, 당신 혹시……?’

어머니가 바람피운 줄 안 아버지는 그날 엉엉 울었다.

본의 아니게 아버지를 울린 미렌은 두 분의 눈치를 보며 손가락만 꼼지락거려야 했다.

그 후 미렌은 다시는 남들 앞에서 꿈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마침내 성인이 되어 자신의 상황에 대해 정확히 인지하게 되었을 때는, 이미 미렌 에드가의 건강이 무척이나 망가진 뒤였다.

“찾았다.”

이른 아침부터 산에 도착한 미렌은 자신이 찾던 약초를 찾아낼 수 있었다.

요즘 들어 불면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아 수요가 늘어난 수면초였다.

영감님께 가져가면 1골드는 받겠지?

수면초를 조심스럽게 채취해 냈을 때였다.

미렌은 제 옆에 길게 자란 수풀이 무언가에 의해 꺾여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곰? 아니면, 몬스터?

산 중턱에도 가지 못한 곳이라 위험한 동물은 거의 없을 텐데. 배가 고파서 여기까지 내려온 건가?

고심하던 미렌이 수풀로 다가갔다.

만약 들짐승의 흔적이라면 당장 밭으로 내려가 아버지와 논의를 해야 했다.

그러나 그곳에 있는 것은 들짐승도, 몬스터도 아니었다.

“저기요?”

“으윽…….”

“이보세요. 여기서 죽으면 안 되는데요.”

새하얀 머리를 가진 남자가 수풀 속에 쓰러져 있었다. 그의 아래로 흐르는 것은 분명 피였다.

미렌이 곤란해하는 사이, 남자가 팔을 뻗어 그녀를 잡아당겼다.

“어? 어어?”

풀썩. 높게 자란 수풀 사이로 두 사람의 인영이 사라졌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