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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결혼인 줄 알았더니 계략 결혼이었습니다 (0)화 (1/115)

계약 결혼인 줄 알았더니 계략 결혼이었습니다(1)

프롤로그

마가 낀다는 말이 있다.

분명, 이렇게 될 리 없었는데 왜 이렇게 되어 버린 걸까. 대륙을 호령하는 로간 제국의 19대 황제, 루비나드 디 테비시안은 욱신거리는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꾹 눌렀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폐하.”

“그대가 왜 이러고 있는지를 모르겠군, 제빌 경.”

쿠온 공작가의 셋째 공자, 제빌 디 쿠온이 황제와 함께 하는 일은 드물지 않았다. 그는 루비나드의 가장 믿음직한 신하이자 오랫동안 연을 맺은 놀이 친구이기도 했으니까.

게다가 두 사람의 사이가 기정사실이 된 후엔 더 그랬다. 이상하게 보기는커녕 도리어 흐뭇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늘었다.

그리고 오늘, 일생에서 아마 한 번뿐일 큰 행사를 치른 두 사람이 어둠 속 촛불이 요염하게 일렁이는 화려한 침실에 함께 있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그들은 부부가 되었으니까.

다만 보통의 부부가 아니라는 것이 문제일까.

“부부가 같은 방에서 밤을 보내는 것이 이상합니까?”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아.”

고개를 갸웃하던 제빌이 뭔가를 알았다는 듯 제 셔츠에 손을 올렸다.

톡, 톡.

단추를 하나하나 풀어헤치자 하얀 셔츠 깃 사이로 보기와 달리 단단하게 근육이 붙은 가슴이 드러났다. 몇 번이나 봤던 소꿉친구의 몸인데도 밤의 어둠이 스며들자 묘하게 요염해 보여서, 루비나드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제빌은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하나 남은 단추까지 모두 풀어헤치곤 싱긋 웃었다. 상쾌한 미청년의 웃음에는 옅은 색기가 스며 있었다.

“확실히 지금부터 밤을 보낼 부부가 옷을 입고 있는 건 이상하군요.”

“아니, 그게 아니라…!”

어리둥절한 듯 자신을 올려다보는 오랜 친구의 모습에 루비나드는 양손으로 머리를 싸쥐었다.

“왜, 왜 내가 너랑 밤을 보내야 하는 건데!”

결국, 루비나드의 본성이 튀어나왔다. 오랜 친구를 대하는 지나치게 편한 말투에도 제빌은 당황하지 않았다. 도리어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제게 청혼하신 것은 폐하이십니다.”

크고 뜨거운 손이 아직 현실도피를 하고 있는 루비나드의 팔을 끌어당겼다.

평소라면 부관인 제빌이 주인인 루비나드의 몸에 손을 댈 리가 없었다. 이렇게 강하게 끌어 당겨질 일은 더더욱. 그래서인지 루비나드는 생각 밖의 움직임에 저항할 생각조차 못 한 채 엉겁결에 끌려가 그의 품에 폭 안기고 말았다.

뺨에 닿는 속살의 감촉이 이상하다. 닿은 살갗은 사람의 것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무슨 돌덩어리처럼 단단해서 도리어 그녀의 현실도피에 힘을 더해 주었다.

그 책벌레 제빌의 근육이 이렇게 단단할 리가 없으니까.

“저는 폐하의 국서로서 의무를 다하려는 것뿐입니다.”

의무를 다하려는 것뿐, 이라는 눈은 확실히 아니었다.

청회색 눈동자는 잔잔하지만 뜨겁게 일렁이고 붉은 입술은 앞으로 일어나는 일을 기대하는 듯 살짝 벌어져 있었다. 평소의 단정하고 금욕적인 얼굴은 어디 갔는지 욕망이 가득 차 있었다.

뭇 여성들이라면 눈을 마주친 순간 홀려 버렸을지 모를 눈빛을 받고도 황제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그렇겠지. 이런 걸로 넘어올 것 같았으면 지금까지 고생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쓰게 웃는 제빌을 향해 루비나드가 앓는 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제빌, 너 잊고 있는 게 있는 것 같은데….”

“무엇을 말입니까?”

정말로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는 그를 보며 루비나드가 절규했다.

“우리, 그냥 계약 부부 하기로 한 거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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