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화 소설의 끝
피오나는 눈을 떴다.
마차는 옆으로 넘어져 있었다.
온몸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고통에 몸을 움직이자, 무언가가 피오나의 살갗을 파고드는 게 느껴졌다.
탕!
“끄아악!!”
피오나가 비명을 지르려던 찰나, 바깥에서 총성과 함께 한 남성의 비명이 들려왔다. 곧이어, 여러 개의 발소리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다 죽여 버려!!”
“제복 안 입은 놈들은 적이다!!”
첫 번째 마차와 세 번째 마차에서 내린 자신의 사병들이 맞서 싸우는 소리가 들렸지만, 들려오는 적들의 소리는 더욱 컸다.
“밀어붙여!”
“피오나 루멘시아를 찾아! 도망치지 못하게 막아라!!”
의회당에서 들려오던 목소리가, 황태자와 피오나의 목적 달성을 막아 냈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피오나는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어떻게 자신을 기다렸다는 듯 잡아낸 거지, 아니 어떻게 자신을 잡아야 한다는 걸 알고 있는 거지?
그런 의문도 들었지만, 이어지는 총성은 이내 그 질문마저 억누른 채 살길만을 찾게 했다.
치열하고 처절한 전투의 소리를 들으며, 피오나는 입을 다물고 주변을 살폈다. 여기서 벗어나야 했다.
바닥에는 깨진 유리 조각들이 빛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작지만 치명적인 그것들은, 피오나의 맨살을 조금씩 파고들고 있었다.
마차는 옆으로 누워 있었고, 문은 바닥으로 향해 있었다.
피오나는 서둘러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자 충돌로 인해 깨져 버린 마차의 후방 창문이 눈에 들어왔다. 창틀에 남아 있는 유리 조각들이 피오나의 마음속 갈등을 심화시켰지만, 조금씩 잦아드는 총성과 비명이 피오나의 마음을 조급하게 했다.
그녀는 급하게 창문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창틀에 남아 있는 유리들이 그녀의 살갗을 파고들자 고통에 뒤늦게 후회가 몰려왔지만, 그녀에게 남은 길은 없었다.
“끄윽! 흐으윽!!”
옷이 찢어지고, 살에 유리가 박혔다.
버틸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고통이 쏟아졌지만, 피오나의 머릿속에서는 같은 생각만이 반복하고 있었다.
여기서 벗어날 수 있다면.
여기서 벗어날 수 있다면.
여기서 벗어나, 후일을 도모할 수 있다면…….
피오나는 그 생각을 반복하며, 힘겹게 창문을 통해 마차 밖으로 기어 나왔다.
그러나 그녀가 마주한 것은, 또 다른 기회가 아니었다.
“피오나 루멘시아.”
철컥!
전투가 끝난 뒤 찾아온 정적을 깨는 리볼버의 공이가 당겨지는 소리와 함께, 아델라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가 들리자, 피오나의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가을밤의 추위도, 찢어져서 넝마가 된 옷도 떨림의 원인이 아니었다.
압도적인 공포.
차마 고개를 들 수 없게 만드는 압도적인 공포가, 피오나의 몸을 떨리게 만들고 있었다.
“고개 들어.”
그녀의 말에, 피오나는 몸을 떨면서도 위를 올려다봤다.
달빛을 등지고 선 아델라인이었지만, 그녀의 하늘색 눈동자만큼은 시퍼렇게 빛나고 있었다.
아델라인의 등 뒤에는, 횃불을 들고 서 있는 제3 수도경비대의 경비 대원들과 파견 중대의 라이플맨들, 그리고 그들을 지휘한 애런 휘태커 경감이 서 있었다.
그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처참했다.
그들 모두가 피로 젖은 붕대를 감고 있었고, 찢어지고 해어진 제복을 입고 있었으며. 탄약포를 물어뜯느라 검게 물든 입술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눈빛만큼은, 피오나를 내려다보는 그들의 눈빛만큼은 피오나가 마주한 그 어떤 눈빛보다도 사납고 날카로웠다.
아델라인은 리볼버를 들어, 피오나의 이마에 총구를 가져다 댔다.
차가운 금속의 감각이 느껴지자, 공포와 두려움이 피오나의 등줄기를 타고 흘러갔다.
살고 싶었다.
다른 모든 것을 제쳐 두더라도, 살고 싶었다.
그때, 피오나의 눈에 아델라인의 손가락이 방아쇠로 향하는 것이 보였다.
“자, 잠깐!!”
피오나의 목소리가, 간절함을 담아 터져 나왔다.
“넌, 넌 알잖아. 이 세상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응?”
피오나의 말에, 아델라인의 몸이 흠칫 떨렸다.
그러면서 총구가 살짝 흔들리자, 피오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날 죽이면, 이 세상이 어떻게 될까 생각해 봤어?”
그러자, 아델라인의 눈이 감겼다. 그 모습에, 피오나는 희망을 얻은 듯 아델라인을 향해 말을 쏟아 냈다.
“그래, 내가 사라져 줄게. 제국에서 떠나서,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게. 그러니까, 둘 다 좋은 결론을 내자고.”
그 말에, 휘태커를 비롯한 경비 대원들의 시선이 아델라인에게로 향했다.
설마 진짜 놓아 줄 거냐, 라는 눈빛이었다. 만약 아델라인이 피오나를 쏘지 않는다면, 자신들이 직접 쏠 것처럼 손에 들린 머스킷을 들어 피오나를 겨눴다.
그러나 아델라인의 옆을 지키고 있던 스워포드는, 손을 살짝 들어 그들을 말렸다.
스워포드는 알았다.
옆에서 바라본 아델라인의 표정은, 결코 피오나에 대한 연민이나 동정심을 담고 있지 않았다.
그녀의 표정은, 이미 모든 결정을 끝낸 표정이었다.
바로 그때, 하늘에서 물방울이 떨어졌다.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진 물방울은 어느새 이슬비가 되어 모두를 조금씩 적시기 시작했다.
머스킷의 부싯돌과 화약도, 라이플의 부싯돌과 화약도 공평하게 젖어 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피오나는 기세를 얻어 말을 쏟아 냈다.
“그래! 이 세상에서는 날 죽일 수 없어! 이 비가 그걸 증명해 주고 있잖아! 이 빗속에서 총이 불을 뿜을 것 같아?!”
어느새 기세가 오른 피오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 세상은 피오나를 위한 세상이었다. 피오나는 이 세상의 여주인공이었고, 악녀에 불과한 아델라인이 자신을 죽일 수 있을 리 없었다.
그 생각을 하자, 방금까지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공포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쏴 봐!! 쏴 보라고!! 넌 이 세상의 악역이고! 난 주인공이야! 네가 날 죽일 수 있을 것 같…….”
피오나가 채 말을 마치기도 전에, 아델라인의 손가락이 방아쇠를 당겼다.
빗속에서도, 공이가 구리 뇌관을 내리치자 그 안에 있던 장뇌에 불이 붙었다. 그 불꽃은 약실로 옮겨 가, 약실의 화약에 불을 붙였다.
탕―!!
빗속에서, 총성이 울렸다.
이제 막 몸을 일으켰던 피오나는, 어깨에서 피를 흘리며 바닥에 다시 주저앉았다.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고통에 끔찍하리만치 아팠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욱 고통스러운 건, 지금까지 피오나의 머릿속에 가득 차 있던 믿음이 산산이 깨져 버린 것이었다.
“아니야… 너 따위가…….”
악녀에 불과한 아델라인은, 피오나를 해칠 수 없었다. 항상 모두의 호감을 사는 주인공이었던 피오나의 주변에는 유능한 아군이 많았다. 그리고 그 아군들은, 항상 그녀의 곁에서 피오나의 안전을 지켜 줬다.
“대체 어디서부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피오나는 자신의 어깨에 생긴 총상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봤다. 그사이 아델라인은 공이를 당기며 약실을 회전시킨 뒤, 한쪽 무릎을 꿇고 피오나를 마주했다.
“이 세상은, 그 빌어먹을 활자 조합물처럼 굴러가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잖아. 너도. 나도.”
아델라인은 그렇게 말하며, 피오나의 보랏빛 눈을 응시했다. 그녀의 눈은 끊임없이 떨리고 있었다.
피오나에게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는 것 같았던 ‘예언서’가 더는 소용 없다는 걸 깨닫고 만 그녀는, 방금과 같은 기세를 내보일 수 없었다.
초점을 잃어 텅 비어버린 피오나의 보랏빛 눈을 바라보며, 아델라인은 또박또박 그녀에게만 들릴 정도로 말했다.
“나를 위해서, 알렉스를 위해서. 그리고 내 아이들을 위해서. 그 빌어먹을 소설은 사라져야 해. 너도 마찬가지고.”
아델라인은 그렇게 말하며, 피오나의 미간에 총구를 겨눴다. 그러자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피오나의 입이 뻐끔뻐끔 열렸다 닫히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더는 의미가 없었다.
잠시 뒤, 아델라인의 손가락이 방아쇠를 당겼다.
그 누구도 피오나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았다.
마치 소설 속 아델라인의 죽음처럼.
* * *
따스한 햇볕이 들 법도 한 가을의 한낮이었지만, 며칠 동안 연이어 내린 이슬비 때문인지 바깥은 서늘하기만 했다.
그 서늘함에, 병실에 누워 있던 한 남자가 눈을 떴다.
“…으. 아…….”
소리를 내려고 해도, 말라붙은 목에서는 제대로 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바로 그때, 한 목소리가 그의 귀에 들려왔다.
“잘 주무셨습니까, 중대장님.”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의자에 앉아 있는 노먼이 눈에 들어왔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훨씬 늙고 주름졌으며 머리는 백발이 되었지만,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가 노먼을 바라보자, 마치 그가 직접 묻기라도 한 것처럼 척척 그가 원하는 답을 내주었다.
“병원입니다. 세인트 조지 병원. 아, 일단 물부터 조금 드시지요.”
그렇게 말하며, 노먼은 물컵에 물을 따라 알렉스에게 건넸다. 그걸로 천천히 입술과 목을 축인 알렉스는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상황은.”
“모두 끝났습니다. 황태자는 의회당에서 경비대와의 교전 중 월건에 맞아 전사한 게 확인되었고, 황후는 음독자살. 그리고 친위대는 모두 사살되거나 체포했다고 합니다.”
그 말에, 알렉스는 고개를 돌려 베개에 머리를 얹었다.
“중대 피해는.”
그 말에, 노먼은 곧바로 그에게 답했다.
“전사자 55. 중상자 12. 나머지 13명도 부상을 입어 처치 후 1대대와 함께 대기 중입니다.”
“…….”
그 말에, 알렉스는 말없이 천장을 바라봤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언제나 그렇듯이, 전사한 전우들의 빈자리를 느끼려면 시간이 조금 걸릴 듯싶었다.
그저 지금은, 마음 한구석이 뻥 뚫린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의장님께 깨어나셨다 전하고 오겠습니다.”
“의장?”
갑자기 무슨 말이냐 묻는 알렉스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지만, 노먼은 그대로 병실을 나갔다. 그러자 이 병실 안에서, 알렉스는 혼자가 되었다.
혼자 고요한 병실에 앉아 있자, 자꾸 머릿속에서 생각들이 떠올랐다.
아델라인은 어떻게 되었을까. 과연 많이 다쳤을까.
그러고 보니 야전 병원으로 실려 왔을 때 무슨 말을 했었는데.
무슨 말이었더라…….
‘당신의 애예요. 쌍둥이래요. 쌍둥이.’
그 말을 떠올리자, 알렉스의 눈이 크게 떠졌다.
내 아이?
그 단어에, 알렉스의 감각이 마치 현실이 아닌 것처럼 붕 뜨기 시작했다.
아이.
내 아이.
아델라인과 자신의 아이.
“…….”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기쁘고 행복하지만, 이걸 표현할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붕 뜬 감각 속에서 헤매며 시간을 보내고 있던 찰나.
그때, 저 멀리서 구두 소리가 들려왔다.
또각, 또각, 또각.
그 구두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전에, 알렉스가 있던 병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그 문으로 들어온 건,
“…….”
얼굴이 한껏 달아오른 채, 거친 숨을 내쉬며 자신을 바라보는.
그토록 그리던 아델라인이었다.
그녀는 잠시 문가에서 알렉스를 바라본 뒤, 그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한껏 굳어져 있는 그녀의 표정을 보자, 알렉스는 자신도 모르게 긴장하고 말았다.
“아, 아델라인.”
알렉스가 그녀를 향해 무어라 말을 걸기도 전에 그의 바로 옆까지 다가온 아델라인은, 이내 그를 힘껏 끌어안았다.
몸 곳곳의 상처가 아픔을 호소했지만, 아델라인의 온기가 느껴지자 그 고통 또한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 그의 귀에 흐느낌이 들려왔다.
“아, 알렉스… 내가… 훌쩍, 얼마나… 얼마나 걱정했는지…….”
말을 하다가, 결국 터져 버린 울음.
자신의 어깨를 적시는 눈물이 너무나도 뜨거웠기에, 알렉스는 그저 팔을 벌려 그녀를 안아 줬다.
더는 말이 필요 없었다.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온기만이, 모든 감정을 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