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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엑스트라는 생각보다 대단했다-197화 (197/200)

197화 복수

의회 앞에 자리 잡은 야전 병원. 그 야전 병원 한구석에서, 아델라인은 나무 상자 위에 앉아 피로한 육체를 가누고 있었다.

전투가 끝났다고 해서 모든 게 끝난 것이 아니었다. 부상자들은 신음하고 있었고, 움직일 수 있는 모든 이들은 부상자들을 도와야 했다.

아델라인도 마찬가지. 수도 사단과 라이플여단의 의료진이 도착하기 전까지, 아델라인은 부상자들의 상처를 싸매느라 온 힘을 쏟아부었다.

그렇게 부상자를 넘기고 난 뒤에야, 아델라인에게는 비로소 ‘생각’이란 것을 할 여유가 생겼다.

아이.

분명 시무르그의 말로는, 자신이 두 아이를 품고 있다고 했다.

진짜일까. 진짜, 자신은 엄마가 된 걸까.

벅찬 감정과 함께, 아델라인의 마음속에는 걱정도 함께 찾아왔다.

자신이 제대로 된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알렉스가 없다면, 나는 혼자서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

알렉스는 괜찮을까. 황궁에서 싸우고 있을 알렉스는, 정녕 괜찮은 걸까.

그런 생각을 하던 중, 아델라인의 앞으로 한 발소리가 다가왔다.

“의장님을 뵙습니다.”

그 말에, 아델라인은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필즈먼이, 아델라인에게 손을 들어 경례하는 게 보였다.

그러나 아델라인은 필즈먼의 경례에 답하지 않았다. 대신, 아델라인은 그를 향해 질문했다.

“…알고 있었나요?”

아델라인의 물음에, 필즈먼은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필즈먼의 표정은 너무나도 차분했다. 마치 자신의 잘못을 모르는 듯한, 너무나도 당당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화낼 힘도 남아 있지 않은 아델라인은, 필즈먼의 눈을 응시하며 짧게 물었다.

“왜, 알리지 않았죠?”

필즈먼은, 간략하게 답했다.

“가장 안전했으니까. 그리고…….”

“…….”

“피오나를 잡을, 가장 확실한 방법이니까.”

필즈먼의 말에, 아델라인은 그를 노려봤다. 그러나 필즈먼은 거리낄 것 하나 없다는 듯, 표정 한 끗 변하지 않고 그녀를 마주 봤다.

“…수상과 내각 장관들의 상태는 어떤가요.”

“수상 관저는 사태 초기에 테러를 당해, 수상 및 경제부 장관을 비롯한 절반 이상의 내각 인원이 그 자리에서 사망하였습니다. 나머지도 아직 행방불명입니다.”

“그 말인즉슨, 제가 이 제국의 군 통수권자라는 뜻이겠군요. 현재는.”

아델라인의 말에, 필즈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필즈먼에게 다가갔다. 그런 다음, 필즈먼의 어깨에 달려 있던 계급장을 잡았다.

뚜둑.

잠시 뒤, 필즈먼의 어깨에 있던 계급장이 뜯겨 나갔다. 주변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로 쏠렸다.

그리고 아델라인은, 손에 쥔 계급장을 바닥에 떨어트리며 모두에게 들으라는 듯 말했다.

“이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물어, 육군본부장 직책에서 리안 필즈먼 대장을 해임합니다.”

아델라인의 선언에, 주변의 모두가 경악했다. 심지어 의무병에게 치료를 받고 있던 마일즈 마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두 사람에게 달려왔다.

“자, 잠깐! 둘 다 진정하게나!”

마일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아델라인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수도 계엄 사령관 겸 임시 육군본부장은 알베르데 그리보발 마일즈 예비역 대장이 맡을 것입니다. 이로써 수도 내의 모든 병력 및 치안 조직의 지휘 통제는 마일즈 대장이 담당합니다.”

“아델라인 의장, 잠깐만 진정하게! 공과 과는 구분해서 봐야 하지 않겠는가! 아무리 과가 있다 하더라도 공이 있으니 참작해야지!”

갑작스러운 상황에, 마일즈는 필사적으로 아델라인을 설득하려 말을 쏟아 냈다. 그러나 그 뒤에서, 필즈먼이 고개를 저으며 두 사람에게 말했다.

“아닙니다. 당연히 이 상황에 대한 책임은 져야지요.”

그 말에, 아델라인을 설득하려던 마일즈는 필즈먼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그는 모자를 벗고 고개를 숙이며 아델라인에게 말했다.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인사를 마친 필즈먼은, 몸을 돌려 어디론가 걸어갔다. 바로 그때, 야전 병원으로 일군의 병사들이 들어왔다.

“중상자입니다!! 군의관!!”

“부상병이다!! 의무병!!”

들것을 든 채, 야전 병원으로 들이닥친 라이플맨들.

그들의 외침에, 군의관들은 의무병들과 함께 서둘러 들것을 향해 다가갔다.

“라이플맨? 어디에서 또 교전이 벌어진 거야?!”

군의관의 물음에, 들것을 들고 온 라이플맨은 들것을 내려놓으며 답했다.

“파견 중대입니다! 계속해서 부상병들이 들어올 겁니다! 전 중대가 부상병입니다!”

“젠장! 일단 저기 빈 공간에 눕혀! 서둘러!”

그들의 대화를 들은 아델라인은, 급하게 새로 들어온 들것 행렬을 향해 다가갔다.

새로 야전 병원을 찾은 부상병들은 하나같이 상태가 위중했다. 그들 하나하나가 바닥에 눕혀지자, 아델라인은 정신없이 그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얼굴들을 확인했다.

혹시.

혹시 여기에 알렉스가 있을까.

그러나 아무리 살펴봐도, 바닥에 누운 스무 명가량의 부상병 중에는 알렉스의 얼굴을 찾을 수 없었다.

“…….”

아델라인의 마음속에서 여러 감정이 교차하기 시작했다. 이 중상자들 사이에 알렉스가 없어서 다행이라는 안도감 뒤에는 곧바로 그런 생각을 한 자신에 대한 혐오감이 따라붙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부상병들의 얼굴을 보던 찰나. 한 라이플맨의 등에 업혀 온 부상병이, 새로 아델라인의 앞에 눕혀졌다.

그리고 그 얼굴을 본 순간, 아델라인은 사색이 되고 말았다.

“…아, 아델라인.”

다른 사람과 헷갈릴 수 없는 깊고 푸른 눈동자. 그 푸른 눈은 아델라인을 보자마자 제 상태와는 어울리지 않는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알렉스!!”

아델라인은 곧장 무릎을 꿇고 알렉스를 살피기 시작했다. 배에도, 어깨에도, 심지어 머리에도 피에 젖은 붕대가 감겨 있었다. 그의 손은, 그 어느 때보다도 차가웠다.

“안 돼, 안 돼요, 알렉스. 나 봐요, 응?”

아델라인은 점점 얼음장같이 차가워지는 알렉스의 손을 붙잡으며 애처롭게 그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나 알렉스의 동공은 위태롭게 풀어졌다 되돌아오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안 돼, 안 돼, 안 된다고요. 다치지 않고 만나기로 했잖아요, 알렉스.”

“미안…해요.”

한마디조차 버거운 듯 힘겹게 답한 알렉스는 아델라인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이 너무 위태로워, 아델라인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잊고 말았다.

그러다, 아델라인이 알렉스의 손을 자신의 배로 가져다 댔다. 갑작스러운 아델라인의 행동에, 알렉스의 눈빛이 의아함을 담았다.

“당신의 애예요. 쌍둥이래요. 쌍둥이.”

그 말에, 알렉스의 눈이 흔들리는 게 보였다. 갑작스러운 아델라인의 고백에, 알렉스의 옅어져 가던 숨결에 약간이나마 힘이 깃들었다.

얼음장같이 차가운 손에 그녀의 온기가 느껴졌다. 그러자 알렉스는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배를 느릿하게 쓰다듬었다.

이 안에, 아델라인과 자신이 함께 만들어 낸 생명들이 있었다. 그 생각에, 천천히 감겨 가던 알렉스의 눈이 간신히 떠졌다.

“결혼식 올리기도 전에 애 생겼으니까, 책임져야죠. 응?”

아델라인은 간절한 목소리로 그의 손을 꼭 부여잡고 말했다. 그러자 알렉스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답했다.

“결혼… 해야지…….”

그가 내뱉은 힘겨운, 바람 소리에도 묻힐 것 같은 나지막한 목소리에, 눈물이 눈 앞을 가리고 목이 메여 왔다. 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아 그저 말없이 알렉스의 손만 붙잡고 있었다.

바로 그때, 서너 명의 병사들이 아델라인을 밀어내고 그를 들것에 옮겼다.

“비키십쇼! 방해됩니다!”

“서둘러! 모르핀 가지고 와!”

“수술은 누가 맡아! 군의관들 모두 집도 중이잖아!”

“제가 맡을 겁니다! 자리하고 약품만 준비해 주십쇼!”

“너는 의무 부사관이잖아!”

“없는 것보단 낫겠죠! 중대장님 죽게 내버려 둘 겁니까! 서두르십쇼!”

팩의 지휘 아래, 뭐라 말을 할 새도 없이 알렉스는 천막 안으로 실려 들어갔다.

그렇게 알렉스가 아델라인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 그때, 리본으로 한데 묶여 있던 아델라인의 머리가 풀렸다.

갑자기 머리가 풀리자, 아델라인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만지고 바닥을 더듬었다. 그러자 아델라인의 손에 리본 매듭이 잡혔다.

아델라인의 머리를 붙들고 있던 리본이 끊어져 버렸다. 제 손에 있는 끊어진 리본을 보자, 나이아가 언젠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것이 끊어지기 전까지 함께 걷겠다, 라고 직역할 수 있대요. 의역하면 이것이 끊어질 때까지 운명을 함께하겠다는 말이라고 하고요.’

나이아의 목소리에, 일순간 아델라인의 머릿속에서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설마.

설마 알렉스가…….

알렉스의 창백했던 얼굴과 차가웠던 손의 감각이 다시 한번 떠오르자, 아델라인은 다리에 힘이 풀려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그때, 스워포드가 그녀에게 다가왔다.

“…지원군이 오기 직전, 중대장님께서 피탄당하셨습니다.”

아델라인의 시선이 스워포드에게로 향했다. 스워포드의 팔에는 피에 젖은 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고, 다리의 베인 상처에는 붕대조차 감겨 있지 않았다.

“그 때문에 중대가 흐트러진 순간, 마차 세 대가 빈틈을 헤집고 황궁의 샛길로 빠져나갔습니다. 그 마차에는… 피오나가 타 있었고.”

스워포드의 말에, 슬픔과 불안으로 가득 차 있던 아델라인의 마음속에 새로운 감정이 일었다.

분노.

분노가 치밀었다.

“…어디로 갔는지는 알아?”

아델라인의 말에, 스워포드는 곧바로 답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추측은 가능합니다.”

그 말에, 아델라인은 스워포드를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고 그를 계속 바라봤다. 그러자 스워포드가 입을 열었다.

“피오나는 항구로 가 해외로 도주를 시도할 겁니다. 지금 이 순간을 놓치면, 잡기까지 또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그 말에, 야전 병원 한편에 앉아 있던 휘태커 경감이 그녀를 향해 다가왔다.

“지금, 놓친 게 있다는 말을 들은 것 같은데.”

휘태커 경감의 눈에는, 독기가 서려 있었다.

“피오나 루멘시아. 그녀가 이 모든 사태의 주범입니다.”

“…내 부하들이 죽었어. 오늘 이곳에서 이렇게 죽으면 안 되는 놈들이.”

휘태커는 아델라인을 바라보며 질문했다.

“그년이 모든 일의 주범이라는 게 사실인가?”

그 말에, 아델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휘태커는 몸을 돌려, 여기저기 흩어진 자신의 부하들을 바라봤다. 오늘 하루 동안 물러날 곳 없는 전투를 치러 온 그들에게, 휘태커는 목소리를 높였다.

“파견 중대!! 그리고 제3 수도경비대—!!”

그 부름에, 지쳐 있던 경비 대원들과 라이플맨들은 넝마가 된 휘태커를 바라봤다. 그런 그들을 향해, 그는 입을 열었다.

“전투 임무에! 위험 수당은 없으며! 공훈을 인정받지 못할 수 있고! 순직 처리도 확실하지 않으며! 안전한 귀환을 보장할 수 없지만!! 성공 시 주어지는 건 동료들의 복수!!”

그 말에, 지치고 지친 이들은 일제히 그를 바라봤다.

“싸우다 뒈질 놈들만 나와. 시간 없다.”

그 말에, 방금까지 모든 힘을 쏟아 낸 이들은 이를 악물고 누가 먼저일 세라 몸을 일으켰다.

모두의 눈에는, 독기가 서려 있었다.

* * *

자정. 오직 하늘에 뜬 달빛에 의존하며, 세 대의 마차는 서쪽으로 달렸다.

세 대의 마차 중 가운데에 자리 잡은 마차 안에서, 피오나는 초조한 얼굴로 손톱을 깨물었다.

“어떻게, 어떻게 마나 교란을…….”

의회당을 포위하고 정문을 막 돌파하려던 찰나, 피오나는 갑작스러운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그동안 집요할 정도로 깔아 두었던 장치로 전개한 마나 교란이, 일순간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 순간, 피오나의 머릿속에서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잠시 뒤 마나 교란이 재개되기는 했지만, 피오나의 계획은 더는 완전하지 않았다.

“젠장!”

피오나는 초조한 마음에 마차 벽을 주먹으로 쳤다. 상황 파악도 못 하는 황태자가 갑주를 입은 채 의회당으로 들어가자 자신은 황후를 미끼로 던져 놓고 도망쳤지만, 언제 추격이 다가올지 모르는 일이었다.

피오나는 머릿속으로 이후의 계획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수도 근교의 항구에 미리 대기시켜 둔 배를 타고, 프룬츠베르크 공국으로 다시 돌아간다. 오베른이 제국군 손에 들어가며 많은 손실이 생겼지만, 여전히 프룬츠베르크에는 많은 자산이 은닉되어 있었다.

그 자산을 사용한다면, 후일을 도모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그래, 프룬츠베르크까지만 가면…….”

그렇게 또 다른 희망찬 가설을 가지고 미래를 계획해 나가던 찰나.

쾅―!!

강한 폭음이 들리고, 잠시 뒤 말의 비명과 함께 앞에 있는 마차의 바퀴가 박살 나며 기우뚱, 넘어졌다.

그리고 곧이어, 피오나가 탄 마차가 앞선 마차를 들이받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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