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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엑스트라는 생각보다 대단했다-196화 (196/200)

196화 To the girl I left behind

“제3 수도경비대!! 지원군이 곧 올 거다!! 포기하지 마!!”

몇 번이고 말했을 문장. 이 문장을 목이 쉬어라 내지르는 휘태커 자신조차도 장담할 수 없는 말이었지만, 그래도 휘태커는 목소리를 높이며 경비 대원들을 독려했다.

신기루 같은 허상일지라도, 그 허상마저 없으면 순식간에 무너질 정도로 지금 상황은 열악했다. 정문에 세워 뒀던 바리케이드도 무너지고, 이제는 의회당 로비에서 물러날 수 없는 싸움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여유 공간도, 여유 병력도 없었다. 그저 밖에서 밀고 들어오는 친위대 병력을 밀어내기 위해, 경비 대원들은 대열을 갖출 새도 없이 총검을 내지르고 방아쇠를 당기며 난전을 이어 가고 있었다.

바로 그때, 로비 안으로 철갑을 두른 기사가 난입해 들어왔다. 몇 세기 전에 도태된 판금 갑옷이었지만, 총칼을 막아 내는 갑옷은 좁은 공간에서 벌어진 난전에서 무지막지한 위력을 과시했다.

“갑옷이다!!”

“머스킷이 안 먹혀! 다들 물러나!!”

경비 대원들에게 갑옷을 입은 기사를 상대해 본 경험이 있을 리 없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기사가 휘두르는 검을 피하기 급급했다. 그러나 기사의 검을 피하는 와중에도, 피해는 계속 불어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휘태커는 곧바로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기사의 갑옷을 뚫을 수 있는 수단은, 하나밖에 없었다.

“월건!!”

“쏩니다!!”

때마침 장전을 마친 경비 대원이 부사수의 어깨 위에 월건을 올리고 목표를 조준했다. 그러나 곧바로 들려온 총성들과 함께, 두 사람은 동시에 쓰러지고 말았다.

“젠장!!”

휘태커는 급하게 몸을 던져 월건을 다루던 병사들에게 달려갔다. 쓰러진 병사들의 피가 바닥을 적셔 갔지만, 휘태커의 손길은 그들의 상처가 아닌 그들이 들고 있던 월건으로 향했다.

“끄으으…….”

죽어 가는 부하의 신음이 휘태커의 귓가에 선명히 들렸지만, 그는 애써 그 목소리를 무시하고 월건을 잡았다.

쓰러진 부하의 몸을 받침대 삼아, 그는 바닥에 등을 붙이며 드러누운 채 가늠자와 가늠쇠를 로비 한가운데에서 날뛰는 기사를 향해 겨눴다.

“죽어!!”

그런 그를 향해, 친위대원 한 명이 총검을 앞세우고 달려들었다. 그의 본능은 피해야 한다 부르짖었지만, 그의 몸은 기사를 겨누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일순간, 출근할 때 마지막으로 봤던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주마등이 스치고 지나갔다. 삶의 찬란했던 순간들이 지나가자, 살고 싶다는 생각이 치밀어 올랐다. 흘려보냈던 삶의 순간들이 아깝게만 느껴졌다.

“빌어먹을!!”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눈을 질끈 감은 그의 손은 방아쇠를 당겼다. 잠시 뒤, 뿜어지는 연기 사이로 총탄에 맞아 쓰러지는 기사가 보였다. 그와 동시에 그의 심장을 향해 총검이 내질러졌다.

그러나 친위대원의 총검은 이내 한 지팡이에 가로막혔다. 지팡이로 총검을 쳐낸 마일즈는, 이내 지팡이에서 얇은 검을 뽑아내 친위대원의 목을 찔렀다.

“일어나! 수도 사단과 라이플 여단이 곧 도착할 거다! 조금만 더 버텨!!”

휘태커의 눈앞에는, 본회의장 안에 있어야 할 마일즈가 있었다. 그는 내질렀던 검을 뽑은 뒤, 휘태커를 향해 다가오는 병사들을 제압하며 물었다.

“다쳤나?!”

마일즈의 물음에, 이내 휘태커는 정신을 차리고 바닥에 떨어져 있는 누군가의 머스킷을 집어 들며 일어났다.

여기서 죽을 수는 없었다. 여기서만큼은.

“싸울 수 있습니다!!”

“그래, 싸워 보자고!!!”

마일즈는 그렇게 말하며, 주변의 병사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라이플 여단이 곧 온다! 조금만 더 버텨라!!”

라이플 여단. 그 한 마디에, 기세에서 밀리고 있던 경비 대원들의 눈빛이 다시 매섭게 변했다. 라이플맨들의 위력을 옆에서 지켜봐 왔던 이들이었기에, 그들이 도우러 온다는 말은 또 다른 강력한 희망을 심어 주었다.

“다 죽여 버려!!”

“제국 만세!!”

새로 전장에 뛰어든 의원들과 함께, 힘을 얻은 경비 대원들은 다시 친위대원들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수적으로도 열세였고, 체력도 바닥나 있었다. 그러나 새로 생긴 한 가닥 희망은 그들을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밀고 밀리는 싸움을 이어 나간 끝에, 경비 대원들은 다시 의회당에서 친위대를 밀어낼 수 있었다.

“허억… 허억…….”

온통 피투성이가 된 휘태커는 바깥을 내다봤다.

총성이, 라이플의 총성이 사방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남쪽에서, 동쪽에서, 서쪽에서 끊임없이 다가오고 있었다.

“2대대!! 움직여!!”

“화기 중대 앞으로!”

“5대대! 좌측으로 크게 돌아! 포위해!!”

잠시 뒤, 의회를 공격하던 친위대 병력은 사방에서 다가오는 라이플맨들에게 포위되고 말았다. 총격전도 잠깐뿐, 그들은 이내 라이플맨의 손에 무장 해제를 당하기 시작했다.

수 시간의 치열했던 싸움의 끝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싱거운 결말에, 휘태커는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

손끝 하나 움직일 힘도, 목구멍으로 어떤 말을 내뱉을 힘도. 휘태커의 몸에는 남아 있지 않았다. 몸이 시키는 대로, 그는 들고 있던 머스킷도 내던지고, 벽에 기대어 바닥에 주저앉았다.

잠시 뒤, 그의 눈이 저절로 감겼다.

* * *

수상 관저, 육군성, 해군성, 의회… 수도 곳곳에서 솟구친 신호용 로켓이 불꽃을 터뜨리며 아름답게 밤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그와 함께 들려오는 라이플의 날카로운 총성들은, 거친 숨을 몰아쉬는 라이플맨들의 귀에 정확히 들렸다.

“라이플이다.”

누군가가 내뱉은 말에, 옆에 있던 대원들도 일제히 그 총성들에 귀를 기울였다. 그들이 쓰는 라이플과 같은 라이플들.

라이플맨들이, 수도에 들어와 있었다.

그러자 그들이 마주하고 있던 친위대 병력이 일제히 동요하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상대하고 있던 대규모 라이플맨 병력이 허상이었음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애먼 황궁에서 고작 일개 중대의 병력에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자, 그들은 온 힘을 다해 수십 명밖에 안 되는 파견 중대를 향해 몸을 던지기 시작했다.

이미 수도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길목들은 모두 수도 사단과 라이플 여단이 장악했기에, 그들에게 남은 살길은 황궁을 지나 수도 북부로 빠져나가는 길밖에 없었다.

“사기꾼 놈들!”

“다 죽여!!”

그들의 반응에, 몇 시간 동안 천 명 가까이 되는 친위대 병력의 발을 묶어 두었던 파견 중대는 어둠 속에서 마지막 순간을 준비했다.

누군가는 자신의 라이플에 새로이 탄약을 장전했고, 누군가는 상처에 감은 붕대를 동여매며 고통을 인내했다.

병력 규모를 속이기 위해 끊임없이 쏟아부은 끝에 탄약이 동나 버린 중화기는 내려놓고, 모두가 얼마 남지 않은 탄약포를 나눠 갖고 있었다.

그때, 라이플맨들 사이에서 누군가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I'm lonesome since I crossed the hill,

And o'er the moor and valley,

언덕을 넘고 황야와 골짜기를 건너고 나니, 나는 외롭습니다.”

행군 중에, 야영 중에 간간이 나오던 군가가 적막을 깨자,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레 노랫소리를 향했다.

그 시선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총탄을 장전한 라이플맨은 계속해서 노래를 이어 나갔다.

“Such grievous thoughts my heart do fill,

Since parting with my Sally.

나의 샐리와 헤어지고 나니, 비통함만이 내 가슴을 채웁니다.”

굳은 표정으로 앞을 바라보면서도, 그는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이내 노래는 조금씩 목소리를 더해 가기 시작했다.

“I seek no more the fine or gay,

For each does but remind me.

나는 더 이상 행복과 유쾌함을 찾을 수 없지만, 그것들은 내게 기억하게 만듭니다.”

전우를 잃은 비통함.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그들과 더는 함께할 수 없게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 모든 것들을 목소리에 담아 토해 내며, 라이플맨들은 합창을 이어 나갔다.

“How swift the hours did pass away,

With the girl I left behind me.

내가 그 소녀를 두고 온 지, 얼마나 시간이 빨리 지나갔는가를…….”

어느새 라이플맨들은 자리에 서서, 목소리를 드높이고 있었다.

압도적인 적들의 수, 그리고 그들이 내지르는 괴성.

그 모든 것을 보고 듣고 느끼면서도,

그들은 눈물 흘릴지언정 눈을 감지 않았으며,

몸을 떨지언정 몸을 돌리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동료들의 옆에 서서 합창을 이어 나갔다.

“O ne'er shall I forget the night,

The stars were bright above me

오 나는 그 밤을 잊지 못합니다. 내 머리 위에서 별들이 빛나고 있었고.”

들려오기 시작한 2절의 첫 구절에, 알렉스는 고개를 들었다.

트레포드에서 아델라인과 함께 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날도 오늘처럼, 그들이 부르는 노래 가사처럼 밤하늘에 별들이 빛나고 있었다.

“And gently lent their silvery light,

When first she vowed to love me

그녀가 처음 날 사랑한다, 맹세했을 때, 그 별들은 다정하게 은빛으로 빛나는 불빛을 빌려주었지요.”

차마 앞날이 두려워 자신이 사랑한다, 말하지 못했던 그때, 직접 자신에게 찾아와 줬던 아델라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트레포드까지 찾아온 그녀에게 무엇도 제대로 말해 주지 않고, 그저 기다려 달라 말했던 자신을 안아 준 아델라인의 온기가 떠올랐다.

자신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 지금까지 보아 온 아델라인의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연이어 눈앞에 떠올랐다.

지금 이 순간, 너무나도 간절한 미소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당장에라도 아델라인에게 달려가 그 미소를 볼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But now I'm bound to Brighton camp,

허나 나는 지금 브라이튼 캠프에 묶여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부르는 노래 가사처럼, 알렉스는 황궁에 발이 묶여 있었다.

몰려오는 적들의 발을 묶기 위해, 그들은 압도적인 열세에도 물러날 수 없었다. 저들을 이곳에서 붙들어, 저들이 수도를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야 했다.

절망적인 상황. 도저히 살길이 보이지 않는 상황.

그런데도 더 이상의 무의미한 죽음을 막기 위해, 그들은 다가오는 암담한 미래를 마주해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알렉스는 전우들의 목소리와 함께 하늘을 바라보며 부르짖었다.

“Kind heaven, then, pray guide me

그러므로 하늘이여 기도하니 나를 인도하소서.”

인도하소서.

나와 전우들을 인도하소서.

여기 이 자리에 서서, 자신의 의무를 다하고자 자리를 지키는 이들을 인도하소서.

“And send me safely back again,

To the girl I left behind me…….

그리고 저를 안전하게 돌려보내 주소서. 내가 두고 온 그 소녀에게…….”

아내에게, 애인에게, 자식에게, 가족들에게.

우리가 남기고 온 여인들에게,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늘이여 인도하소서…….

노래가 끝나자, 물씬 가까워진 적들의 고함이 들려왔다.

그런데도 그들은 각자의 무기를 든 채 알렉스의 명령을 기다렸다. 그런 그들의 눈빛을 받으며, 알렉스는 마지막 당부를 했다.

“전원 착검. 조금만 버티자. 그리고… 살아서 만나자.”

알렉스는 몸을 돌려 짓쳐들어오는 친위대 병사들을 마주했다. 무언가에 취한 듯, 두려움도 없이 무질서하게 달려드는 이들.

저렇게 불규칙하게 달려드는 병력을 상대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을, 알렉스는 알고 있었다.

“중대!! 사격 대형으로!!”

알렉스의 말에, 라이플맨들은 일제히 두 줄로 정렬해 넓게 늘어섰다.

1열은 무릎을 꿇고 앉아 총을 겨누고, 2열은 그 뒤에 서서 총을 겨눴다.

200미터.

황궁 곳곳에 켜진 횃불과 달빛에, 달려드는 병사들의 모습이 선명히 보였다.

100미터.

얼굴의 눈코입이 구별된다. 초점을 잃은 붉은 눈이 번뜩이는 게 보였다.

“조준!!”

알렉스의 지시에, 병사들은 각자의 목표를 정하고 총을 겨눴다. 그러나 방아쇠는 당기지 않았다.

오로지 단 한 번의 명령만을 기다렸다.

잠시 뒤, 알렉스의 입에서 한 마디 외침이 터져 나왔다.

“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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