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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엑스트라는 생각보다 대단했다-181화 (181/200)

181화 곰을 들이받은 황소

땅. 땅. 땅.

법봉의 맑은 울림과 함께, 법원 안에 잔잔히 깔리던 참관인들의 목소리가 그쳤다. 비로소 법정이 정적으로 가득 차자, 판사는 고개를 들고 입을 열었다.

“그러면,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우선 이번 남해군도 사건에 대해서, 검사 측 공소 제기 요약 설명부터.”

판사의 지시에, 검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판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판사 측은 이번 남해군도 사건에 대한 공소 제기를 철회하고자 합니다.”

갑작스러운 검사의 행동에, 판사는 의문 가득한 시선으로 검사를 바라봤다.

“그러면, 대위의 혐의가 없음을 인정하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육군과 해군의 자료를 교차 검증하고 전문 외과의의 부검 결과까지 확인한 결과, 대위의 혐의를 뒷받침할 증거가 없음을 확인했습니다. 또한, 미성년자 사상자를 발생시킨 주범인 세이드는 작전 중 사살당했으므로, 검사 측의 공소권이 사라진 상황입니다.”

검사의 말에, 알렉스는 수를 계산했다.

무엇을 얻어 내려는 걸까.

어떤 수를 두려는 걸까.

“좋…습니다. 그러면 남해군도 사건 대신, 곧바로 미드라스 헤르만 베르크 소위 살해 사건의 재심으로 넘어가겠습니다.”

판사는 곧바로 서류를 넘겨 절차를 시작했다. 사건번호를 부르고, 알렉스의 신원을 확인하며, 검사 측의 공소 제기가 이어졌다.

“…또한, 피고인은 전장의 혼란함을 이용해 자신의 발포 사실을 숨기고, 이를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심각성이 높다, 판단하여 황족 시해죄를 적용하여 공소를 제기하는 바입니다.”

검사의 입에서 나온 ‘황족 시해죄’라는 단어. 그 단어에 방청석은 둘로 갈려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판사는 다시 한번 법봉을 두들기며 외쳤다.

“정숙! 법정을 혼란스럽게 하는 이는 최대 10일간 구금될 것입니다! 검사, 진술 끝났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착석하세요. 그러면 피고인, 기립하세요.”

재판장의 지시에, 알렉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판사의 눈이, 알렉스를 향했다.

“피고인, 검사가 제기한 공소 사실을 인정합니까?”

“아니요. 인정하지 않습니다.”

알렉스의 단호한 말에, 판사는 쟁점 정리를 위해 질문을 이어 나갔다.

“이전 조사에서는 발포 사실을 인정했는데, 이를 번복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저는 황족 시해죄 적용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알렉스의 말에, 판사는 종이에 필기했다.

“황족 시해죄가 적용되지 않음을 증명할 수단이 있습니까?”

“네, 있습니다.”

알렉스는 그렇게 말하며 미리 수첩에 적어 둔 키워드를 읽어 내렸다.

“6년 전 신문에 실린 미드라스 헤르만 베르크 소위의 기고문을 근거로, 호더빌에 있던 것은 황족으로서의 미드라스 헤르만 베르크가 아닌 군인으로서의 미드라스 헤르만 베르크 소위라는 것을 증명할 계획입니다. 이를 통해, 법리적으로 황족 시해죄 적용이 옳지 않다는 것을 입증할 것입니다.”

“계속하세요.”

“또한, 호더빌 공성전 직후 진행된 사후 강평 기록, 그리고 육군 정보국의 감사 자료를 통해 점령 직후 제17 보병 연대의 집단적, 무차별적 무력 투사 발생 사실에 소위가 연루되어 있음을 입증할 계획입니다. 또한, 이 입증 과정에는 해당 전투에 투입되었던 장교 및 부사관들을 증인으로 세울 계획입니다.”

“오늘 사전에 제출한 증인 명단에서 달라진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러자 판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몇 가지 단어를 적어 넣은 뒤,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피고 측 착석하세요. 검사 측, 기립한 뒤 공소 사실 증명 계획을 말씀하십시오.”

“네. 검사 측은 이전 판례들을 통해 제2 황자의 참전 중에도 황족의 지위가 유지됨을 입증할 것입니다. 또한, 피고 측이 주장한 비위 행위에 제2 황자께서 연루되지 않았음을 증인을 통해 입증할 것입니다.”

“사전에 제출한 증인 명단에서 달라진 것이 있습니까?”

무미건조한 판사의 물음. 이미 모든 절차가 사전에 끝났기에, 그저 요식 행위나 다름없는 절차였다.

그러나 검사의 입에서는 의외의 답이 나왔다.

“네, 그렇습니다.”

“…달라진 게 있다고요. 한 시간 전 제출한 것과?”

“그렇습니다. 피고의 범행과 제2 황자 저하의 무고함을 입증할 결정적인 증인입니다.”

검사의 자신만만한 목소리에, 판사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바로 증거 조사로 넘어가겠습니다.”

판사는 그렇게 말한 뒤, 검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증인 신문으로 가기 전, 양측의 서류 증거 조사부터 실시하겠습니다. 검사 측, 동의하십니까?”

그 질문에, 검사는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동의합니다.”

승리를 눈앞에 두고 있을법한 이의, 여유가 넘치는 미소였다.

“그러면 피고 측, 동의하십니까?”

판사의 질문이 이어졌다. 그러자 알렉스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동의합니다.”

* * *

황소와 곰의 싸움.

이 짧은 한마디로, 지난 세 시간의 주식 시장을 표현할 수 있었다.

지난주는 단지 전초전이었다고 알려 주듯, 월요일 아침의 주식 시장은 격동을 반복했다. 5분을 사이에 두고, 주가는 상한가와 하한가를 반복해서 두드렸다.

희비가 교차하고, 분투가 이어졌다. 증거금을 채우려는 이들과 주식을 팔아 손해를 감수하려는 이들, 이 와중에도 추가 매수를 외치는 이들로 가득 찼다.

그러나 전체적인 동향은 점점 하락세를 보이고 있었다.

아침에 치솟아 저번 주의 주가를 회복하나 싶었던 주가는 가랑비에 옷 젖듯 천천히 떨어지고 있었다.

그 동향을 보고받으며, 피오나는 부하를 향해 여유 넘치는 목소리로 물었다.

“얼마나 남았지?”

“예상 붕괴 지점에서 단 4퍼센트 포인트 남았습니다, 피오나 님.”

세이드의 자리를 차지한 새로운 부하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답했다. 그 보고를 듣자, 피오나의 입가에는 밝은 미소가 피어났다.

“그래요, 남아 있는 자본은 생각하지 말고, 최대한 빨리 붕괴시키세요.”

“알겠습니다.”

부하는 고개를 숙이며 답한 뒤, 사무실을 나섰다.

사무실에 혼자 남게 된 피오나. 그녀는 찻잔을 들고 홍차의 풍미를 즐기며 지난주에 있었던 일을 회상했다.

지난주 월요일부터, 주식 시장의 전체 지수는 마치 누군가 필사적으로 지키기라도 하듯 쉬이 내려가지 않았다. 특히 주요 우량주 같은 경우에는, 일부러 값싼 가격에 대량의 주식을 던져도 그 물량을 소화해 내는 바람에 주가 하락을 조장하는 게 힘들었다.

마치 일정한 선을 두고 테니스를 하듯 랠리가 이어지는 모습에, 피오나는 그 원인을 탐색했다. 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3일이라는 소중한 시간을 쓴 끝에, 피오나는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델라인 폰 로피츠, 그리고 마일즈 스틸웰.

두 사람이, 증권가 옆의 여관을 전세 내어 터를 잡은 채 무지막지한 크기의 자본을 무기 삼아 일정 선 이상으로 주가를 끌어올린다는 정보였다.

그 소식을 듣자, 피오나는 한 가지 꾀가 떠올랐다.

두 사람이 휘두르는 자본은 단지 스틸웰 공업과 로피츠 공작가가 힘을 합쳐 만들어 낼 수 있는 크기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

두 사람은 단기간에 자본을 확보하기 위해, 증거금 제도를 이용한 것이다. 3할을 10할로 만드는 마법에 손을 대 버린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델라인은 결정적인 정보를 자신에게 흘리고 말았다.

‘뭐, 그래도 한 1할 정도만 손실을 봐서요. 3할까지는 버틸 수 있으니까.’

3할.

지금 아델라인이 휘두르고 있는 무지막지한 자본의 3할만이, 그녀가 가진 진짜 힘이라는 것을 확인받은 순간.

때마침 절묘하게 터져 준 장치는 아쉽게도 그날 아델라인의 운명을 끝내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아델라인의 끝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자… 얼마나 버티려나?”

그들이 정한 ‘방어선’에서 주가를 3할만 떨어트리면 된다. 그렇게 된다면 두 사람의 증거금이 바닥나며 증권사들은 반대 매매를 할 것이다.

그 물량은 그들이 휘둘러 온 자본의 크기만큼 클 것이고, 결국 쏟아지는 매도 주문에 주가는 하락 일변도로 변하며 바닥을 칠 것이다.

바로 그때, 주식을 싼값에 매매해 공매도를 통해 빌린 주식을 상환하면, 제국의 경제와 자유당 내각을 침몰시키며 짭짤한 부수입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빨리 무너져 줬으면 하는데.”

피오나는 마치 생일 선물 보따리를 바라보는 어린아이처럼 순진무구하고 기대감 넘치는 눈빛으로 시계를 바라봤다. 벌써 시침은 오후 1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거의 다 몰아넣은 싸움이었다. 아델라인을 구석으로 몰아넣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그래도 너무 질질 끄는 것 또한 피오나의 취향이 아니었다. 세 시간 안으로 끝내지 못하면, 그녀는 아델라인의 몰락을 보기 위해 또 하루를 기다려야 한다.

바로 그때, 피오나의 귀에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

피오나의 말에, 문이 열렸다.

“예상 붕괴 지점까지 1퍼센트 포인트 남았습니다.”

“그래?”

피오나는 잠시 고민한 뒤, 몸을 일으켰다. 몰락이 다가왔다는 소리를 듣자, 피오나의 머릿속에서 변덕이 일었다.

“증권 거래소로 가야겠어. 날 보조할 한 사람만 따라와.”

“알겠습니다.”

피오나의 지시에, 부하가 문을 닫았다. 산뜻한 옷차림을 한 피오나는, 사무실을 나서 길 건너편의 증권 거래소로 향했다.

증권 거래소 안은 중개인들과 증권가들의 치열한 매수 주문과 매도 주문이 오가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매수와 매도의 균형이 유지되고 있었다.

잠시 뒤, 주가를 표시하는 표지판의 숫자가 바뀌었다.

피오나는 그 수치의 의미를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아델라인과 스틸웰 공업의 증거금이 소진되었다.

그리고, 아델라인의 몰락이 현실로 다가왔다.

피오나의 생각을 입증하듯, 곳곳에서 매도 주문이 이어졌다. 그 매도 주문은, 마치 아름다운 합창과도 같았다.

그러나 1분이 지나고, 2분이 지날 즈음, 피오나의 온몸이 불안한 감각에 휩싸였다.

“…뭐지?”

매도 주문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지만, 그만큼 매수 주문이 따라붙었다.

양 측의 균형이 아직도 유지되고 있었다. 증권사의 반대 매매로 인해 깨졌어야 할 균형은, 5분 전과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 피오나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무언가, 자신이 놓친 게 있다.

바로 그때,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3할, 3할.”

그 목소리에 반응해 뒤를 돌아보자, 자신을 향해 웃어 보이는 아델라인이 눈에 들어왔다. 흐트러진 모습 하나 없이 피오나를 응시하는 아델라인의 눈은, 옅은 비웃음을 품고 있었다.

“주가가 고작 3할 떨어졌다고 나가떨어질 싸움이었으면, 시작도 안 했지. 안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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