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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엑스트라는 생각보다 대단했다-176화 (176/200)

176화 피 없는, 피 튀기는 싸움

[- 나는 고발한다!

- 나는 제8대 제국 수상, 필립 트뤼니히트 수상을 고발합니다. 총선 직후부터 11대 의회의 임기 절반이 지나가는 동안, 그는 의회의 동료들과 당원들, 그리고 시민들의 기대를 무시하고 대부분의 결정을 의회와 내각에 떠넘겼습니다. 쓰기로는 협치라 하나 읽기로는 직무 유기라 읽는 이 행동에, 결국 그는 자신의 직무에 충실했을 뿐인 한 명의 대위를 사문회라는 구시대의 잔재 위에 세우는 데 일조했습니다. 이에, 나는 양심을 따르는 일개 시민으로서 필립 트뤼니히트 수상을 직무 유기로 고발합니다.

- 나는 남부당 당 대표, 드라무스 후작을 고발합니다. 황후의 남동생인 그는 46석의 제2 원내 정당인 남부당을 책임감 있는 의회 정치의 주체로 만드는 것이 아닌, 궁궐 속 황후가 하는 무책임한 인형 놀이의 객체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황실과 의회, 그리고 시민 사회의 바람직한 협력 관계를 방해하고, 전시 상황의 의사 협력 수단인 대연정 내각에 고의로 혼선을 일으켰으며, 사문회라는 법적 근거조차 없는 제도를 무덤 속에서 꺼내 온 주범입니다. 이에, 나는 양심을 따르는 일개 시민으로서 드라무스 후작을 내란죄로 고발합니다.

- 나는 자유당 당 대표이자 제국 의회 부의장인 피터 그린우드를 고발합니다. 지난 총선에서 75석을 거두는 결과를 얻고서도, 자유당은 중요한 분기점마다 무력한 모습을 보여 왔습니다. 우유부단한 수상을 교체하지도 못했고, 장기적인 청사진을 내보이지도 못했으며, 시민들에게 내걸었던 공약의 실천은 지지부진하기만 합니다. 또한, 그는 전시 상황에 대연정 내각의 행동 여력을 인질로 삼은 남부당 드라무스 후작 일파에게 협상을 위한 선물로 대위를 희생했습니다. 이건 우리가 자유당을 제1 원내 정당으로 만들 때 기대한 것이 아닙니다. 이에, 나는 양심을 따르는 일개 시민으로서 피터 그린우드를 사기죄로 고발합니다.]

며칠 전 신문지 한 면을 가득 채운 신랄한 비판. 그 비판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았고, 어느 하나 얕은 것이 없었다. 수상으로 시작한 비판은 각 당의 당 대표와 내각 장관들을 지나 사문위원들과 언론, 그리고 황후마저 발골하듯 거칠게 다뤘다.

그리고 그 끝에는, 알렉스를 언급하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

[- 나는 라이플 여단 파견 중대의 중대장 알렉스 매닝햄 대위를 고발합니다. 그는 수십 번의 전투와 수백 번의 작전을 수행하며, 끊임없이 민간인 피해와 아군의 피해를 저울질했습니다. 전장에서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지 않고, 군인으로서의 의무를 따라 온갖 살벌한 죄목을 가져다 붙일 수 있는 결정을 내렸고, 그 덕에 제국의 안전과 평화에 기여했습니다. 사문회를 주도한 황후와 남부당 일파가 무슨 죄를 가져다 붙일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그 죄로 대위를 고발합니다.]

알렉스를 향한 변호와 함께 남부당을 향한 비판으로 끝맺은 글. 그 글의 제목이었던 ‘나는 고발한다’는 어느새 사람들의 입에서 끊임없이 오르내리는 문구가 되었고, 결국에는…….

“나는 고발한다!”

“나는 고발한다!”

“엉터리 재판을 멈춰라!”

“엉터리 재판을 멈춰라!”

의회, 남부당 당사, 그리고 제국 중앙 법원까지. 건물 앞에 모인 사람들이 일제히 외치는, 시위의 가장 첫 번째 구호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맞은편에는, 또 다른 무리가 다른 시위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그들은 마치 고용된 것처럼, 기계적으로 누군가의 지시를 따라 구호를 반복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반역자를 처단하라!”

“반역자를 처단하라!”

“살인자를 교수대로!”

“살인자를 교수대로!”

두 무리가 점점 세를 키우자, 중앙 법원을 담당하는 제1 수도경비대와 법원 경찰들도 긴장하기 시작했다.

만약 저 두 무리가 본격적으로 충돌하기 시작한다면, 여기 있는 병력으로는 압사를 면하면 다행일 터. 그들은 결국 몇몇 대원들만으로 길목을 표시한 뒤 나머지 대부분 경비 대원은 정문과 담벼락 안으로 피신했다.

그때, 저 멀리서 무개 마차와 또 다른 경비 대원들이 빠르게 다가왔다. 그 선두를 이끌고 있는 건 애런 휘태커 경감. 그는 말을 멈춰 세운 뒤 제1 수도경비대에서 나온 간부에게 다가가 인사와 함께 질문을 쏟아 냈다.

“제3 수도경비대 애런 휘태커 경감입니다! 왜 길목 확보가 안 되어 있어요?! 애들은 다 어디 있고?!”

“제1 수도경비대 부대장 시몬 베이컨 경감이네. 경비 대원들은 안에서 대기 중이네. 군중이 돌변해서 안으로 들어오는 걸 대비하고 있네…….”

“청원 경찰은 바리케이드 장비 가져왔으니까 설치하고, 제1 경비대는 다 튀어나와서 길목 확보하라 그래요! 제3 수도경비대! 1, 2중대는 오른쪽, 3, 4중대는 왼쪽!! 부싯돌 망치 재껴진 놈들은 내가 직접 조진다! 각 경비 중대 간부들은 돌아다니면서 확인해!!”

와다다다 쏟아진 휘태커의 일방적인 지시. 베이컨 경감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휘태커는 몸을 돌려 대원들을 지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3 수도경비대의 대원들은 재빠르게 전열을 갖추고 머스킷을 양손으로 붙잡았다.

시민들을 향해 물러나라 요청하는 동시에 경비 대원들이 전열을 갖추며 앞으로 걸어가자, 군중은 생각보다 순순히 물러났다. 총을 들고 있는 경비 대원의 모습은, 그 자체로도 억지력을 지니고 있었다.

마치 경비대보다는 정예 전열 보병 같은 모습. 그렇게 간신히 길을 확보하는 모습을 베이커 경감이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 휘태커는 그를 향해 성질을 냈다.

“베이커 경감! 일 안 해요?!”

“가, 가겠네!”

그렇게 뒤늦게 제1 수도경비대의 병력이 먼저 자리 잡은 경비 대원 뒤로 붙었다. 긴장감이 몰아쳤다.

잠시 뒤.

저 멀리서 마차 대열이 달려왔다. 그러자 길 양쪽의 군중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잠시 뒤, 한쪽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던져!!”

“반역자를 넘겨라!!”

그 외침과 함께, 방금까지 반역자를 운운하던 무리에서 온갖 오물들이 날아들었다.

이런 상황에 익숙지 않았던 제1 수도경비대는 이리저리 몸을 피하는 탓에 대열이 흩뜨려졌지만, 가장 앞에서 군중을 상대하고 있는 제3 수도경비대는 이를 악물지언정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휘태커는 마차를 바라봤다. 마차에는 당연하다는 듯 창문에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러나 휘태커는 그 틈 사이로, 깊고 푸른 눈을 마주했다. 그는 휘태커와 마주치자 손을 들어 말없이 경례했다.

“…무사해라.”

휘태커는, 호더빌에서의 인연을 공유하고 있는 그는. 알렉스를 향해 모자챙을 잡아 보이는 것으로 답했다.

이내 마차는 법원 정문을 지나갔고, 정문은 바리케이드가 세워지며 철문이 굳게 닫혔다.

그렇게, 재판이 시작되었다.

* * *

군대의 힘을 가늠하는 수치에는 총 세 가지가 있다.

수, 화력, 그리고 기동성.

얼마나 많은 사람을 한곳에 일제히 쏟아부을 수 있는지.

얼마나 많은 자원을 한곳에 일제히 쏟아부을 수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빨리 사람과 자원을 재배치할 수 있는지.

기병은 화력은 포병, 심지어 보병에게도 밀린다. 값비싼 군마를 키우고 기수를 훈련시켜야 하는 만큼, 수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도 기병은, 기동성 단 한 가지만으로 전장에서 수천 년을 군림해 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100년은 더 군림할 것이다.

기동성. 단 한 가지만으로.

나이아는 아델라인의 옆에서 알렉스의 수업을 들으면서도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제는 보병의 방진도 혼자 뚫을 수 없게 된 기병이 대체 어떻게 기술 발전 속에서 100년이나 살아남을 거라는 걸까. 그것도 기동성 한 가지만으로.

하지만,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매도 주문! 아인켈 철강 300주! 주당 3.5파운드!”

“3.5파운드면 아직 방어선 바깥입니다, 우리가 받아 낼 물량도 아니고요. 대기하세요. 라인돌프 직물은?”

“주당 1.4파운드, 방어선 바깥으로 밀어냈습니다! 현재 보유량 5,300주! 상승세도 붙었습니다!”

“좋습니다, 보유량을 3,000주로 내리겠습니다, 1,300주는 내일모레까지 50주 단위로 분할해서 천천히 매도, 1,000주는 증권사들과 조금씩 나눠서 주고받으세요. 너무 급격하게 올라가는 모양새가 되면 천천히 조절하시고.”

“알겠습니다!”

제국 중앙 증권 거래소의 주가 갱신 간격은 5분. 일견 넉넉해 보이지만, 100개가 넘어가는 종목을 다 살펴보기에는 부족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아델라인은 해내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살려야 할 스무 개 기업을 고른 뒤, 살벌한 가치 평가를 통해 주가의 최저선을 정하고, 그 위로 주가를 유지한다.

방어선 이상으로 주가가 높아지면 팔아서 자본을 회수하고, 방어선 이하로 주가가 하락한 주식을 띄우는 데 쓴다.

모든 결정은 10초 내로 이뤄지고, 전달은 30초 내로 이뤄진다. 그리고 20초 안에 주문서를 작성해 접수한다. 현금을 주고받을 이유도, 여유도 없다. 모든 거래는 종이로, 장부와 어음으로 이뤄진다. 비교할 수 없는 속도로, 수백 번의 주식 거래가 이어지고 있었다.

필요하다면 증권 거래소의 인맥을 이용해 매매 우선 원칙 중 가격 우선 원칙을 제외한 나머지는 무시한다. 주가 상승세를 연출하기 위해 통정매매도 불사한다.

합법과 불법을 넘나든 어제와 오늘. 장이 열린 14시간 동안 주식 시장은 평소와 같은 모습을 연출해 내는 데 성공했다.

공작가와 스틸웰 공업, 그리고 대형 증권사와 몇몇 은행이 힘을 합쳐 만든 자본의 1할을 소모하면서.

때르르릉!

아델라인의 책상에 놓인 자명종이 울렸다. 오후 4시. 장이 닫히는 시간이었다. 자명종을 눌러 알람을 멈춘 아델라인은 방 안에 앉아 있던 증권가들을 향해 말했다.

“오늘 사후 보고 및 회의는 8시에 진행하겠습니다. 다들 쉬시고, 식사하시고 오세요.”

“네, 알겠습니다.”

평소보다 한 시간 늦은 회의 시간. 그러나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증권가들은 단 한마디 의문도 없이 방을 나섰다.

나이아는 아델라인을 바라봤다. 아델라인은 태연한 표정으로 일어나, 방을 나서는 증권가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잠시 뒤, 아델라인이 자리에 털썩 앉아 몇 시간 전 내린 식어 빠진 커피를 들이켰다. 식어 빠진 커피에 향이며 맛이 있을 리가 없었지만, 그래도 액체라고 갈증을 해결하는 가장 가까운 수단이었다.

잔을 비운 아델라인이 옆으로 잔을 치우자, 나이아는 주전자를 가져와 다시 커피를 채웠다. 그때, 아델라인이 입을 열었다.

“…아직 알렉스 소식은 없지.”

말꼬리조차 올리지 않은 아델라인의 목소리. 평서문에 가까운 말이었지만, 아델라인의 의도를 모를 리 없었다.

“괜찮을 거예요, 대위님은.”

“…….”

“올곧고 지혜로운 분이시잖아요.”

그 말에, 아델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알렉스를 믿었다. 그는 재판 과정에서 받는 압력 따위에 굴할 인물이 아니었다.

하지만, 만약 그가 대처할 수 없는 종류의 위협이 닥친다면? 황후가 다시 암살자를 보낸다면? 이번에는 결국, 결국 그를 잃게 된다면?

끝없는 걱정이 아델라인을 휘감았다. 그리고 걱정과 함께 외로움이 몰려왔다. 알렉스의 따듯한 품이 그리웠다. 항상 차갑지만 아델라인이 손을 잡으면 천천히 온기가 도는 알렉스의 손이 그리웠다.

증권 거래소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여관에서 이틀째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녀에게는, 트레포드의 방음 안 되는 여관이 그리웠다.

아델라인의 눈에 물기가 차올랐다. 그러자 나이아는 곧바로 자리를 비켜 줬다.

“…저녁 식사를 가지고 올게요.”

달칵. 나이아가 나가며 문이 닫히자, 방 안에 남은 아델라인은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피만큼 지독한 냄새의 잉크가 묻은 손으로 눈물을 닦아 내며, 그녀는 소리 죽여 울었다.

단 한 사람. 지금 당장 만나고 싶은 단 한 사람을 그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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