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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엑스트라는 생각보다 대단했다-170화 (170/200)

170화 선지자

수송선의 뱃머리에 백파가 부딪혔다. 꽤 거친 파도였지만, 수백 톤의 해군 수송선은 잠깐 흔들리기만 할 뿐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모자를 벗어 한 손에 든 채 난간에 기대어 그 장면을 눈에 담으며, 알렉스는 옆에서 담뱃잎을 씹는 스워포드에게 물었다.

“얼마나 남았다냐?”

“수송선이라 좀 더 걸린답니다.”

“더럽게도 오래 걸리네.”

“헬리온이 빠른 거죠. 그리고 애들이랑 부상자들 상태 때문에 무리하게 속도 올리면 안 되고.”

스워포드의 말에, 알렉스는 고개를 주억거리면서도 한숨을 쉬었다. 잠시 해안의 풍경을 눈에 담은 그는 스워포드를 향해 말했다.

“담배는 어디서 구했냐, 한동안 안 씹더만.”

“선원에게 돈 주고 샀습니다. 이거라도 씹어야 기분이 좀 나아질 것 같아서.”

“나이아가 담배 피는 거 좋아하진 않을걸.”

“압니다, 담배 쓴 내 나서 좋을 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스워포드는 몇 번 더 질겅질겅 담뱃잎을 씹은 뒤, 바다에 뱉으며 그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 개 같은 상황을 겪었으니 이 정도는 괜찮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해병들이나 수병들 정신 상태가 불안합니다. 일단 무기는 싹 다 걷어서 보관했는데, 무슨 일이라도 터질까 걱정입니다.”

그들이 방아쇠를 당긴 대상이 고작 열다섯이나 되었을까 싶은 아이였다는걸 알았을 때, 온전히 정신을 챙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해전, 특히 함선 간 전투는 대부분 포격전으로 시작해 끝을 맺는다. 직접 사람을 보고 방아쇠를 당기는 데 익숙해져 있을 리가 없었고, 특히나 이런 상황은 상상조차 못 하고 있었을 것이었다.

갑자기 들이닥친 충격을 이겨 내도록 돕는 방법은, 결국 계속 관찰하며 대화를 거는 것밖에 없었다. 알렉스는 한숨을 푹 쉬며 스워포드에게 지시를 내렸다.

“계속 주시하라 그래. 말도 계속 걸고.”

“알겠습니다.”

그때, 해안을 따라 나아가던 수송선이 방향을 틀었다. 그들이 탄 배는 빠르게 한 항구로 접어들고 있었다. 계획과 다른 항로에, 알렉스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기대던 난간에서 몸을 뗐다.

그 순간, 갑판 위가 분주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갑판원들이 배치되고 장루원이 돛대로 올라가자, 알렉스는 스워포드를 바라보며 말했다.

“여기서 정박하려는 것 같은데.”

“여기서요? 아직 수도 근교까지 가려면 여섯 시간은 더 가야 할 텐데.”

스워포드가 의문 가득한 표정으로 상황을 가늠하던 찰나, 그들이 탄 수송선 옆으로 헬리온과 같은 슬루프가 접근했다. 잠시 뒤, 널다리가 놓이고 수십 명의 해병이 갑판 위로 올라왔다.

총검을 장착하고 부싯돌을 젖혀 둔, 말 그대로 싸울 준비를 한 채 배에 오른 그들을 본 두 사람의 몸이 절로 긴장했다.

그때, 그 해병들을 이끌던 해군 장교가 알렉스에게 다가왔다. 그 장교의 대위 계급장과 병과 표시를 확인한 알렉스는 머리에 모자를 쓰고 재킷의 단추를 여미며 몸을 돌려 장교를 대면했다.

“라이플 여단 파견 중대장 알렉스 매닝햄 대위?”

“말씀하십시오.”

“도거뱅크 해군 기지 헌병대의 아서 그린힐 대위입니다. 저희와 동행해 주셔야겠습니다.”

“파견 중대는 작전 수행 후 육군본부에서 지시한 대로 원래 위치로 복귀하는 중입니다. 명령서가 있습니까?”

그러자 대위는 알렉스에게 편지 한 장을 내밀었다. 육군성의 밀랍 인장으로 봉해진 봉투를 뜯어 내용물을 꺼내자, 짤막한 명령이 적혀 있었다.

[3일 뒤 수도에서 진행될 사문회에 출석하여 성실히 조사에 임할 것. 이 명령은 육군본부장 및 전시 사령관의 지시에 우선함.]

그 명령과 함께 적혀 있는 육군성 장관의 서명까지 확인한 알렉스는 장교를 향해 질문했다.

“나머지 파견 중대와 HMS 헬리온 소속 인원들, 그리고 구출한 피해 아동들에 대한 지시가 따로 있었습니까?”

“그건 제 소관이 아닙니다.”

“작전 과정에서 구출한 피해 아동들의 상태가 좋지 않고, 작전 인원 중에는 중상자도 있습니다. 그들에 대한 상륙 허가 및 후속 지원을 요청합니다. 이 요구가 관철되기 전에는 중대를 떠날 수 없습니다.”

알렉스의 말에, 장교는 그를 향해 고압적인 목소리로 지시를 내렸다.

“그건 제 소관이 아닙니다. 제 명령은 당신을 연행해, 수도로 보내라는 것뿐입니다. 분명 그 명령서에도 그렇게 적혀 있을 텐데.”

“육군성 장관의 명령도, 군법에 우선하지는 않습니다. 민간인 및 부상자에 대한 구호 조치는 육해군 군법에 공통적으로 명시되어 있는 의무인데… 임관 시험을 포커로 쳤나.”

“…그건 내 소관이 아니…….”

“임관 몇 년 차야? 나보다 많이 굴렀냐? 해군에서는 그딴 말만 반복하라고 가르치디? 이 앵무새 새끼야?”

알렉스는 한숨을 푹 쉬며 그를 향해 다가간 뒤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모르겠으면 쳐! 물어보고! 오라고! 병신아! 내 부하 셋 묻어 가며 살려 온 애들! 하나라도 죽으면! 니 눈깔을 파 버릴라니까!! 알겠어?!!”

알렉스의 일방적인 협박에, 장교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해병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그 해병은 슬루프로 건너가 보트를 내리고서는 항구로 돌아갔다.

한참 대치 상태가 이어지고, 항구에서 발광 신호로 명령이 전해졌다.

- 요구 수락. 전원 상륙 후 기지에 수용할 것이라 전달할 것.

“거봐. 물어보면 되잖아. 그런 당연한 걸 가지고 뻗대고 있어.”

신호를 읽은 알렉스는 그사이 노먼이 가져온 장비와 배낭을 챙기며 지시를 내렸다.

“노먼 중위, 애들 잘 부탁합니다. 헬리온 애들도 계속 챙겨 주시고.”

그러자 노먼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터번이 꽤나 무거운지, 그의 고개는 평소보다 느릿하게 움직였다.

“…알겠습니다, 중대장님.”

“그래요, 잘 부탁해요.”

알렉스는 그 말만을 남긴 채 슬루프로 향하는 널다리로 걸어갔다. 그렇게 널다리에 발을 디디려는 찰나, 그는 뒤를 돌아보며 질문을 했다.

“아, 참. 그 황야 이야기 말인데요. 그거 결말이 어떻게 되었더라? 제가 성당 간 지가 한참 되어서.”

그러자 노먼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

“…선지자가 이끄는 민족은 결국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들어갔지요. 제가 기억하는 게 맞다면.”

그러자 알렉스는 원하던 대답을 들은 듯, 미소를 지어 보인 뒤 다시 앞으로 걸어 나가며 말했다. 그 발걸음에는, 미련 따위 남아 있지 않았다.

“나중에 봅시다, 중위.”

노먼은, 차마 그에게 답을 할 수 없었다. 그 민족을 이끌던 선지자가 어떤 결말을 맞았는지도 알려 줄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손을 들어 알렉스를 향해 경례할 뿐이었다.

* * *

“목적은 단 하나입니다.”

서재에 모인 집사들. 아델라인은 자신에게 우려와 걱정, 그리고 일말의 불신이 깃든 시선을 보내는 집사들을 바라보며 자신의 목적을 밝혔다.

“주식 시장의 폭락 저지. 월리스 앤 패커드 은행, 트레포드 기업은행, 안필드 해운조합, 제국 육군 보훈처, 제국 해군 복지 기금 등등, 제국 정부가 움직일 수 있는 기관들이 움직여 본격적으로 이 위기에 대응하기까지 로피츠 공작가는 시간을 법니다.”

아델라인이 언급한 집단들은 하나같이 제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자산을 운용하는 이들이었다. 반대로 말하면, 아델라인이 마주하기로 한 상황은 이들이 움직여야 대응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뜻이었다.

그 뜻을 모를 리 없는 집사들은 아델라인을 향해 우려와 의심이 섞인 눈빛을 보냈다.

아델라인의 옆에 선 나이아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집사들은 나이아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로피츠 공작가를 섬기며 살아온 이들이었다. 아델라인의 과거를 모를 리 없었고, 비록 1년간 환골탈태한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의심은 남아 있었다.

그때, 집사장이 손을 들었다.

“그렇게 하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그러자 집사들의 눈이 집사장에게로 일제히 향한 뒤, 아델라인에게 다시 돌아갔다.

“네, 이유가 있습니다.”

아델라인이 서류철을 내보였다.

“다들 신문은 보셨겠지요. 남부당은 리안 필즈먼 대장의 경질을 요구하며 대연정 내각에 대한 불신임 결의안을 상정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경제부 장관을 포함한 남부당 인사들이 사임 의사를 밝히며, 제국의 대응 능력은 마비되었습니다.”

아델라인이 서류철을 펼쳐 집사장에게 건네자, 그는 모노클을 끼며 내용을 훑어 내려갔다.

“그 서류철은 이러한 사태가 지속되며, 현재 주식 시장에서 보이고 있는 성장세의 둔화가 이어질 경우 발생할 주가 붕괴 시나리오를 담은 내용입니다.”

“…최악의 상황을 상정한 시나리오입니다. 아직 발생하지 않았고요.”

“발생하기 전에, 시간을 벌어야 합니다. 시나리오가 시작된다면, 그때는 손을 쓸 수 없을 겁니다.”

“증거금 제도 때문입니까?”

“네, 현재 주식 시장에서는 전체 투자금의 30%만 투자하고, 나머지는 증권사에서 돈을 빌리는 증거금 제도가 확산되어 있습니다. 이를 통해 상승장에서는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지만, 하락장에서는 손해가 극대화됩니다.”

“네, 현재 주식 시장에서는 전체 투자금의 30%만 투자하고, 나머지는 증권사에서 돈을 빌리는 증거금 제도가 확산되어 있습니다. 이를 통해 상승장에서는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지만, 하락장에서는 손해가 극대화됩니다.”

아델라인의 말에, 집사장은 마치 아델라인의 말을 뒷받침하듯 입을 열었다.

“투자금의 3할만 손실이 발생해도, 반대 매매를 통해 증권사가 대출금을 환수하기 때문이지요.”

그러자 아델라인은 계속해서 하고자 하는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 상황이 발생한다는 건, 투자자에게는 투자금 전부를 잃는다는 뜻입니다.”

아델라인은 한번 말을 멈춰 집사들이 자신의 말을 따라올 시간을 준 뒤, 말을 이어나갔다.

“투자자가 타격을 입는다면, 그들에게 돈을 빌려줬던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들이 타격을 입을 겁니다. 은행이 무너지면, 그다음은 제국 전체에 경제 대공황이 올 거예요.”

아델라인의 말이 끝나자, 집사장이 그녀를 향해 입을 열었다.

“상황의 심각성은 알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집사장은 모노클을 벗어 주머니에 넣은 뒤, 아델라인의 눈을 응시하며 말했다.

“왜 굳이, 로피츠 공작가가 나서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투자자들의 타격은 어디까지나 투자자들의 책임. 그들에게 돈을 빌려줬다가 상환을 받지 못하는 것도 은행의 책임입니다.”

그는 서류철을 아델라인에게 돌려주며 냉정한 말투로 말했다.

“그런 상황을, 공작가가 위험 부담을 져 가며 시간을 벌어야 한다는 것이 저는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그의 눈에는, 수십 년간 공작가를 보필해 온 세월이 담겨 있었다. 그 무엇보다 가문을 우선시하는 눈이, 아델라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는, 그리고 공작가의 모든 사용인은 이에 대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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