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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엑스트라는 생각보다 대단했다-168화 (168/200)

168화 거대한 덫

해가 뜨기 직전. 태양이 수평선 아래 12도에서 6도까지 움직이는 1시간 안팎의 간격. 사람들이 항해박명이라 부르는 시간.

그 시간이 끝나고 날이 밝아 올 무렵, 섬을 울리던 총성도 사그라들었다. 부둣가에서 시작한 교전은, 섬의 중심부에 자리 잡은 낡은 벽돌 건물에 다다라서야 끝났다.

“하, 하하. 역시…….”

한 남자의 허탈하고 힘없는 목소리가 알렉스의 귀에 들려왔다. 흔하디흔한 인상의, 30대 즈음으로 보이는 남자가 허벅지에 총탄을 맞은 채 벽에 기대어 거친 숨을 들이쉬고 있었다.

그러나 그 얼굴도, 노먼이 가볍게 주문을 외우며 손가락을 튕기자, 순식간에 20대의 젊은 미남의 얼굴로 바뀌었다.

“간단한 마나 교란으로 풀릴 마법은 아니었는데.”

알렉스의 눈에 비친 얼굴을 들여다본 세이드는 자신의 얼굴을 만지며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세이드가 버거운 숨으로도 계속해서 말을 거는 것과 달리, 어떤 말도 뱉지 않는 알렉스의 표정은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마치 무가치한 무언가를 보는듯한 무기질적인 눈빛에, 세이드는 도발을 이어 나갔다.

“뭐라고 말이라도 해 보지? 같은 사냥개 신세에, 굳이 그렇게 얼굴에 힘줄 필요 있나? 어차피 결국 버림받을 처지에.”

능글맞은 미소를 지은 세이드의 웃음소리에, 알렉스의 눈빛이 더욱 서늘하게 변했다. 그가 세이드의 허벅지를 짓밟자, 그의 입에서 고통에 찬 비명이 터져 나왔다.

“끄아아악!”

“누가 누구보고 사냥개래, 버러지 새끼가.”

알렉스의 입에서 나온 감정 섞인 목소리에, 세이드는 비명을 지르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마치 미친 사람처럼 웃음을 뱉던 그는 알렉스를 바라봤다.

“어차피 날 죽이지 못할 것 아닌가.”

“…….”

세이드의 말에, 뒤에서 다가온 스워포드가 알렉스에게 나지막이 보고했다.

“있는 게 없습니다. 자료는 모두 불태웠고, 약재는 모두 사용하거나 폐기한 듯합니다.”

알렉스는 고개를 살짝 틀어 곁눈으로 스워포드를 바라봤다. 가장 앞서서 싸우던 그의 몸은 온통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한 명이라도 살려 보려, 가장 앞에서 뛰어들어 무기를 걷어 내고 제압하던 눈에는 독기가 서려 있었다.

“…우리가 올 것을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생포한 놈 신문 결과는.”

“그 자식 말로는 교전을 시작하자마자 가둬 뒀던 미성년자를…….”

스워포드는 말끝을 흐렸다. 차마 자신의 입으로 내뱉을 수 없었다. 그때, 세이드의 입이 열렸다.

“약물을 주입하고, 마법을 걸었지. 사병들이 생각보다 시간을 오래 못 끌어서 그리 많은 수를 사용하지는 못했지만. 그건 아쉽군.”

마치 자랑을 하는 듯 웃음과 함께 내뱉어진 세이드의 말에, 스워포드의 표정이 험악하게 변했다. 그러자 그 표정을 즐기듯, 세이드는 더욱 큰 웃음을 터뜨렸다.

“소년병, 소년병이 뭐가 대수라고 그렇게 험악한 표정을 짓는 거지? 응? 얼마 전까지 제국 육군도 똑같이 소년병을 쓰지 않았나? 뭐가 크게 다른 거지?”

그 말에, 스워포드의 몸이 앞으로 나왔다. 그러나 알렉스는 스워포드를 막아 세운 뒤, 서늘한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버림받은 사냥개 신세라고, 그녀가 저지른 모든 걸 합리화시킬 필요는 없는데 말이지.”

그녀, 라는 표현에 살짝 놀란 눈을 떠 보인 세이드였지만, 이내 그는 능글맞은 표정을 지으며 알렉스에게 말했다.

“그렇다고 쓸모가 없어진 건 아니지, 안 그런가?”

세이드의 말에, 스워포드의 몸이 앞으로 튀어 나갈 듯 힘이 실렸다. 그러나 알렉스의 팔은 다시 한번 스워포드의 몸을 저지했다.

“한 대 정도는 괜찮지 않습니까. 중대장님.”

항상 일말의 여유가 남아 있던 스워포드. 그러나 그 여유는 모두 사라진 채, 분노한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는 스워포드를 향해 알렉스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질문했다.

“애들은.”

“일흔여덟 명. 모두 다 학대 흔적이 있습니다. 영양 상태도 좋지 않고.”

“아군 피해.”

“라이플맨 전사 셋, 중상 다섯. 해병 및 수병 중상 다섯, 경상 일곱.”

“누구.”

“안톤, 네빌, 그리고 스팅어입니다.”

“생포한 적은.”

“미성년자는 구호 조치가 불가능했고, 나머지는 없앴습니다.”

무어라 단정 지을 수 없는 결과. 완벽했다 자화자찬하기에는 스러져 간 목숨이 너무 많았다. 세 명의 전우를 타향에 묻고, 60명이 넘는 미성년자가 희생당했다. 손쓸 방법도 없었고, 손을 써도 늦은 상황이었다.

그 결과에 대한 분노가, 스워포드의 목소리에 묻어 나왔다. 알렉스가 비켜난다면, 곧바로 허리춤의 무기를 꺼내 들 것 같았다.

알렉스는 주머니에서 회중시계를 꺼냈다. 시계 침은 정오를 지나고 있었다. 작전 계획을 떠올린 알렉스는 노먼에게 지시를 내렸다.

“집 갈 시간입니다. 노먼 중위, 가서 지원 선단 유도하세요. 스워포드, 그거 줘 봐.”

알렉스의 물음에, 스워포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손도끼를 건넸다. 손도끼의 날에는, 누군가의 피가 묻어 있었다.

“먼저 가 있어.”

그 말을 들은 스워포드는 발을 한 번 구르는 것으로 답한 뒤, 뒤 돌아 걸어 나갔다. 그 발소리를 들은 알렉스가 손도끼를 고쳐 잡는 걸 보며, 노먼은 그의 어깨를 잡았다.

“멀리 돌아가는 길이 될 겁니다. 선지자가 약속의 땅을 앞두고 황무지에서 40년을 헤맸던 것처럼.”

성서의 일화를 언급하는 노먼의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하지만 알렉스는 눈을 감은 채 그에게 지시를 내렸다.

“…가세요, 헤매더라도 혼자 헤맬 거니까.”

기어코 감정이 섞여 버린 목소리와 함께, 알렉스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걸 보자, 노먼은 깨달았다.

더는, 그를 말릴 방법은 없었다.

노먼은 그의 어깨를 툭, 두드려 준 뒤 뒤로 물러났다. 오직 알렉스와 세이드 두 사람만이 남자, 지금까지 그를 향해 조소를 내뱉었던 세이드의 표정이 바뀌었다.

반평생을 사냥개로써 살아온 그가 역으로 사냥당할 처지에 놓이자, 짙은 절망과 헛된 희망이 동시에 표정으로 드러났다.

부하들이 모두 떠난 후의 알렉스의 눈빛을 본 세이드는 다급하게 뒤로 물러나며 알렉스에게 되는대로 지껄였다.

“멍청한 자식. 피오나가 노렸던 것을 모르는 건가.”

“알아.”

세이드 같은 유능한 사냥개를 버림패로 쓴다는 건, 그보다 더 큰 이득을 얻을 수 있는 판단이 있을 때 가능한 행동이었다. 당장 알렉스의 머릿속에서도 피오나가 지금의 엿 같은 상황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몇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하지만 알렉스는, 도끼를 고쳐 잡은 뒤 세이드의 눈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렇다고 쓰레기를 길바닥에 내버려 둬서야 쓰나.”

알렉스의 손에서, 도끼가 떠나갔다.

* * *

“대연정 내각의 남부당 요인들이 모두 사퇴 의사를 밝혔다.”

이를 뿌드득 갈며 한 마일즈의 말에, 그린우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사실입니까, 부수상님?”

그 물음에 마일즈는 고개를 끄덕이며 충격적인 소식을 더 얹었다.

“거기다가 내각 불신임 결의안도 본회의에 상정한다고 기자 회견까지 열었어. 이렇게 되면, 새로 장관을 임명하기도 힘들어.”

“이런 개자식들……!”

그 말을 들은 그린우드도 이를 악물었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정보의 연속에 방 안의 모두가 할 말을 잃은 그때, 그나마 충격에 강한 안드레이가 마일즈를 향해 질문했다.

“총사퇴에 불신임 결의안이라는 행동을 취했다면, 그 목적도 있을 텐데. 무엇인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전시사령부 수장 겸 육군본부장 리안 필즈먼 해임. 이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총사퇴를 결행하고 내각 불신임 결의안을 상정할 거라 하는군.”

그 말에, 아델라인은 마일즈를 향해 이어서 물었다.

“이유가 뭔가요?”

“이유… 이유… 빌어먹을 이유…….”

마일즈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지금 꺼내든 건, 현재 정체 상태에 접어든 전황에 대한 책임이라네. 전쟁을 제대로 겪어 본 적 없는 이들이 목소리만 커서는…….”

“지금 전황이 어떻길래 그렇습니까?”

“좋진 않아, 그러니 남부당이 무리수를 띄운 거겠지.”

“자세히.”

그린우드의 요구에, 마일즈는 그의 책상에 있는 서류를 가져와 그 뒷면에 그림을 그려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면지를 둘로 가르는 선이 그어졌다.

“이게 올해 초 전황. 좌익 우익 중앙 할 것 없이 조금씩 진격하고 있었어. 이렇다 할 장점은 없지만, 단점이 없는 게 장점이지.”

마일즈는 또 다른 서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이게 저번 달까지의 전황.”

그렇게 말하며, 마일즈는 아델라인이 봤던 오목한 전선의 모양을 그려 낸 뒤, 그 끝에 점을 찍고 ‘호더빌’이라는 지명을 적어 넣었다.

“좌익과 우익은 그대로지만, 중앙을 맡고 있던 1군이 뒤로 후퇴해 철수했지. 프랑크 육군이 주력을 쏟아부었기에 납득 가능한 결과이지만, 원점까지 밀려났다는 사실은 필즈먼을 압박했네.”

“그건 전해 들었네. 근데 거기에서 또 무슨 상황이 벌어졌길래.”

“…5일 전, 호더빌 요새가 포위당했다.”

마일즈의 말에, 안드레이의 눈이 번뜩 뜨였다.

“요새 내부에는 3개 연대가 고립되었네. 물론 1군의 피해는 경미해.”

“최소 세 개 사단이 3개월간 발이 묶이겠군요.”

안드레이의 추측에, 마일즈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 나갔다.

“근접했네. 프랑크군 및 그 동맹군 4개 사단이 호더빌 공략에 투입되었네. 낙관적으로, 5개월은 버티겠지. 그 사이 변수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거고. 하지만 상황은 영 좋지 않아.”

“상황이 어떻습니까?”

“돌출부에 집중된 프랑크 군은 추산 14만. 그 주위를 둘러싼 아군은 15만. 14만 중 5만을 호더빌 공략에 투입한 프랑크 군에 비해 아군이 수치상 유리해. 보급도 한정적이고. 하지만 프랑크 군은 어느 쪽을 들이받을지 선택할 수 있어. 우리는 선택할 수 없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 2, 3군을 격파해 전선을 진전시키던가, 1군을 격파하고 프룬츠베르크 공국과 하켄 공국을 장악해 제국 본토에서의 증원을 차단하던가, 겠군요.”

안드레이의 말에, 아델라인은 마일즈를 향해 물었다.

“각개격파를 당할 수 있다는 건가요.”

“그렇지. 이해가 빠르군.”

“추가적인 정보는 없습니까?”

그린우드의 물음에, 마일즈는 고개를 저었다.

“프룬츠베르크 원정 사령부의 마지막 통신이 그 내용이었네. 그 이후로는 프룬츠베르크 전역 전체에서 마나 교란이 급격하게 증가해 연락이 끊겼고.”

“…누구에 의한 것이지?”

그린우드의 물음에, 안드레이가 대신 즉각 답했다.

“누구라 할 것도 없습니다. 모든 군종 마법사들이, 마법을 방해하기 위해 일제히 마나 교란을 일으켰을 테니까요. 통신 마법이든 치유 마법이든 다른 마법이든.”

안드레이의 말에, 그린우드의 질문이 그를 향했다.

“무엇을 위해서?”

“회전.”

마일즈는 한숨을 내뱉으며 중얼거렸다.

“단 한 번의 대회전을 위해서. 1분이라도 적군이 결집하는 것을 늦추고, 단 한 명의 부상병이라도 전선으로 복귀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그렇게 서로 적군의 마법을 방해하려 드니, 한동안 그 누구도 마법을 쓸 수 없을 겁니다. 회전이 끝나도, 약 3일가량은 그 여파로 마나 교란이 이어지겠지요. 그동안은 무슨 일이 일어나도, 즉각적인 정보 전달이 힘들 겁니다.”

차로 목을 축인 안드레이는, 아델라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론이 선동당하기 아주 적절한 순간이지요.”

그 말에, 아델라인은 이를 갈았다.

피오나의 술수가 분명했다. 황후를 뒤에서 꼭두각시 삼은 채, 알렉스의 우군을 하나씩 앗아 가려는 피오나의 술수.

전황이 안개에 낀 사이, 작중에서 알렉스의 가장 큰 배경이자 보호막으로 작동했던 필즈먼을 제거하려는 술수였다.

자유당과 남부당을 아우르며 갈등을 조정하던 제국 의회의 의장이자 기준점, 로피츠 공작이 사라진 상황이었다. 의회와 내각의 혼란은 단기간에 해결되지 않을 것이었다.

“비열한 년…….”

아델라인의 입에서 나온 말에, 그린우드와 마일즈의 눈이 놀람으로 가득 찼다. 피오나를 향한 것이었지만, 그들이 듣기에는 황후를 향한 비난처럼 들릴 수밖에 없는 상황.

“황후가 남부당을 휘두르고 있는 상황이기는 하지.”

“아니에요, 황후가 아니에요.”

아델라인의 말에, 두 사람의 눈에 의문이 가득 깃들었다. 그럼 대체 누구를 향해 그렇게 말한 거냐, 묻는 시선.

아델라인은 그 시선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또 다른 방향에서 일이 터질 거예요.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대비하셔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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