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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엑스트라는 생각보다 대단했다-157화 (157/200)

157화 전조

“알렉스.”

“왜요?”

“여기 몇 시까지 있어야 해요?”

“한 오후 9시까지. 피곤하면 먼저 들어가요.”

“피곤하진 않은데.”

아델라인은 고개를 돌려 연회장을 둘러봤다. 이른 저녁의 연회장은 화려하고 활기찼다. 사람들은 웃고 있었고, 밝은 목소리가 오가고 있었다. 마치 사치를 부리지 않으면 죽기라도 하듯, 허영에 젖은 많은 사람이 어울리지도 않는 보석을 온몸에 걸친 채 자랑을 늘어놓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도, 아델라인이 나타나자 그녀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아무리 돈을 쏟아부어도 아델라인의 가슴에 달린 훈장은 얻을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선망과 질시의 시선이 그녀에게 일제히 향했다.

그때, 아델라인의 곁으로 한 쌍의 중년이 다가왔다. 아델라인도 그들을 보고는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커크만과 함께 걸어오는 중년의 여성. 커크만이 먼저 아델라인에게 인사를 건넸다.

“좋은 저녁입니다, 남작님. 좋은 파트너가 곁에 있으니 더 빛나시는 듯합니다.”

“고맙습니다, 커크만 교수님. 그리고 이쪽은…….”

아델라인이 커크만의 옆에 서 있는 여성을 향해 시선을 돌리자, 그 여성은 미소와 함께 아델라인에게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알리사에요. 남편에게 이야기는 많이 들었는데, 이렇게 뵙기는 처음이네요.”

그러자 아델라인도 그 손을 맞잡고 가볍게 흔들며 인사했다.

“아델라인이라 불러 주세요, 부인. 아, 이쪽은 라이플 여단의 알렉스 매닝햄 대위입니다. 제 파트너예요.”

“알렉스 매닝햄입니다.”

“활약은 많이 들었어요, 대위. 이렇게 직접 만나게 되니 영광이네요.”

“감사합니다. 오늘 입으신 옷이 부인 덕분에 더욱 빛나는 듯하군요.”

알렉스가 가볍게 커크만 부인의 옷을 칭찬하자, 그녀는 기분 좋게 웃음을 터뜨린 뒤 아델라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머, 고마워요. 그래도 아델라인 양에 비하면 저는 평범한 축에 속한답니다?”

한결 풀어진 분위기. 그렇게 네 사람은 자연스레 대화를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 목걸이는 어떻게 얻으신 건가요? 펜던트의 아쿠아마린이 아름답네요.”

그 말에, 아델라인은 고개를 살짝 숙여 자신의 목에 건 펜던트를 바라봤다. 푸른 아쿠아마린이 빛나고 있었다.

“아, 이거 말인가요?”

그걸 보자 알렉스가 떠나 있던, 유난히도 추웠던 겨울이 떠올랐다. 당연히 돌아올 줄 알았던 알렉스가 오지 않았던, 트레포드의 유난히도 매서웠던 바닷바람이 느껴졌다.

“올해 초에 받은 거예요, 알렉스에게. 물론 직접 받지는 못했지만.”

아델라인의 미소에 스쳐 지나간 슬픔을 못 느낄 이들이 아니었기에, 대충 사정을 짐작한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급작스러웠지요, 이번 전쟁은.”

“그래도, 함께 계신 모습을 보니 보기 좋네요.”

두 사람의 진심이 담긴 말에, 아델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커크만 교수님. 그리고 알리사.”

대화와 건배가 이어졌다. 네 사람 모두, 손에는 술 대신 음료가 들려 있었다. 그렇게 잔을 비우고 나자, 커크만이 무언가를 뒤늦게 떠올린 듯 눈을 번뜩 떴다.

“아 참. 제 지인 중에 한 명 소개하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괜찮으시겠습니까?”

“교수님의 지인이라면 언제나 환영이에요.”

아델라인이 미소와 함께 답하자, 커크만은 잠시 몸을 돌리더니 누군가를 향해 손짓했다. 그러자 그와 비슷한 연배의 남성이 다가왔다.

아델라인은 그 사람을 알아볼 수 있었다.

남부당의, 피츠허버트 백작.

“안녕하십니까, 백작님. 좋은 저녁입니다.”

아델라인이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하자, 알렉스도 곧바로 고개를 숙여 그녀를 따라 인사했다. 그러자 그도 고개를 끄덕여 그 인사에 답하며 물었다.

“처음 보는 사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우리가 어디서 만났었나?”

“작년 추수제 전 마지막 본회의 때, 그때 얼굴을 뵈었습니다.”

그제야 뒤늦게 아델라인의 얼굴을 기억에서 떠올린 건지, 피츠허버트는 입을 살짝 벌리며 중얼거렸다.

“아, 그때.”

“인원수를 확인하던 중 들어오셔서, 기억에 더 남았습니다.”

아델라인이 말을 덧붙이자, 피츠허버트는 이제야 기억이 선명해지는 듯 말을 더했다.

“그래, 자네가 질의응답을 받던 게 이제 기억이 나는구만. 자연스럽게 질문에 응해서 오히려 평범하게 느낀 거였군.”

“과찬이십니다, 백작님.”

“자네 같은 인재라면 언제든지 보좌관으로 들이겠다, 말하고 싶지만… 그사이 자네는 일개 보좌관으로 삼기에는 너무 커 버렸지 뭔가. 같은 영주가 되었으니 말이야.”

“아쉬우신가요?”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그래도 미련은 없네. 애초에 자네는 로피츠 공작가의 후계 아닌가. 그리고…….”

그는 잔을 홀짝인 뒤 아델라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쩐지 자네는 나보다 더 큰 인물이 될 것 같은 느낌이라. 그래서 이렇게 커크만 교수에게 부탁했네. 다리 좀 놓아 달라고.”

“제 꿈은 기대하시는 것만큼 크지 않은데… 부끄럽네요.”

“꿈이 뭔가?”

피츠허버트의 물음에, 아델라인은 알렉스를 흘끔 본 뒤 곧바로 답했다.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평온한 삶을 보내는 것이요.”

비록 그 앞에는 아직 풀어내지 못한 실타래들이 얽히고설켜 있지만, 과연 이루어 낼 수 있을까 싶은 삶이었지만, 그렇기에 더욱 이루고 싶은 꿈이었다.

그러나 그 대답이 일종의 농담이라고 생각했는지, 알렉스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가벼운 웃음을 터뜨리며 맞장구를 쳤다.

“그래,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지. 평온한 삶.”

“소박하지만 꼭 이루고 싶은 꿈이네요.”

그러나 알렉스는, 아델라인의 꿈이 얼마나 이루기 어려운지도, 그리고 얼마나 이루어 내고 싶은지도 알았다.

알렉스가 살짝 머리를 기울여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꼭, 함께 이루죠.”

그 말에, 아델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그들 주변에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천장의 대원들을 슬쩍 바라본 그는 아델라인의 어깨를 두드리며 속삭였다.

“저는 잠시만 자리를 옮길게요.”

그 말에, 아델라인은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 주변을 살피기 힘들다는 것을 알아챘다. 이래서야 알렉스가 여기 있는 의미가 없었다. 그녀는 곧바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

“기다리고 있을게요.”

“고마워요.”

알렉스는 다시 한번 아델라인의 어깨를 두드린 뒤, 인파에서 벗어났다. 아델라인은 슬쩍 위를 바라봐 라이플맨들이 알렉스를 눈으로 좇는 걸 확인한 뒤, 사람들과 대화를 이어 나가며 음료를 홀짝이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또다시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고 있자, 어느새 다시 한번 아델라인의 손에 들려 있던 잔이 비었다.

아델라인은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싼 사람들 때문에, 지금까지 계속 마시던 음료를 들고 있는 시종을 찾기가 어려웠다.

“이런…….”

바로 그때, 어느 한 귀족 청년이 그녀에게 잔을 건넸다.

“잔이 비신 것 같습니다. 여기, 샴페인입니다.”

그가 건넨 잔에는 탄산이 톡톡 튀어 오르는 샴페인이 담겨 있었다. 보기에는 다른 이들이 들고 있는 잔과 별반 다른 점이 없는 잔. 아델라인은 자신을 향해 잔을 건넨 영식을 향해 그 잔을 살짝 들어 보이며 말했다.

“고마워요. 하지만 연회 끝나고 영지 일을 봐야 해서, 오늘은 술을 입에 대지 못할 것 같네요.”

아델라인은 주변의 테이블에 잔을 올려놓은 뒤, 라임 음료가 담긴 잔을 시종에게서 받아 들었다. 그러자 일순간 그 영식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아닙니다, 남작님. 공사다망하신 건 익히 알고 있던 사실이니까요.”

그러나 곧바로 얼굴에 힘을 주어 미소를 꾸며 내는 모습에, 아델라인은 약간의 불안함을 느끼면서도 미소로 화답했다.

“이해해 줘서 고마워요, 영식.”

아델라인은 그렇게 말하며 시계로 시선을 옮겼다. 꽤 오랜 시간이 흘러 있는 걸 확인하자, 어쩐지 다리가 아파져 오는 듯했다.

“저는 잠시 바람을 쐬러 발코니로 나가 볼게요.”

“다녀오시죠. 너무 오랫동안 붙들고 있던 게 아닌가 걱정이네요.”

“아니에요, 교수님. 대화가 즐거워서 시간 지나는 줄 몰랐는걸요.”

아델라인은 약간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 커크만을 안심시킨 뒤, 비어 있는 발코니로 향했다.

밖으로 나오자, 해가 져 시원해진 공기가 어느새 달아오른 아델라인의 볼을 식혔다. 커튼을 쳐 사람들의 시선을 막은 그녀는, 발코니 한편의 의자에 앉아 등을 기대며 중얼거렸다.

“…심심하다.”

알렉스가 보고 싶었다. 진심으로.

* * *

“후우. 이제 좀 잘 보이네.”

아델라인과 떨어진 알렉스는 새로 잔을 들며 한숨과 함께 중얼거렸다. 연회장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어야 지금 이렇게 연회장에 자리하는 의미가 있는 법.

비록 천장에서 대원들이 제3 경비 대원들의 지정 사수들과 함께 연회장을 내려보고 있다고 하지만, 직접 눈으로 상황을 보고 대응하는 것에 비하면 속도와 정확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알렉스는 잔을 홀짝이며 연회 속에 녹아들었다. 그의 눈은 계속해서 연회장을 훑어보고 있었다.

황제는 의자에 앉아 명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렇게 황제가 직접 연회장에 찾아오는 일은 드물었기에, 이름 좀 날린다는 인사들도 순번을 기다려야 할 판이었다.

그 옆으로 시선을 옮기자, 황후가 귀족 여성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게 보였다. 주로 비슷한 나이대의 중년 여성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지만, 개중에는 한참 어린 귀족 영애들도 있었다.

그러나 뭔가 이상했다. 끊임없이 대화를 이끌어 나가며 무리의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어야 할 황후의 시선이 간간이 어딘가를 향하고 있었다. 손으로 내보이는 제스처나 동작은 부드러웠지만, 말로 표현하기 애매한 위화감이 계속해서 느껴졌다.

“뭔가 이상한데.”

알렉스는 황후가 종종 시선을 던지는 방향을 눈으로 좇았다. 그러자 그 끝에는 아델라인이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

뭔가 꾸민 걸까. 직접 손을 쓰기에는 현재 아델라인과 황후의 입지에 크나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황후가 그 사실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 또한, 알렉스는 알고 있었다.

그때, 한 귀족 청년이 아델라인에게 샴페인 잔을 건네는 게 그의 눈에 들어왔다.

설마.

순간 최악의 상황을 떠올린 알렉스는 자리에서 벗어나 그녀에게 다가가기 위해 몸을 틀었다. 그러나 그녀가 그 샴페인 잔을 내려놓고 새로운 잔을 손에 들자, 알렉스는 다시 원래의 태도로 되돌아왔다.

“…휴우.”

안도의 한숨이 절로 튀어나왔다. 그렇게 그가 시선을 잠깐 돌려 연회장의 다른 곳을 살핀 그 찰나, 연회장에서 아델라인이 사라지고 말았다.

“무슨…….”

어디로 간 거지? 어디로 향한 거지?

알렉스는 계속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아델라인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알렉스는 시계로 시선을 옮겼다. 조금 있으면 교대자가 오는데… 왠지 모를 불안함이 계속 알렉스의 신경을 건드렸다.

그때, 누군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중대장님.”

“스워포드?”

“조금 일찍 내려왔습니다. 교대하시죠.”

그러자 알렉스는 곧장 스워포드의 어깨를 두드리며 속삭였다.

“고맙다. 혹시 아델라인은 어디 갔는지 아냐?”

“놓치셨습니까?”

“…잠깐 주변 보다가.”

“저도 막 들어와서 모르는데…….”

그러자 알렉스는 곧바로 위로 시선을 던졌다. 알렉스의 곤란한 얼굴을 본 대원들은 그 이유를 짐작한 듯, 곧바로 수신호를 보냈다.

‘중대장님, 부사수, 3번 발코니… 잠시 대기.’

간결하게 정보를 보내던 라이플맨이 갑자기 알렉스에게 대기를 뜻하는 수신호를 보냈다.

잠시 뒤, 옆에 있는 대원에게 정보를 전해 들은 그는 다급하게 수신호를 덧붙였다.

‘거수자, 1인, 3번 발코니로 접근, 진입. 거수자, 1인, 3번 발코니, 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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