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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엑스트라는 생각보다 대단했다-155화 (155/200)

155화 미행

수도의 한 공원. 오래전 이름을 떨쳤던 문관의 동상 앞에서, 말쑥하게 옷을 입은 한 남성이 회중시계를 들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열 명에게 물으면 일곱 명 정도는 빈 소리로나마 잘 생겼다, 말할 그의 얼굴. 그 얼굴은 전장에서도 볼 수 없었던 긴장으로 차 있었다. 회중시계를 보는 간격은 더욱 짧아졌고, 들여다보는 시간은 점점 길어졌다.

그렇게 다섯 번을 더 시계를 확인하고 나서야, 그에게 한 여성이 다가왔다. 수수한 옷이기는 하지만, 그래서인지 더욱 잘 어울리는 옷.

나이아가 그 남성을 향해 미안한 기색이 섞인 미소로 말했다.

“기다리고 있었어요? 늦어서 죄송해요…….”

“아냐 아냐. 내가 그냥 좀 일찍 나온 것뿐이야. 자, 그럼…….”

나이아의 사과를 손을 내저으며 물린 스워포드는 잠시 숨을 가다듬은 뒤 말했다.

“갈까?”

그러자 나이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스워포드와 함께 걸음을 옮겼다. 그들이 그렇게 자리를 벗어나자, 동상 맞은편에 있던 사람의 손에 들려 펼쳐져 있던 신문이 착착 접혔다.

그러자 그 뒤에서 얼굴을 가리고 있던 아델라인과 알렉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들키진 않았겠죠?”

“아직 들킨 기색은 아닌 것 같은데요.”

알렉스는 그렇게 말하며 공원을 빠져나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일단 따라가 볼까요?”

“좋아요.”

두 사람은 벤치에서 일어나 스워포드와 나이아의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사람이 많이 오가는 번화가였지만, 아델라인의 손을 잡은 알렉스의 눈은 스워포드와 나이아에게서 절대 떨어지지 않았다.

“이쪽으로.”

“네.”

알렉스가 가볍게 아델라인의 손을 잡아끌자, 아델라인은 그의 인도에 맞춰 따라서 발을 내디뎠다. 아델라인은 주변 사람들의 몸에 가려 그들을 볼 수 없었지만, 알렉스는 때로는 길가의 노점을 구경하는 척, 아니면 전단지를 받아 읽는 척 계속해서 두 사람의 뒷모습을 쫓았다.

아델라인은 간신히 그의 행동에 장단을 맞추며 그를 따라 걸었다.

그 끝에 그가 멈춰선 곳은…….

“어, 여기?”

“저번에 왔던 곳이네요, 이곳.”

[- 아이스크림 절찬 판매 중

- 아포가토 원조 맛집]

카페에 내걸린 광고 문구들을 보자, 그날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게 벌써 1년이 되었다니. 아델라인은 소회를 느끼며 알렉스에게 말했다.

“우리도 안으로 들어갈까요?”

“그러죠.”

안으로 들어가자, 변한 건 많지 않았다. 그저 아이스크림에 커피를 부어 먹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이 거의 유일한 차이점이었다.

테이블 하나를 잡아 앉은 뒤 그 사람들과 같이 아포가토를 하나씩 시키고 값을 치른 두 사람은 벽에 있는 거울을 바라봤다.

벽에 걸어 둔 전신 거울에는 아포가토를 먹으며 수다를 떨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비쳐 보였다. 주로 말을 하는 건 나이아였고, 스워포드는 미소와 함께 그 이야기를 듣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아델라인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보기 좋네요, 두 사람.”

“그러게 말이에요.”

알렉스는 자신 앞으로 나온 아이스크림에 커피를 부으며 말했다.

“우리도 저런 모습이었으려나.”

그 말에, 아델라인은 미소를 지었다. 나이아가 저렇게 수다쟁이일 수 있구나. 스워포드가 저렇게 흐뭇한 미소를 지을 수 있구나. 자신이 알고 있던 사람들의 이면을 보는 건 생각보다 재미있는 일이었다.

그 모습을 구경하고 있던 도중, 아델라인이 그에게 질문했다.

“나이아하고는 언제 처음으로 만났어요?”

그러자 알렉스는 눈을 감고 고민을 했다. 숟가락마저 내려놓고 기억을 되감은 끝에, 알렉스는 입을 열고 답했다.

“나이아가 아카데미 입학할 때려나.”

“입학할 때요? 그러면 한…….”

“햇수로는 7년 전이죠.”

손가락을 꼽아 가며 지나간 세월을 가늠한 그는 미소와 함께 말을 이어 나갔다.

“그때 안드레이가 지방으로 파견을 나갔을 때라, 막 임관한 제게 나이아의 입학 수속을 부탁했었거든요.”

“아하…….”

“그때 처음으로 나이아를 만났어요. 그때는 한참 어렸죠.”

“어린 나이아라, 어떤 모습이었으려나.”

아델라인은 머릿속으로 나이아의 어릴 때 모습을 떠올려 봤다. 그때도 안경을 썼으려나? 키는 많이 작았겠지.

“그때도 눈빛만큼은 똘망똘망했어요. 물론 처음에는 그 눈으로 저를 한껏 경계했지만.”

알렉스의 말에, 아델라인은 피식 웃었다.

“그때는 의심이 많았나 보네요.”

“의심이 많았다기보단 제가 수상해 보였던 거겠죠. 다행히 안드레이의 편지로 금세 풀렸지만. 하마터면 경비대에 조사받으러 갈 뻔했어요.”

“다행이네요, 그건.”

아델라인은 미소를 지으며 알렉스를 경계하는 어린 나이아를 상상했다. 상상만 해도 귀여웠다.

그들의 모습을 구경하며 조금씩 아포가토를 먹다 보니, 어느새 그릇은 바닥이 나 있었다. 아델라인은 아쉬운 듯 바닥을 한두 번 숟가락으로 긁어 본 뒤,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알렉스에게 물었다.

“스워포드는 어떻게 만났어요?”

“그것도 이제 햇수로 8년 전이네요. 이건 좀 지루할 텐데.”

“말해 봐요.”

아델라인이 답을 재촉하려는 찰나, 스워포드와 나이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걸 본 아델라인이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알렉스는 그녀의 손을 잡고 고개를 저었다.

“조금만 기다리죠. 너무 바로 따라가면 티 나요.”

“진짜요?”

아델라인의 물음에, 알렉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카페에서 나가자, 그제야 알렉스는 아델라인의 팔을 잡고 일어나며 아델라인의 질문에 답했다.

“스워포드 쟤도 미행 많이 해 본 놈이니까요. 눈치채지 못했으면 모르겠지만, 눈치챈다면 미행을 뿌리치려 들 겁니다.”

알렉스의 말에, 이해를 마친 아델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알렉스는 그녀를 이끌고 커피 하우스 밖으로 나섰다.

“어디로 간 거죠?”

아델라인의 물음에, 빠르게 주변을 훑어본 알렉스는 턱으로 한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10시 방향이요.”

알렉스의 말에 아델라인이 시선을 돌리자, 노점에서 무언가를 구경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알렉스와 아델라인은 아닌 척 그 근처로 다가가 벽에 붙은 벽보를 읽는 척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이거 어때요?”

“오, 곰 인형. 한 여섯 살 때 이런 거 하나 방에 있었거든요. 침대에 누웠을 때 이거 없으면 잠도 안 왔어요.”

“그래요? 보통 그 나이대에는 병정 인형 같은 거 가지고 놀지 않나.”

“형들은 주석으로 찍어 낸 인형 가지고 전쟁놀이했었는데, 저는 늦둥이였으니까요. 어머니랑 같이 시간을 보내고는 했죠.”

“어떤 분이세요? 스워포드 씨의 가족분들은?”

그러자 스워포드는 두 형에 관한 이야기만을 꺼냈다.

“연년생이고. 저랑 네다섯 살 터울에, 뭐… 재수 없다, 정도? 둘이서 저를 많이 놀려 먹었거든요.”

부모님은 지금 말하기 힘들다는, 목소리에 담긴 의사를 알아챈 나이아는 자연스럽게 두 형에 관한 주제로 대화를 이끌어 나갔다.

“그렇구나. 지금은 뭐 하세요, 두 분 다?”

“둘 다 회사 다니고 있어요. 그것 때문에 맨날 바쁘다 하소연하는데… 뭐, 바빠 보이긴 하더라고요.”

스워포드의 말에, 나이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그들은 다른 노점으로 발걸음을 옮겨 구경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아델라인이 알렉스에게 물었다.

“이번 사교 시즌에도, 피오나를 만나겠죠?”

“아직 행동할 근거나 증거가 없으니까요. 상부에서는 전쟁 때문에 바쁘고, 우리도 한가하지는 않고요.”

“그렇군요…….”

아델라인은 복잡한 표정으로 알렉스를 바라봤다.

“사실, 피오나를 보면 무슨 반응이 나오게 될지 확신이 안 서요.”

“…….”

“저도 모르게 화를 내거나 정색하게 될 것 같아서. 그렇게 피오나에게 저도 모르게 놀아나게 될 것 같아서… 걱정이에요.”

그러자 알렉스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제가 곁에 있어 줄게요.”

그러자 그에게서 느껴지는 든든함에, 아델라인이 알렉스의 손을 꼭 잡았다.

“고마워요, 올해도 함께해 줘서.”

“뭘요. 그나저나…….”

알렉스는 주변을 둘러봤다. 잠시 뒤, 그의 표정은 아차! 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두 사람, 놓친 것 같은데요.”

“아.”

* * *

“선배님께서 오신 정도면, 내각의 분위기는 좋지 않나 보군요.”

필즈먼은 직접 찻잔에 차를 따른 뒤 마일즈에게 건네었다. 그러자 마일즈는 그 찻잔을 받아든 뒤,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이번에 프랑크 군 정보망 색출해서 적발해 낸 것 덕분에 어느 정도 시간은 벌었지만, 여전히 대연정 내각, 특히 남부당 인사들이 불만을 표하고 있어.”

그는 차를 한 모금 입에 머금은 뒤, 마일즈를 바라보며 말했다.

“뭘 준비하고 있든, 최대한 빨리 결과를 내는 게 좋을 거다. 내가 막아 줄 수 있는 것도 한계가 있어. 나는 결국 부수상일 뿐이니까.”

“혹시 이번에 색출한 인원들이 남부당 계파 쪽이라 불만이 많은 겁니까?”

“…스스로 말할 수 없겠지만, 아마 그렇겠지.”

“찔리는 놈들이 성낸다더니.”

“몇몇 의원들은 전시 사령관이 기소권을 남발하는 거 아니냐고 하더군. 사실, 자네의 존재 자체를 싫어하는 이들도 많네. 갖가지 트집을 잡으며 전시사령부 수장을 교체해야 한다더군.”

마일즈는 한숨을 쉬며 말을 이어 나갔다.

“대연정을 펼친 이상, 그 말을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야. 아무리 네가 정당한 권한을 정당한 대상에 쓴다고 해도.”

“그린우드 부의장님께서는 어떤 반응이십니까?”

“부의장? 그 양반도 죽을 맛이지. 나보다도 더 많이 싸우고 있는데.”

“그분께 조금만 더 버텨 달라고 하십시오.”

“지금도 한계야, 한계. 이렇게 온 것도 부의장이 나보고 이야기 좀 해 보라고 온 거고.”

그러자 필즈먼은 천천히 차를 홀짝이며 마일즈를 바라봤다. 마일즈는 한숨을 푹 내쉰 뒤, 그에게 질문했다.

“얼마나 버텨 주면 좋겠는데.”

“글쎄요. 상대가 떡밥을 물 때까지?”

마일즈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대체 누굴 낚으려고 그러는 건데? 좀 알려 줄 수는 없는 거냐?”

“죄송합니다, 선배님. 그냥 그린우드 부의장께 이렇게 전달해 주십시오.”

그는 편지를 마일즈에게 건네며 말했다.

“내부의 적을 잡기 위해서는, 이 전쟁을 일찍 끝낼 수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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