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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엑스트라는 생각보다 대단했다-152화 (152/200)

152화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람

“호더빌 주둔 여단… 몇 년 전에 해산된 부대의 장교를 찾고 싶다는 건가?”

“어렵다면 말고.”

알렉스가 다시 한번 피스톨을 꺼내며 베르티에의 미간을 겨누자, 그는 손을 다급히 내저었다.

“…노력해 보도록 하지. 그거면 되나?”

베르티에의 물음에, 알렉스는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그러자 베르티에는 한숨과 함께 알렉스를 바라봤다.

“여기까지 들켰다니, 이제 정보망도 다 뜯겨 나가게 생겼군.”

“너무 티 나게 목재 수입선만 노려서 타격하니 그런 거지요. 누구 아이디어였습니까?”

“누구랄게 있나. 제독들 의견 깡그리 무시할 수 있는 분이 하나 빼고 더 있나.”

자조적인 목소리와 함께, 그는 씁쓸한 표정으로 답했다. 왕권이 강한 프랑크 왕국에서는 그 어떤 명장이라도 왕의 명령을 우선으로 따라야 했다.

아무리 멍청한 짓이라도.

그때, 위에서 기다리고 있던 라이플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뭐 있습니까? 내려갑니다!”

그 말에, 알렉스는 곧바로 답했다.

“이미 튀었다! 놓고 간 거 가지고 올라간다!”

그렇게 말하며 베르티에의 등을 밀자, 그는 발소리를 죽이고 재빠르게 도망쳤다.

* * *

그의 눈앞으로 목검의 둔탁한 끝부분이 다가왔다.

“합!”

“어이쿠.”

얼마 전, 베르티에와의 일을 떠올리던 알렉스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틀어 간신히 피하자, 목검은 알렉스의 머리가 있던 허공만을 느릿하게 스칠 뿐이었다.

앞을 보자,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아델라인이 숨을 몰아쉬며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몇 분 동안 검을 내지르고 휘둘렀지만, 알렉스는 시종일관 여유로운 태도로 자신의 검을 막아 내거나 피하고 있었다.

“하아… 하아… 못 해 먹겠네……!”

아델라인은 목검을 손에서 놓고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러나 앉아 있는 것도 잠시, 아델라인의 몸은 잔디 한 가닥 없는 바닥에 드러누워 버리고 말았다. 버둥거리며 투정 부리고 싶은 욕구가 치밀었지만, 목검을 휘두르느라 지쳐 버린 아델라인의 팔다리는 그녀의 의지대로 따라 주지 않았다.

그러나 곧바로 그녀의 몸이 붕 떠올랐다. 고개를 돌리자, 자신을 안아 들며 미소를 짓는 알렉스가 보였다.

“한 대씩 맞아 주면서 할 걸 그랬나요?”

“…내가 알렉스 아플까 봐 봐준 거란 생각은 안 해요?”

아델라인이 귀여운 허세 가득한 소리를 했지만, 알렉스는 미소를 띤 얼굴로 지그시 그녀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 눈빛에 오히려 더욱 부끄러워진 아델라인은 삐진 척 고개를 홱 돌렸다.

그때, 알렉스가 아델라인에게 말했다.

“잘했어요.”

“마음에도 없는 소리잖아요.”

“아니에요.”

알렉스는 나무 그늘 아래의 푸른 잔디에 그녀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지친 상태에서도 빈틈을 노리고 행동으로 옮기는 거.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그러자 아델라인은 자신의 옆에 앉는 알렉스를 잠깐 눈에 담은 뒤 고개를 돌렸다. 검술 훈련 때문인지, 그녀의 얼굴은 식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불어오는 바람에 잠시 땀을 식힌 아델라인은 알렉스를 보며 물었다.

“무슨 고민 있어요?”

아델라인의 물음에, 알렉스는 고개를 저었다. 고민이 없는 건 아니었으나, 그걸 함부로 밖으로 꺼내 놓기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뭐, 딱히 없어요. 그냥 상부에서 내려오는 임무를 처리하는 게 다죠. 가끔 교외로 파견 가고, 경비대와 훈련도 같이 하고요.”

“위험한 일은 아니죠?”

“그렇게 크게 위험한 일은 없어요. 제국 본토니까요.”

알렉스는 미소와 함께 태연히 거짓말 섞인 대답을 내놓았다. 바로 어제만 해도, 베르티에에게서 탈취한 정보로 프랑크 왕국의 정보기관 안전 가옥을 급습했다. 부상자는 없었으나, 철렁한 순간은 있었다.

그때, 몸을 일으킨 아델라인이 양손으로 알렉스의 뺨을 눌렀다. 순식간에 붕어 입술이 된 알렉스를 마주 보며, 그녀가 입을 열었다.

“거짓말.”

“…….”

“다 티 나요.”

그러자 알렉스가 무어라 말하기 위해 입을 뻐끔거렸다. 하지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어린애도 충분히 간파할 수 있을법한 거짓말들뿐이었기에, 알렉스는 찌그러진 얼굴로 애써 미소를 지어 보일 뿐이었다.

“…가둬 둘 수도 없고 진짜.”

아델라인은 한숨을 쉬며 알렉스의 얼굴에서 손을 뗐다.

“조심해요. 다쳐서 나타나지 말고.”

“알겠어요, 아델라인.”

알렉스가 미소와 함께 답해도, 아델라인의 얼굴에 남은 걱정은 지워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알렉스가 아델라인을 향해 질문했다.

“아델라인은 무슨 걱정 있어요?”

그 질문에, 그녀는 올 게 왔다는 생각을 했다. 이번 사교 시즌에 함께하지 못할 것 같다는 말을 어떻게 전해야 할까.

아델라인은 호흡을 다시 가다듬었다. 가슴이 쿵쾅거리는 소리에 흔들리는 정신을 가다듬으며, 신중히 단어를 골랐다.

“저… 사실은.”

그때, 나이아가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그녀의 손에는 편지가 한 장 들려 있었다.

“공녀님. 마일즈 스틸웰 상무에게서 서신이 왔습니다.”

“무슨 내용이야?”

“직접 읽어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나이아가 편지를 내밀자, 아델라인은 받아서 눈으로 빠르게 읽기 시작했다.

알렉스가 옆에서 훔쳐보려 머리를 살짝 가져갔지만, 아델라인은 몸을 틀어 알렉스를 등진 뒤 계속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잠시 뒤, 아델라인은 편지를 내려놓고 알렉스를 바라봤다.

“알렉스.”

“네?”

“내가 양장점 알아보라고 한 거. 해 뒀어요?”

“알아보기는 했는데… 예약은 아직.”

“다행이네요. 이번 주 주말 시간 비어요?”

“딱히 큰일은 없어요.”

“좋네.”

아델라인은 편지를 반 접어 밑 부분만 보여 주며 알렉스에게 읽어 주었다.

[추신. 실력 있는 부티크, ‘콘월리스 37번지’를 예약해 두었습니다. 제 쪽에서 약속을 깬 것에 대한 사죄의 의미이니, 비용에 대해서는 염려 말고 이번 주말 편하신 시간에 출장 예약을 넣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부티크의 수석 디자이너가 저와 안면이 있는 사이이니, 더욱더 신경 써 주실 것입니다.

- 신의를 담아, 스틸웰 공업의 마일즈 스틸웰 상무가.]

“스틸웰 상무 얼굴을 봐서라도 여기서 맞춰야겠네요.”

“좋아요. 그나저나 앞부분은 무슨 내용이기에…….”

알렉스가 서신으로 손을 뻗자, 아델라인은 급히 나이아에게 서신을 넘긴 뒤 미소와 함께 얼버무리려 시도했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사소한 일을 조율하던 중에 생긴 실수라! 이렇게까지 해 주실 것도 없는데 말이에요! 하핫!”

급하게 얼버무리는 아델라인의 모습에, 알렉스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편지를 건네받은 나이아를 바라봤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일으켜 나이아를 향해 다가갔다.

“무슨 편지니, 나이아?”

그러자 아델라인은 알렉스의 다리를 양팔로 붙잡으며 다급한 목소리로 그녀를 향해 외쳤다.

“도, 도망쳐! 어서!”

“아, 아델라인! 저 넘어져요!”

* * *

탁.

또 한 뭉치의 서류가 묶여 책상 위에 올라갔다. 서류 뭉치를 올려놓은 손이 또 다른 서류를 집어 들려는 찰나, 그 손 앞에 맥주잔이 놓였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마일즈의 말에, 서류와 펜을 쥐고 있던 손은 맥주잔을 잡아들었다. 서늘했다. 안을 들여다보자, 가볍고 맑은 라거가 담겨 있었다.

“내 취향은 에일인데.”

“주는 대로 마셔, 포우스포드. 한 잔만 마시고 관사로 돌아가야 하잖냐.”

“그렇긴 하지…요.”

스워포드는 안경을 벗어 내려놓은 뒤 맥주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묵직한 맛은 없었지만, 하루의 피로를 목구멍 너머로 넘겨 버리기에는 적절했다.

“일 좀 하네? 행정병이었냐?”

“이것저것 다 하지요, 사람이 없으니까.”

앞을 바라보자, 그와 마찬가지로 맥주잔을 들고 볶은 땅콩을 입에 넣는 마일즈가 보였다. 간만에 본 둘째 형이었지만, 어째 달라진 게 없는 모습이었다.

“편지는?”

“보내 놨어. 그나저나 어떻게 알았냐? 아직 정보가 퍼질 단계는 아니었는데?”

“나도 지인이 있으니까.”

스워포드는 볶은 땅콩을 서너 알 집어 입에 넣은 뒤 맥주를 들이켰다. 아직 잔은 반 정도 남아 있었다.

“솔직히, 중대장님 연애 사업이 잘됐으면 하는 생각도 있고. 나이 차이도 적잖게 나는데 같이 붙어 있으면 그림이 나오나.”

“그러냐. 하긴…….”

마일즈는 피식 미소를 지으며 스워포드의 말에 맞장구를 쳐줬다.

“둘이 뻔히 좋은 사이인 거 아는데 끼어들기도 좀 그렇긴 하지. 아무튼, 오늘 도와줘서 고맙다. 회사 사람 쓰기는 조금 그랬는데, 덕분에 어느 정도 정리는 해 둘 수 있었네.”

마일즈는 책상 위에 쌓인 자료 묶음들을 손으로 훑어 내렸다. 쌓고 또 쌓으면 5피트는 족히 넘을 것 같은 양의 자료.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자는 생각에 부른 동생이었지만, 생각보다 훨씬 일을 잘해 줬다.

“덕분에 이즐링턴에만 집중할 수 있겠어. 고맙다, 포우스포드.”

“뭘 그렇게 띄워 준대. 원하는 거 있어요?”

스워포드의 예리한 물음에, 마일즈는 소파에 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앉아 봐라.”

그 말에, 스워포드는 그의 맞은편에 앉아 마일즈를 바라봤다. 그사이 맥주로 목을 적신 마일즈는 스워포드를 향해 입을 열었다.

“같이 일 한번 해 보자. 머리도 돌아가고, 배워 둔 것도 있으니까 감만 익히면 잘할 거다.”

“무슨. 지금 전쟁 중인 거 알면서. 전역하고 싶어도 못하는 신세인 것도 알잖아요.”

“당연히 전쟁 끝나고. 뭐, 지금 당장 선택하라는 것도 아니니까.”

마일즈는 땅콩을 입에 넣고 우물거린 뒤, 그를 향해 말했다.

“아버지께서도 걱정하신다.”

“…아직 딴생각할 상황도 아닌데 무슨. 바쁩니다, 파견 중대는.”

“알지, 모르는 건 아닌데. 일단 고민해 보라고.”

“네네, 알겠어요.”

대화가 끝나자마자, 두 사람은 동시에 맥주잔을 들이켰다. 맥주를 한 모금 넘기고 땅콩 서너 알을 입에 넣고, 땅콩의 짠 기운을 맥주로 다시 넘기고 나자, 스워포드의 입이 열렸다.

“그, 물어볼 게 하나 있는데.”

“뭔데.”

그러자 그는 잠시 우물쭈물하다가 맥주잔을 비우고는 잔을 내려놓으며 질문을 토해 냈다.

“착해. 다정하고 유능하기까지 해. 그러면 객관적으로 놓치면 안 되는 사람이겠지?”

그러자 마일즈는 흥미롭다는 듯 턱을 매만지며 땅콩을 집어 들었다.

“더 말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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