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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엑스트라는 생각보다 대단했다-149화 (149/200)

149화 원대 복귀 명령

“지원대 임무도 이제 끝났구만.”

“끝나기야 진작에 끝났죠. 벌써 5월 둘째 주 아닙니까.”

스워포드는 집사에게 인계할 서류들을 노끈으로 묶으며 알렉스에게 말했다.

“그나저나 원대 복귀라니, 뭘 시키실지 벌써부터 두려운걸요.”

“그러게 말이다.”

알렉스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미 수도 남부는 불과 1년 전과 비교해도 확연히 달라진 상황이었다. 범죄의 온상은 이제 희망의 온실이 되었고, 그만큼 범죄는 눈에 띄게 줄었다.

그러니 제3 수도경비대를 도왔던 기존의 업무도 이제 파견 중대가 필수적이지 않은 상황. 그러나 여단은 그들을 수도로 복귀시키는 명령을 내렸다.

수도로 복귀해 파견 중대 본대와 함께 전선으로 향하는 게 아닌, 수도로 복귀해 파견 중대 본대와 함께 황궁에서 대기하는 명령.

“개인적으로는 말입니다,”

스워포드는 묶어 둔 서류 더미 위에 털썩 앉으며 알렉스에게 말했다.

“지금 태풍 한가운데에 들어앉아 있는 것 같습니다.”

“한 따까리 더 해야 할 것 같다고?”

스워포드는 한숨을 푹 내쉬며 알렉스에게 신문을 건넸다. 이틀 전 수도에서 발행된 신문의 2면 기사를 보자, 알렉스의 눈이 커졌다.

“…친위대가 후방으로 돌려졌다고.”

“남부당에 호의적인 신문에서는 통상적인 교대일 뿐이라고 하지만, 친위대의 계속된 실책이 친위대를 전선에서 배제하게 했다는 게 주류 의견입니다.”

스워포드의 말에, 알렉스는 한숨을 쉬었다.

“코너에 몰린 황후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잘 지켜봐라. 뭐 그런 건가?”

“아직은 모르는 일이죠. 어떻게 될지. 하지만 이거 하나만은 확실합니다.”

아델라인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아무리 제 잘난 맛에 살던 황실도, 궁지에 몰리면 뒤가 더러운 놈들과 손을 잡더라고…요.”

뒤늦게 아델라인을 바라보며 말끝을 흐린 스워포드. 아델라인은 문을 닫고 들어와, 스워포드를 향해 말했다.

“피오나 루멘시아, 말이지.”

“…….”

스워포드가 알렉스를 바라보며 눈빛으로 묻자, 그는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황후는 아군을 많이 잃었습니다. 남부 귀족들은 황후의 권세에 의심을 품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침묵을 지키던 대표적인 남부당 소장파, 피츠허버트 백작은 드라무스 후작 계파의 당 대표 연임을 막기 위해 당 대표 경선에 출마했지요.”

그는 한숨을 푹 내쉬며 신문을 내려다봤다. 신문의 한 귀퉁이에는 짧은 단신이 적혀 있었다.

[루멘시아 백작가, 황후궁 증축 사업 수주]

“이전처럼 주변에 사람이 많은 때가 아니란 말이죠. 이럴 때 내미는 손은, 아무리 더러워도 한 번쯤 간을 보기 마련입니다.”

스워포드의 말에, 아델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해 둘게요, 고마워요.”

“사견일 뿐입니다. 저는 자리를 비켜 드리죠.”

그렇게 말하며, 스워포드는 벽에 기대어 놓았던 자신의 배낭과 장비를 어깨에 멨다.

“식당에서 밥 먹고 가요. 떠나기 전 마지막 식사라 힘을 좀 썼어요.”

아델라인의 말에, 스워포드는 짐을 내려놓고 방을 나섰다. 그가 달칵, 소리를 내며 문을 닫자, 아델라인은 비로소 알렉스의 손을 잡았다.

“…괜찮겠죠?”

“정보국 말로는요.”

알렉스는 애써 아델라인을 안심시키려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자 아델라인은 신문을 쥔 알렉스의 손을 이끌어 방을 나섰다.

“밥 먹고 가요. 라이플맨들 간다고 요리사가 힘 좀 썼더라.”

아델라인의 말에, 알렉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대로, 식당으로 향하자 갖가지 요리들이 식탁에 올라 있었다. 두 사람은 자리에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저도 곧 올라가요, 사교 시즌에 활동하려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하니까.”

“이즐링턴은요?”

“경영 대리인 선정해서 보내기로 했어요. 공작령하고 붙어 있는 게 장점이네요.”

“다행이네요, 하긴 청사진은 잡혀 있으니까.”

알렉스는 손을 멈추고 아델라인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벌써. 벌써 1년이 되어 가고 있었다. 아델라인과 만나, 생각지도 못했던 길을 걸어온 게 벌써 1년이었다.

“이번 사교 시즌에서 생각해 둔 파트너는 있나요?”

“있죠, 당연히.”

아델라인은 해맑게 웃으며 답했다. 그러자 당황한 알렉스는 어깨를 잠깐 움찔했다가 태연하게 음식을 나이프로 자르며 물었다.

“그래요? 빠르네요.”

“뭐… 알렉스가 바쁠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미리 추려 두고 있어요.”

아델라인은 그렇게 말하며 알렉스를 바라봤다.

“잘했죠?”

해맑게 웃는 아델라인의 모습에, 알렉스는 미소를 지으면서도 서운한 감정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래, 그때는 서로 주고받을 게 있었으니 파트너를 했었던 거지.

지금 그녀는 한 지역의 영주이자, 공작가의 유일한 적통이다. 그녀가 연회에서 ‘파트너’로서 서 주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그녀에게 많은 것을 가져다줄 것이다.

아군이 필요하고 힘이 필요한 아델라인에게는 사교 시즌이라는 기회를 놓칠 수는 없을 터.

“…잘했어요.”

알렉스가 애써 미소를 유지하며 말하자, 아델라인은 식기를 내려놓고 알렉스를 바라봤다.

“누구를 골랐는지도 모르고?”

“아델라인이라면 신중히 잘 골랐겠지요. 당연히.”

“진짜 안 물어볼 거예요?”

아델라인이 해맑게 미소 지으며 묻자, 알렉스는 그녀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반쯤 식은 요리를 포크로 찍어 입에 넣었다. 누굴까, 궁금하기는 했다. 그러나 물어보기도 참 그랬다.

“후회할 텐데요, 알렉스.”

아델라인의 말에, 알렉스는 차마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아델라인을 바라봤다.

“누군데요?”

그러자 아델라인은 능글맞게 미소 지으며 지그시 알렉스를 바라봤다. 잠시 그 시선의 의미를 읽지 못하던 알렉스는 뒤늦게 눈을 번뜩 떴다.

“…….”

“많이 바쁘면 어쩔 수 없겠지만요.”

“다른 사람을 파트너로 선택할 거로 생각했는데요.”

“왜요?”

“왜냐하면… 아델라인에게 오는 서신이 적지 않잖아요. 그중에는 매력적인 제안들도 많을 거고.”

알렉스의 말에, 아델라인은 한숨을 쉬었다.

“누가 거기에 답장할 거래요?”

“…….”

아델라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알렉스에게 다가가며 손가락을 하나씩 꼽았다.

“알렉스만큼 매력적인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 사람들이 알렉스보다 무공을 더 세웠대요, 더 빵빵한 후견인이 있대요, 더 똑똑하대요.”

아델라인은 알렉스의 목을 팔로 끌어안으며 그를 향해 속삭였다.

“아니면 더 잘생겼대요.”

그러자 알렉스의 귀가 화악 붉어졌다. 그 모습을 본 아델라인은 해맑게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

“얼굴 빨개지는 거 오랜만에 보네. 알렉스만 이런 거 하라는 법은 없잖아요?”

그러자 알렉스는 차가운 손으로 얼굴을 덮어 애써 열을 식혔다. 그 모습을 보며 웃음을 터뜨린 아델라인은 맑게 웃으며 말했다.

“먼저 가서 같이 옷 맞출 양장점이나 알아보면서 수도에서 기다리세요, 황후가 시비 걸면 제게 편지 쓰고.”

“뭐 공작가에도 사병 집단 같은 거 있어요? 소설 같은 거 보면 비밀 기사단 하나씩은 가지고 있던데.”

“뒷담화는 들어드린다고요. 뭘 바래요?”

당연하다는 듯 알렉스의 기대를 저버리는 아델라인의 말에, 알렉스는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맑디맑은 웃음이었다.

그러다 시계를 흘끗 본 아델라인은 급하게 알렉스의 손을 잡아 식당에서 끌고 나왔다. 약간 조급해 보이는 아델라인의 모습에, 알렉스는 순순히 그녀의 손에 끌려갔다.

두 사람이 복도로 나오자, 스워포드가 양손에 배낭을 든 채 나이아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게 보였다.

혹여 해맑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두 사람을 방해할까, 알렉스와 아델라인은 뒷문으로 저택을 나와 걸어가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한적한 저택 앞, 그러나 오늘만은 달랐다.

사람들이, 저택 앞에 모여 있었다. 그들은 알렉스를 보자 울음을 터뜨렸다. 떠나는 발걸음을 붙들고 싶으나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사람들은 물기 어린 눈으로 알렉스를 바라보며 울 뿐이었다.

정문 앞에는 헌병대가 도열해 길을 트고 있었다. 등을 살짝 떠민 아델라인의 손길에 못 이겨 알렉스가 그 앞으로 다가가자, 헌병대를 이끌고 있던 장교들이 몇 사람들과 함께 알렉스에게 다가왔다. 그 무리를 이끌고 있는 얼굴을 보자, 알렉스가 손을 들어 경례했다.

“터너 중령님. 어쩐 일로.”

“어쩐 일이기는, 가는 사람 배웅은 해야지. 길도 터 줄 겸 해서.”

그는 알렉스의 손을 두 손으로 잡아서 내리게 한 뒤, 아쉬운 듯 물었다.

“가는가?”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겠지. 그래. 그럼…….”

터너는 알렉스에게 손을 내밀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많은 것을 배웠네. 고맙네. 무운을 빌지.”

그러자 알렉스는 터너의 손을 잡았다. 그의 손을 굳게 잡으며, 알렉스는 한 가지 부탁을 했다.

“막사 뒤편의 비석, 가끔 생각나실 때만이라도 한 번씩 부탁드립니다.”

“주인 있는 둥지를 빌려 쓰는 신세에 뭔들 못할까. 자네 선임들은 내가 챙기겠네. 걱정 말게나.”

알렉스는 안심한 듯 그제야 터너의 손을 놓았다. 그 옆으로 시선을 돌리자, 장로가 지팡이를 짚은 채 알렉스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숲도 사라질 마당에 염치없지만… 이곳을 잘 부탁드립니다.”

알렉스가 장로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장로는 그의 어깨를 두드린 뒤 그를 일으켜 세웠다.

“우리 터전, 우리 이웃은 우리가 지키는 거지. 새삼 무얼 부탁하나, 젊은이. 그래도…….”

장로는 주름진 얼굴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

“어딜 가든 혼자 다니지는 말어, 또 보쌈당할라.”

장로의 농에, 알렉스는 옅은 웃음을 뱉었다. 잠시 뒤, 라이플맨들이 알렉스에게 다가왔다.

“보고.”

알렉스가 묻자, 밀든 하사가 그에게 가방과 장비를 내밀며 답했다.

“총원 7명, 열외 없습니다.”

“그래, 그래… 그러면.”

알렉스는 가방에 메어 두었던 모자를 고쳐 쓴 뒤, 배낭을 메고 아델라인을 바라봤다.

그녀는 알렉스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손에 들려 있는 손수건은 약간 젖어 있었다. 아델라인은 말없이,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만날 것이라는 걸 알기에, 작별의 인사와 같은 말은 필요 없었다.

그런 그녀의 속마음을 모를 리 없는데도, 다시 몸을 돌려 앞을 바라본 알렉스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다치지 말고. 조심해서 올라가요.”

아델라인의 물기 가득한 목소리를 듣자, 알렉스는 고개를 푹 숙였다. 간신히 내딛으려던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아주 잠깐 심호흡을 한 그는 모자를 한번 벗어 드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지금 입을 열면, 목젖까지 차오른 감정이 아델라인에게 전해질까 봐. 간신히 참고 있을 아델라인의 눈물샘을 터뜨릴까 봐. 그는 태연하게 모자를 쓰며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도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 알렉스는 처음 걸음마를 떼는 아기처럼 힘겹게 앞으로 발을 내디디며 대원들에게 말했다.

“가자.”

그 말과 함께, 대원들은 대열을 갖춘 채 그의 뒤를 따라 길을 나섰다.

아델라인의 발은, 그들이 나무에 가려 사라진 뒤에도 한참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떨어졌다.

* * *

다급한 발소리가 고요한 황궁의 복도를 울렸다. 시녀 한 명만을 데리고 급히 움직이는 황후의 모습은, 다른 사람 앞에서 보여 줄 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자신을 바라보는 시종들의 시선을 신경 쓸 정신도 없이, 그녀는 급히 황제가 있는 서재로 향했다. 그러나 그 길 앞을 막는 건…….

“황후 마마를 뵙습니다.”

“아, 풀턴 경.”

마치 기다리고 있던 듯, 모퉁이에서 나와 자신의 앞에 서서 천연덕스럽게 고개를 숙이는 이 능구렁이.

“황제 폐하께서는 안에 계신가.”

“폐하께서는 휴식을 취하고 계십니다.”

“비켜라, 내 긴히 고할 말이 있으니.”

“폐하께서 휴식을 갖겠다, 말씀하셨습니다.”

안경 너머로 자신의 눈을 응시하는 풀턴의 눈. 그 눈에는 자신을 향한 일말의 두려움도 깃들어 있지 않았다. 이자만 그런 것이 아니다. 그동안 그래도 많은 사람을 요직에 심어 뒀다고 생각했건만, 황제의 주변만큼은 사람을 심을 수 없었다.

공작이 심어 둔 사람들이 아직도 남아,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 생각을 하자, 공작의 목소리가 황후의 귓가에 어른거렸다.

‘로피츠 공작가의 힘은, 지금까지 내보인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직접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이익! 비키라 했거늘!”

황후의 손이 거칠게 풀턴의 몸을 밀쳤다. 그러자 그의 몸이 위태하게 밀리다가 두어 걸음 물러나며 균형을 잡았다. 잠시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가 고개를 살짝 들어 황후를 마주 봤다. 그 눈빛에, 황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무기질적인 눈.

색은 다를지언정, 궁내부를 이끌던 공작의 눈과 비슷한 빛을 띠고 있었다. 수 초간 눈을 마주하고 있던 그는, 고개를 숙인 뒤 입을 열었다.

“폐하의 의중을 물어보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풀턴이 안으로 들어가자, 황후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문제가 생겨도 단단히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해서 공작의 눈빛과 목소리가 황후의 머릿속을 채우기 시작했다. 그 목소리에 귀가 막히고, 그 눈빛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때, 풀턴이 나와 황후에게 말했다.

“황제 폐하께서 들어오라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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