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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엑스트라는 생각보다 대단했다-146화 (146/200)

146화 누군가의 불운은 누군가의 행운

남부의 5월 첫째 주는 잡음이 가득했지만, 이즐링턴 만은 평온함이 이어졌다.

고향을 떠난 이들은 이즐링턴에 터를 잡고 각자의 생업을 가꾸기 시작했고, 자경단은 그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평온한 근무 시간을 보냈다.

알렉스와 지원단도 훈련 교관들을 돕거나 아델라인에게 검을 가르치는 등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지만, 그들의 고민은 아직 남아 있었다.

“이즐링턴의 재정 독립은 어떻게 이뤄 내죠.”

“그걸 생각하라고 널 부른 건데.”

“제가 어떻게 압니까, 그걸. 제가 지금까지 회사를 다닌 것도 아니고.”

알렉스의 말을 단호하게 쳐 낸 스워포드는 한숨을 푹푹 쉬며 드러누웠다.

“이즐링턴 숲을 가로지르는 도로를 뚫으면 교통 면에서는 다른 영지보다 유리하겠지만, 그게 답니다. 사업을 키울 다른 유인 요소가 없어요.”

그래도 어깨너머로 본 게 있다고, 스워포드의 책상 위에는 여러 자료를 정리한 종이들과 다양한 분석법으로 추려낸 선택지들이 놓여 있었다.

“이건 뭐냐?”

“2안 비교 순위 결정법으로 추려낸 사업 종류 후보군이요. 근데 생각해 보면 다 재정 자립을 이뤄 내기에는 부족한 수단이어서, 의미가 없어요.”

스워포드의 말에, 알렉스는 그가 쓴 서류를 들고 훑어 내렸다. 현실성 있는 아이디어는 모두 긁어모은 듯, 기다랗게 순위가 늘어져 있었다.

그때, 알렉스의 머릿속에서 의문이 피어올랐다.

“벌목업이 없네?”

“벌목업은 고려 대상에서 일부러 제외했습니다.”

“왜?”

“다음 장 보십쇼.”

알렉스가 다음 장을 펼치자, 고려 대상에서 배제한 업종에 대한 이유가 간단하게 적혀 있었다. 광업, 목축업, 농업, 중공업 등등. 그 사이에는 벌목업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즐링턴의 유사시 방어 전략에 있어 숲이 가지는 가치는 벌목을 통해 벌어들일 수 있는 예상 수입을 상회한다. 또한, 신대륙 산 목재와의 가격 경쟁력이 미비하고, 면적의 한계로 인해 장기적인 수입을 기대할 수 없다…….”

간단하지만, 명료한 이유였다.

“일리 있긴 하네. 그래도 수도에서 가까우니까 운송 면에서는 더 유리한 거 아니야?”

“목재를 수도에서만 씁니까. 목재의 가장 큰 수요처는 북부의 공업 도시와 조선소들인데, 그런 곳들은 안필드나 트레포드에서 하역한 목재를 사는 게 더 편하죠.”

스워포드는 그렇게 말하며 침대에 드러누워 버렸다. 잠시 앓는 소리를 내던 그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수도에서는 뭘 하고 있으려나.”

“연합 훈련 중이란다, 제3 수도경비대하고. 보내 주랴?”

“…가망 있는 업종이나 다시 찾아보겠습니다.”

아무리 서류 일이 힘들어도 몸 움직이는 것보다는 나은지라, 스워포드는 몸을 일으켜 책상 앞에 앉았다. 그때, 그들 곁으로 시녀가 다가왔다.

“대위님 앞으로 온 우편입니다.”

큼지막한 서류 봉투를 받아들고 발신인 항목을 보자, 노먼의 이름과 파견 중대 관사의 주소가 적혀 있었다. 봉투를 전한 시녀가 돌아가자, 알렉스는 서류 봉투를 뜯어 뒤집었다.

우르르.

몇 개의 서류 묶음과 네 개의 편지 봉투가 책상 위로 떨어졌다. 그 내용물을 살피던 스워포드는 그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포우스포드 스틸웰]

알렉스는 노먼이 보낸 편지와 보고서를 챙기며 스워포드를 바라봤다.

“노먼 중위한테 니 본명 알려 줬었냐?”

“아니요?”

“근데 어떻게 그 편지가 이쪽으로 온 거냐?”

“애너그램 정도는 눈치채셨나 보지요. 애너그램이라 해 봤자 뒤에 붙는 포드, 네 글자는 똑같잖습니까.”

스워포드는 그렇게 말하며 편지를 뜯었다.

“그나저나 평소에는 편지 한 장 안 보내던 작은 형님이 웬일로 편지를 보내셨을까… 음?”

스워포드는 편지를 보더니,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복도로 나갔다.

“밀든 하사님, 혹시 최근 일자 신문 좀 찾아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예, 신문사 상관 없이요. 네네. 네. 네.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스워포드는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꾹꾹 눌렀다. 그 모습을 본 알렉스는 스워포드를 향해 물었다.

“무슨 일 있냐?”

“직접 보십쇼.”

스워포드가 편지를 내밀자, 알렉스는 그걸 받아 들어 읽어 내렸다. 어느 정도 내용을 확인한 그는 옅은 한숨을 내쉬며 스워포드에게 말했다.

“불운이 겹쳤구만. 꽤 심각한 일이야.”

어느새 신문을 받아 빠르게 훑어본 그는 이마를 손으로 짚으며 한숨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시간을 다투는 일이기도 합니다. 석탄의 대두 이후로 목재 수요가 좀 줄었다고 해도, 여전히 전체 산업의 4할은 목재가 없으면 돌아가지 않습니다.”

“제국의 삼림은 배 짓고 땔감 쓰느라고 거의 다 초토화되었었지. 신대륙의 목재가 절실한 상황인데 말이야…….”

“원인은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히는군요.”

스워포드는 그렇게 말하며 한 기사를 짚었다.

“프랑크 해군 고속함 전단. 그중에서도 기함격인 FNS 에마뉘엘 그루시가 신대륙 항로를 집중적으로 공략하고 있습니다. 우연의 일치일 가능성이 크지만, 목재 수송선들이 연이어 크게 당한 모양입니다.”

알렉스는 그가 찾아낸 며칠 전 신문의 기사를 읽어 내렸다. 에마뉘엘 그루시 함에 당한 상선들의 목록이었다.

“신대륙에서 다시 목재를 수송하기까지 얼마나 걸릴까.”

“대략 3개월 정도? 그 3개월이 짧지가 않아서 문제이지요. 3개월이면 사업체 몇 개가 연쇄 부도나기 충분한 시간입니다.”

“원양에 나가 있는 해군을 재배치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 음.”

알렉스는 눈을 빛내다가, 스워포드에게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괜찮겠냐?”

“뭘 말입니까?”

“이 일로 이득을 얻어도.”

그러자 스워포드는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아버지께서는 항상 저희에게 말씀하셨죠. 상인으로서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 건 신뢰라고. 항상 그리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편지를 받아 들어 책상 위에 놓은 뒤, 말을 마무리 지었다.

“뭐, 그리고 저는 지금 라이플여단 소속 아닙니까. 포우스포드 스틸웰이 아니라 스워포드고.”

그러자 알렉스는 고개를 끄덕인 뒤 편지와 신문을 들고 방을 나섰다. 방문을 닫기 전, 알렉스는 스워포드를 향해 입을 열었다.

“고맙다.”

“셈퍼 피델리스, 언제나 충성 아닙니까. 가 보십쇼.”

알렉스는 스워포드의 말을 들은 뒤 계단을 올라갔다. 마침 차를 마시고 있었던 듯, 아델라인의 서재로 향하자 홍차의 향기가 느껴졌다.

“아, 알렉스! 부르려고 했는데 마침 잘됐네요. 차 마실래요?”

아델라인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인 알렉스는 그녀의 옆자리에 앉아 찻잔을 들었다.

“차 맛 좋네요. 찻잎 바꿨어요?”

“네, 본가에서 가지고 온 게 다 떨어져서, 이참에 한번 바꿔 봤어요. 그나저나 그 편지는 뭐에요?”

아델라인의 물음에, 알렉스는 편지를 건네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그 편지를 전해 받은 아델라인은 찬찬히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어느 정도 내용을 이해한 아델라인은 알렉스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하반기 공사가 늦어지면 안 되는데… 구호소 운영도 더 오래 끌기는 힘들다는 의견이 많아서…….”

한숨을 내쉰 아델라인은 알렉스를 바라보며 질문을 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건, 직접 생각해 보셔야지요, 아델라인.”

알렉스는 차를 홀짝이며 아델라인에게 말했다.

“어떻게 하고 싶은데요?”

그러자 아델라인은 고민하는 표정으로 찻잔을 들었다.

“사실… 이즐링턴의 재정 상황이 양호하다고 말하기는 힘들고. 풀턴 경이 주신 수표책에만 의존할 수는 없으니, 이런 기회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는 걸 모르지는 않아요.”

찻잔을 입에 가져가 살짝 기울이며 입술을 축인 그녀는 계속해서 알렉스를 바라보며 자신의 고민을 털어 냈다.

“그리고 이즐링턴의 숲이 사람들을 보호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도 알고요. 하지만…….”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도움을 주지 않으면 올해까지 완공하기로 한 수도 남부의 주택단지 건설 일정이 밀려 버릴 수 있는데… 그러면 구호소도 예정 계획보다 더 오래 운영해야 해요.”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풀어놓은 아델라인은 알렉스를 바라봤다. 고민 가득한 모습도 귀엽고 보기 좋았지만, 알렉스는 애써 시선을 돌렸다.

“…절 쳐다봐도 답은 안 나와요, 아델라인.”

그러나 아델라인은 간절한 눈빛으로 그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 시선이 알렉스를 쿡쿡 찔러 오자, 그는 할 수 없이 한숨을 내쉬며 아델라인을 마주 봤다.

“좋아요. 그러면.”

그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아델라인에게 말했다.

“침실을 한번 잘 둘러보세요. 특히 침대맡.”

* * *

그린우드의 손에 성냥이 한 개비 들렸다. 그는 담뱃갑 옆면의 사포에 성냥을 그었다.

착, 착.

성냥에 불이 붙었다. 그 불은, 이내 담뱃대에 다져 넣은 담뱃잎에 닿았다. 불씨는 순식간에 옮겨붙으며, 담뱃대에 닿았다.

숨을 들이쉬자, 어둠 속에서 담뱃대가 발갛게 빛났다. 아주 찰나의 차이를 두고, 입 안이 뜨거운 연기로 채워졌다.

담뱃대를 입에서 뗐다. 잠시 입 안에 머금은 연기를 맛본 다음, 천천히 내뱉었다.

내뱉으며, 생각을 덜어 내고 덜어 내어 본질만을 남겼다.

목재 부족.

이미 시장은 요동치고 있다. 북부에서는 창고에 남은 목재를 구하기 위해 기업들이 돈을 쏟아붓고 있으며, 목재를 중개하던 거래소 서너 군데는 자신들이 발행한 옵션 하나 책임지지 못해 부도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그 거래소 중 하나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제국의 경제는 큰 타격을 입을 것이다. 전쟁을 유지하는 가장 큰 힘인 경제가 무너지면, 그래도 조금씩 승기를 잡아 가고 있는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건 꿈꿀 수도 없을 것이다.

거기다가 남부 영지군 해산 사태를 통해 자유당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대연정 내각도, 전통적인 지지층인 북부 지역에서 민심이 이반 되면 주도권은 자연히 남부당으로 향할 것이다.

그렇게 기껏 덜어 낸 게 무색하게 생각을 키워 나가던 찰나,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같이 좀 피우지, 부의장.”

“…의장님.”

뒤를 돌아보자, 여송연을 입에 문 공작이 발코니의 문을 열고 들어오고 있었다. 그러자 그린우드는 넣어 두었던 성냥갑을 다시 꺼냈다.

그가 성냥을 그어 건네주자, 공작은 그 불에 여송연을 가져가 불을 붙였다.

잠시 여송연을 물고 있던 그는, 담배 연기를 흘리며 그린우드에게 말했다.

“목재 부족 대책 회의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좋지는 않습니다. 목재 부문의 신대륙 의존도는 이전부터 높아 있어서, 대응책을 강구하기 쉽지 않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상황을 연착륙시키는 방법을 찾는 중입니다.”

그러자 공작은 여송연을 다시 입에 물며 말했다.

“그 문제의 원인을 알고 있네.”

“…어떻게 말입니까.”

“물어볼 건 그게 아닐 텐데.”

공작이 그를 바라보자, 그린우드는 질문을 고쳤다.

“무엇을 원하십니까.”

“아군.”

공작은 입술 사이로 담배 연기를 흘리며 그에게 답했다.

“딱 한 번, 조건 없이 아델라인의 아군이 되어 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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