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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엑스트라는 생각보다 대단했다-139화 (139/200)

139화 눈앞에 닥친 과제

“…긴장한 것 치고는 뭔가 싱겁게 끝났네요.”

한참을 긴장한 것에 비해 수여식은 황제의 집무실 안에서 빠르게 끝났다. 황제는 의례적인 몇 마디만 할 뿐이었고, 다른 절차도 빠르게 지나갔다. 단 십여 분만에, 아델라인은 ‘이즐링턴의 여남작’ 이 되었다.

수여식이 끝나자, 알렉스와 아델라인 그리고 나이아는 풀턴에 의해 옆방으로 안내되었다. 집무실 옆에는 휴게실인듯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알렉스를 마지막으로 문이 닫히자, 내부 공기의 흐름이 사뭇 달라졌다.

창문은 열려 있었으나 새소리가 들려오지 않았고, 산들바람도 방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공기의 순환이 멈춘 듯했다. 알렉스가 그걸 느끼고 살짝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자, 풀턴이 그를 향해 말했다.

“마법입니다. 방음이지요.”

그의 말에, 알렉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세 사람에게 자리를 권하며 입을 열었다.

“어제에 이어서 이야기를 해야 하겠지요.”

풀턴의 말에, 알렉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되물었다.

“그래야지요. 그래서, 언론 보도 자료는 어떻게 나갈 예정입니까?”

“남부 대화재 사태에서 가장 먼저 나서서 이재민들을 돕고, 지금도 꾸준히 지원을 아끼지 않는 로피츠 여사의 공적을 인정해 이즐링턴의 남작 작위를 내렸다. 정도로 마무리 지었습니다. 서던 퓨질리어 연대의 부활에 대해서는 확정된 것이 없다, 정도로 마무리 지었고.”

“다행이군요. 그나저나.”

알렉스는 풀턴을 향해 또 다른 질문을 했다.

“정보 누출이 어떤 경로로 이뤄졌는지 파악은 되셨습니까?”

“…궁내부의 황후 측 인사를 통해 누출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공개적으로 추궁은 할 수 없지만요.”

“뭐, 원래도 궁내부의 상당수 인원이 황후 측 인사 아니었습니까. 예상했던 일입니다. 그나저나…….”

알렉스는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며 중얼거렸다.

“분명 말이 나올 겁니다. 전쟁 중인데, 본국에서는 후방에서 빈민들에게 수프나 나눠 주던 귀족 영애가 작위를 얻었다고 하면 결코 좋은 시선으로 보지는 않겠지요. 그걸 노리고 일부러 호외를 뿌렸을 가능성이 크고.”

“…….”

“아시리라 생각하지만, 확실히 시선을 돌릴만한 건이 필요합니다. 로피츠 여사와 이즐링턴에서 시선을 돌려내야, 행동할 여지가 생기겠지요.”

“그 부분에 대해선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이쪽에서 준비를 마쳐 두었으니. 다른 궁금하신 점은 있으십니까?”

그 물음에, 나이아의 손이 살짝 들렸다.

“질문 하나 해도 되나요?”

풀턴이 고개를 끄덕이자, 나이아는 조심스럽게 풀턴에게 질문했다.

“이즐링턴에 가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요?”

“궁내부 관료로서 가장 걱정했던 것은 황실 직할령인 이즐링턴에 귀족들이 침범하는 일이었습니다. 황실의 권위에 관한 일이니까요.”

“…그러면 지금은.”

아델라인이 무언가를 깨달은 듯 풀턴을 바라보자, 그도 찔리는 게 있었는지 순순히 말을 계속 이어 나갔다.

“황실의 문제를 여사… 아니, 여남작께 넘겨 버렸다고 생각하셔도 할 말이 없는 상황입니다. 이즐링턴의 상황을 파악했을 때는 이미 사태가 한참 진행되어 있어서 다른 방법을 찾기 위한 시도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

“궁내부를 대신해 유감을 표합니다.”

아델라인을 비롯한 세 사람의 입에서 일순간 ‘유감을 표하는 게 다냐……!’ 라는 말이 튀어나올 뻔했다. 하지만 그것이 지금 당장 그가 할 수 있는 최대의 표현이라는 걸 모를 리 없었다.

아델라인은 미간을 손가락으로 천천히, 꾹꾹 눌렀다. 그사이,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저번에 이즐링턴을 방문할 일이 있었습니다.”

“…….”

“사람이 없더군요. 있는 것이라고는 다 무너져가는 폐가와 방치되어 있는 막사, 그리고 때 묻은 전사자들의 비석뿐이었습니다.”

아델라인은 그때 보았던 것들을 천천히 풀어냈다.

“이즐링턴으로 몸을 피한 영지민들이 그걸 모르지는 않았을 겁니다. 이즐링턴의 들짐승들도, 그리고 이즐링턴을 둘러싼 소문들도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도 이즐링턴으로 몸을 피했다는 건… 그만큼 절박해서였겠지요.”

“…필요한 것이 있다면 상의를 거친 뒤에…….”

“지금, 여기서 약조 받고 싶습니다.”

아델라인이 단호한 목소리로 풀턴의 말을 끊었다.

“애매모호한 말 대신, 문서로 적힌 약조를 받고 싶습니다.”

“…….”

아델라인의 말에, 풀턴은 턱을 잡고 고민에 빠졌다. 어디까지 내줄 수 있을까 고민하는 듯, 그의 눈에는 수많은 계산이 스치고 지나갔다.

“황실에서는, 특히 황제 폐하께서는 그 어떤 도움도 드릴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아시겠지요.”

“누군가를 편애하는 모양새가 되면 안 되겠지요. 이해는 하지만, 마찬가지로 내각의 지원을 받기도 힘든 상황입니다.”

아델라인의 말에, 풀턴은 다시 한번 고민에 빠졌다. 맞는 말이었다. 내각은 전쟁에 많은 것을 쏟아붓고 있었다. 우스갯소리로 전쟁은 국가 간의 연례행사라지만, 소홀히 하기에는 많은 것이 걸려 있었다.

그렇기에 아델라인이 지원을 청한다고 한들, 신경 쓸 이유도 여유도 없을 것이었다. 그렇다고 공작가의 재산을 털어 지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미 공작가는 적지 않은 유동 자금을 전시 사령부 이름으로 발행된 전쟁 채권을 매입하는데 투자했다. 고정 지출을 생각하면, 오히려 평소보다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때였다.

그리고 풀턴은, 이런 사정을 너무나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마치 체스를 두듯 장고를 이어 나간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아델라인을 향해 말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 말을 남긴 채, 풀턴은 방을 나섰다. 그러자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오고,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비로소 공기가 순환되자, 아델라인은 자신도 모르게 몸에 들어가 있던 힘을 슬쩍 풀고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잘하던데요?”

알렉스의 말에, 아델라인은 한숨을 푸욱 내쉬며 알렉스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그런가요… 다행이네요.”

“뭐, 우리 쪽에 명분이 있기는 했지만… 잘 써먹었어요.”

“고마워요.”

아델라인은 알렉스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풀턴이 다시 돌아오자 아델라인은 원래 자세로 돌아갔다.

자리에 앉은 풀턴은 아델라인에게 수표책 하나를 건넸다. 제국 중앙은행의 수표책에는 낯선 이름이 적혀 있었다.

“제인 포스터. 이 사람은 누구인가요?”

아델라인의 질문에도, 풀턴은 전혀 다른 답을 내놓았다.

“필요한 자금은 이 수표책으로 사용하시면 됩니다.”

풀턴은 고개를 돌려 알렉스를 바라봤다.

“그리고, 대위께서도 준비를 해 주셨으면 합니다. 자세한 명령은 오늘 중으로 내려올 것입니다.”

그 말에, 알렉스는 왜 자신이 이곳에 동석하게 되었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풀턴의 요청에 답했다.

“…알겠습니다.”

풀턴은 자리에서 일어나 두 사람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일이 이렇게 되어 유감입니다. 더 필요하신 게 있다면 연락해 주십시오.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자 아델라인도 따라 일어나며 풀턴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최선을 다하겠다, 그분께 전해 주십시오.”

‘그분.’ 단어 밑에 숨은 의미를 모를 리 없는 풀턴은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물러났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남작.”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풀턴 경.”

풀턴이 먼저 떠나자, 아델라인과 알렉스, 그리고 나이아는 긴장하고 있던 몸에서 힘을 빼고 잠시 늘어졌다.

“하아아…….”

나이아의 입에서 나지막한 한숨이 길게 이어져 나왔다. 안도와 걱정, 두 감정이 반씩 섞여 있는 혼합물이었다.

“그래서, 제인 포스터라는 사람은 누구예요?”

“저는 알 것 같은데.”

그는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튼, 저도 짐을 챙겨야겠네요.”

“뭐부터 해야 할지… 자세한 상황을 모르니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아델라인의 말에, 알렉스는 그녀를 향해 한 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안드레이를 먼저 보내세요. 보조할 인원만 좀 붙여 주면 일단 급한 일은 처리할 수 있을 거예요. 비슷한 일을 해 본 적 있으니까.”

알렉스의 말에, 아델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할게요.”

* * *

집무실에 돌아온 알렉스. 갑갑한 예복을 벗어젖힌 그는 진녹색 제복으로 갈아입으며 책상을 바라봤다.

풀턴의 말대로, 책상 위에는 육군본부에서 보낸 서신이 있었다. 봉인을 떼고 내용물을 꺼낸 알렉스는 천천히 서신의 내용을 읽었다. 글은 간결했고, 알렉스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명확했다.

그렇기에 더욱, 알렉스의 마음은 복잡해졌다. 해야 하는 이유는 뚜렷했지만, 그렇다고 해야 하는 일의 난이도가 낮아지는 건 절대 아니었다.

“파견 중대 내에서 인원을 차출, 이즐링턴 지역의 민사 지원단을 구성해 지원하고… 곧 해산될 남부지역의 영지군 인원과 장비를 흡수, 파견될 교관단과 함께 병력을 훈련시킬 수 있는 환경을 갖추라고.”

알렉스는 서신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영지군은 귀족의 권력을 상징하는 제도 중 하나였다. 그런데도 영지군의 해산을 예상한 지시를 내린다는 건… 남부 영지의 영지군 실태가 극에 달해 있다는 뜻이다.

영지군 해산이라는 강경한 정책을 취할 수 있고, 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의미이니.

그러나 알렉스의 마음은 아무리 노력해도 쉬이 편해지지 않았다. 이미 규모가 줄은 파견 중대였다. 여기서 또 인원을 나눠 이즐링턴으로 가야 한다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수도에서 또다시 급변 사태가 벌어진다면 인원이 더 줄은 파견 중대의 대응 능력은 확실히 저하 될 것이다.

그러나 명령은 명령이었다. 회피할 수 있는 것도, 거부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필즈먼은 급변 사태가 일어나지 않는다에 판돈을 걸었고, 그렇다면 따라야 했다.

“후우… 어렵네.”

한숨과 함께 심란한 마음을 털어 낸 알렉스는 집무실의 문을 열었다. 때마침 결제해야 하는 서류 때문에 찾아온 팩이 그를 보고 가볍게 경례를 했다.

“충성.”

“충성. 소대장들 좀 불러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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