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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엑스트라는 생각보다 대단했다-129화 (129/200)

129화 로피츠 공작 부인

다음 날 아침. 언제나 사람으로 북적이는 상점가를 바라보며, 두 남정네가 한숨을 쉬었다.

“하아아… 중대장님 때문에 이게 무슨 짓인지.”

“그러게 말이다.”

여동생이 있다는 이유로 상점가로 보내진 팩과 기업가 자제라는 이유로 팩에게 붙여진 스워포드는 바글바글한 인파를 뚫을 생각에 입에서 한숨만 푹푹 나올 뿐이었다.

대체 여동생이 있다는 것과 기업가 자제라는 것이 아델라인의 선물을 고르는 데 무슨 관련이 있다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들이 해야 하는 일과 연관성이 없는 것 같지만, 군대식 인사 배치가 다 그런 거지. 이 정도면 양반이라는 생각에 두 사람은 신세 한탄을 그치고 화제를 돌렸다.

“다른 사람들은 뭐 한대?”

팩의 물음에, 스워포드는 어젯밤에 있었던 회의 결과를 정리한 수첩을 꺼내 들며 답했다.

“장소 섭외랑 폭죽 확보, 그리고 꽃 확보. 이게 양반인 것 같기도 하고.”

“양반이기는. 내 여동생은 나랑 열 살 차이 난다고. 로피츠 여사와도 일곱 살 차이나고.”

“그래도 여자들이 공통으로 좋아하는 게 있을 거 아니야.”

“난들 알겠냐, 걔 태어날 때쯤에는 제국으로 넘어와서 터 잡느라 바빴는데. 간신히 터 잡고 난 뒤에는 배 타서 돈 버느라 얼굴도 몇 번 못 보고.”

“너 제국 출신 아니었냐?”

“파코프스키가 제국인 성은 아니지. 저번에 말하지 않았나?”

“까먹은 듯.”

“금붕어 새끼. 암튼, 그래서 뭐뭐 봐야 하냐.”

팩의 물음에, 스워포드는 수첩의 뒷장을 넘겨 목록들을 훑어 내렸다. 아델라인이 관심을 보였다는 물건들과 가게들의 목록이었다.

“저기 먼저 가 보자, 브로치에 관심을 보였다는데.”

그러자 팩은 고개를 끄덕이며 스워포드가 가리킨 공방으로 향했다. 공방의 쇼윈도에는 알렉스가 말한 브로치가 진열돼 있었다.

“이쁘네.”

그걸 본 팩은 단순한 감상을 툭 내던졌다. 그러나 스워포드는 말없이 쇼윈도 너머의 브로치를 살펴본 뒤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짜 보석인 것 같은데? 유리로 만든 거.”

스워포드의 말에, 팩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볼 때마다 신기하네. 어떻게 그걸 구별하는 거냐.”

“몇 가지 방법만 알면 되지. 안에 진짜 물건이 있을 테니 들어가 보자.”

스워포드는 그리 말하며 팩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공방 내부는 바깥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물건을 살펴보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내부의 진열장에는 쇼윈도에 있던 것보다 훨씬 다양한 종류의 장신구가 실내등의 빛을 받으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두 사람은 공방의 손님들 사이로 섞여 들어가며 진열장을 살폈다. 알렉스가 지목했던 목표를 향해 달려드는 게 아니라, 다른 것들도 주욱 훑어보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충분히 가성비 좋고, 훨씬 잘 어울릴법한 장신구가 있을 수 있으니까.

그때, 진열장 너머 점원이 그들 앞으로 다가왔다.

“혹시 두 신사분께서 찾으시는 게 있으실까요?”

갑작스럽게 말을 걸어오는 점원에 팩은 일순간 움찔, 몸을 떨었다. 그러나 스워포드는 태연하게 질문에 답했다.

“아, 네. 여성용 장신구를 찾아보고 있습니다. 선물로요.”

“특별히 원하시는 종류가 있을까요?”

“브로치 종류를 생각했지만, 다른 것도 고려 중입니다. 목걸이 빼고요.”

“어떤 인상의 여성분이신지 알 수 있을까요?”

그러자 스워포드는 잠시 고민하는 시늉을 했다. 눈살을 살짝 찌푸리는 표정을 언뜻 내보이자 점원은 다른 방법을 제시했다.

“누구를 닮았는지 말씀해 주시면 어울리는 브로치를 추천해 드릴 수 있습니다.”

그 말에, 스워포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아, 그러면… 로피츠 여사와 닮았다는 소리를 많이 듣거든요, 이 친구 여동생이. 이 정도면 도움이 될까요?”

스워포드가 천연덕스럽게 팩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그러자 그는 잠시 스워포드를 바라본 뒤 반 박자 늦게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점원은 잠시 고민한 뒤 미소와 함께 답했다.

“로피츠 여사, 명망 높은 유명 인사이시죠. 마침 공방에서 새로 자격을 얻으신 장인분께서 여사와 같은 금발 벽안의 여성에게 어울리는 장신구를 몇 점 만들었습니다.”

“한번 살펴봐도?”

“아직 신인이시라 진열장에 마련해 두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괜찮으신지요?”

점원의 물음에, 스워포드는 팩을 바라봤다. 그러자 팩은 이번에도 반 박자 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답을 들은 점원은 고개를 숙여 양해를 구한 뒤, 뒤편의 문으로 들어갔다.

그 점원을 기다리며 여러 장신구를 살펴보고 있던 찰나, 새로운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차임벨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무의식적으로 반응한 두 사람이 고개를 돌리자, 낯익은 얼굴이 안으로 발을 들이고 있었다.

그도 공방을 둘러보다 두 사람을 발견하고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다가왔다. 두 사람이 오른손을 들어 경례하려 하자, 그는 손을 내저으며 둘을 말렸다.

“부대 안도 아닌데 무슨 경례를. 그동안 잘 지냈나, 팩, 스워포드?”

그러자 두 사람도 들었던 손을 거뒀다. 마찬가지로 사복 차림을 한 윌포드를 바라보며, 팩은 질문에 답했다.

“예 뭐, 올해 초에 제국으로 복귀해서 휴가를 보낸 뒤에 수도로 복귀했습니다. 윌포드 함장님께서는?”

“이젠 함장도 아닌걸. 대위라 부르게.”

짤막한 말에 담긴 여러 정보. 그 정보들을 읽어 낸 두 사람의 눈빛에는 살짝 어두운 빛이 섞였다. 최소 소령 대우를 받는 함장이었고, 자신의 함선에서는 황제가 타도 서열이 황제보다 높은 자리였다. 그러니 대위라 불리게 된 이 상황은 문서상으로는 강등이 아니지만, 실질적으로는 강등인 셈이었다.

그리고 그 상황의 뿌리에는 오베른에서 라이플맨들과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벌인 일들이 있다는 걸 그들이 모를 리 없었다. 두 사람의 얼굴에 살짝 드리운 그늘을 읽어 낸 윌포드는 살짝 미소 지으며 그들에게 말했다.

“차라리 좋아, 수도에서 일하게 되었으니 애인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고 말이야. 오늘도 외근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애인 선물 하나 보려고 들른 거고.”

그러자 스워포드도 표정을 다잡고 고개를 끄덕인 뒤 그에게 질문했다.

“알겠습니다, 대위님. 수도에는 어쩐 일로.”

“인사 배치를 새로 받았네, 해군성으로. 그전까지는 육군본부에서 해군 연락 장교단에 소속되어 있었고. 그나저나 이 시간에 여기는 무슨 일인가?”

그의 물음에, 팩은 잠시 고민했다. 이걸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말한다면 어디까지 말해야 하나.

그때, 점원이 보석함 세 개를 가져와 진열장 위에 늘어놓았다.

달칵, 보석함을 하나씩 열자 세 사람의 표정에서 차례대로 감탄의 기색을 내비쳤다. 귀걸이와 브로치와 팔찌. 세 종류 모두 화려함은 몰라도 정교함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귀금속도 보석도 풍부히 쓰이지는 않았지만, 부족하다는 생각도 전혀 들지 않았다.

팩과 스워포드는 머릿속으로 아델라인의 모습에 장신구를 가져다 대 보았다. 잠시 눈을 감고 고민하던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 어울릴 것 같은데.”

“그러게. 그러면 이걸로?”

팩이 브로치를 바라보며 동의를 구하듯 묻자, 스워포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팔찌가 담긴 보석함 옆에 손을 얹었다.

“이게 낫지 않겠어? 곧 여름이고, 사교 시즌이니까 팔찌도 좋을 것 같은데. 여ㅅ… 팔찌가 여동생에게 좀 더 잘 어울리지 않겠냐?”

스워포드의 입에서 나온 실수. 진열장 너머 점원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들 뒤에서 대화에 귀를 기울이던 윌포드는 무언가를 떠올린 뒤 슬그머니 입을 손으로 가렸다.

잠시 손 뒤에서 입을 벌리며 이해했다는 듯 조용히 탄성을 내뱉은 그는 의견을 주고받는 두 사람의 어깨를 두드렸다.

“자, 여기서 오래 점원을 붙드는 것도 실례이니 나가서 차라도 한잔하며 이야기하지. 차는 내가 사겠네.”

그렇게 두 사람 사이로 슬쩍 들어간 그는 점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잠시 둘러보고 오겠네.”

그러자 점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세 사람에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

점원의 인사를 뒤로하며 세 사람은 공방을 나왔다. 거리로 나오자마자, 팩은 걱정스러운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기다리겠다니……. 중대장님을 모셔 와야 하나? 하나같이 비싸 보이던데…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면 문제가…….”

바닥을 바라보며 안절부절못하는 팩을 바라보며 스워포드가 한숨을 푹 쉬었다. 윌포드는 스워포드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팩에게 건넸다.

“그냥 으레 하는 말이네. 기다리겠다고 말하는 건. 저 점원도 다시 올 거라는 생각은 크게 하지 않을 거고.”

“만약 진짜로 기다리겠다고 생각했으면 이름을 먼저 물었겠지.”

스워포드가 가볍게 덧붙이자, 윌포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두 사람에게 제안했다.

“자, 말 나온 김에 차나 한잔하러 가지. 다들 시간 괜찮나?”

그의 물음에, 팩은 눈을 감고 들러야 할 상점 목록들을 떠올렸다. 오늘 하루 만에 살펴야 할 상점들의 수를 어림잡아 세어 보자, 그는 눈을 뜨고 고개를 저으려 했다.

그러나 한 박자 앞서서, 스워포드가 그 질문에 답했다.

“좋습니다, 마침 목이 마르기도 했고.”

“좋네, 나도 좀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이쪽으로 가면 내가 아는 곳이 있어.”

그렇게 말하며 윌포드가 앞장서자, 두 사람은 반걸음 뒤에서 월포드를 따라갔다. 길을 가던 중, 팩은 스워포드 쪽으로 머리를 기울여 그의 귀에 속삭였다.

“야, 오늘 들러야 할 상점이 얼마나 많은데 그렇게 덜컥 말해 버리면 어쩌냐.”

그러자 스워포드는 그에게만 들릴 정도로 중얼거렸다.

“저 양반 연애하고 있잖냐. 중대장님보다는 오래 사귀신 것 같고. 그러면 너나 나보다는 좀 더 좋은 정보를 가지고 있겠지. 서프라이즈 이벤트는 어떻게 해야 하나 같은 거.”

그는 씨익, 미소지으며 팩에게 말했다.

“이게 고가치 표적이고 휴민트지.”

그의 말에, 팩은 깨달음을 얻었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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