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엑스트라는 생각보다 대단했다-120화 (120/200)

120화 계획 점검

아델라인은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숨을 들이쉬었다가 천천히 내쉬며, 방아쇠를 당겼다.

오른손에서 시작된 반동이 팔을 지나 어깨로 전해졌다. 충격이 한 번 팔을 감싸자, 오른팔 전체가 바르르 떨리는 듯했다. 그러나 아델라인은 곧바로 총구를 내리고 약실을 돌린 뒤 부싯돌 망치를 젖혔다.

총구를 다시 앞으로 겨누자, 채 흩어지지 않은 연기가 흐릿하게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그러나 아델라인은 곧바로 표적지를 향해 총구를 살짝 튼 뒤 방아쇠를 당겼다.

총구에서 불꽃과 함께 연기가 뿜어져 나오자, 다시 약실을 돌리고 공이를 젖힌 뒤 다시 총구를 겨눴다. 이제는 표적지의 실루엣조차 확실치 않았다. 그러나 아델라인은 주저하지 않고 방아쇠를 당겼다.

아델라인이 다시 총구를 내리고 약실을 돌리려던 찰나, 그녀의 귀에 지시가 들려왔다.

“그만. 부싯돌 망치에 가죽 덮게 씌우십시오.”

안드레이의 말에, 아델라인은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가죽 덮개를 부싯돌에 씌웠다. 리볼버를 쥔 오른손이 바르르 떨렸다. 리볼버를 테이블에 내려놓은 아델라인은 차차 흩어지는 연기 너머의 표적을 바라봤다.

“제가 없는 사이 실력이 많이 느셨군요.”

“영지에 내려가 있는 동안 연습을 많이 했어. 물론 그때는 알렉스의 피스톨로 연습했지만.”

사람 모양의 표적지의 상체 오른쪽 부분에는 세 개의 탄흔이 한 손바닥 안에 들어올 정도로 뭉쳐 있었다. 안드레이는 그 탄흔을 보고 아델라인을 향해 물었다.

“나머지 두 발, 쏴 봐도 되겠습니까?”

그의 말에, 아델라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안드레이는 리볼버를 받아든 뒤 덮개를 벗기고 총구를 겨눴다.

탕. 탕.

안드레이가 쏜 탄환이 정확히 한가운데에 명중했다. 그다음 쏜 탄환도 첫 번째 탄흔과 겹칠 정도로 정확한 탄흔이 생겼다. 그러자 아델라인은 신기함을 담아 그를 바라봤다.

“호흡법에는 문제가 없고, 자세의 경우에도 이제 한 손 사격이 익숙해지셨고. 그런데도… 어디가 문제려나.”

안드레이는 눈을 감고 고민을 이어 갔다. 그러나 마땅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결국, 그는 고개를 저었다.

“뭐, 많이 쏴 보시면 될 일이라 생각합니다. 지금 이 정도도 충분히 잘 쏘시는 편에 속하니까요.”

“알겠어. 총기 손질은 부탁해도 될까? 이따가 나갈 때 들고 나가게.”

“네, 준비하겠습니다.”

안드레이에게 리볼버를 맡긴 아델라인은 저택 안으로 들어가 몸을 단장했다. 그때, 한 시녀가 그녀에게 다가왔다.

“공녀님, 매닝햄 대위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그러자 아델라인은 미소를 지으며 시녀를 향해 말했다.

“응접실에서 잠시 기다리라고 전해 줘. 금방 준비한다고.”

“알겠습니다.”

아델라인은 시녀들의 도움을 받으며 옷매무시를 가다듬었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여러 손길을 빌려 복잡하게 땋아지고, 그 끝에 하늘색 리본이 묶였다. 거울로 그 리본을 바라보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듯했다.

리본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추수제 때의 즐거운 기억들이 떠올랐다. 빈 벤치에 앉아 함께 음식을 먹고, 홀로 사람들 사이에서 헤매고 있던 어린아이의 형을 찾아 주고, 악단의 연주에 맞춰 춤을 추고, 반지를 찾아 주고…….

그때, 나이아가 다가와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무슨 좋은 일 있으세요?”

“아, 아니. 그냥.”

나이아의 시선이 리본에 향했다.

“이게 추수제 때 대위님이 사 주신 리본인가요?”

“응, 맞아. 꽤 그럴듯하지?”

아델라인의 물음에, 나이아는 고개를 끄덕이다 무언가 발견한 듯 눈을 가늘게 떴다. 잠시 리본을 뚫어져라 본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며 입을 열었다.

“이거, 신대륙 상형 문자인 것 같은데요? 정확히는 모르겠지만요.”

“진짜? 어떤 내용이야?”

생각지도 못했던 말에, 아델라인은 신기해하며 물었다. 그러나 나이아는 어깨를 으쓱였다.

“제가 언어학 전공은 아니라서요. 하지만 한번 찾아볼게요.”

“부탁할게. 설마 이상한 거 적혀 있는 거면 알려 주지 않아도 좋아.”

“예를 들면?”

“뭐… ‘나 배고파요, 밥 주세요’ 같은 거? 그런 거면 차라리 모르고 사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아델라인의 농담에, 소리 죽여 웃음을 터뜨린 나이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물러났다. 아델라인이 마지막으로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본 뒤 서둘러 응접실로 향했다.

응접실에서는 차를 대접받으며 그녀를 기다리는 알렉스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는 안드레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알렉스!”

아델라인이 다가가 그를 부르자, 찻잔을 내려놓은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뒤를 돌아보며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아델라인. 그동안 잘 지냈어요?”

“바쁘기만 바빴죠, 알렉스도 바빴다면서요?”

그녀의 물음에, 그도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은 줄고, 일은 늘었으니까요. 이번에 친위대가 전선에 출정을 나간다고 해서 그 빈자리를 채워야 하거든요.”

“아, 그거… 신문에서 봤어요.”

아델라인은 그 말을 듣고 살짝 기분이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소설의 내용이 점차 눈앞에 다가오는 건 결코 좋지 않았다.

그 감정이 표정으로 드러났는지, 알렉스는 잠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가 아델라인의 손을 잡았다.

“자, 일단 나갈까요? 모처럼 둘 다 시간이 났는데.”

“좋아요. 사실 같이 가고 싶은 곳 몇 군데를 알아봐 뒀거든요. 마음 편히 이야기할 수 있는 한적한 곳으로요.”

안드레이에게 손가방을 건네받은 아델라인은 알렉스의 손을 잡고 그를 이끌어 마차가 기다리고 있는 현관으로 향했다. 두 사람이 마차에 오르자, 마부는 부드럽게 마차를 몰아 저택을 나왔다.

다각, 다각, 다각.

마차는 빠르게 수도 외곽으로 빠져나갔다. 그러자 아델라인은 싱글벙글 웃으며 알렉스에게 말했다.

“며칠 전 신문에 한 기사가 나왔더라고요. 사람 없고 풍경 좋은 꽃놀이 장소 리스트라고.”

“기사요……?”

아델라인의 말에, 알렉스의 표정이 잠시 미묘하게 변했다. 약간의 불안한 눈빛이 아델라인을 향했지만, 그녀는 눈치채지 못한 듯 기대가 섞인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그중 하나가 저기인가요?”

알렉스는 창밖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질문을 던졌다. 창밖에는 아델라인의 예상과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수도의 조금 여유 있다는 사람들은 모두 봄나들이를 나온 건지, 꽃나무가 가득 심겨 있는 숲 사이사이에는 사람들과 마차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

아델라인은 급히 창문으로 얼굴을 가져가 밖을 바라봤다. 잠시 할 말을 잊은 아델라인은 자신의 뺨을 아프지 않게 친 뒤 알렉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괜찮아요. 여기는 너무 가까워서 그런 걸 거예요.”

아델라인은 그렇게 말한 뒤 창문을 열고 마부석을 향해 말했다.

“다른 곳으로 가자. 거기는 사람이 없겠지!”

잠시 속도를 늦췄던 마차는 다시 속도를 높여 길을 나아갔다. 그리고 아델라인의 표정이 잠시 의기소침하게 변했다. 그 모습도 귀여웠지만, 그대로 둘 수 없었던 알렉스는 입을 열었다.

“안드레이에게 들었어요. 사격 실력이 많이 늘었다고.”

“영지에 있는 동안 많이 봐 줘서 그런 거죠. 알렉스 덕분이에요.”

“뭘 또, 스스로 연습하니 는 거죠. 그나저나.”

알렉스는 아델라인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저기도?”

알렉스가 가리킨 방향의 창문을 보자, 이번에도 비슷했다. 드넓은 꽃밭 주위의 공터에는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이 자리를 펴고 봄날을 즐기고 있었다.

“…….”

아델라인은 창문에 이마를 툭, 가져다 댔다. 마차를 타고 움직인 지 꽤 시간이 지난 탓일까, 아니면 계획이 두 번이나 엇나가서일까. 머리가 어지러운 듯했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본 알렉스는 창문을 열고 무어라 마부에게 말했다. 잠시 이야기를 주고받은 뒤, 알렉스는 창문에 머리를 박고 멍하니 있는 아델라인에게 말했다.

“잠시 마부석에 다녀와야 할 것 같네요. 얼마 안 걸리니까 잠깐만 기다려요.”

잠시 뒤, 마차가 멈춰 서자 알렉스는 마부석으로 옮겨가 앉았다. 잠시 후, 마차는 방향을 돌려 어딘가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아델라인은 홀로 마차 안에 앉아 자신의 선택을 후회했다.

괜히 조금 더 알아보지도 않고 들떠서. 괜히 알렉스를 놀라게 해 주겠다고 홀로 준비해서. 괜히…….

아델라인의 마음은 조금씩 자책감에 젖어 들어갔다. 알렉스도 바쁜 와중에 시간을 만들어 낸 걸 텐데. 이럴 줄 알았으면 수도에 있을걸… 수도에도 적당히 좋은 곳은 많았는데…….

머릿속이 그런 생각으로 한가득 차오르던 찰나, 오르막을 올라가던 마차가 덜컥 멈춰 섰다. 잠시 뒤, 문이 열리고 그 안으로 손이 뻗어 들어왔다.

“다 도착했어요.”

숲속 언덕길 한가운데. 자리 펼 곳 하나 보이지 않는, 말 그대로 길 한복판에 내리자, 아델라인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알렉스에게 물었다.

“여기는 어디예요?”

그러자 마차에서 따라 내리고 마부와 함께 짐을 나눠 든 알렉스는 대답없이 앞장서 길가에 난 오솔길로 향했다. 아델라인은 치맛자락이 주변에 난 잔가지에 걸리지 않도록 손으로 잡아 들며 말없이 그 뒤를 따랐다.

아델라인은 알렉스를 바라봤다. 그는 바구니와 돗자리를 든 채 마부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뒤에서 따라오고 있는 자신을 한 번도 돌아보지 않는 그의 모습에, 그녀는 조용히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혹시 실망한 걸까.

귀중한 휴일을 자신이 계속 실수해서 낭비하는 바람에 마음이 상한 걸까.

그때, 오솔길이 끝나며 나무에 가려져 있던 시야가 탁 트였다. 지금까지 지나쳐 왔던 꽃나무로 가득한 숲도, 들꽃 가득한 꽃밭도. 다들 저 아래에 있는 풍경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산들바람이 불며 서서히 이마에 맺혀 있던 땀방울을 식혔다.

그때, 짐을 내려놓고 마부를 돌려보낸 알렉스가 아델라인을 향해 돌아봤다. 그는 성큼성큼 그녀에게 다가오더니, 미소를 머금으며 입을 열었다.

“머리에 꽃잎 떨어졌네요. 잠시만요.”

그녀의 머리 위에 살포시 내려앉은 꽃잎을 손가락으로 떼어 낸 알렉스는 더욱 입꼬리를 올리며 아델라인을 바라봤다.

“어때요, 여기?”

그 웃음은 너무 솔직하고 순수했다. 알렉스의 뒤를 쫓으며 걱정했던 자신이 바보같이 느껴질 정도였다.

뭐라고 답해야 할까, 아델라인이 대답을 망설이며 시간을 흘려보내자, 알렉스의 눈동자가 조금씩 불안하게 바뀌었다.

그 눈을 응시한 아델라인은 손을 뻗어 그의 양쪽 볼을 손으로 감싸 고정했다. 그다음 까치발을 들어 그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알렉스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 모습에 웃음을 터뜨린 아델라인은 그를 향해 한껏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최고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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