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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엑스트라는 생각보다 대단했다-115화 (115/200)

115화 배움의 결실

“그 사람이, 혼자 이즐링턴에 갔다가 타고 간 말만 돌아왔어요. 그리고… 제게 ‘마녀의 저택’으로 오라는 편지가 왔고요.”

“이즐링턴이라. 외부인이 그곳에 찾아갈 이유가 없을 텐데요.”

장로는 잠시 눈을 감고 고민을 한 뒤 입을 열었다.

“자경대를 동원하시면 되지 않으십니까? 그편이 더 부리기 편할 텐데.”

장로는 마치 떠보듯, 아델라인을 바라보며 천천히 물었다.

“지금부터 모은다고 해도 너끈히 장정 수십은 모으실 수 있을 것이고, 사람 한 명 찾는 거야 어렵지 않을 텐데요.”

“자신들이 아무리 잘 싸운다 한들, 다른 지역의 숲이나 산에 들어가면 그곳의 사냥꾼이나 약초꾼과 비교하면 애송이나 다름없다고, 그 사람이 말했었어요.”

아델라인은 장로의 눈을 응시하며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도움이 필요해요. 이즐링턴의 숲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온 사냥꾼들이.”

그녀의 눈에 담긴 간절함을 읽은 장로는 잠시 뒤,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값은 넉넉히 치러 주시리라 믿겠습니다, 공녀님.”

“그이를 구해 주신다면, 얼마든지요.”

아델라인의 말에, 장로는 옆에 있던 사냥꾼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오두막에 있던 사냥꾼들이 우르르 몰려 나갔다. 문이 닫히자, 장로는 아델라인을 바라보며 질문했다.

“그래서, 그이는 무슨 이유로 이즐링턴을 찾은 것인지요?”

“아직 직접 듣지는 못했지만… 그이는 서던 퓨질리어 연대에 속해 있었나 봐요. 아마 참배를 위해 간 것 같아요.”

“서던 퓨질리어. 그 이름을 듣는 것도 오랜만이군요.”

장로는 아델라인의 옷차림을 위아래로 스윽 훑어봤다.

“직접 가실 겁니까?”

“저를 불렀으니까요.”

아델라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딸아이 처녀 적 옷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갈아입으시지요. 너무 딱 달라붙고 눈에 띕니다.”

“고마워요, 사실 그 사람도 그렇게 말하더라고요.”

사냥대회 때 알렉스가 했던 말과 똑같은 장로의 말에, 그녀의 얼굴에서는 약간의 미소가 피어났다. 비록 각자의 목적 때문에 행동을 함께하게 되었었지만, 그래도 서로 싫지만은 않았던 시간이었다.

“그렇습니까?”

아델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주방에서 한 여성이 아델라인에게 다가왔다.

“흠. 옷이 조금 크실 수 있을 것 같긴 하네요. 아, 혹시 무기는 챙겨오셨나요?”

그 말에, 아델라인은 고개를 끄덕인 뒤 주머니에서 챙겨 온 무기를 꺼냈다. 번쩍번쩍한 금장 장식이 되어 있는 리볼버. 실린더의 약실 다섯 칸에는 모두 탄환과 화약이 장전되어 있었다.

두 사람이 놀란 눈으로 아델라인을 바라봤다. 전당포에 급하게 처분한다 해도 대가족이 한 달은 먹고살 만큼은 쳐줄 보물이었다.

“발사는 확실히 됩니다. 제 몸 하나는 지킬 수 있어요.”

“…알겠습니다. 얘야, 도와드리렴.”

장로의 말에, 딸은 고개를 끄덕인 뒤 아델라인을 옆 오두막으로 안내했다. 그렇게, 밤은 깊어 가고 있었다.

* * *

“조금, 늦네요.”

피오나는 알렉스의 앞에 있는 의자에 앉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러자 알렉스는 메마른 입술을 움직여 그녀에게 쏘아붙였다.

“왜, 뜻대로 안 풀려서 힘든가?”

“아니요, 이 정도 기다림은 예상 범주 안에 있답니다. 다만, 시간은 금이니 이 시간을 이용해 이야기를 나눠 볼까 해요.”

“무슨 이야기.”

“아델라인 폰 로피츠, 에 관한 이야기죠.”

그 말에, 알렉스의 눈빛이 바뀌었다. 그 반응을 원했던 건지, 피오나는 그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원래 저는 대위님과 만나지 않을 운명이었어요, 적어도 내후년까지는. 아델라인도 마찬가지이고요.”

“그게 무슨 말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말에, 알렉스의 눈빛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그 반응을 즐기는 듯, 피오나는 연신 히죽대며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황후는 작년에 죽었어야 할 운명이었죠. 이멜다의 봄을 들으면서.”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지.”

“이런 의문을 품어 보신 적은 없으세요? 어떻게 아델라인은, 황후의 암살 시도를 예측했을까.”

“…….”

피오나의 질문에, 알렉스는 문득 머릿속 깊은 곳에 묻어 두었던 의문을 끄집어냈다. 그래. 아델라인은 어떻게 황후에게 암살 시도가 벌어질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을까.

그것도, ‘이멜다의 봄’이라는 정확한 신호까지.

“지금, 황후의 암살을 아델라인이 꾸몄다고 하고 싶은 건가? 하지만 그것도 말이 되지는 않는데.”

“후훗. 당연하죠.”

피오나는 보랏빛 눈동자를 빛내며 알렉스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그 일은, 제가 황태자를 부추겨 세이드를 이용해 저지른 일이었으니까요.”

“농담도 짓궂군.”

“거짓말 같나요?”

“…….”

“대위님 덕분에, 그리고 아델라인 덕분에 골탕을 많이 먹었어요, 원래 계획도 많이 틀어지고 말이죠. 덕분에 올해 초부터 얼마나 시간을 낭비했는지, 원. 자, 돌아가서.”

피오나는 알렉스와 눈을 마주치며 그에게 질문을 건넸다.

“아델라인은, 어떻게 알고 있었을까요?”

“그러는 너는, 황후가 어째서 죽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만큼 완벽한 계획은 아니었는데.”

“그렇게 되어야 했으니까요.”

“…….”

“그 책에서 나온 것처럼, 황후는 그날 죽었어야 했으니까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피오나의 말. 알렉스는 차분히 생각을 이어 나가며 질문했다.

“일종의 예언서인가?”

“예언서라기보다는… 그래요. 할 일이 적혀 있는 리스트라고 하죠. 가끔씩 아주 쉽게, 손을 안 대도 이뤄지기는 하지만, 그래도 한 번씩은 공들여 해내야 하는 일들이 있는 법이죠.”

“…….”

“그렇게 할 일을 마치고 나면, 어떻게 될 것이라고 적혀 있죠. 그리고 그게 실제로 이뤄졌고요. 과연, 마법사의 대가 끊겨 황실로부터 버려진 루멘시아 백작가가 화려하게 부활해 수도의 사교계로 복귀한 게 우연이었을까요?”

미소를 지으며 묻는 피오나의 보랏빛 눈동자에는 끊임없이 광기가 흘러넘치고 있었다.

“모든 게 그대로 되어 가고 있었어요, 모든 게. 하지만… 작년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지요. 황후는 죽었어야 했어요, 그때 그곳에서.”

피오나는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나 알렉스의 귀에 속삭였다.

“자, 그러면… 아델라인은 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걸까요? 설마, 당신에게까지 모든 걸 숨기고 있는 걸까요?”

그녀는 손톱으로 그의 목젖을 살짝 그으며 질문을 마무리 지었다.

“올해 전쟁이 터지리라는 것도, 어쩌면 당신의 처참한 최후까지도?”

피오나의 질문에, 그는 순간 복잡한 표정을 내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 표정을 눈에 담은 피오나가 미소를 지으며 알렉스를 바라보던 찰나.

똑똑.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잠시 뒤, 한 장정이 방 안으로 들어와 피오나에게 다가와 무언가를 속삭였다. 그러자 그녀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걸렸다.

“좋아요, 들여보내세요. 사람 둘을 뽑아 대위를 감시하도록 하고.”

마치 알렉스에게 들으라는 듯, 피오나는 말을 남기고 방을 나섰다. 곧이어 총검을 끼운 머스킷으로 무장한 두 사람이 알렉스가 있는 방으로 들어왔다.

“…빌어먹을.”

알렉스는 낙담한 목소리로 고개를 푹 숙이며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의 손은, 그 어느 때보다 세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손을 움직일수록, 밧줄은 조금씩 느슨해져 갔다. 그리고, 바닥을 내려다보는 푸른 눈동자는 그 어느 때보다 번뜩이고 있었다.

* * *

“…후우.”

말에 올라 랜턴 하나에 의지해 인기척 없는 폐가들을 지난 아델라인은 어느새 저택을 앞에 두고 있었다.

저택의 앞마당에는 랜턴 서너 개만이 희끄무레한 빛을 내고 있었고, 그 빛 주위에는 서너 명씩 장정들이 서 있었다.

그들은 모두 저마다의 무기로 무장하고 있었다. 활, 석궁, 창, 화승총, 라이플 등… 사냥꾼이라면 들고 있을법한 무기들이었다.

아델라인이 저택의 정문 앞으로 다가가자, 그들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문을 열고 안으로 안내했다. 한 마디 말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을 이끄는 장정을 따라, 응접실로 향할 뿐이었다.

오랫동안 방치된듯한 허름한 겉모습과 달리, 내부는 잘 정돈되어 있었다. 응접실에는 장작이 타오르는 중인 벽난로도 있었다.

“기다리십시오, 곧 주인님께서 오실 겁니다.”

“…….”

아델라인은 빈 소파에 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장로의 딸에게서 빌려 입은 사냥복은 확실히 더욱 편했다. 그리고… 품속에 무언가를 숨기기에도 좋았다.

아델라인은 품속에 손을 넣어 리볼버를 만져 봤다. 서늘하고 묵직한 감각이, 손끝에서 느껴졌다. 총은 수없이 쏴 봤다. 영지에 내려온 이후, 알렉스와 함께 몇 번이고 피스톨을 쏘며 연습했지 않나.

아델라인은 마음을 다잡았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알렉스를 구해서 돌아가야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각오를 되뇌며, 아델라인은 품속에서 리볼버 대신 초대장을 빼내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마치 원래부터 초대장을 꺼내려 한 것처럼.

그때, 가벼운 발소리가 아델라인을 향해 다가왔다.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자, 피오나가 한 손에 책을 든 채 천천히 그녀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좋은 밤이에요, 아델라인.”

“…….”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이 많으셨어요. 길이 꽤 험하던데.”

확실했다. 피오나가, 눈앞에 있었다. 아델라인은 요동치는 심장을 가라앉히며 피오나를 향해 물었다.

“…본론으로 넘어가죠. 알렉스는 어딨어요.”

“뭐, 이 저택에 있어요, 그러니 안심하세요.”

피오나는 미소를 지으며 아델라인을 바라봤다.

“아직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으니까요. 아시겠지만… 그 사람은 이곳에서 죽으면 안 되거든요.”

피오나의 말에, 아델라인은 등골에 전기가 흐르는 듯한 섬뜩함을 느꼈다. ‘아시겠지만’, 그리고 ‘이곳에서 죽으면 안 된다’. 두 문장은 아델라인의 머릿속에서 한 가지 가설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가설을 확인시켜 주기라도 하듯, 피오나는 들고 있던 책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황태자 관찰일기』

이 세상에 있을 수 없는 책이, 그 제목이 아델라인의 앞에 나타났다. 아델라인의 눈동자가 일순간 흔들리자, 피오나는 미소를 띠며 그녀를 향해 말했다.

“역시, 황후는 그날 이멜다의 봄을 들으며 죽었어야 했어요. 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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