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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엑스트라는 생각보다 대단했다-114화 (114/200)

114화 배움의 실천

오후 2시, 아델라인은 한참 춘곤증과 사투를 벌이다가 차를 마시며 졸음을 깨고 있었다. 상쾌한 솔잎차의 향은 그녀의 머리를 개운하게 하기 충분했다.

“케이크는 말해 뒀어?”

“네, 주방장님께서 최선을 다하시겠다고 하였습니다. 집사님께서도 필요한 준비를 하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래, 그 부분에 대해서는 부탁할게.”

아델라인은 나이아를 향해 미소 지으며 찻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때, 바깥에서 어수선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방문하기로 한 사람이 있었나?”

나이아는 방의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갔다. 복도 창문을 통해 내다보자, 한 필의 말이 정문을 지나 달려들고 있었다.

소란에 아델라인이 밖으로 나가자, 그사이 달려온 집사들과 마구간지기들이 날뛰는 말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아델라인의 물음에, 마구간지기는 불안한 표정으로 답했다.

“오늘 이른 아침에 대위님께서 타고 나간 말입니다, 근데 무슨 일인지 혼자 돌아왔네요…….”

그의 말에, 아델라인은 좋지 않은 조짐을 느꼈다. 알렉스가 타고 간 말이 혼자 도착했다는 건 결코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아델라인은 몸을 돌려 뒤따라온 나이아를 향해 물었다.

“알렉스가 어디로 갔을까?”

“가실 곳은 딱 한군데밖에 없어요. 이즐링턴이요.”

그 말을 듣자, 저택의 집사들과 마구간지기의 표정이 심상찮게 바뀌었다.

“이즐링턴…말입니까? 대위님이?”

“왜? 무슨 문제 있어?”

아델라인의 물음에, 사용인들은 말하기를 주저했다. 그러나 아델라인이 계속 그들을 바라보자, 노집사가 고개를 들고 입을 열었다.

“몇 년 전부터 이즐링턴 주변에서는 맹수와 마물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지역이었습니다. 그 덕분에 한동안은 사냥꾼들이 폐가를 고쳐 전진 기지로 삼고 수렵을 하기도 했죠.”

그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외부에서 온 사냥꾼들이 숲에서 길을 잃고 몇 날 며칠을 헤매다 죽기도 하고, 오래 머물러 있던 사람이 미쳐서 착란을 일으키기도 하면서 점점 발길이 끊겼습니다. 지금 그곳에 남아 있는 것은 폐가와 추모비, 그리고 양귀비뿐입니다.”

“…….”

아델라인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그러자 집사는 아델라인의 걱정을 풀어 주려는 듯 말을 덧붙였다.

“그래도, 다른 곳에 가셨을 수도…….”

“알렉스… 대위는, 서던 퓨질리어 연대 출신이에요. 부친께서도.”

아델라인의 말에, 집사의 표정 역시 좋지 않았다. 가장 피하고 싶었던 가설이 정확히 들어맞은 것이었다.

“서던 퓨질리어 말입니까. 그러고 보니 비르텐 전투가 벌써 14년이나 지났군요.”

“무슨 일이 생긴 걸지도 몰라요.”

“영지의 자경대를 소집하겠습니다. 그러나 조금 시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때, 저택으로 한 마리의 전서구가 날아왔다. 저택을 한번 휘, 돈 전서구는 곧바로 아델라인 앞에 다가왔다.

팡.

전서구는 한순간에 가벼운 소리를 내며 한 장의 편지로 변해 아델라인의 앞에 팔랑이며 떨어졌다. 봉투를 받아든 그녀의 눈에, 입구를 봉하고 있는 인장이 눈에 들어왔다.

“…….”

루멘시아 백작가의 문장이었다. 아델라인은 나이아에게 편지를 건넸다. 편지의 인장을 본 나이아는 잠시 고민을 한 뒤 아델라인에게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루멘시아 백작가는 영지가 없습니다. 누군가가 일부러 루멘시아 백작가의 인장을 위조해서…….”

그러나 옆의 아델라인의 표정을 보자, 나이아는 등줄기에 소름이 오르는 걸 느끼며 말을 흐렸다.

지금까지 자신이 아델라인을 섬기며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차가운 표정에, 나이아는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나이아.”

제 주인의 목소리에 이토록 살기가 서려 있었던 적이 있었던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네.”

“무슨 내용이야.”

“…….”

나이아는 손을 살짝 떨며 봉투를 뜯고 편지지를 꺼냈다.

“당신을 초대합니다. 마녀의 저택에서. 대위의 숨이 꺼지기 전까지, 언제까지고 기다리겠습니다…….”

아델라인의 표정이 변했다. 얼굴에 드러난 살기에 분노가 더해졌다. 그러자 사용인 중 그 누구도 아델라인과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노집사는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서 고개를 숙였다.

“지시를 내려 주십시오, 공녀님. 자경대를 소집하고 수색대를 모을까요?”

노집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려던 아델라인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자경단은 소집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나이아를 바라봤다.

“수렵복, 준비해 줘.”

* * *

쿨럭!

메마른 기침 소리가 벽에 몇 번이고 부딪히며 메아리쳤다. 정신을 차린 알렉스는 간신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보자, 창문 하나 없는 방 안이 눈에 들어왔다.

팔다리는 단단히 의자에 묶여 있었다. 한번 팔을 움직여 본 알렉스는 견적을 냈다. 쉽지 않다. 지금은 가만히 있는 게 나았다.

그 생각을 한 알렉스는 이 방의 유일한 출구인 문을 바라봤다. 어떻게 하면 저기로 나갈 수 있을까. 그는 눈을 감고 고민을 하며 자신의 손목에 있는 매듭을 손가락으로 훑어봤다.

그때, 문이 열렸다.

“아, 깨어나셨네요, 대위님.”

“피오나 루멘시아… 영애.”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화사한 미소를 그리는 피오나의 얼굴이었지만, 그 보랏빛 눈동자만큼은 침침한 방 안의 조명에도 불구하고 섬뜩하게 번뜩이며 빛났다.

“잘 알 텐데, 그 정도는.”

“제국 본토는 소식이 느리기도 하고, 당신들 라이플 여단에 대한 정보를 구하기도 힘들고. 거기다가, 오베른에 있던 제 자산과 세력도 당신들의 손에 와해되었으니까요.”

오베른에 있던 자산과 세력. 그 말에, 알렉스는 말없이 그녀를 노려봤다. 성 조지 병원 사건 이후로 품고 있던 의심을, 그녀가 자백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제 앞마당으로 걸어 들어오셨으니 이걸… 호박이 넝쿨째로 들어왔다 해야 하나요?”

그녀는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알렉스를 바라봤다.

“비로소, 다시 한번 단둘이서 담소를 나눌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죠.”

“단둘이서 담소를 나눌 사이는 아닌 것 같은데.”

“뭐, 사교 활동이라는 게 다 그렇지요. 사이가 안 좋더라도 미소를 지으며 마주 보고 담소를 나누는 것.”

그녀는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나 알렉스에게 다가갔다.

“…내가 알고 있는 사교 활동과는 약간 다른 것 같은데. 손님에게 차 한 잔 안 내주고 말이야. 안 그래?”

“제가 차를 내오면, 드실 건가요?”

피오나는 허리를 숙여 그와 눈을 마주치며 되물었다. 보랏빛 눈에는 뭐라 단정 지을 수 없는 광기가 끊임없이 일렁이고 있었다.

“후후, 좋아요, 좋아요. 아직 시간은 남아 있으니까, 필요하시면 말씀해 주세요. 차든, 뭐든.”

알렉스의 눈동자에 당황이 깃들자, 피오나는 안심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문으로 다가갔다.

“자, 그러면 저도 이제 손님맞이를 준비해야 해서.”

“무슨 손님?”

“대위님께서 가장 반기실, 그 무엇보다 소중한 분이지요.”

그 말에, 알렉스는 피오나를 살기 가득한 눈으로 노려봤다. 그러나 그녀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그를 향해 말했다.

“아, 걱정 마세요. 두 분 다 제 미래에 필요하신 분이니, 그냥 온전히 담소만 나눌 거랍니다?”

피오나는 그 한마디를 남기곤 문을 닫고 나갔다. 알렉스는 다시, 홀로 남게 되었다.

* * *

“여기입니다, 공녀님.”

집사의 말에, 아델라인은 말에서 내렸다. 눈앞에는 이른 저녁을 맞아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는 오두막이 보였다.

문으로 다가가자, 여러 사람이 모여 있는 듯 분주하게 오가는 발소리와 왁자지껄한 대화가 들려왔다.

집사가 문으로 다가가 문고리를 잡았지만, 아델라인은 집사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직접 문을 두드렸다.

똑똑.

그러자 오두막 안에서 들려오던 소리가 잠시 수그러들었다. 한 묵직한 발걸음이 문 앞으로 다가오고, 이내 문이 끼이익, 소리를 내며 열렸다.

“무슨 일이십니까?”

가죽옷을 걸친 우락부락한 사냥꾼이 앞을 바라봤다가 뒤늦게 시선을 내려 아델라인을 향했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아델라인 폰 로피츠라고 합니다. 도움을 청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를 나눠도 될까요?”

이름을 듣자, 그녀를 맞았던 사냥꾼은 당황한 기색을 내비치며 마치 누군가에게 허락을 구하려는 듯 뒤를 돌아봤다. 잠시 뒤, 그는 문을 활짝 열고 뒤로 물러섰다.

“들어오십시오, 공녀님.”

“고마워요.”

아델라인이 존댓말과 함께 고개를 살짝 숙이며 감사를 표하자, 사냥꾼은 더욱 의문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아델라인과 집사를 안으로 들였다.

오두막 안에는 스무 명가량의 사냥꾼들이 각자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들은 말도 없이 방문한 아델라인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왜 이곳에 왔느냐, 라는 질문이 눈빛에 담겨 전해져 왔다.

아델라인은 잠시 그 시선들을 마주하다 가장 상석에 앉아 있는 노인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장로님.”

“안녕하십니까. 내 몸이 영 좋지 않아, 일어나 예를 갖추지 못하는 점을 너그러이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들여보내 주셔서 제가 감사하지요.”

“고맙구려. 자, 그러면… 이쪽에 앉으시지요. 차라도 한 잔 내어 드리겠습니다.”

노인이 옆에 있는 한 소파를 가리키자, 거기에 앉아 있던 세 명의 사내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뒤로 물러섰다. 아델라인은 그 소파에 앉은 뒤 장로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저 혹시…….”

아델라인이 다급한 표정으로 입을 열려 하자, 장로는 손을 들어 아델라인을 멈춰 세웠다.

“다급한 마음으로 말을 하고 쫓기듯 움직인다면, 두 마리는커녕 한 마리 토끼도 못 잡을 겁니다.”

그는 아델라인의 눈을 바라보며 마치 그녀를 달래듯 천천히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러니, 우선 차 한 잔부터.”

장로의 말에, 아델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찻잔 두 개가 각자의 앞에 하나씩 놓였다.

호록.

솔잎의 향이 느껴졌다. 알렉스와 마시던 그 솔잎차였다. 하지만 그와 함께 마실 때와는 달리 입 안에서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차를 식히고 마시기를 반복하며 잔을 반쯤 비웠을 즘.

잔을 내려놓은 장로가 아델라인을 향해 물었다.

“이곳에 찾아오신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그러자 아델라인도 찻잔을 내려놓은 뒤, 고개를 푹 숙이며 장로에게 답했다.

“제 소중한 사람을 되찾고 싶습니다. 도움이 필요합니다.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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