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기만 작전의 제1 요소
1월 초의 트레포드 항은 11월과 달랐다. 아델라인은 그 차이를 지금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흐으으… 추워…….”
수도에서 입던 대로 나름 단단히 챙겨입은 아델라인이었지만, 부둣가에 몰아치는 겨울바람은 옷 틈새 사이사이를 파고들었다. 그러나 아델라인은 꼿꼿이 서서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봤다.
“춥습니다, 공녀님. 안에서 기다리는 게 어떻겠습니까.”
“괜찮아요, 버틸 수…….”
엣취.
안드레이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버티려던 아델라인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입에서 재채기가 나왔다. 그러자 안드레이는 한숨을 푹 쉰 뒤 아델라인을 바라봤다.
“들어갑시다. 대위님도 공녀님 감기 걸리는 모습은 보고 싶어 하지 않을 겁니다.”
“…….”
“바람은 피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차에라도 들어가 있죠.”
안드레이의 강권에, 아델라인은 할 수 없이 그의 손에 이끌려 마차로 돌아갔다. 아델라인을 먼저 태운 뒤 뒤따라 올라타며 마차 문을 닫은 안드레이는 한숨을 푹 쉬었다.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아델라인의 눈가에는 거뭇한 다크서클이 얹어져 있었다. 여기까지 3일 동안 마차를 타고 오는 길은 결코 안락하지 않았을 터였다. 그러나 아델라인은 변함없이 뚫어져라 바다만 보고 있었다.
안드레이는 아델라인을 걱정스레 보던 시선을 거두고 마차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편지를 들었다. 일상적인 내용을 담은 미사여구 가득한 편지였지만, 그 속에 담긴 진짜 정보는 다음과 같았다.
[18문 슬루프 HMS 헬리온. 식별번호 NG115. 1월 8일. 트레포드 입항 예정. 파견 중대 수송. 이후 본대 합류 예정. 근시일 내 유일한 접선 기회.]
3일 전 안드레이가 이 암호문을 해독해 전달하자마자, 아델라인은 또다시 트레포드를 향한 먼 여정을 시작했다.
나이아가 말릴 새도 없었다. 혹시라도 늦을까 잠자는 시간까지 아껴 가며 달린 끝에, 그들은 3일째 아침에 트레포드에 도착할 수 있었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난 괜찮아.”
훌쩍.
괜찮다는 말이 끝나자마자, 코를 먹는 소리가 들려왔다. 안드레이의 것은 확실히 아닌 소리에, 아델라인은 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만날 수 있는 시간도 그렇게 많진 않을 거고. 만약 안에 들어가 있다가 그 시간을 놓치면… 여기까지 온 게 허사가 되는 거잖아?”
아델라인의 말에, 안드레이는 다시 한번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녀의 말도 일리가 있었기에, 결국 그는 설득을 포기했다.
그때, 수평선 너머에서 돛대가 삐죽 튀어나왔다. 그러자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던 아델라인의 시선이 그 돛대로 향했다.
이내 돛대는 바람을 한껏 품은 돛으로, 그리고 한 척의 근사한 범선으로 변했다.
안드레이는 창문 너머로 시선을 돌렸다. 아직 거리가 멀어 정확한 실루엣은 보이지 않았지만, 아델라인의 기다림에 화답이라도 하듯 그 배는 빠르게 항구로 다가왔다.
조금 더 집중하자, 깃대에 걸린 신호 깃발들이 눈에 들어왔다. NG115. 편지에 쓰여 있는 정보가 맞다면, 저 배는 아델라인이 기다리던, 알렉스가 탄 배가 맞을 것이다.
“저 배군요. 조금만 기다리죠, 배가 부두에 닿을 때까지.”
안드레이의 말에, 아델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헬리온은 항구의 오른쪽 가장자리에 닻을 던지고 정박했다. 그러자 아델라인은 마부석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마부에게 말했다.
“부두 맨 오른쪽으로 가세요!”
아델라인의 지시에, 마부는 군말 없이 마차를 몰았다. 헬리온은 지난번 아델라인을 내려 줄 때처럼 부둣가에 연결 다리를 놓고 있었다. 마차가 멈추자, 아델라인은 곧바로 마차의 문을 열고 가장 먼저 내렸다.
그사이 배에서는 진녹색의 제복을 입은 라이플맨들이 다리를 건너 부둣가에 발을 디뎠다.
“…….”
멀쩡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누군가는 한쪽 다리에 붕대를 칭칭 감은 채 목발을 짚고 있었고, 누군가는 얼굴 한쪽을 붕대로 뒤덮고 있었다.
아델라인이 그 라이플맨들로부터 시선을 거두기도 전에, 앞서 나왔던 부상자들은 양반이라는 듯 선원들에 의해 들것에 실려 나오는 이들도 있었다.
잠시 그 모습을 멍하니 본 아델라인은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는 걸 느꼈다. 그러나 부상자들의 대열이 생각보다 빨리 끝나자, 아델라인의 머릿속에서는 마일즈 의원이 말이 떠올랐다.
‘크게 부상당하지 않은 것 같네. 사상자 보고 및 작전 디브리핑 자료 작성을 할 수 있는 상태라면 말이지.’
그래. 상태가 안 좋은 부상자부터 먼저 육지에 내리는 것이리라. 아델라인은 애써 불안한 느낌을 옆으로 치워 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녀의 예상대로, 부상자들은 기다리고 있던 마차에 태워져 어디론가 향했다.
그때, 낯익은 사람이 배에서 내렸다.
이 배의 함장, 제임스 윌포드 함장이었다. 그는 뒤에 두 명의 병사를 대동하고 천천히 배에서 내렸다. 그도 아델라인을 봤는지, 뒤에 있는 병사들에게 무언가를 말하고는 아델라인에게 걸어왔다.
“여기에 계실 줄은 몰랐군요, 여사님. 좋은 오후입니다.”
“좋은 오후예요, 함장님. 근데… 저…….”
아델라인이 윌포드에게 인사를 하고 곧바로 말을 늘이자, 윌포드는 그 뒤 내용을 이미 짐작했다는 듯 그녀의 말을 대신 이었다.
“매닝햄 대위. 말입니까.”
윌포드가 정확히 아델라인의 의중을 짚어 내자, 그녀는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는 잠깐 앓는 소리를 내더니 품속에서 두 장의 편지와 보석함 하나를 건넸다.
“기다림에 보답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여사님.”
윌포드의 얼굴에 얹어진 씁쓸한 표정, 그리고 그 입에서 나온 그의 말은 아델라인의 불길한 예감을 확인시켜 주는 듯했다.
보석함과 편지들을 받아드는 아델라인의 손은 심하게 떨렸다. 간신히 그가 건넨 편지들과 보석함을 손에 쥔 그녀는 흔들리는 눈으로 윌포드를 바라봤다.
“분명 이 배로 온다고 들었는데… 진짜 안에 타지 않은 건가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아델라인의 물음이 계속 윌포드에게 향했다. 그러나 윌포드가 미처 답하기 전에, 한 무리의 병사들이 다가왔다. 그 병사들을 이끌고 온 장교는 윌포드를 보더니 품속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제임스 윌포드 함장. 귀관을 현 시간부로 고의적인 함 군수물자 및 장비 유기, 명령 불복종 및 사전죄 등의 혐의로 군법회의에 소환한다. 또한, 이에 따르는 조치로서 HMS 헬리온의 함장 직위를 일시 해제한다.”
장교가 말을 마치자, 그 뒤에 있던 병사들이 윌포드에게 다가가 견장을 뜯고, 허리춤에 찬 피스톨과 세이버를 뺏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이 펼쳐지자, 아델라인의 눈은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그때, 장교가 그녀를 바라봤다.
“그 편지와 보석함은 뭡니까?”
“…네?”
“윌포드 함장이 준 것입니까? 그렇다면 주시지요. 군법회의에 제출하셔야 합니다.”
고압적인 태도로 아델라인을 내려다보던 그 장교는 아델라인의 손에 들린 편지와 보석함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때, 아델라인의 뒤에 서 있던 안드레이가 앞으로 나서 장교의 손목을 붙들어 멈춰 세웠다.
“압수할 거면 영장 먼저 제시해야지. 협조를 요청할 거면 협조 요청 공문을 제시하고.”
“…….”
“해군 헌병대는 일 처리를 이따위로 하나?”
안드레이가 장교를 향해 쏘아붙이자, 그는 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안드레이의 손을 뿌리치려 했다. 그러나 안드레이의 손은 상대의 손목을 단단히 붙들고 있었다.
“로피츠 여사께 해야 할 말이 있을 텐데.”
안드레이의 말에, 장교는 놀란 눈을 뜨며 붙들린 팔에서 힘을 풀었다. 단순히 중간 정도 되는 가문의 영애인 줄로 알았던 눈앞의 여자가 로피츠 공작의 외동딸이라는 사실을 알자, 고압적이었던 태도는 순식간에 뒤집혔다.
안드레이는 태도의 변화를 포착하고 손목을 풀어 주었다. 그러자 장교는 벌겋게 손자국이 남은 손목을 애써 소매로 감춘 뒤 아델라인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여사님.”
단숨에 뒤바뀐 태도를 보자, 실망과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그러나 그 감정들은 아무리 기다려도 알렉스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현실과 그 현실에서 비롯한 분노와 슬픔에 쉽게 덮이고 말았다.
“…잠시 시간을 내주는 건 괜찮으시겠지요.”
아델라인이 슬픔과 노기를 눌러 담으며 헌병대 장교에게 묻자, 그는 말없이 한 걸음 뒤로 물러나 길을 터 줬다. 그녀는 안드레이에게 보석함과 편지를 맡기고는 윌포드에게 다가가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나요. 왜 알렉스가 못 온 건가요.”
어느새 포승줄에 팔이 묶인 윌포드는 아델라인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의 얼굴에는 미안함이 묻어나 있었다.
“오베른에서의 군사작전이 끝난 다음 날, 프랑크 군 물자 집적소에서 다수의 폭발과 화재가 관측되었습니다. 프랑크 왕국군과 그 동맹국 군대는 이를 제국 측의 공작행위라 판단, 선제적으로 포격을 가했습니다.”
“…….”
“제한적인 포격전은 대규모 교전으로 격화되었습니다. 보급 물자가 부족한 프랑크 군 측이 먼저 철수해서 서전에서는 승리를 거뒀으나, 이 상황으로 인해 원정군단 병력 전원의 철수가 무기한으로 중단되었습니다. 파견 중대도… 전투 불가능한 인원을 제외하고는 전선에 투입되었습니다.”
윌포드의 말에, 아델라인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전쟁. 전쟁이 벌어지고 말았다. 소설에서처럼, 황태자가 참전하는 전쟁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충격을 받은 아델라인이 멍하니 윌포드를 바라보자, 윌포드는 잠시 머뭇거린 뒤 입을 열었다.
“좋은 소식을 전해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윌포드는 고개를 살짝 숙인 뒤, 헌병대에게 이끌려 자리를 떠났다. 잠시 뒤, 아델라인은 차디찬 부둣가의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곧 모든 게 정리될 거예요. 그때까지만. 잠시 기다려줄 수 있나요?’
“다 정리될 거라며… 정리될 거라고 말했으면서…….”
아델라인은 물기를 머금은 목소리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녀의 눈에서는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녀의 마음속에 맺힌 원망과 슬픔, 배신감과 걱정은 눈물이 되어 턱에서 맺혀 떨어졌다.
한 방울씩 뚝, 뚝. 차가운 바닥에 떨어진 눈물은 빠르게 식어 갔다. 기대감에 달아오른 마음만큼 뜨거운 눈물은, 이내 차디찬 바닥에 소리 없이 떨어져 스밀 뿐이었다.
* * *
“로피츠 공작가의 마차가 트레포드에 도착했다는 정보입니다.”
육군 본부의 본부장 집무실. 드넓은 공간에 비해 허전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간소한 세간살이를 둔 공간에, 부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거울을 보며 제복을 갖춰 입던 필즈먼이 잠시 움직임을 멈추고 부관을 바라봤다. 하지만 곧바로 다시 거울을 바라본 그는 외투의 단추를 여미며 질문을 했다.
“의무사령부 파견 인력은?”
“어제부터 도착해 대기 중입니다.”
“지체하지 말고 부상병 인계 후 육군병원으로 이송시킬 수 있도록.”
“알겠습니다.”
보통이라면 보고를 마친 뒤 곧바로 집무실을 나섰을 부관이었지만, 오늘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발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필즈먼이 외투 단추를 다 여민 채 부관을 바라보자, 그제야 부관은 필즈먼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여쭤도 되겠습니까?”
“말해 보게.”
“…이번에는 왜 파견 중대가 트레포드로 복귀 후 재정비를 거친다는 가짜 정보를 마일즈 의원에게 제공하신 건지 묻고 싶습니다.”
“저번에는 기밀 정보까지 제공했으면서, 말인가?”
“네.”
부관의 질문에, 필즈먼은 그에게 역으로 질문을 던졌다.
“기만 작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 생각하나?”
“정보 보안이라 알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해 보게.”
“…….”
잠시 부관을 바라본 필즈먼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어 나갔다.
“뭐, 자네도 알겠지만… 정보 보안의 요는, 기만 작전에 동원된 인원들에게도 정보를 통제해야 한다는 거지. 기만 작전에 동원된 병사는, 절대 자신이 기만 작전에 동원되었다는 걸 알면 안 돼.”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간단하네, 마일즈 선배는 지금까지 받은 정보가 진실이었으니, 이번 정보도 진실이었으리라 생각하고 로피츠 여사에게 전한 걸세. 물론, 간파하고도 입을 다문 걸 수도 있지만.”
그는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 갔다.
“로피츠 여사는 그 정보를 믿고, 트레포드로 향했네. 기만 작전이 일단은 실행된 거지. 그 움직임 자체만으로도 파견 중대가 제국 본토로 복귀했다, 재정비 중이다. 라는 정보를 퍼뜨린 거고.”
“프랑크 군을 향한 기만… 말입니까? 하지만 프랑크 왕국의 정보망은…….”
“아직 전시 체제로 돌입하지 않은 동면 상태지. 하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상대해야 할 적은 프랑크 군이 아니야. 내부의 적이지.”
필즈먼은 책상 위에 놓인 서류를 내려다봤다. 오베른에서 진행된 ‘그믐’ 작전에 대한 디브리핑과 작전에 투입된 병력들이 확보한 새로운 정보가 담겨 있었다.
[초승달 계획 연구 자료 확보. 보름달 계획의 선행 연구로 추정. 2차 성징 전 아동 대상.]
“그들이 파견 중대를 두려워한다면, 없는 파견 중대라도 만들어 시간을 벌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