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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엑스트라는 생각보다 대단했다-100화 (100/200)

100화 Centurion

“…제1 퇴출 수단은 06시 정각에 경매장 앞으로 도착할 제17 경기병 연대. 만약 이 퇴출 수단에 문제가 생긴다면, 항만으로 이동해 대기 중인 소함대 블랙과 합류, 해상으로 이탈한다. 자, 질문?”

알렉스는 지시봉을 지도 위에 내려놓은 뒤 대원들을 바라봤다. 그러자 1소대장이 알렉스를 바라보며 질문을 했다.

“교전 수칙이 어떻게 됩니까?”

“이동 경로상에 민간인이 많다. 이동 경로 내에서는 상대가 무장했다 하더라도 공격 징후 포착 전에 사격하지 않는다. 그러나 작전 지역 내의 모든 무장 인원은 적으로 간주한다. 사령부의 지침이다. 비무장 인원에 대한 무력 투사는 허용하지 않는다.”

“알겠습니다.”

“화기 중대의 무장은 어떻게 됩니까? 중화기 다 챙겨 갑니까?”

“화기 중대의 무장은 다 챙겨 가기로 했다. 파견 중대가 내부 장악하고 고가치 표적 확보하는 동안, 화기 중대는 경매장의 주요 출입구를 막을 거다.”

알렉스는 질문에 답한 뒤 대원들을 바라봤다.

“질문… 더 없는 것 같으니, 해산하자.”

알렉스의 말에, 대원들은 순순히 흩어져 자신들의 천막으로 향했다. 분위기가 착 가라앉았지만, 그 누구도 일부러 분위기를 띄우려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었다.

알렉스는 지도를 바라봤다.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준비하지 않은 것들은 없었다. 정보도, 정보에 기반한 작전도, 이를 실행할 병력도. 무엇 하나 부족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지금은 그저, 앞으로 수 시간 정도밖에 남지 않은 작전을 기다리는 것밖에 할 일이 없었다.

그런데도 마음 한쪽에 얹혀 있는 듯한 무게감의 정체는 무엇일까. 알렉스는 천천히 자신의 짐과 장비가 있는 천막으로 돌아가며 고민에 고민을 이어 갔지만, 결국 아무것도 건지지 못했다.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야속할 정도였다. 분명 수십 번, 수백 번을 해내 온 전투와 별다를 게 없을 작전인데, 발걸음이 더더욱 무거웠다.

밖에서는 발소리가 이어졌다. 작전 개시 위치로 이동하는 1대대 본대의 발소리였다. 교란을 위해 최대한 소란스레 뛰어들어 싸워야 하는 1대대였지만, 어째서인지 그들의 발소리는 자신의 걸음보다 훨씬 가볍게 느껴졌다.

그때, 알렉스의 천막에 누군가가 들어왔다.

“뭐하냐.”

“충성.”

아서 스튜어트 대령. 60이 다 되어 가는 나이였지만, 그는 다른 라이플맨들과 마찬가지로 라이플을 들고 싸울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아서 대령은 알렉스의 경례를 받은 뒤, 손을 내리며 그를 응시했다.

“고민이 많아 보이는구만.”

“싸우러 가십니까.”

“당연히 가야지. 제1 지휘권자인데. 그리고 아직은 뒷방 늙은이로 물러나기엔 젊다네.”

아서 대령은 알렉스의 푸른 눈을 응시했다.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꿰뚫어 보기라도 하는 눈빛에, 알렉스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그 모습을 본 대령은 슬며시 웃으며 알렉스를 떠봤다.

“싸우기 싫지 않나?”

“…싸워야 하는 건 알지만 말입니다.”

알렉스의 긍정에 가까운 대답에, 아서 대령은 고개를 끄덕인 뒤 말을 이어 갔다.

“트레포드에서 자네를 다시 봤을 때, 꽤 놀랐었지. 내가 알던 1대대 선임 위관과는 참 많이 달라져서.”

“그렇게 많이 달라졌습니까.”

“나쁘다는 뜻은 아니네. 여전히 자네는 유능하고, 강인하니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다른 거라네.”

대령은 무릎을 통통통 두드리며 말을 이어 나갔다.

“눈빛에 남아 있던 날카로움이 죽었어. 뭐, 옆에 계속 붙어 있었다면 알아채기는 쉽지 않았겠지만. 부드러워지니 훨씬 보기 좋구만.”

대령의 말에, 알렉스는 의아한 눈빛을 보냈다. 그러거나 말거나, 대령은 말을 이어 나갔다.

“그동안 있었던 사건에 대한 보고서는 읽었네. 웬만해서는 먼저 일을 떠맡지는 않는 성격이었던 자네가 왜 이 일을 자진해서 맡았는지 이해가 안 갔었는데, 트레포드에서 그 답을 알아 버렸지 뭔가.”

“…군말 없이 따라와 준 대원들에게 미안하고 고마울 뿐입니다.”

“고마워하는 건 좋은 일이지만, 대원들에게 미안함이나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네. 어차피 누군가 해야 할 일 아니었나?”

대령은 허리를 뚜두둑 뚜두둑 돌리더니 알렉스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그러니 당당해지게. 자네가 그렇게 무거운 표정 짓고 있으면 대원들도 힘이 안 나지 않겠나?”

그러자 알렉스는 잠시 고개를 푹 숙인 뒤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 그 표정일세. 그런 표정을 지으니 내가 아는 선임 위관이 보이는구만.”

대령은 알렉스의 어깨를 툭 친 뒤 뒤로 돌아 천막을 나서며 말했다.

“화기 중대를 잘 부탁하네.”

“알겠습니다, 대대장님.”

* * *

똑똑똑.

저택의 사용인 기숙사 구획. 아델라인은 그중에서도 안드레이의 방문을 두드렸다. 원래라면 곧바로 반응이 와야 하는데, 다시 한번 문을 두드려도 안드레이의 방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때, 옆방에 있던 집사장이 문을 열고 나왔다. 누가 거슬리게 옆방의 문을 두드리는지, 눈살을 찌푸리며 방문을 연 그는 아델라인의 얼굴을 보자마자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공녀님. 여기는 어쩐 일로.”

“아, 안드레이에게 맡긴 영지 관련 서류가 있는데, 그거 얼마나 진행되었나 싶어서요.”

아델라인이 묻자, 집사장은 무언가를 떠올린 듯 열쇠 하나를 꺼냈다.

“아, 오늘 잠시 다녀올 데가 있다며 만약 누군가 서류를 찾으면 책상 위에 올려져 있다고, 가져가라 해달라더군요.”

그렇게 말하며 안드레이의 방문을 열어 준 집사장은 아델라인에게 열쇠를 건넨 뒤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옷차림을 보니, 아마 일찍 잘 생각이었나 보다. 그녀는 약간의 미안함을 느끼며 안드레이의 방 안으로 들어갔다.

집사장의 말대로, 책상 위에는 노끈으로 가지런히 묶어 둔 서류 뭉치가 올려져 있었다. 다행히 한 손으로 들만한 무게였기에, 그녀는 손쉽게 서류를 들고 몸을 돌렸다. 그때, 들어올 때는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던 침대. 그리고 그 위에 올려진 편지 하나가 보였다.

그 편지 봉투에는 아델라인의 이름이 알렉스의 필체로 적혀 있었다. 그렇다는 건, 알렉스가 자신에게 쓴 편지라는 것이다.

“…뭐야.”

분명 알렉스의 편지는 저번 주의 편지가 마지막이었는데? 어떻게 된 거지?

아델라인은 혼란해지는 머릿속을 간신히 진정시켰다. 그다음, 누가 볼세라 고개를 두리번거린 뒤 서류 더미 사이에 편지를 끼워 넣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델라인은 서류를 품에 안은 채 조용히 안드레이의 방을 나와 곧바로 침실로 향했다.

지나가는 사용인들이 아델라인을 향해 인사했지만, 아델라인은 인사를 받아 주지도 않으며 빠르게 복도를 걸어갔다. 안드레이의 방에 자신이 보지 못한 알렉스의 편지가 있다는 것,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머리가 복잡해졌다.

침실에 도착하자, 아델라인은 테이블 위에 서류 뭉치를 내려놓은 뒤 편지를 꺼냈다. 확실했다. 자신에게 쓴, 알렉스의 편지였다.

아델라인은 책상 위에 있는 페이퍼 나이프로 손을 뻗었다. 그녀가 편지 봉투를 가르려는 찰나, 아델라인의 머릿속에서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왜 이 편지가 안드레이의 방에 있었을까. 혹시 무슨 사정이 있었던 것일까.

아델라인은 천천히 편지와 페이퍼 나이프를 내려놓았다. 고민의 시간이 이어졌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 편지를 열어야 할까? 아니면 안드레이의 방에 다시 돌려놓는 게 맞을까?

아델라인의 머릿속에서 갈등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아델라인은 다시 페이퍼 나이프와 편지 봉투를 들었다.

사악.

페이퍼 나이프가 편지 봉투를 매끄럽게 갈랐다. 한번 행동을 시작하자 손은 빠르게 움직여 봉투 안에 있는 편지를 꺼내고 있었다.

팔락.

[아델라인에게.

안드레이가 이 편지를 끝내 건넸다면, 아마 상황이 제게는 영 좋지 않게 끝났다는 뜻이겠네요. 아마 제가 끝내 임무를 수행하던 중 전사했거나, 실종 상태로 꽤 오래 지났다는 뜻이겠지요.]

첫 문단을 읽자, 아델라인은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건 자신에게 쓴 편지였지만, 자신이 보면 안 되는 편지였다. 보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는 편지였다.

그러나 한 번 펼쳐진 편지는, 마치 아델라인의 눈앞에 들이대기라도 하듯 또렷하게 품은 글을 내보였다.

[아직 수도를 떠나기 전이지만, 이런 건 미리 써야 할 것 같아 펜을 잡았어요. 근데… 이런 편지를 써 본 적이 없어서 뭐라 써야 할지 모르겠네요.

미안해요. 제가 부족해서, 아델라인에게 다시 돌아갈 수 없었어요. 미안해요. 마지막 모습이 끝내 거짓말을 하는 모습이었네요.]

어느새 아델라인의 눈에서 눈물이 새어 나왔다. 알렉스가 바로 앞에서 담담하게 자신에게 말하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고개를 들면 상처투성이의, 엉망진창이 된 알렉스가 자신의 앞에 앉아 입을 열고 움직이는 모습이 보이는 것처럼, 생생하게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오고 있었다.

[사실, 처음에 아델라인을 만날 때만 해도 참 못 미더웠어요. 멀쩡하게 제 옆을 보조해 주던 안드레이는 아델라인을 호송하다 완치 불가능한 부상을 입고 전역해야 했으니까요.

하지만 당신은 생각보다 훨씬 사려 깊고 멋있는 사람이었어요. 이렇게 써 놓고 보니, 처음 아델라인을 만났을 때 덮어놓고 의심했던 제가 참 부끄럽네요.]

“…미안, 끅, 미안, 미안해요…….”

아델라인은 터져 나오는 눈물을 소매로 애써 닦다가, 이내 그것마저 포기하고 손으로 입을 막은 채 울음을 터뜨렸다. 굵은 눈물이 편지지 위로 한두 방울 떨어졌다.

처음 알렉스에게 접근했을 때는, 조력자로 포섭하려 했던 세이드의 대체 역이나 다름없었다. 그전에는 만나보지도 않았으면서 댓글 창으로 악담이나 해 댔었다. 그런 기억들을 떠올리니 자신이 정말 못나고 부끄러웠다.

눈물이 앞을 가리는 와중에도, 아델라인의 시선은 편지를 계속 읽어 내려갔다. 그때, 한마디 단어가 그녀의 눈을 사로잡았다.

[사랑했어요.]

“…….”

[솔직히 이 편지에 저 말을 쓸까 고민이 많았어요. 내가 아델라인 곁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아델라인이 저 말을 보면 더 상처를 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하지만… 저는 겁쟁이에다 이기적이기까지 하니까. 이번 한 번만 봐줘요. 어차피 죽은 목숨인데.]

알렉스가 할 법한 뻔뻔한 말투에, 아델라인은 계속 눈물을 흘리면서도 피식 옅은 웃음을 뱉었다.

얼마나 고민했으면 이렇게 길게 변명을 할까. 단어 한 마디 한 마디가 너무 알렉스다워서, 아델라인은 복잡한 감정을 눈물로 쏟아 낼 수밖에 없었다.

“…겁쟁이.”

결국, 아델라인은 마지막 문단을 채 읽지 못하고 소매로 눈물을 연신 닦았다. 하염없이, 밤이 지나도록. 그녀는 마지막 문단만은 차마 읽을 수 없었다.

[뭐, 아델라인은 강하니까. 제가 없어도 툭툭 털고 일어나 앞으로 나아가겠죠? 멀리서나마 응원할게요. 언젠가 아델라인의 이야기를 직접 듣길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렇다고 너무 일찍 오진 마시고.

당신을 사랑했던, 알렉스 매닝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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