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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엑스트라는 생각보다 대단했다-97화 (97/200)

97화 정찰

“좋아, 다들 내리자고.”

알렉스의 명령에, 스워포드와 베르티에 두 사람도 고개를 끄덕인 뒤 차례로 내렸다. 세 사람이 다 내리고 알렉스가 마차 문을 닫자, 마부는 고개를 끄덕인 뒤 알렉스를 향해 말했다.

“네 시간 뒤, 여기서 픽업하겠습니다. 늦지 마십쇼. 아, 그 대위님께선 이따가 대대본부에 들르시고. 우편이 많던데요.”

“그래, 고생해.”

그러자 마부는 머리에 쓴 모자챙을 잡고 살짝 끄덕인 뒤 마차를 몰아 멀어져 갔다. 그러자 세 사람은 자연스레 인파에 섞여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하늘을 보니 지상의 붉고 푸른 빛에 덮여 별빛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고, 옆으로 고개를 돌리니 화려한 등으로 치장한 대로변의 건물 사이사이로 낡고 허름한 건물들이 보였다.

“…해군 로켓 한 발이라도 떨어지면 큰일 나겠습니다. 대로변 빼고는 대부분이 낡은 목조 건물입니다.”

스워포드의 분석에, 베르티에는 살짝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로켓?”

“북부함대 중 소함대 레드, 그린, 그리고 블랙이 북상했다. 표면적으로는 육군의 연합 훈련에 시기를 함께한 기동 훈련이지만, 많은 사람은 프랑크 왕국 해군을 견제하기 위함이라고 알고 있겠지. 이번 연합 훈련처럼.”

알렉스의 대답에, 베르티에는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알아채고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제해권을 장악한 쪽은 부럽군, 해군에서 지원을 해 주다니. 우리는 기껏해야 제3국 국적의 민간 상선을 매수하는 데 그쳤는데.”

“이름이?”

“빌바오 왕국 국적의 레마리오호, 그리고 시실리의 안토니오호. 뭐, 탈 일이 없는 게 최고겠지만, 혹여나 오인 사격하지 않게 미리 말해 달라고 연대장께서 부탁하더군.”

“…그걸 그렇게 늦게 말하면 어떡하냐……. 함 제원은?”

“하나는 12문 250톤급 프류트, 다른 하나는 24문 700톤급 인디아맨. 어차피 인근 안전지대로 가는 용도이니, 꾹꾹 욱여넣는다는 전제하에 경보병 연대 하나는 수용할 수 있을 거네. 상황이 틀어지면 FNS 에마뉘엘 그루시를 비롯한 고속함 전대가 지원 올 거고.”

“소함대 블랙에 전해 주지. 하켄 공국에서 기함 HMS 블뤼허가 대기 중이니까, 연락이 어렵지는 않을걸세.”

알렉스의 말에, 베르티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대로변도 상태가 좋지 않군. 말만 대로변이지 오를레앙 골목길만도 못하고.”

마차 네 대가 나란히 지나가기도 힘든 길이 대로변이었다. 그마저도 너비가 불규칙해, 어떤 곳에서는 확 넓어지고 어떤 곳에서는 확 좁아지는 바람에 병목 현상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지금에서야 어떻게든 이동할 수 있겠지만, 만약 상황이 급변하면 쉽게 길이 막혀 버리고 말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알렉스를 비롯한 모두에게 중요 사항이었다. 왜냐하면, 앞으로 일주일 뒤에 ‘급변 사태’를 만들 것이기 때문이니까. 높은 확률로.

“일단 식사나 하러 가지. 경매장이 잘 보이는 레스토랑이 하나 있던데.”

그 말에, 알렉스와 스워포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베른 시의 랜드마크나 다름없는 경매장 인근에 접어들자, 마치 다른 도시에 온 듯 분위기가 바뀌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홍등과 청등에 뒤덮여 있던 거리도 한결 고급스럽고 차분해졌다. 마치 제국 수도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단지 다른 점이라면…….

“무장이 잘 되어 있군.”

알렉스는 한 상가의 쇼윈도를 바라보며, 그리고 그 쇼윈도에 비친 경매장의 정문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회색 조의 통일된 제복을 입고, 통일된 플린트락 머스킷을 들고 있는 용병들의 모습은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제대로 훈련은 못 받았더라도, 보급은 제대로 되고 있는 상태라는 뜻이었으니까.

세 사람은 이내 한 레스토랑에 다다랐다.

“미셸이네. 세 사람 예약했는데.”

“어서 오십시오, 신사분들. 2층 온실로 안내하겠습니다.”

종업원은 고개를 숙인 뒤 세 사람을 이끌고 2층의 라운지로 향했다. 수정처럼 투명한 유리 공간에는 최소한의 촛불만이 켜져 있었다. 그 덕분에 훨씬 화려하고 밝은 경매장과 그 주위의 야경을 즐길 수 있었다.

세 사람이 자리에 앉자, 종업원이 다가왔다.

“오늘 저녁 코스의 메인 요리는 연어와 송아지 안심, 둘 중 하나를 고르시면 됩니다.”

그러자 미셸이 종업원을 향해 말했다.

“연어 하나, 송아지 안심 둘. 송아지 하나는 베이스팅 과정에서 향신료 없이 가능한가?”

“가능합니다. 와인은 어떻게 준비해 드릴까요?”

“건조하고 쓴 것이 삶이지만, 그래도 끝 맛은 달았으면 좋겠군.”

“딱 맞는 와인 하나가 있습니다. 준비하겠습니다. 기다리시는 동안, 테이블 위에 올려진 오페라글라스로 오베른의 야경을 즐기시길 권합니다.”

베르티에의 주문이 끝나자, 종업원은 그대로 고개를 숙이고 주문을 전달하려 물러났다. 그러자 베르티에와 알렉스는 손을 뻗어 오페라글라스를 집어 들고 경매장과 그 주변을 훑어봤다.

“제국군 플린트락 머스킷과 같군. 스워포드, 뭐 짐작 가는 거 있어?”

“라이센스 생산권이 프룬츠베르크 공국에도 팔렸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0만 정 계약이고, 올해 중순에 초도 분이 생산된 거로 아는데… 벌써 다 찍어 내고 재고가 남았을 리는 없겠지요.”

“…프룬츠베르크에 알리지 않았던 게 다행이군. 정보가 새어 나갔을 거야. 지금도 안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알렉스는 잠시 오페라글라스를 눈에서 떼며 베르티에를 향해 말을 이었다.

“계획안 하나는 날아갔네. 대낮에 압도적인 무력으로 빠르게 돌파해 목표만 확보하고 이탈한다는 건, 상대도 충격군에 준한다 가정하고 계획을 수립해야 해.”

그러자 베르티에도 오페라글라스를 눈에서 거두며 씁쓸하게 웃어 보였다.

“우리 쪽에서 무리하게 주장하는 작전안이긴 했는데, 역시나 이번에도 라이플맨이 주인공이 되는구만.”

“언제는 안 그랬고. 테네트, 휘고몽, 라에상트, 디크렌 삼림지대…….”

“그리고 호더빌까지. 자네들의 힘은 잘 알지. 뭐, 그래서 이번 안건을 강력하게 주장했던 거고.”

베르티에가 빈 와인 잔을 집어 들자, 때마침 다가와 와인을 개봉한 소믈리에가 그의 잔에 천천히 와인을 따라 주었다. 알렉스와 스워포드의 잔에도 따라 와인을 따라 주는 사이, 그는 와인을 어르고 달래듯 천천히 잔을 돌리고 색을 관찰한 뒤 향을 맡았다.

“…좋은 와인이군. 어디서 구할 수 있지?”

“와인을 아시는 신사분이시군요. 이 업장에 있는 것은 이 한 병이 다지만, 연말에 펼쳐지는 경매에서라면 구하실 수 있을 겁니다.”

소믈리에는 그렇게 말하며 품속에서 화려한 편지 봉투를 하나 건넸다. 경매장의 초대장과 같은 봉투였지만, 내용물은 전혀 달랐다. 베르티에가 그 편지 봉투를 건네받자, 소믈리에는 살짝 고개를 숙이며 낮은 목소리로 인사했다.

“행운을, 그리고… 무운을 빌겠습니다.”

소믈리에가 와인 병을 내려놓고 물러나자, 알렉스는 소믈리에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안드레이와 비슷한, 약간의 절룩거림이 발걸음에 묻어 나왔다.

“…자네 부하인가?”

“현역으로 복무하기는 힘들었지. 그래도 동료의 복수에 힘을 보태고 싶다 하더군. 자네도 안면이 있을 텐데. 호더빌에 있었으니. 이 와인과 마찬가지로.”

베르티에의 말에, 알렉스는 고개를 끄덕인 뒤 잔을 들어 보였다. 호더빌에서 왔다는 이야기를 듣자, 와인의 붉은색이 다르게 보였다. 피로 물든 해자의 물을 잔에 담은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잠시 그 와인을 뚫어져라 쳐다본 알렉스는 다른 사람들처럼 향을 맡는 시늉을 했다. 어차피 그에게는 와인보다 럼이나 맥주가 더 익숙했다. 잠시 코를 가져다 댄 알렉스는 잔을 살짝 들어 보이며 두 사람에게 제안했다.

“건배라도 할까.”

“좋습니다.”

“좋네.”

세 사람이 잔을 들자, 알렉스는 베르티에를 향해 눈짓했다. 그러자 베르티에는 잔을 앞으로 뻗으며 건배사를 읊조렸다.

“건조하고 씁쓸한 삶이나, 그 끝은 달콤하길.”

“건배.”

세 사람의 손에 들린 와인 잔이 서로 부딪치며 맑은 소리를 냈다. 그 뒤로,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듯 곧바로 식사가 나왔다.

그들은 마치 진정으로 이 도시의 유흥을 탐닉하기 위해 온 젊은이들처럼 와인을 퍼마셨다. 그렇게 네댓 병의 와인을 비우고 얼굴이 약간 붉어졌을 때쯤 식사를 마친 셋은 취한 듯 외투를 벗어 팔에 걸친 채 거리를 돌아다녔다. 외투에 가려져 있던 그들의 무기가 드러났지만, 거리의 그 누구도 이상하다는 듯 셋을 바라보지 않았다.

여기는 제국의 수도도, 프랑크 왕국의 수도도 아닌 주인 없는 무법과 향락의 도시 오베른이었으니까. 권총과 검을 걸친 사내들쯤이야 거리에 널리고 널렸다. 오히려 무기를 내보였기에, 그들은 소매치기나 호객 행위에 발길을 붙들리지 않고 걸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그 누구의 의심도 받지 않으며 오베른의 거리를 눈에 익혀 가는 찰나, 알렉스의 눈에 한 보석상이 보였다.

꽤 그럴듯한 보석상의 쇼윈도에는 낯익은 모양의 목걸이 하나가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그 화려함을 선보이고 있었다. 좀 더 찬찬히 살펴보자, 사소한 부분만이 다른, 그러나 저번에 보았던 베른하르트제 목걸이와 빼닮은 복제품임을 알 수 있었다.

“…그때의 목걸이군요.”

스워포드도 알아본 건지, 알렉스 옆에 다가와 질문했다.

“뭐, 고백하신 겁니까?”

“어떤 답을 원하는 거냐? 팩이랑 내기했다며. 월급 반 토막 내기.”

“제 성 아시잖습니까, 5파운드쯤이야 푼돈이라는 것도. 물론 월급 반 토막은 뼈 아프긴 하지만.”

“그렇긴 하지.”

알렉스는 머릿속에서 아델라인의 목에 저 목걸이를 걸어 봤다. 물론 얼굴이 되니 목걸이도 제 몫은 할 테지만, 그래도 아델라인과 꼭 맞는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뭐, 사 드리게요? 우편 배송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겠네요.”

“…아니.”

알렉스는 고개를 살짝 돌려 그 옆을 바라봤다. 옆에는 아델라인의 눈동자와 꼭 닮은 하늘색의 아쿠아마린이 펜던트 톱으로 달려 있는 펜던트가 있었다. 비록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은 옆에 있는 모조품보다 부족했지만, 아델라인에게는 더 어울릴법한 목걸이였다.

“저게 마음에 드네.”

“그렇다면야. 잠시만 기다리십쇼.”

스워포드는 보석상 안으로 걸어 들어가려는 알렉스를 잠시 멈춰 세운 뒤 대신 보석상 안으로 들어갔다.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스워포드는 손에 푸른색의 보석함을 든 채 밖으로 나왔다. 알렉스가 당황한 표정을 짓자, 스워포드는 예상했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보석함을 건넸다.

“갈 때 아무 선물도 안 들고 갈 겁니까? 기껏 트레포드까지 나와서 배웅했는데, 이 정도 선물은 챙겨 가셔야죠.”

“얼마였냐.”

“글쎄요.”

스워포드는 캄캄한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중대장님이 먼저 떠난 대원들 가족 챙겨 주신 것보다 비싸겠습니까.”

“…….”

“이제 슬슬 자기 챙길 때 되었지요, 중대장님도. 공작가로 장가갈 때 지참금으로 만 파운드도 못 챙겨 가면 장인어른한테 구박받지 않겠습니까? 이 정도는 제가 내겠습니다.”

스워포드가 다시 한번 알렉스에게 보석함을 건네자, 알렉스는 혀를 차며 보석함을 받아들었다. 그 보석함을 주머니에 넣고 신중히 입구 단추까지 잠근 그는 스워포드를 향해 씨익 미소 지으며 질문했다.

“그렇게 말하니, 축의금은 기대해도 되는 거겠지? 스틸웰 가문 삼남?”

“젠장. 틈만 보이면 등골 빨아먹으려고.”

“어이, 자네들 언제까지 거기 있을 건가! 마차에 늦는다고!”

“간다! 가!”

알렉스는 먼저 앞서 나간 베르티에를 향해 외친 뒤, 스워포드와 함께 그를 향해 뛰었다. 그러나 알렉스의 한쪽 손은, 단추까지 잠근 같은 쪽 주머니의 입구를 단단히 덮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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