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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엑스트라는 생각보다 대단했다-93화 (93/200)

93화 라이플맨을 찾아서

귀가 먹먹해질 정도였다. 병장기가 서로 맞부딪히며 내는 소리, 고참 병사와 간부들이 내는 고함, 군악대가 내는 악기 소리며 군인들이 행진하며 부르는 군가 소리. 또 누구는 백파이프를 부는지, 아주 고막을 찢어 놓을 기세였다.

아델라인은 자신도 모르게 점차 정신이 혼미해지는 걸 느끼며 안드레이의 손목을 잡은 손에서 힘을 풀고 말았다.

그때, 안드레이가 아델라인을 콱 잡아당기며 그녀의 귀에 대고 외쳤다.

“정신 차리십쇼! 여기서 놓치면 찾기도 힘듭니다!”

“아, 어! 응!”

아델라인은 급히 정신을 차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이리 둘러봐도 저리 둘러봐도, 알렉스와 같은 제복을 입은 사람은 찾기 힘들었다.

“라이플맨이 안 보이잖아!!”

“파견 군단 인원이 약 3만이라면서요! 1대대 인원이 500 될까 말까인데 거기에 파견 중대 100 끼얹어도 전체 인원의 2퍼센트입니다! 안 보이는 게 당연하죠! 애초에 도착이나 했을는지!”

2퍼센트라. 아니 어찌된 게, 이 많은 군인 사이에서 라이플맨 비율이 맥주 도수보다 낮은 거지. 아니, 그래도 생각해 보면 랜덤 뽑기 게임에서 좋은 아이템을 뽑을 확률보단 높은가. 그래,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가챠 확률보단 높다.

아델라인은 그 2퍼센트의 확률을 떠올리며 눈을 크게 뜨고 주변을 둘러봤다. 그때, 군인을 상대로 간식을 파는 노점 앞에서 볶은 땅콩을 한 바가지 사는 진녹색 제복의 병사가 보였다.

“안드레이!”

아델라인이 안드레이의 팔을 잡아당기며 손가락으로 그 방향을 가리키자, 안드레이는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도 라이플맨 복장의 병사를 발견했는지, 아델라인을 한번 바라보고는 그 병사를 향해 다가갔다.

“일병.”

“일병 케빈 오브라이언!”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급히 뒤를 돌아보며 관등 성명을 외친 병사는 안드레이를 보고는 살짝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정장을 입고, 한 손에는 척 봐도 귀족 영애인듯한 여인의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은 안드레이가 어디 귀족 양반이라도 되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라이플여단 1대대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지?”

“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병사는 앞장서 길을 안내해, 한 대형 여관 앞에 멈춰 섰다. 여관 하나를 통째로 쓰는지, 문 앞에는 두 명의 병사가 보초를 서고 있었다.

그리고 두 명 중 병장 계급장을 달고 있는 한 명은 안드레이를 보더니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손을 뻗어 아델라인과 안드레이를 멈춰 세웠다.

“정지, 무슨 용건으로 오셨습니까.”

“무슨 용건으로 오긴, 오랜만에 1대대 얼굴 구경이나 하러 왔지.”

아델라인의 손을 놓으며, 안드레이가 입을 열었다. 병장 라이플맨은 그제야 안드레이를 알아본 듯 놀란 표정을 지은 뒤 거수경례를 했다.

“충성! 오랜만입니다, 레이크 하사님.”

“쉬어, 이제는 뭐 군인도 아닌데. 그러고 보니 병장 달았네? 내가 있을 때는 한 번 진급 누락되더니.”

“뭐, 공부 조금 더 해서 그다음 진급 심사 때 붙었지요. 옆에 있는 분은? 와이프분이십니까?”

“매닝햄 대위에게 죽고 싶냐? 로피츠 여사이시다. 공녀님, 이쪽은 데이먼 병장입니다. 베테랑이지요.”

“좋은 오전이에요, 병장.”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여사님. 혹시 방문 목적을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아, 파견 중대의 알렉스 매닝햄 대위를 만나러 왔어요.”

“아, 파견 중대면… 오늘 도착하기로 되어 있는데, 지금 트레포드 인근의 교통이 완전 정체 상태여서 좀 늦어지실 겁니다. 안에서 기다리실 수 있는지 대대장님께 여쭤보겠습니다.”

병장 라이플맨이 케빈에게 눈짓하자, 한 손에 볶음 땅콩 봉투를 든 그는 빠르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뒤. 여관 문을 열고 나온 그는 두 사람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대대장님께서 들어오셔도 좋다고 하셨습니다.”

허락과 함께 아델라인과 안드레이는 여관 안으로 들어갔다. 복작복작. 분명 밖에서 봤을 때는 좀 커 보였는데, 안으로 들어와 보니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안 보이던 라이플맨들이 다 여기 있었구나.”

“이쪽으로 따라오십시오. 대대장님께서 만나 뵙고 싶어 하십니다.”

“아, 알겠어요.”

아델라인은 안드레이와 함께 케빈의 인도에 따라 계단을 올라갔다. 4층 정도 올라가 복도 끝 방을 열자, 가장 크고 좋은 스위트룸에 차려진 사무실이 보였다.

“일병 케빈 오브라이언, 민간인 두 명 안내했습니다.”

“들여보내.”

안에서 묵직한 목소리로 허락이 떨어지자, 아델라인은 안드레이와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아델라인이 안으로 걸음을 옮기자, 스위트룸 내부가 한눈에 담겼다.

나무 상자로 만든 의자와 책상에서 업무를 처리하는 행정병, 바로 옆에 있는 침대에서 안대를 쓰고 눈을 붙이고 있는 대원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 방에 있는 테이블에 엎드려 잠시 눈을 붙이고 있는 이의 어깨를… 맞은편에서 서류를 읽던 중위가 직접 흔들어 깨웠다.

“대대장님, 일어나십시오. 손님입니다.”

“손님……?”

“방금 대대장님께서 들여보내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내가 그랬나… 그래서 누구라고? 한 놈은 알겠다만, 다른 쪽은 초면인데.”

1대대장, 아서 스튜어트 대령이 잠이 다 깨지 않은 건지 하품과 함께 눈을 끔뻑이며 아델라인과 그 뒤에 있는 안드레이를 바라봤다. 그러자 아델라인은 양쪽 치맛자락을 잡으며 고개를 숙여 공손히 인사했다.

“아델라인 폰 로피츠입니다.”

“아, 여사님이셨군. 씨독! 차 좀 타 와라. 잔은… 너도 마실 거냐?”

“저는 바람 좀 쐬고 오겠습니다. 이야기 나누시지요.”

“그려.”

중위가 자리를 비우고, 그가 앉았던 자리의 옆에 의자를 하나 더 끌어와 두 사람이 앉았다. 그러자 곧 우락부락한 체격에 목덜미에 문신이 있는 대원이 다가와 찻주전자와 잔을 내려놓았다.

잔에 차를 따르고 한 모금씩 마시자,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서 대령도 마찬가지였는지, 방금까지 흐리멍덩하던 눈이 다시 빛을 발했다.

“아, 방금은 미안했네. 요즘 일이 많아서 피곤하단 말이야. 레이크 하사는 오랜만이고.”

“오랜만에 뵙습니다, 대대장님.”

“그려. 그나저나 의장 각하의 외동딸께서 머나먼 트레포드 항까지는 무슨 일로 오셨는지.”

대령의 질문에, 아델라인은 솔직하게 답했다.

“알렉스 매닝햄 대위를 만나러 왔습니다. 혹시 어디에 있는지…….”

“아직 매닝햄 대위는 도착하지 않았네. 아마 거의 다 왔을 거로 생각하지만, 연합 훈련 출발 때는 역시 트레포드 항 주변이 꽉 막힌단 말이지. 이것마저 훈련이라지만.”

“그런가요…….”

“무슨 이유로 왔는지 물어도 되겠나?”

그러자 아델라인은 잠시 우물쭈물하며 찻잔을 바라봤다. 그러다 결심이 선 듯, 그동안 몸에서 떨어트려 놓지 않은 알렉스의 마지막 편지를 건넸다.

편지를 받은 대령의 눈은 내용을 쭉 읽어 내려가더니, 한 지점에서 멈췄다. 잠시 그 부분을 뚫어져라 바라본 대령은 방금 차를 타 준 대원에게 다가가 그 편지를 보여 줬다.

그 대원도 잠시 편지를 읽은 뒤, 믿지 못하겠다는 듯 얼굴을 편지에 들이댔다.

“…그 양반이 ‘사랑하는’이라는 표현을 쓸 줄 아는 인간이었습니까?”

“그런가 본데?”

“미친.”

그는 현실을 부정하듯 자신의 눈을 비빈 뒤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대령을 바라봤다. 스튜어트 대령은 고이 편지를 접은 뒤 아델라인에게 편지를 돌려주었다.

“방을 안내해 줄 테니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게. 대위를 불러오겠네.”

“누가 불러옵니까?”

씨독의 물음에, 스튜어트 대령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씨독을 바라봤다.

“이 짬에 내가 가리? 그러고 보니까 사령부에서 우회경로 안내하라고 했는데. 좀 갔다 와라.”

* * *

“헉, 헉, 헉.”

“속도 높여라, 중위. 기본은 해야지.”

호흡 한 번 흐트러지지 않고 가볍게 달리는 알렉스와 그 뒤로 숨을 몰아쉬며 허겁지겁 휘청거리며 달리는 베르티에.

경기병에서 파생되어 많은 시간을 말을 타고 달리는 볼티져와 그런 거 없이 두 발로 전장을 누비는 라이플맨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사람과 사물들을 물 흐르듯 지나치고 넘나드는 알렉스의 뒤를 비틀거리며 따라가고 있는 베르티에의 입에서는 벌써 단내가 풍기고 있었다. 한 시간이었다. 한 시간을 내리 뛰는 데도 알렉스는 전혀 지친 기색이 없었다.

어느새 그들은 제국군이 가득 들어차 있는 트레포드 시내로 접어들었다. 반평생을 전장에서 살아오며 제국을 적으로 맞서는 프랑크 왕국의 군인이었던 베르티에에게는 생소한 경험이었다. 그가 촌뜨기라도 된 것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알렉스는 잠시 멈춰 선 뒤 베르티에를 향해 말했다.

“미첼 중위. 무슨 문제 있나?”

“아, 아닙니다.”

“다 왔다. 숨 좀 돌리고 있어.”

알렉스의 말에, 베르티에는 간신히 고개를 끄덕이며 턱에 맺힌 땀을 닦았다. 그사이 알렉스는 지도를 펼쳐 들고 주변을 살폈다.

“아, 저기네.”

알렉스는 라이플맨 두 명이 보초를 서고 있는 여관으로 베르티에를 이끌고 다가갔다. 그러자 라이플맨들도 알렉스를 알아보고는 손을 들어 경례했다.

“충성. 대대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4층 복도 끝 스위트룸입니다.”

“그래, 고생하고.”

간단한 검문 절차도 없이 물 흐르듯 통과가 이뤄졌다. 여관 안으로 들어가 알렉스를 알아보는 대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4층으로 올라가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아서 대령이 두 사람을 맞았다.

“충성!”

“충성. 오랜만이네, 매닝햄 대위. 그리고… 미첼 중위. 중령만큼 짬을 먹었다고 해도 경례는 제대로 해야지. 손바닥이 제대로 보이도록.”

두 사람의 경례를 받은 아서 대령은 프랑크 왕국의 제식이 무심코 나와 버린 베르티에를 향해 가볍게 지적했다. 베르티에가 뒤늦게 살짝만 내보였던 오른손을 확 뒤집어 바로잡자, 아서 대령은 고개를 끄덕이며 지시를 내렸다.

“좋네. 대위는 3층 301호로 가서 짐 먼저 풀고 있게, 자네 방일세. 미첼 중위는 잠시 이야기 좀 하지.”

“알겠습니다.”

알렉스는 별다른 생각 없이 대령의 지시를 따랐다. 어깨를 짓누르고 있던 배낭과 장비는 한 손에 대충 들고 계단을 내려가 301호로 향했다.

찰칵.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자 가장 먼저 그를 맞은 건 솔잎의 상쾌한 향이었다. 솔잎차의 향이 그의 코를 간질였다. 그 향에 이끌리듯, 알렉스는 눈을 살짝 감은 채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왠지 이 향을 맡으면, 아델라인과 함께 했던 시간이 떠올랐다.

잠시 그 추억들을 되짚은 알렉스는 라이플을 벽면에 기대어 놓은 뒤 방 안을 둘러봤다. 한 가지만 빼면 다른 여관방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잠시 뒤, 그의 시선이 한 방향에 멈춰 섰다. 한 시간을 쉬지 않고 뛰어도 차분하던 심장은 뒤늦게 쿵쾅거리고 있었다. 우뚝 서서, 제 눈앞에 있는 존재를 바라보며. 알렉스는 다시 한번 자신이 본 것들을 되짚어 봤다.

침대, 옷장, 테이블, 한 쌍의 의자.

그리고 그 의자 중 하나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는,

찬란한 금발을 한데 모아 묶은,

맑은 하늘의 색을 눈동자에 담은,

싱그러운 장미 꽃잎을 입술에 머금은.

그 누구보다 보고 싶었던.

“…아델라인.”

사랑하는, 아델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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