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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엑스트라는 생각보다 대단했다-82화 (82/200)

82화 12살 소년병

“…괜찮아요.”

무채색의 낡은 옷을 입은 아이는 뒤로 한 걸음 물러나며 아델라인을 향해 경계의 시선을 보냈다. 아델라인의 평소 인상이 그리 살가운 편은 아닌지라, 아이는 긴장한 듯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아델라인은 아이가 뒤로 물러나며 자신을 응시하자 살짝 당황했다. 아무것도 안 했는데 경계를 하니,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때, 뒤에서 알렉스가 손을 뻗어 그 아이에게 큼지막한 눈깔사탕을 건넸다.

“…….”

뒤를 돌아보자, 알렉스도 똑같은 사탕을 입에 넣고 있는 건지, 양쪽 볼이 번갈아 가며 나왔다 들어가기를 반복했다. 그 모습을 본 아이는 여전히 경계하는 표정으로 알렉스의 손 위에 올려진 눈깔사탕을 집어 입에 넣었다. 그러자 사탕의 단맛이 경계심마저 녹였는지, 아이의 눈이 순식간에 초롱초롱하게 변했다.

알렉스와 아이는 서로를 바라보며 입 안에서 사탕을 굴렸다. 한동안 사탕을 굴리며 아이를 내려다보던 알렉스는 사탕을 문 채 아이에게 물었다.

“누구랑 왔니.”

“혀이아 와어요.”

알렉스에게는 크지 않은 사탕이었지만, 아델라인보다도 한참 작은 아이의 입에는 큰 사탕이었는지 발음이 뭉개진 채 답했다. 아델라인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알렉스는 알아들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놀러 온 거니?”

도리도리.

“형은 뭘 하러 왔니?”

“구두다끼요.”

“좋아, 네 이름은 뭐지?”

알렉스의 말에, 아이는 어느새 사탕을 입 안에서 깨 먹은 뒤 경계를 푼 얼굴로 알렉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토미요.”

“T, O, M. 톰?”

“형이나 친구들은 다 토미라 불러요. 글은 아직 몰라요.”

알렉스는 수첩과 연필을 꺼내 정보를 기록해 둔 뒤, 한쪽 무릎을 살짝 굽히며 토미를 바라봤다.

“도움이 필요하니?”

알렉스의 물음에, 토미는 잠시 알렉스와 아델라인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형이 저한테 음유 시인 노래 들으면서 기다리라고 했는데, 음유 시인이 자리를 옮겨서 저도 따라갔는데… 그런데…….”

“결국, 혼자 남게 되었다. 이거지?”

알렉스의 정리에, 토미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울먹이기 시작했다. 알렉스는 그런 토미의 손을 잡아 주며, 아델라인을 바라봤다.

“한번 찾아볼까요?”

아델라인의 물음에, 알렉스는 머리를 굴렸다. 과연 찾을 수 있는 걸까. 이 수많은 사람 사이에서?

그래도 아델라인이 해 보자고 하니, 알렉스의 마음속에서는 답이 정해졌다.

“해 보죠. 쉽진 않을 것 같지만.”

알렉스는 그리 말하며 토미의 손을 잡았다.

“자, 이제 슬슬 가 보자. 아델라인도 그쪽 손을 잡아 주시겠습니까?”

알렉스의 주문에, 아델라인도 토미의 반대쪽 손을 잡았다.

“자, 토미. 처음에 음유 시인이 있던 자리 주변에는 뭐가 있었니?”

알렉스의 물음에, 토미는 여러 단어를 무질서하게 쏟아 냈다. 턴스피트 독을 팔던 사내, 물담배를 피우던 터번 쓴 남자, 맛있는 스튜를 끓이던 아낙네 등등…….

그 단어를 선별하고 조합한 알렉스는 무언가 떠올랐는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가자, 한 번 놓치면 놓고 갈 거니까 꼭 잡고 있어라. 아델라인도 놓치면 놓고 갈 겁니다.”

알렉스의 엄포에, 토미는 알렉스와 아델라인의 손을 꼭 잡았다. 제복 입은 장교와 드레스를 입은 귀족 영애 사이에 껴 있는 헌 옷 입은 아이의 조합은 참 이상했지만, 오늘만큼은 그런 이상함마저 추수제의 복작복작한 분위기에 휘말려 흩어졌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가, 두 손이 잡힌 채 좌우로 고개가 돌아가던 토미의 시선이 한쪽에 고정되었다. 먹음직스러운 양념이 발려져 있는 닭고기 꼬치가 은은한 숯불 위에서 구워지고 있었다.

“먹고 싶냐?”

알렉스의 물음에 토미는 잠시 닭꼬치로 시선을 고정하다가 급히 고개를 휘휘 저었다. 그 모습을 본 알렉스는 아델라인을 바라보며 토미의 손을 놓았다.

“여기서 잠깐 기다리십쇼.”

토미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알렉스는 순식간에 사람들 사이를 뚫고 닭꼬치 좌판으로 향했다. 토미는 그 뒷모습을 본 뒤 아델라인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저 아저씨, 군인이에요?”

알렉스를 향한 ‘아저씨’ 호칭에 뭔가 약간은 슬퍼진 아델라인이었지만,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조금 특별하기는 하지만.”

“어떻게 특별한데요?”

“저 붉은 제복은 특별한 날에만 입는 거고. 평소에는 낡은 진녹색 제복을 입어. 능력 하나는 정말 뛰어나지.”

그 말을 들은 토미의 눈이 번뜩 떠졌다.

“라이플맨인 거예요?”

그 질문에, 아델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토미는 흥분한 듯 얼굴을 붉혔다.

“저, 저번에 불이 크게 났을 때. 그 사람들이 와서 도와줬거든요! 지하실에 갇혀 있었는데… 녹색 제복 입은 군인 아저씨들이 와서 치료도 해 주고… 멋있었어요!”

“…멋있는 사람이지. 언제나.”

아델라인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렉스를 보고 직접 멋있다고 한 것도 아닌데, 왜 제 일처럼 마음이 따듯해지는지 알 수 없었다.

아델라인이 얼굴을 붉히자, 토미는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둘이 사랑하는 사이에요?”

“뭐, 뭐?”

토미의 갑작스러운 기습에, 아델라인은 화들짝 놀라 반걸음 뒤로 물러났다. 토미는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에요?”

“…잘 모르겠어.”

아델라인이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토미의 시선을 회피하자, 이내 그의 시선은 다른 볼거리들에 이끌려 아델라인에게서 벗어났다 잠시 침묵이 이어지고, 아델라인은 토미를 향해 질문했다.

“혹시 장래 희망 같은 게 있니?”

“장래 희망이요?”

“미래에 뭐가 되고 싶다든지.”

아델라인의 물음에, 토미는 끄응, 앓는 소리를 내며 고민을 했다.

“…내년부터는 공장에 들어갈 생각이에요. 스틸웰 공업은 돈을 많이 주지만 열다섯 살 이상만 받아 주니까, 방직 공장 같은 데로 알아봐야죠.”

네댓 살밖에 안 되는 아이의 입에서 ‘공장’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아델라인은 당황하며 토미를 향해 다시 질문했다.

“아, 아니. 그런 거 말고. 꿈 같은 거.”

“꿈… 동생들 배고프지 않게 하기, 아니면 매년 한 벌씩 새 옷 입기 같은 거요? 하지만 그걸 위해서는 다른 애들처럼 돈을 벌어야 하는걸요.”

토미는 그리 말하며 잘 모르겠다는 듯 아델라인을 바라봤다. 그런 말들을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하는 토미의 모습에, 아델라인은 잠시 벙찐 표정을 지었다. 빙의 전 교과서에서나 보던 아동노동이 눈앞에 현실로 다가오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때, 알렉스가 양손에 닭꼬치 세 개를 나눠 들고 나타났다.

“하나씩 먹어요.”

알렉스의 말에, 잠시 생각을 멈춘 아델라인은 그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러나 토미는 손을 뻗다가도 살짝 주저하며 알렉스를 바라봤다.

“추수절이잖냐. 이런 날에 배곯으면 더 서럽다. 받아.”

경험에서 우러나오는듯한 알렉스의 말에, 토미는 손을 뻗어 닭꼬치를 집어 든 뒤 한입 베어 물었다. 그러나 꼬치에 뿌려진 후추의 자극이 강했던 건지, 눈물이 핑 돌고 말았다. 그걸 본 아델라인은 급하게 토미의 손을 놓고 주변을 둘러본 뒤, 음료수를 파는 좌판으로 향했다.

“마, 마실 걸 사서 올게요!”

알렉스가 말리기도 전에 떠나 버린 아델라인의 뒷모습을 보며, 알렉스는 할 수 없이 꼬치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알렉스가 느끼기에도 강한 후추 향. 당연히 이런 가난한 집의 아이들이 접하기엔 너무 낯설고 자극적일 것이다.

“…라이플맨은 어떻게 되는 거예요?”

토미의 물음에, 알렉스는 입 안에 있는 고기를 삼킨 뒤 물었다.

“왜, 라이플맨이 되고 싶냐?”

끄덕.

“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잖아요. 돈도 많이 받고.”

“난 추천하지 않는다. 총을 잡지 않는 게 최고야. 군인이 되는 건 최악의 결정이고.”

알렉스는 그렇게 말하며 또 한 번 닭꼬치를 입에 물었다.

“그래도 군인이 되면 배고플 일은 없을 거 아니에요. 고기랑 술도 매일 나온다는데.”

“…그래. 한때는 그런 조건을 위해 군인이 되었지. 한 열두 살쯤이었나.”

그 말에, 토미는 의외라는 듯 알렉스를 바라봤다. 멀끔한 장교 제복에, 귀족 영애로 보이는 미인까지 옆에 데리고 다니는 알렉스가 소년병 출신이었다는 게 상상이 안 가는 듯했다.

그 시선을 받아치며, 알렉스는 토미에게 물었다.

“나는 뭐, 처음부터 라이플맨이었을 줄 알았냐?”

“…….”

“내가 열두 살일 때, 나는 착검한 머스킷보다 키가 한참 작아서, 대신 북을 지고 전장에 뛰어들었어야 했어. 그나마 그 짓거리도 아버지도 군인이었으니 가능했던 거지만.”

알렉스는 그렇게 말하며 토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랑 같은 처지였던 소년병이 연대에 스물셋이었는데, 열다섯 살이 되니까 이리저리 죽고 흩어져서 나 혼자 남더라. 그때부터 북이 아니라 총을 손에 쥐게 되었고…….”

알렉스는 한숨을 푹 쉬며 헛웃음을 내뱉었다.

“…내가 애를 앞에 두고 무슨 말을 하는지.”

알렉스는 그렇게 말하며 얼마 남지 않은 닭꼬치를 다 먹고는 옆에 있던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깔끔하게 꼬치가 쓰레기통 안에 들어간 걸 본 그는 토미를 향해 나지막이 속삭였다.

“아무튼. 방금 이야기는 비밀이다. 저기 저 누나한테는 특히.”

아델라인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키며 말하자, 토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때마침 아델라인이 양손으로 힘겹게 잔 세 개를 가져오고 있었다.

“자, 포도 주스! 머그잔은 다시 돌려줘야 해요.”

아델라인이 가져온 잔을 받아든 두 사람은 달콤한 포도 주스를 쭉 들이켰다. 이 중 대부분은 물과 설탕이겠지만, 뭐 어떠랴. 맛만 있으면 됐지.

닭꼬치와 포도 주스를 해치운 세 사람은 머그잔을 반납한 뒤 복작거리는 길거리를 걸어 나갔다. 그러자 어느새 그들은 사람들이 빼곡한 중심부에 들어와 있었다.

“여기가 맞아요?”

아델라인이 물었지만, 알렉스는 입을 다문 채 주위를 둘러봤다. 철창 안에 가둬진 채 팔리기를 기다리고 있는 턴스피트 도그. 그 옆에서 이국적인 문양의 천을 늘어놓은 채 물담배를 피우는 터번 쓴 남자.

그리고… 그 근처에서 어깨에 구두닦이 도구 통을 멘 채 이리저리 두리번거리고 있는 일고여덟 정도 되는 어린아이. 토미와 닮은 듯한 얼굴에, 알렉스는 그 아이에게 시선을 쭉 보냈다.

한순간, 그 아이와 알렉스가, 그리고 곧바로 알렉스와 아델라인의 손을 잡고 있는 토미와 눈이 마주쳤다.

“토미!!”

아이는 허겁지겁 토미를 향해 뛰어왔다. 그동안 얼마나 찾아다녔던 건지, 이 시원한 날씨에도 앞머리가 땀에 젖어 이마에 붙어 있었다.

“형!”

“이 멍청아! 어딜 그렇게 쏘다닌 거야!”

형은 그렇게 말하며 토미의 머리에 꿀밤을 먹인 뒤, 알렉스와 아델라인을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알렉스는 그 감사 인사가 살짝 낯선 건지 시선을 슬쩍 피했다. 그리고 아델라인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형에게 말했다.

“길이 엇갈리지 않아서 다행이구나. 이름이 뭐니?”

“미첼이라고 해요. 동생을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야. 말도 잘 들어서 어렵지 않았어.”

아델라인은 어깨에 무거워 보이는 공구 통을 멘 미첼을 바라봤다. 도움을 주고 싶었다. 모처럼 모두가 풍요로움을 즐기는 추수제 아닌가.

그러나 적선하듯이 주는 건 옳지 않을 것 같았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아이에게 무작정 돈을 쥐여 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때, 아델라인의 머릿속에서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아, 알렉스! 그러고 보니 구두가 더러워졌네요.”

아델라인의 살짝 호들갑 섞인 말에, 알렉스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구두를 내려다봤다. 물론 돌아다니느라 먼지가 묻긴 했지만, 이 정도로 호들갑 떨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알렉스가 반응하기도 전에 재빠르게 실수인 척 알렉스의 구두를 밟아 흙먼지를 묻힌 아델라인은 미첼을 바라보며 물었다.

“혹시 구두를 닦아 줄 수 있겠니? 빨리 닦아 준다면 팁은 넉넉히 줄게.”

그러자 미첼은 알렉스를 바라봤다. 그는 아델라인의 시선을 받은 뒤, 고개를 끄덕였다.

“빨리 해 주면 고맙겠구나.”

“네, 알겠습니다!”

미첼은 공구 통을 눕혀 알렉스의 발이 올라갈 자리를 만든 뒤, 서둘러서 솔과 천, 구두약 등을 꺼내 알렉스의 구두를 닦기 시작했다. 알렉스의 부탁대로, 그의 구두는 순식간에 제 광채를 되찾았다.

“1실링입니다!”

“여기. 그럼, 좋은 추수절 되렴.”

“좋은 추수절 되세요!”

미첼이 손을 내밀자, 아델라인은 가방에서 값을 치를 돈을 꺼내 미첼의 손 위에 내려놓은 뒤 곧바로 알렉스의 손을 잡고 반대편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미첼은 아델라인과 알렉스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한 뒤, 고개를 들며 손에 들어온 돈을 확인했다. 그때, 으레 그랬듯 그를 반기는 은화가 아니라 번쩍번쩍한 파운드 금화에 미첼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소, 손님! 손님!!”

미첼이 알렉스와 아델라인을 찾으며 외쳤지만, 이미 그 둘은 사람들 사이로 숨어들어 간 지 오래였다. 결국, 미첼은 그 금화를 소중히 주머니에 넣으며 중얼거렸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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