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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엑스트라는 생각보다 대단했다-81화 (81/200)

81화 수수께끼의 정답

추수제 의식은 길지 않았다. 사제가 기도하고, 올해 추수한 과일과 곡식을 불사르며 다음 해의 풍요를 기원하는 의식이었다.

당연히 곧바로 오찬을 겸한 연회가 시작되었고, 알현 장은 순식간에 연회장으로 변했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다시 수다를 떨기 시작했고, 악단이 연주하는 곡은 그 대화 소리 위로 얹어졌다.

알렉스는 잠시 지켜본 뒤, 아델라인의 손을 잡고 물었다.

“자, 이제 우리는 슬슬 빠져나가 볼까요?”

“지금이요?”

아델라인의 물음에, 알렉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일찍 나가는 게 아닐까… 싶었지만, 이내 아델라인은 고개를 끄덕인 뒤 알렉스의 손을 맞잡았다.

아델라인의 동의를 구한 알렉스는 스윽 사람들의 위치를 파악한 뒤 그들을 가림막 삼아 유유히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입구에 서서 기다리고 있던 나이아가 손을 살짝 들어 보였다.

“여기에요.”

“아, 나이아. 기다리고 있었어?”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았는데요. 여기, 2파운드에요.”

나이아는 그렇게 말하며 조그마한 크로스백을 건넸다. 아델라인이 그 가방을 건네받자, 생각보다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안을 열어 보자, 크로스백 안쪽의 조그만 주머니에 고이 담겨 있는 파운드 금화 하나와 조그만 천 주머니에 담긴 실링 은화, 그리고 상대적으로 큰 주머니에 담긴 페니 동전이 눈에 들어왔다.

“잔돈을 쓰실 일이 적지 않을 거예요. 만약 페니가 다 떨어지면 은화로 값을 치르고 잔돈은 받지 마세요. 금화는 되도록 보여 주지도 마시고요.”

“알겠어.”

아델라인은 미소를 지으며 크로스백의 무게를 어림해 봤다. 하도 수십, 수백 파운드가 들어오고 나가는 장부들을 보다 보니 2파운드면 큰돈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직접 들고 다녀 보니 마치 부자라도 된 듯싶었다.

“그럼, 다녀올게.”

“다녀오세요. 저는 말씀하신 대로 구호소에 가서 상황 살피고 올게요.”

나이아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하곤 기다리고 있는 마차를 향해 걸어갔다. 알렉스는 그 뒷모습을 보며 아델라인에게 말했다.

“월급은 제대로 챙겨 주시고 있는 것 맞죠?”

“절 뭐로 보고. 식비도 청구 안 하고 월급도 하루에 10실링씩 쳐서 주거든요? 그러니까 걱정 안 해도 된다고요.”

아델라인의 말에, 알렉스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렉스와 비교하면 한참 적은 월급이지만, 소위 월급만큼 받는다, 하니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식비나 장구류 비용을 대느라 가랑이 찢어지는 소위보다 훨씬 나은 대우였다.

“슬슬 움직이죠. 부지런히 가지 않으면 한참 기다려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디를 가는 건데요?”

아델라인이 물었지만, 알렉스는 장난스러운 미소와 함께 자신의 입술에 검지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할 수 없이 아델라인은 알렉스의 손을 잡은 채 거리를 거닐었다. 얼마 정도 걸었을까, 아델라인은 문득 주변을 감싸는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 걸 느꼈다.

귀로는 가식 없는 밝은 웃음과 대화가 들려왔고, 코로는 갓 구운 빵의 고소한 냄새가 느껴졌다. 갓 구운 빵에서만 나오는, 저절로 눈을 감게 만드는 고소함이 코를 간질였다.

아델라인은 그제야 감을 잡은 듯 눈을 번쩍 떴다.

“설마…….”

“아직은 아닙니다. 더 가도록 하죠.”

알렉스는 그리 말하며 아델라인의 손을 잡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자 주위에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기 시작했다. 맛있는 냄새가 아델라인의 코를 현혹했고, 길가에 세워진 좌판들이 아델라인의 시선을 끌었다.

좀 더 걸어가자, 사람들과 좌판들이 빼곡히 들어찬 광장이 보였다.

주위를 둘러보자, 수많은 볼거리가 펼쳐져 있었다. 한 좌판은 남방 대륙의 상아 공예품을 다루고 있었고, 그 반대편에서는 북부의 맹수에게서 얻은 가죽으로 만든 옷들을 다루고 있었다. 그 옆을 돌아보자, 동방에서 온 듯한 사람이 고향의 요리를 선보이고 있었고 그 옆자리에서는 타코와 토르티야를 만들어 팔고 있었다.

“…여기가 정답이었군요.”

“추수제 기간이 저물면, 여기도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오니까요. 한 번 본 사람은 쉽게 맞추지만, 한 번도 못 본 사람이 떠올리기는 쉽지 않죠.”

알렉스는 그렇게 말하며 아델라인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한번 둘러볼까요? 마침 식사할 때이기도 하니, 마음에 드는 것들을 사서 먹어 보죠.”

알렉스의 제안에, 아델라인은 군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길거리 음식을 먹어 보는 게 얼마 만이던가. 물론 공작가의 요리사가 해 주는 요리들도 맛있었지만, 이런 편안하고 친숙한 느낌도 좋았다.

학교 앞 분식집에서 스티로폼 그릇에 담아 주던 떡볶이를 친구들과 맛있게 먹었던 기억. 그 기억을 떠올리자, 더욱 기대가 커졌다.

가장 처음으로는 뭘 먹어야 할까. 아델라인은 매의 눈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나 결정이 쉽지 않았다. 그때, 알렉스가 한쪽을 가리키며 아델라인에게 물었다.

“저거 먹어 볼래요?”

알렉스의 물음에, 아델라인은 고개를 돌렸다.

새하얀 증기가 모락모락 올라오는 찜기. 그걸 보자 안에 들어 있는 음식을 예상한 아델라인의 입 안에 침이 절로 고였다. 아델라인이 고인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좌판 앞에 늘어선 줄의 맨 끝에 섰다.

줄은 길었지만, 다행히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어느새 아델라인은 주문을 받는 사람 앞에 서 있었다. 동방에서 온 듯한 그 사람은 아델라인을 바라보며 아래에 있는 그림들을 가리켰다. 속 재료를 의미하는 듯, 각각 가격이 함께 적혀 있었다.

아델라인이 고민하는 표정을 짓자, 주문을 받는 사람은 손가락으로 그림판 한쪽을 가리켰다. 서투른 글씨로 삐뚤빼뚤 적혀 있는 내용은…….

[두 개씩 열두 개. 1실링]

“아……! 이걸로 할까요?”

“그러죠. 혼자 먹기에는 양이 많아서 조금 그랬는데.”

알렉스의 동의를 얻은 아델라인은 은화 하나를 건넸다. 그러자 그 남자는 어떤 꼬불꼬불한 글씨가 적혀 있는 목패를 내밀고 옆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며 무어라 말했다. 그 손가락이 가리킨 남자는 찜통에서 만두를 꺼내 종이로 만든 접시에 담아 주고 있었다.

알렉스와 아델라인은 고개를 끄덕인 뒤, 옆으로 걸어가 목패를 건넸다. 그러자 그 남자는 목패를 받은 뒤 종이 접시에 척척 여러 만두를 담아 준 뒤, 그 위에 간장을 휘이 둘러 나무젓가락과 함께 건넸다. 아델라인은 그것을 받아 든 뒤, 빈 벤치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기가 비어 있네요. 저기로 가요.”

아델라인이 걸어가자, 알렉스도 그 뒤를 따라 벤치로 향했다. 벤치에 앉은 두 사람은 자신들의 사이에 접시를 내려놓았다. 아델라인은 능숙하게 젓가락을 손에 쥐었지만, 알렉스는 젓가락이 낯선 듯 아델라인의 손을 바라보며 한참을 고생했다.

그 모습을 본 아델라인은 만두 하나를 젓가락으로 집어 들며 알렉스를 바라봤다.

“입 벌려 봐요. 아.”

“…아.”

알렉스는 아델라인의 요구에 입을 벌리며 얼굴을 붉혔다. 기분이 간질간질해지고 약간은 부끄러웠지만, 피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알렉스의 입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두가 들어갔다. 알렉스가 후후 입김을 불며 만두를 먹는 사이, 아델라인은 능숙하게 만두를 식힌 뒤 입에 넣었다. 그렇게 번갈아 가면서 만두를 하나씩 먹자, 어느새 종이 접시는 빠르게 비워졌다.

아델라인은 비어 버린 접시를 아쉬운 듯 바라봤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다른 맛있는 냄새가 아델라인의 코를 자극했다. 아델라인이 냄새를 따라 시선을 돌리자, 알렉스는 빈 접시와 나무젓가락을 옆에 있는 쓰레기통에 넣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은 많이 있으니, 천천히 돌아다니며 구경해 보죠. 볼거리도 많고 특색 있는 먹을거리가 많으니까요.”

알렉스의 말에, 아델라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손을 잡았다. 알렉스는 해맑게 미소 지으며 자신을 이끄는 아델라인을 바라봤다.

아델라인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앞으로 얼마나 남았을까. 알렉스는 몇 시간 전, 베르티에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연합 작전에 대한 조프르 원수의 승낙이 떨어졌네.”

“조프르 원수라. 이번에 새로 취임한 프랑크 왕국 군 최고사령관이었지, 아마.”

“맞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본국에서 연이어 악재가 터져 나와서 이를 반전시킬 계기가 필요했네. 그래서 생각보다 빨리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겠지.”

“지휘권까지?”

베르티에는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지금은 외교관 신분이라고 하지만, 군인으로서의 자존심이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었다.

한때 자신의 부하였던 이들이 제국군의 지시를 따라야 하는 상황은 결코 유쾌할 수 없었다. 제국군과 일선에서 싸우던 것이 그들, 볼티저 아니던가.

그런 그들이 이제 제국군의 지휘 아래 라이플맨들과 함께 한가지 목표를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니. 세상 참 앞날 모르는 일이었다.

“제국에서는 병력을 얼마나 차출할 예정인가.”

“아직 정보가 많지 않아 자세한 계획은 수립하지 못했지만, 여단 선임대대장인 스튜어트 대령이 최고 지휘관으로서, 1대대와 파견 중대가 경매장 내부로 침투할 예정이네. 보조 병력으로는 연합 훈련에 참여하는 제17 경기병 연대가 아군의 퇴출을 도울 거고.”

“여사는 알고 있나?”

베르티에의 물음에, 알렉스는 고개를 저었다. 아델라인에게는 아직 말하지 않았다.

“전부 알려 줄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니. 때가 되면 연합 훈련에 참여한다고 말할 예정이네. 두 달 반이나 남았으니까.”

“이동이나 훈련 기간 생각하면 한 달 밖에 안 남은 거 아닌가.”

베르티에의 핀잔에, 알렉스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한 달. 한 달 밖에 남지 않았다. 그 생각을 하자 가슴에 무거운 돌덩이가 얹어지는 듯했다.

알렉스의 심정을 모르는 건 아닌지, 베르티에는 몸을 돌려 알현 장 안으로 들어갔다.

“잘 생각하게. 마냥 입을 다무는 게 좋은 선택은 아닐 테니까.”

“…렉스. 알렉스!”

아델라인의 목소리에, 알렉스는 회상에서 깨어났다. 눈앞을 보자, 이국적인 도안으로 만들어진 알파카 망토의 구멍에 머리를 집어넣은 채 자신을 바라보는 아델라인이 보였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많이 피곤해요?”

아델라인의 물음에, 알렉스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나저나 그 망토는 따듯합니까?”

“조금 덥네요. 날이 좋아서 그런가.”

아델라인은 그렇게 말하며 낑낑거리며 머리를 구멍에서 뺐다. 그 와중에 아델라인의 머리에 묶인 리본이 풀려, 머리카락이 촤악 흩어졌다.

“어머!”

아델라인이 바닥에 떨어진 리본을 주우려는 찰나, 어떤 사람이 그 리본을 밟아 버리는 바람에 더러워지고 말았다. 결국, 아델라인은 리본을 포기한 뒤 어찌해야 할지 머리를 굴렸다. 알렉스에게 머리를 만져달라고 해도, 제대로 자신의 지시를 따라올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아델라인 옆에 있던 좌판을 지키던 노파도 상황을 파악한 건지, 금세 적당한 끈 하나를 건넸다.

“3펜…….”

노파가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알렉스는 값을 치른 뒤 그 끈을 받아들었다. 글자인지 문양인지 헷갈리는 도안이 배열된 끈을 손에 쥔 알렉스는 아델라인의 머리카락을 한데 모아 포니테일로 묶었다.

아델라인의 눈동자처럼 고운 하늘색의 리본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한데 모으자, 노파는 아델라인에게 보라는 듯 거울을 내밀어 머리 모양을 비춰 줬다. 서두르느라 모양이 조금 서툴기는 했지만, 그편이 알렉스다워서 좋았다.

“고마워요, 알렉스. 갑자기 거기서 리본이 풀릴 줄은 몰랐는데.”

“아닙니다. 이번 장식끈도 잘 어울리는데요 뭐. 그나저나 여기 뭐라 쓰여 있는 거지…….”

알렉스가 리본을 바라보며 중얼거리자, 노파는 알렉스에게 가까이 와 보라는 듯 손짓했다. 알렉스가 귀를 가져다 대자, 노파는 무어라 그의 귀에 중얼거렸고, 알렉스는 살짝 얼굴을 붉혔다.

“바꿔 줘?”

“아, 아닙니다… 많이 파세요.”

알렉스는 그렇게 말하며, 아델라인의 손을 잡고 좌판에서 멀어졌다. 노파의 말이 무엇이었길래 알렉스가 이리 서두르는 건지 몰랐지만, 아델라인은 순순히 알렉스를 따라 걸었다. 거리마다 사람이 넘쳐났고, 그 사람들은 분주히 각자의 목적지를 가지고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 두 사람의 눈에 한 아이가 보였다. 마치 길을 잃은 듯, 울먹거리는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네댓 살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 아델라인은 자신도 모르게 다가가 살짝 허리를 숙이며 물었다.

“혹시 길을 잃어버렸니? 도와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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