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왼 어깨
“깊게 들이쉬고, 내쉬면서.”
“스으읍… 후우우…….”
탕!!
총성이 울리고, 눈앞이 총구에서 뿜어져 나온 연기로 가려졌다. 잠시 뒤 연기가 걷히자, 저 멀리 세워 둔 표적지가 나타났다.
사람 모양의 표적지에 맞기는 했지만, 좌우로 크게 흔들렸던 건지, 표적의 오른쪽 어깨 부분에 탄흔이 남아 있었다. 상대를 잠깐 멈춰 세울 수는 있겠지만, 제압하기에는 부족한 위치였다.
알렉스는 아델라인을 바라봤다. 반동의 여파 때문인지 피스톨을 든 얇은 팔이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방아쇠를 당긴 손가락은 그대로 굳어 있었고, 얼굴은 충격으로 물들어 있었다.
알렉스가 목소리로 흉내 낸 총성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폭음이니, 이런 반응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알렉스는 바들바들 떨며 총구를 내릴 생각도 하지 못하는 아델라인의 어깨에 손을 올린 뒤 속삭였다.
“자, 침착하게, 총구부터 내리고.”
“아, 네. 네!”
알렉스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아델라인은 천천히 총구를 내리며 오른손으로 옮겨 쥐었다. 그러나 아직도 바들거리는 손을 본 알렉스는 아델라인의 손에서 피스톨을 빼내며 물었다.
“첫 사격을 해 본 소감은 어떠십니까?”
“…생각보다 총소리가 크다……?”
어쩌면 당연한 답에, 알렉스는 아델라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중요한 소감이긴 하지요. 하지만 더 중요하게 보셨으면 하는 게 있습니다.”
알렉스는 그리 말하며 아직 눈앞에 살짝 뿌옇게 남아 있는 연기를 휙휙 손으로 저어 보였다.
“흑색 화약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한다면, 무지막지한 연기가 나온다는 점입니다. 연소 반응을 위해 넣은 숯이 타면서 내는 연기지요.”
“아… 그러고 보니 연기도 꽤 많았죠.”
“그러니 만약 피스톨을 써야 할 정도로 상대가 근접한 상황이라면, 한 발자국 옆으로 피해 주세요. 맞추지 못하거나, 맞았더라도 제압을 못 했을 경우를 대비해서.”
알렉스가 피스톨을 든 채 시범을 보였지만, 아델라인은 감이 잡히지 않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시 고민을 한 알렉스는 옆에서 묵묵히 지켜보고 있던 안드레이를 바라봤다.
“안드레이, 좀 도와줄 수 있냐?”
“아고고… 뭐 시범이야 보여 드릴 수 있지요. 총검 가져왔습니까?”
“총검은 없고 단검은 있다.”
알렉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코트 안에서 단검을 꺼내 안드레이에게 검집째로 던졌다. 그걸 받아 든 안드레이는 알렉스에게 물었다.
“대략 25미터 정도면 되겠습니까?”
“그쯤 하자.”
그사이 탄약포를 뜯어 납탄만 남기고 화약을 털어 넣은 뒤 탁탁 다진 알렉스가 안드레이를 향해 말했다.
“살살 해, 다리도 안 좋을 텐데.”
“중대장님도 조심하셔야지요, 안 그렇습니까?”
안드레이는 그렇게 말하며 방금 아델라인이 맞췄던 표적 옆에 가서 섰다. 알렉스는 피스톨의 부싯돌을 당겼다.
파박!
안드레이가 달려들자, 알렉스는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자 아델라인이 방아쇠를 당겼을 때처럼, 눈앞이 연기로 가득 찼다. 시야가 가려진 상황. 알렉스는 뒤로 뺀 오른발을 축으로 삼아 몸을 옆으로 튼 뒤 피스톨의 총열을 망치처럼 움켜잡았다. 바로 그때, 연기를 뚫고 단검이 뻗어 나왔다.
연기를 뚫고 들어온 안드레이의 눈빛도, 단검을 피한 알렉스의 눈빛도 날카롭기 그지없었다. 안드레이는 옆으로 피한 알렉스를 노려보며 단검을 역수로 쥔 뒤 옆으로 휘둘렀다. 알렉스는 그런 안드레이의 공격을 피스톨로 엇걸어 막은 뒤 단검을 쥔 팔과 뒷목을 잡아 밀고 다리를 걸어 균형을 잃게 해 제압했다.
찰나에 벌어진 공방. 아델라인은 입을 떡 벌리며 두 사람을 바라봤다. 그 시선을 의식한 알렉스는 안드레이의 팔과 뒷목을 놓아주며 ‘참 쉽죠?’ 하는 표정으로 아델라인에게 말했다.
“이런 식으로 하면 됩니다.”
“저보고… 그걸 하라는…….”
“당연히 이런 걸 가르칠 생각은 없습니다, 그래도 쏘고 옆으로 피하는 것만큼은 몸에 익혀 두시면 도움이 될 겁니다.”
“아하…….”
“뭐, 그것도 이제 권총 사격에 익숙해지면 배워 나가도록 하죠.”
알렉스는 그리 말하며 새 탄약포를 뜯어 피스톨에 화약과 탄약을 재어 넣은 뒤 허리의 홀스터에 넣었다. 그때, 알렉스의 왼 어깨에서 강렬한 찌릿함이 느껴졌다.
“……!”
갑작스러운 통증에 무심코 얼굴을 찌푸리자, 아델라인은 알렉스의 표정을 보고 물었다.
“어디 아파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자. 봐봐요.”
아델라인의 걱정에, 알렉스는 괜히 왼팔을 과장되게 휙휙 돌려 보였다. 삐거덕대는 느낌이 어깨에서 느껴졌지만, 알렉스는 미소를 띠며 아델라인을 향해 말했다.
“멀쩡하죠?”
“…멀쩡해 보이네요.”
알렉스가 무리하는 걸 알았지만, 그를 따라 미소를 지어 보이며 답한 아델라인은 이내 화제를 돌렸다. 어느새 추수제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번 추수제 때는 뭐해요? 저번 사교 시즌처럼 황궁에서 진행되는 행사에 투입되나요?”
“아뇨, 어차피 친위대들이 알아서 할 테니 우리는 쉬어야지요. 맛있는 것도 먹고. 대원들 대부분이 가족들 보러 간다고 이미 휴가 써서 떠났습니다. 갈 곳 없는 저 같은 사람이 관사에 남아 있는 거죠.”
알렉스의 말에, 아델라인은 아하… 하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그를 바라봤다.
갈 곳이 없다는 건…….
“뭐, 스워포드 놈도 집에 들어가기 싫다고 남아 있을 거고, 그 이외에도 몇몇 대원들은 남아 있을 겁니다. 아예 관사를 통째로 비울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알렉스는 하하 웃음을 지으며 말했지만, 그 안에 담긴 그의 처지를 무시할 수 없었다.
돌아갈 곳이 없다는 사실. 돌아갈 가족이 없다는 사실.
아델라인은 알렉스를 올려다봤다. 그러나 뭐라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어떻게 말해야 알렉스가 속상해하지 않을까.
결국, 어찌 말해야 할지 가닥조차 잡지 못한 아델라인은 알렉스의 손을 잡아 주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아델라인의 손길을 느낀 알렉스는 자신의 손에 맴도는 온기를 살짝 강하게 잡았다. 아델라인이 혼자서 끙끙 앓는 게 느껴졌다. 무엇 때문에 이리 앓고 있는 걸까, 고민하던 알렉스는 자신의 말에서 아델라인에게 부담을 주었을 부분을 찾아냈다.
그 한마디가 자신도 모르게 아델라인에게 부담을 준 건가. 생각할수록 아델라인이 고마웠다. 자기 대신 걱정해 주고 속앓이해 주는 아델라인의 모습은 그 자체로 소중했다.
“…혼자 살아온 지 13년 정도 되었으니, 이제는 익숙합니다. 그러니 걱정 안 해 주셔도 됩니다.”
알렉스는 그렇게 말하며 아델라인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는 아델라인은 추수제 때 뭘 하실 생각인가요? 영지로 내려가시나요?”
“아뇨, 재건위원회 관련해서 할 일도 남아 있고. 또 황실에서 열리는 추수제 기념 연회에도 아버님 대신 나가야 해서요.”
“아, 공작님께서 영지로 내려가시는군요.”
“네, 그렇죠. 그래서 말인데요.”
아델라인은 알렉스를 향해 물었다.
“이번에도 파트너가 되어 주실 수 있으세요?”
“파트너요?”
“네, 사교 시즌 때처럼.”
바로 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아델라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알렉스 성격이면 분명 파트너로 가자고 했을 때 바로 받아들였을 것 같은데. 설마 다른 파트너를 구한 건가?
아델라인은 알렉스를 이상하다는 눈으로 바라봤다. 그때, 알렉스가 물었다.
“그거 분명, 낮에는 추수절 의식 같은 거 하고 오후부터 연회 하는 거 말하는 거죠?”
“네, 그렇죠? 혹시 무슨 업무 같은 거 있어요?”
아델라인의 물음에, 알렉스는 고개를 저었다.
“업무는 없고, 한 군데 데리고 가고 싶은 곳이 있는데. 오후에는 거기로 갈래요?”
알렉스가 데려 가고 싶은 곳이라니. 그 말을 듣자 그의 제안이 아주 매력적으로 들려왔다. 황실에서 주최하는 연회야 사교 시즌 때 많이 했었고, 황후랑 같은 공간에 있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더더욱 가기가 싫어졌다.
“…어디로 갈 건데요?”
“그건 지금 말해 주면 재미없죠. 한번 맞춰 봐요. 추수제가 일주일 남았으니까… 그때까지 한번 고민해 보세요.”
알렉스의 말에, 아델라인은 의문이 가득한 표정을 띠었다 대체 어디를 데려간다는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게 없었지만, 동시에 기대감도 같이 올라왔다.
“기대해도 되는 건가요?”
“물론이죠.”
“힌트는?”
“힌트는…….”
알렉스는 잠시 눈을 감고 고민한 뒤, 아델라인에게 말했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신대륙이,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동방이. 앞을 바라보면 남방 대륙의 진귀한 짐승들이, 뒤를 돌아보면 설원의 맹수들이 있는 곳. 숨을 들이쉬자 밀밭이며, 혀로 맛보자 집이라. 자, 이게 힌트예요.”
알렉스의 힌트를 듣자, 더욱 머리가 아파져 왔다. 대체 어디를 의미하는 걸까.
“감이 안 오는데요…….”
“힌트만으로 바로 정답을 알 수 있게 하면 재미없잖아요. 자, 그러면 수업 들어가야죠. 오늘은 전술지도 기호 암기 시험인데. 연습했죠?”
“아!”
아델라인은 그제야 저번 수업 때 알렉스가 내줬던 숙제를 떠올렸다. 물론 외운다고 외웠으나, 알렉스와 이야기를 하는 사이 절반은 까먹은 것 같았다.
이번에도 아델라인은 허겁지겁 저택 안으로 들어갔고, 알렉스는 그 뒷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성장하는 아델라인의 모습도 좋았지만, 저렇게 변함없는 아델라인의 모습도 변함없이 좋았다.
물론, 한 가지 변했으면 하는 게 있었지만.
“…넌 안 가냐?”
“좀 쉬었다 갑시다. 오랜만에 달려드느라 힘들었는데.”
안드레이는 그리 말하며 알렉스에게 단검을 툭 던졌다. 알렉스는 왼손으로 그걸 잡아 안주머니에 넣었다. 그 간단한 동작에도 뻐근해지는 어깨에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그걸 본 안드레이가 물었다.
“왼팔 제대로 나은 겁니까? 저번에 볼트에 맞았다면서요.”
“나은 것 같은데…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왼팔과 어깨를 움직여 보며 인상을 연신 찌푸리는 알렉스의 모습에, 안드레이는 한숨을 쉬며 물었다.
“온 김에 주치의에게 검사 한번 받아 보시죠. 약이나 포션도 갖춰 놓았으니 도움이 될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아델라인 귀에 들어갈 거 아니야.”
알렉스는 잠시 왼팔을 돌리며 안드레이를 향해 말을 이었다.
“버틸 만하니까 괜찮아. 괜스레 걱정시키고 싶지도 않고.”
“…조심하십시오. 그러다 진짜 탈 납니다.”
“괜찮아, 다친 게 어디 한두 번인가.”
알렉스는 그 말을 남긴 채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알렉스의 자세는, 마치 녹슬어 가는 부분을 감추기라도 하듯 오히려 반듯했다.
그렇기에 그 뒷모습을 보는 안드레이의 마음은, 더더욱 씁쓸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