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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엑스트라는 생각보다 대단했다-70화 (70/200)

70화 본회의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그동안 수많은 손님이 찾아왔고, 수많은 소포가 아델라인 앞으로 다다랐다. 그러나 나이아는 필사적으로 그 모든 손님과 소포를 철벽처럼 막아 냈다. 다른 시녀들이 걱정스러운 뜻을 내비쳤지만 나이아의 뜻은 완고했다.

그 덕분인지, 아니면 그저 기우였는지. 정말 아무 일 없이, 어느새 아델라인은 재건위원회의 첫 본회의 자리에 앉아 있게 되었다.

“수도 남부 재건위원회 본회의를 시작하겠소. 의례는 생략, 본론으로 들어가지.”

땅땅땅!

의사봉을 손에 쥔 마일즈 의원이 봉을 두드렸다. 그러자 각자의 보좌진과 이야기를 나누던 위원들이 마일즈를 향해 시선을 집중했다.

지난 전쟁에서 괄목할만한 승리를 거두며 얻은 명성을 자산 삼아 정치에 발을 들인 알베르데 그리보발 마일즈 의원. 초선이기는 하나, 마일즈의 언행은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기 충분했다.

“현재 우리 앞으로 다가온 가장 중요한 결정에 대해서는 다들 알고 있을 것이오. 그동안 수도 내에서 이뤄졌던 재개발 사업과는 궤가 다른 대규모의 사업을 진두지휘할 사업자를 선정해야 하오.”

마일즈는 주욱 자리에 앉은 위원들을 바라보다가, 아델라인에게 시선을 두며 말했다.

“이곳의 위원들이 사업자 후보들과 관계가 전무하리라는 순진한 생각은 하지 않겠소. 다만, 이번의 사업은 규모가 규모이니만큼 최대한 사감을 덜고 행동하란 당부를 하고 싶소. 자, 그러면.”

마일즈는 아델라인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다른 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1차 선별 과정을 시작하겠소. 사업 신청 순서와 관계없이 알파벳 순서로 기재되어 있는 목록과 보고서, 그리고 각 집단의 사업 계획서가 준비되어 있소. 그러면 아드리아 토건부터.”

“기업의 규모가 너무 영세합니다.”

“실질적으로 사업을 끝까지 완료한 경험도 적습니다. 오히려 사업권 장사로 이익을 거둔 부류입니다.”

위원들의 말이 계속 나왔다. 그러자 마일즈는 고개를 끄덕인 뒤 다음 장으로 넘어갔다. 아델라인은 그 속도를 겨우 따라가며 보고서를 읽고 대화를 들었다.

그렇게 보고서를 반 정도 넘겼을까. 드디어 루멘시아 가의 사업 계획서가 나타났다.

“루멘시아 백작가. 다들 어찌 생각하시오.”

마일즈 의원이 주변을 스윽 둘러봤다. 이제부터가 본 게임이라는 듯, 그동안 열심히 의견을 피력하며 업체들을 쳐내던 다른 위원들도 침묵을 지켰다.

“이렇게까지 조용할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다들 와인 한 잔씩들 받아드셨소?”

마일즈 의원이 허허 웃으며 다른 위원들을 훑어봤다. 가벼운 표정이었지만, 눈빛과 목소리만큼은 백전노장의 힘이 실려 있었기에 모두가 슬쩍 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델라인은 그 눈빛을 피하지 않았다. 알렉스의 눈빛보다 약간 더 묵직했지만, 그런데도 적대감은 없었다. 잠시 아델라인과 눈을 마주친 마일즈는 손으로 입가를 슬쩍 가리며 아델라인을 향해 말했다.

“로피츠 위원. 자네 의견을 조금 들어보고 싶네만.”

“아, 저는…….”

아델라인은 사업 계획서를 본 뒤 주변을 둘러봤다. 다른 위원들의 시선은, 그동안 침묵을 지켜온 아델라인에게 향했다. 그러자 아델라인은 천천히 적어 놓은 대로 견해를 풀어 나가기 시작했다.

“영지 내의 토목 사업 경험은 있으나, 영지 외의 토목 사업이나 대규모 토목 사업의 경험은 없습니다. 저는…….”

아델라인이 차분히 말을 이어 나갔다. 그때, 페드로 위원이 손을 들고 곧바로 말을 하며 아델라인의 말을 끊었다.

“하지만 모두에게나 처음은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페드로에게 향했다.

“루멘시아 백작가는 충분한 자본력을 지니고 있고, 이를 동원해 사업을 유지할 능력도 있습니다. 전통 있는 귀족이니만큼 신뢰도 지니고 있…….”

“하지만 능력이 검증되지 않았잖소. 이번 사업은 다 걷어치우고 능력을 중심으로 봐야 하오. 그러니…….”

“리먼 위원. 말을 끊지 마시오. 질서를 지켜야지.”

“그렇게 따지면 페드로 위원도 로피츠 위원의 발언권을 무시하고 말한 거 아니오!”

“페드로 위원은 손을 들었소!”

“아직 말하고 있었잖소! 도대체 얼마나 받아먹었길래 그리 조급한 거요! 마차 한 대 뽑았소?”

“그러는 당신네들은! 금괴라도 하나씩 받은 거요?!”

순식간에 난장판이 된 모습. 그 모습을 보던 커크만 위원은 이마를 짚은 뒤 마일즈 의원을 바라봤다. 그러자 마일즈 의원은 손을 뻗어 의사봉을 그러쥐었다.

땅!! 땅!! 빠직!

세 번을 내리치기도 전에 손잡이가 부러진 의사봉. 목이 부러진 채 간신히 머리만 달랑거리는 의사봉을 내려다보며, 마일즈 의원은 허허 웃어 보였다.

“아. 제대하면서 의사봉을 안 챙겨 왔더니 이런 게 참 불편하구려. 그때는 신대륙에서 가져온 나무로 만들어서 참 탄탄하고 소리도 좋았는데. 허허.”

일순간 침묵에 잠기고 서늘해진 회의장의 분위기. 풍채 좋은 마일즈 의원이 살벌한 눈으로 모두를 찬찬히 훑어보자, 그 누구도 함부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페드로 위원. 로피츠 여사에게 사과하시오. 이런 건 확실히 매듭짓고 가는 게 좋겠소.”

“…….”

저번 회의에서는 영애라고 부르며 일방적으로 무시하던 아델라인에게 사과하라는 말에, 페드로 위원은 마일즈 의원을 향해 항의의 시선을 보냈다. 그러나 페드로를 향해 미소 짓는 마일즈의 손에는 주님 곁으로 떠난 의사봉이 들려 있었다.

“…사과하겠소, 로피츠 여사.”

“사과를 받아들이겠습니다.”

잠깐의 침묵이 이어졌다. 그제야 마일즈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그리며 의사봉을 내려놓았다.

“10분간 휴정하겠소.”

* * *

“그래서, 오늘은 잘 굴러갔나요?”

“잘 굴러가긴요. 잘 굴러갔으면 알렉스를 찾아오지도 않았지.”

아델라인은 언제나처럼 알렉스가 타 준 솔잎차를 홀짝이며 투덜거렸다. 휴정한 이후에도 설전은 계속 이어졌다. 루멘시아 가 다음에는 스틸웰 공업이었다. 그리고 여기서도, 의사봉 하나가 명을 다했다.

“위원회는 반으로 갈린 것 같더라고요. 스틸웰 공업이냐 루멘시아 백작가냐. 서로 싸우고 있어요.”

아델라인은 한숨을 푹푹 내쉬며 차를 홀짝였다. 상쾌한 솔향이 그나마 아델라인의 마음에 얹힌 짐을 덜어 내 주고 있었다.

“알렉스는 어디가 되면 좋을 것 같아요?”

아델라인의 물음에, 알렉스는 순간 마음속으로 품고 있던 말을 내뱉을 뻔했다. 루멘시아 백작가에는 무언가 있다고.

하지만 아직 가설뿐인 이야기를 아델라인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자신의 말실수가, 그녀에게 큰 영향을 줄 수 있었다. 그래서는 안 되니, 말을 신중히 해야 했다.

“아델라인은 어떻게 생각하는데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아델라인은 알렉스가 쓰는 침대에 걸터앉아 차를 홀짝이며 말했다.

“루멘시아 백작가의 사업 계획서에서 이익률은 정말 낮아요. 차라리 그 돈을 은행에다 넣어 두는 게 위험부담까지 생각하면 더 안전할걸요?”

“…얼마나 낮기에.”

“5%요. 총사업비의 5%.”

“이상하네.”

“자재를 헤클러 상회라는 한 회사에서 독점 공급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지만, 다들 문제라고 여기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근데 이상하더라고요.”

아델라인의 말에, 알렉스는 무언가를 느끼고 아델라인을 바라봤다.

“무슨 이상한 점이요?”

“프룬츠베르크 공국에 소재한 업체에서 자재를 공급받는다고 하네요. 물론 동맹국이고, 인건비도 싸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괜히 번거로운 거 아닌가요? 해외에서 자재를 공급받는다는 건?”

아델라인의 말에, 알렉스는 눈을 번쩍 뜨며 아델라인을 바라봤다.

“회사 이름이 뭔가요? 정확히 어떤 방식이죠?”

저돌적인 알렉스의 물음에, 아델라인은 당황하면서도 침착하게 말했다.

“일단 제가 나이아나 안드레이를 시켜서 알렉스에게 사본을 보내 드릴게요. 오늘 내로 보낼 거니까 조급해하지 않아도 돼요.”

아델라인의 말에, 알렉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그걸 본 아델라인이 알렉스를 바라보며 물었다.

“세이드와 관련된… 거죠?”

그녀의 물음에, 알렉스는 잠시 아델라인을 바라봤다. 그동안 부분적으로만, 간략하게만 말해 줬을 뿐인데 아델라인은 이미 어느 정도 눈치챈 듯싶었다.

그러자 알렉스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알고 있는 상황이니,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군요.”

“아직 확실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니…….”

“알겠어요, 어디 가서 함부로 말하고 다니는 일은 없을 거예요.”

아델라인의 말에, 알렉스는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아델라인을 보면 절로 미소가 나왔다.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작아서 계속 지켜보지 않으면 훅 사라질 것만 같은데, 하는 행동이나 말은 당차기 그지없었다.

알렉스는 아델라인이 앉아 있는 침대맡의 공간에 앉았다. 그리 큰 침대도 아니고, 이불과 베개도 놓여 있었는지라 두 사람이 앉는 것만으로도 공간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아델라인은 자신도 모르게 알렉스의 듬직한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편했다. 편한데, 심장은 두근두근 떨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떨어지고 싶지는 않아서, 아델라인은 자신도 모르게 더욱더 알렉스에게 몸을 기댔다.

그때, 알렉스의 오른손이 아델라인의 오른손에 포개어졌다. 항상 차가운 손이 항상 따듯한 손에 얹어졌다. 그렇게 서서히, 알렉스의 팔은 어느새 아델라인의 몸을 감싸 안고 있었다.

“…언젠가는 모두 끝날 겁니다.”

알렉스는 반대편에 걸린, 자신의 여벌 제복들을 바라봤다. 그중 알렉스의 시선은 붉은색의 예복에 닿아 있었다. 그 예복을 수놓고 있는 건 값진 금실 은실도, 화려한 보석 장식도 아니었다.

그저 알렉스가 밟아 온 전장과 직책을 담은 약장들과 은 막대들이 담담히 알렉스의 왼쪽 가슴에 얹어져 있었다. 알렉스는 그 깊고 푸른 눈에 약장들을, 그리고 그 약장들을 낳은 전장들을 담으며 말했다.

“모든 일에는 끝이 있는 법이니까요.”

아델라인의 손에 얹어진 알렉스의 손이 천천히 힘을 주어 아델라인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당신이 그 끝을 볼 때까지 다치지 않게, 최선을 다할 겁니다.”

최선을 다한다. 아델라인은 그게 알렉스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확언이라는 걸 알기에, 미소를 지으며 알렉스의 손에 깍지를 끼며 맞잡았다.

“알렉스도.”

아델라인은 알렉스의 손을 잡은 손에 힘을 주며 그의 푸른 눈을 바라봤다.

“다치지 마세요. 절대.”

아델라인의 말에, 알렉스는 슬픔을 미소로 가릴 수밖에 없었다. 아델라인이 저렇게 걱정해 줘도, 자신은 결국 위험에 뛰어들어야 하고 다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걸 아니까.

어쩌면 자신의 목숨을 다른 이의 목숨과 저울질해야 하는 때가 오리라는 것을 아니까.

알렉스는 결국 아델라인의 부탁에도, 똑같은 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최선을 다할 겁니다. 그것도.”

알렉스는 그리 말하며, 아델라인의 머리 위에 자신의 머리를 살짝 기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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