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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엑스트라는 생각보다 대단했다-65화 (65/200)

65화 베른하르트 공방의 장신구

어느 날 아침. 아델라인은 언제나처럼 아침에 일어나 시중을 받으며 하루를 시작했다. 어느새 시녀들의 손길이 익숙해진 아델라인은 머리 빗질을 받으며 나이아를 향해 물었다.

“오늘 일정은?”

“구호소 들러서 상황 보고를 듣고, 추수제 준비 관련 가문 업무만 하시면 됩니다. 아, 일주일 뒤로 잡혀 있는 재건위원회의 본회의도 준비해야지요.”

“그렇게 급한 일은 없는 거네?”

아델라인은 머리 손질을 마친 뒤 자리에서 일어나며 나이아에게 말했다.

“구호소에는 언제까지 가면 되는 거지?”

“오후 2시에 일정이 잡혀 있습니다.”

나이아의 설명을 들은 아델라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머릿속으로 계획을 세웠다. 장부와 서류를 검토하고, 결재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때, 한 시녀가 품에 무언가를 안고 나타났다. 얼마나 귀중한 물건인지, 그걸 감싼 포장마저도 동방의 화려한 비단이었다.

“공녀님, 공녀님 앞으로 온…….”

그 시녀가 보따리를 풀어 보이려 하자, 나이아는 급하게 눈을 부릅뜨더니 소리쳤다.

“멈춰!”

평소에는 조곤조곤하고 온건하던 나이아가 갑자기 소리를 치자, 아델라인을 비롯한 모두가 놀라 나이아를 바라봤다.

보따리의 매듭을 풀려던 시녀는 놀라서 얼어붙은 채 나이아를 보았다. 그 시녀의 동작이 멈춘 걸 확인하자, 나이아는 숨을 깊게 들이쉬며 그 보따리를 뺏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나이아는 이마를 손으로 감싸고, 시녀를 향해 물었다.

“누가 보낸 거야. 어떻게 건네받은 거지? 언제 공작가 앞으로 왔고?”

“그, 그러니까…….”

“누가, 무슨 목적으로, 어떻게 보냈는지도 모르면서 그걸 공녀님께 드리려 한 거야? 너 미…….”

“그만.”

나이아의 격앙된 목소리에, 아델라인은 나이아를 멈춰 세웠다. 그다음, 보따리를 들고 온 시녀를 바라봤다.

“일단 천천히 설명을 들어 보고 싶은데. 누가, 어떻게 이 보따리를 전해서 여기까지 온 건지.”

아델라인의 물음에, 그 시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차근차근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새벽에 정문을 지키던 문지기에게 한 사환이 보따리를 건넸고, 글을 읽을 줄 몰랐던 문지기는 ‘아델라인 폰 로피츠’ 공녀님께 전해 달라는 말을 듣고 아침까지 받아들고 있다가 시녀에게 전달. 그리고 그 시녀는 의심 없이 곧장 안으로 들고 왔다는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나이아는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하아아아아…….”

나이아의 깊은 한숨이 길게 이어졌다. 그러자 아델라인은 나이아를 바라봤다. 대체 무슨 일이길래. 아델라인의 시선을 느낀 나이아는,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벌써부터 누군가가 공녀님을, 아니, 로피츠 위원님을 담그고 싶어 하시는 것 같은데요.”

“…뭐?”

* * *

“어떻게 생각하냐.”

아침부터 날아온 나이아의 서신. 알렉스는 마차를 타고 가며 스워포드에게 서신을 건네며 물었다. 알렉스에게 붙들려 나와 아침도 못 먹고 알렉스와 함께 마차를 탄 스워포드는 그 서신을 읽은 뒤 간단하게 말했다.

“뭐, 드물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스워포드는 기지개를 켜며 말을 이어 나갔다.

“누구 묻어 버리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적당히 돈하고 사람 써서 집 앞에 금품 던져 놓고 그걸로 누명 씌우는 행동. 더러운 술수지만 위험은 적으니 해 볼 만도 하죠.”

스워포드의 말에, 알렉스는 한숨을 쉬었다.

“빌어먹을. 파훼 방법은?”

“뭐, 나이아도 이미 어느 정도 대처를 한 모양이더라고요. 봉인은 안 풀었고, 제3 수도경비대에 수사관을 요청했다고 합니다. 금품이 아니라 가치를 모르는 분실물로 돌려 버릴 수 있는 거죠. 중대장님은 그 증인으로서 요청받은 거고요.”

“아직 보따리를 풀지 않았다. 그럼 다 괜찮은 건가?”

“원래는 아예 저택 안으로 들이지 않는 게 가장 깔끔하지만… 어찌어찌 최악은 막았습니다.”

“최악은 뭔데?”

“로피츠 여사 성격으로 비춰 봤을 때 가장 최악은…….”

스워포드는 잠시 머릿속의 생각을 정리한 뒤, 알렉스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금품 받은 거 기부받았다고 기뻐서 현금화해 버리는 거 아닐까요. 현물이면 추적 가능성이라도 조금 있지, 현금화해 버리면 일이 더 복잡해지고 물어뜯길 가능성도 더 커지니까.”

알렉스는 스워포드의 말을 듣고 고민해 봤다. 아델라인의 해맑은 미소와 밝은 목소리가 떠올랐다. 스워포드의 가설이 설득력 있었다.

착하고 순진한 아델라인, 그래서 알렉스의 장난에도 쉽게 속아 버리는 아델라인. 그런 아델라인을 건드렸다고 생각하자, 알렉스의 표정은 결코 좋을 수 없었다.

알렉스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걸 본 스워포드가 물었다.

“걱정되십니까?”

끄덕.

“참으셔야 한다는 거 아시잖습니까.”

“만약 우리가 쫓던 놈… 아니면 년이 사주한 거라면?”

년. 알렉스의 입에서 나온 그 표현에, 스워포드는 알렉스를 응시했다.

“…계속 생각 중이셨던 겁니까?”

“보라색 눈동자가 그리 흔한 건 아니잖아?”

“보라색 눈동자를 만들기는 쉽죠. 당장 상점가에 가면 미용 마법 도구가 지천으로 깔려 있는데.”

“알아, 알아. 그런데 꺼림칙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란 말이지.”

“그렇게 벌써부터 날 세우고 있으면 정작 중요한 거 못 보는 거 잘 아시는 양반이.”

스워포드의 말에 알렉스는 한숨을 쉬며 창밖을 바라봤다. 제3 수도경비대의 마차가 로피츠 공작가 앞에 서 있는 게 보였다.

“수사관이 먼저 왔나 보군.”

“휘태커 경감님이 상황 파악은 빠르니 좋습니다.”

알렉스와 스워포드도 마차에서 내린 뒤, 마부에게 삯을 치르고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알렉스의 얼굴을 아는 문지기가 문을 열어 줬다.

문지기의 안내를 따라 아델라인의 서재로 향하자, 안에서는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일단 진술 확보 및 정리했고, 증인까지 오시면 곧바로 절차를 진행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클린턴 경위님.”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익숙한 두 목소리. 나이아와 클린턴 경위의 대화였다. 그리고 그 서재로, 알렉스와 스워포드가 가볍게 문을 두드리며 들어갔다.

“들어갑니다.”

알렉스의 말에, 서재에 있던 나이아와 클린턴 경위가 알렉스를 바라봤다. 클린턴은 알렉스를 보자 곧바로 절도있게 경례했고, 나이아는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했다.

“충성!”

“오셨어요?”

“오랜만이네, 경위. 나이아는 며칠 전에 만났었고. 아델라… 로피츠 여사는?”

알렉스가 클린턴 경위를 의식하며 아델라인의 행방을 묻자, 나이아는 시계를 바라봤다.

“대위님을 증인으로서 불렀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는 단장을 조금 더 해야겠다면서 침실로 들어가셨는데, 도통 안 나오시네요.”

“…그래?”

“일단 차를 준비하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나이아는 고개를 살짝 숙인 뒤, 시녀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사이, 알렉스는 클린턴 경위에게 다가갔다.

“상황을 조금 듣고 싶은데.”

“동행한 수사관들의 판단에 따르면, 묶인 뒤 한 번도 풀린 적이 없다는 게 확인되었습니다. 증언도 확보했고, 이제 이 안에 뭐가 들어 있을지는.”

클린턴 경위는 손으로 보따리를 만져 보며 말했다.

“확인해야지요.”

“그렇군.”

알렉스는 비단 보따리를 바라봤다. 대체 저 안에는 무슨 물건이 들어 있을까. 부비트랩일까? 알렉스는 보따리를 살짝 잡고 들어 봤다. 화약의 무게감도, 그 냄새도 없었다. 마법 함정일까?

“혹시 마력이 검출되었나?”

“반응은 없었습니다.”

“다행이네.”

이내 찻잔과 찻주전자를 올린 쟁반을 들고 나이아가 다시 들어왔다.

“한 잔씩 하세요. 아침을 준비하도록 지시했으니, 함께 해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자 알렉스와 스워포드, 그리고 클린턴 경위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그때, 아델라인이 들어왔다. 알렉스의 얼굴을 보고 해맑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알렉스의 이름을 부르려 했지만.

“알렉… 매닝햄 대위님. 이른 아침에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클린턴 경위가 있다는 걸 떠올린 아델라인은 알렉스와 마찬가지로 고개를 숙이며 예의를 갖추고 인사를 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여사님.”

알렉스의 눈에는 여느 때처럼 해맑은 아델라인의 얼굴이었다. 그러나 옆에 있던 클린턴 경위는 잠시 자신의 눈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손으로 눈을 비빈 뒤 낯선 분위기의 아델라인을 바라봤다.

“…….”

그러나 속에 담긴 말을 꺼낼 용기는 없었는지, 클린턴 경위는 헛기침한 뒤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봤다.

“여사님, 그리고 대위님. 지금부터 이 안의 내용물들을 확인하겠습니다. 모든 건 절차에 따라 진행될 것이고, 여기에서 작성된 조사 결과문은 여사님과 대위님의 서명을 받을 예정입니다.”

알렉스와 아델라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클린턴 경위는 흰 장갑을 낀 뒤 비단 보따리를 묶은 밧줄을 풀고 조심스레 보따리를 풀었다. 그러자 그 안에서는…….

“보석함이군요.”

흑단으로 짜이고 금장 장식으로 꾸며진 고급 보석함. 클린턴 경위는 조심스럽게 보석함을 들어 앞뒤 위아래 옆면까지 꼼꼼히 살폈다.

“인장이 찍혀 있군요. 베른하르트 공방의 인장입니다. 진짜인지는 확인해 봐야 하겠지만.”

“베른하르트 공방이면… 쓰으읍…….”

스워포드가 무언가를 알고 있는지, 표정을 찡그려 보였다. 그러자 아델라인은 나이아에게 질문했다.

“베른하르트 공방에 대해 말해 줄래.”

“베른하르트 공방은 꽤 유명하죠. 제국이 왕국이던 시절부터 오베른에서 터를 잡고 뛰어난 장신구를 만들어 내는 공방이에요. 황실의 구성원들도 많이 애용하는 최고급 장신구들이죠.”

“그래?”

“특징이라면, 오베른 시의 경매장에만 그 물량이 풀려서 구대륙의 왕실과 황실도 직접 경매에 입찰해야 장신구를 얻을 수 있다고 해요. 매달 경매가 열리는데, 베른하르트 공방은 주로 매해 12월에 경매에 출품하고요. 그래서 연말에는 더욱 경쟁이 치열하대요. 가끔 변덕을 부리기도 하지만.”

나이아의 말이 끝나고, 스워포드가 그 뒤를 이어 말했다.

“베른하르트 공방이 자리 잡은 오베른 시도 한때는 구대륙의 보석이라고 불리는 장소였지요. 지금은 그 뜻이 변질되었지만.”

스워포드의 말에, 알렉스와 나이아, 그리고 아델라인의 시선이 그에게 닿았다. 스워포드는 그 시선에 부응하듯, 설명을 이어 나갔다.

“저번 전쟁에서 제국이 호더빌 요새를 확보하고, 전쟁에서 이기며 동맹국인 프룬츠베르크 공국이 영토를 확장했습니다. 오베른 시도 프룬츠베르크 공국의 영향권에 들어갔고.”

알렉스는 그렇게 말하며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러나 프룬츠베르크 공국은 새로 확장한 영토를 제어할 행정력이 없었습니다. 국경 지대에 항구를 접하고 있고, 이미 혼자서 너무 성장한 도시라 무법 지대가 되기 딱 좋은 조건입니다.”

스워포드는 그렇게 말하며 손수건으로 자신의 손을 감싼 뒤 보석함을 만졌다.

“냄새가 나는군요.”

그렇게 말하며, 스워포드는 보석함의 바닥에서 열쇠를 찾은 뒤 자물쇠를 풀고 뚜껑을 열었다.

잠시 뒤, 그 방에 있던 모두가 놀란 눈으로 보석함 안의 내용물을 바라봤다.

보석함 안의 목걸이가 화려해서는 아니었다. 분명 목걸이는 화려했지만, 그것보다 더 시선을 잡아끄는 것이 목걸이 위에 얹혀 있었다.

황후의 인장이 찍힌 편지가 그 위에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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