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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엑스트라는 생각보다 대단했다-64화 (64/200)

64화 남자라는 생물

식사를 마치고, 두 사람은 산책하며 시간을 보냈다. 알렉스의 속삭임으로 달아올랐던 그녀의 귀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도 영 식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델라인 자신도 귀가 여전히 홧홧한 게 느껴졌는지, 애꿎은 귓바퀴를 손가락으로 계속 매만질 뿐이었다.

그때, 알렉스가 아델라인을 향해 말했다.

“이번 위원회 인선이 참… 그렇더군요. 도시 개발 전문가는 커크먼 교수 한 명뿐이고, 마일즈 의원은 수도사단과의 연결과 전체 조율을 맡지만, 나머지는 그저 이리 떼들뿐이니까요.”

알렉스의 말에, 아델라인은 어깨를 으쓱였다.

“이번 재개발로 이득을 보려 하는 사람이 많겠죠?”

“모두가 그럴 겁니다. 그렇지 않다면 사업 자체가 성립할 수 없으니. 하지만…….”

알렉스는 한숨을 푹 쉰 뒤 아델라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무 많은 이득이 발생하면 그 부담은 구호소에서 돌아올 빈민들이 지게 되겠지요.”

맞는 말이었다. 일단 사업을 하는 이상 참가하는 이들에게는 이득이 돌아가야 했다. 시간과 자원을 쏟는 만큼, 이득은 보장해 줘야 했다. 그러나 이득을 얼마나 보장할지, 그것을 과하지 않게 조정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였다.

아델라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러자 알렉스는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자, 주제를 바꾸죠. 너무 묵직한 이야기만 한 것 같네.”

“그래요. 아! 그러고 보니까, 우리 예전에 카페를 갔었잖아요.”

아델라인의 말에 알렉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카페는 많이 갔죠.”

“아니, 그… 소시지 먹었던 날.”

아델라인이 단서를 건네자, 그제야 알렉스는 무언가를 떠올린 듯 얼굴을 찌푸렸다.

“아아… 그때. 고통스러운 날이었죠. 그 뒤로도 며칠 동안 소시지를 먹어 치워야 했었어요.”

알렉스의 말에, 아델라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요? 말하지. 계속 데리고 다니면서 같이 맛집 탐방 다니는 것도 좋았을 텐데 말이죠.”

“그러고 싶은데, 아침 식사는 도저히 피할 수 없었으니까요.”

“아하. 그러고 보니 관사에서 생활했었죠.”

“소시지 구이, 소시지 스튜, 소시지 파이, 소시지 빵 등등… 소시지로 만들 수 있는 건 거의 다 만들어 먹은 것 같네요, 그때.”

알렉스의 말에, 아델라인이 피식 웃었다. 저러니 소시지에 질색할 수밖에 없는 거지.

“그러면 이제 앞으로는 돼지고기를 먹기 힘들어진 거예요?”

“먹을 수 있다고는 하는데, 내놓기가 조금 그렇죠. 먹는 것만큼은 모두가 즐겁게 먹어야 하니까 되도록 메뉴 선정 때 신경 쓰는 편입니다.”

“좀 더 이야기해 주세요. 신기하네. 보통은 뭘 먹어요? 식재료를 받아서 해 먹어요?”

아델라인의 말에, 알렉스는 이야기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는 육군 보급 규정이 있습니다. 병사들에게 하루에 얼마만큼의 빵과 살코기, 그리고 기타 식재료들을 배급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워낙 부대 규모가 작고 주둔지도 수도 한가운데에 박혀 있으니까, 돈으로 지급받는 거죠.”

“오… 잠시만.”

아델라인은 알렉스를 바라보며 미소를 띠어 보였다. 마치 알렉스를 놀릴 거리가 생겼다는 것처럼, 아델라인의 눈빛에는 장난기가 깃들어 있었다.

“설마 횡령 같은 거 하는 거 아니에요? 이거, 알렉스가 마음만 먹으면 부수입을 짭짤하게 올릴 수 있겠는데요?”

아델라인의 말에, 알렉스는 어깨를 으쓱였다. 사실 알렉스가 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몇몇 병사들만 적당히 포섭하면 횡령이 충분히 가능한 구조였다. 그렇기에 육군 보급 규정이 병사들의 식량 배급을 일일이 다 무게로 규정해 놓는 것이고.

물론 그걸 시도했다간 일주일도 안 되어 안드레이만큼이나 노련한 다른 부사관들과 병사들에 의해 멍석말이를 당한 뒤 육군 본부 앞으로 배달될 것이다.

당장 스워포드부터가 알렉스보다 그런 쪽에 더욱 빠삭했고, 중대 내의 몇몇 사람은 육군 본부의 감찰대에서 근무하던 인원들이기도 했으니까.

물론 그걸 다 설명하기는 힘드니, 알렉스는 고개를 끄덕여 아델라인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그렇긴 하죠?”

“그으러면!”

아델라인은 알렉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알렉스네 관사로 가서 횡령이 없는지 확인해 봐야겠어요!”

아델라인의 말에, 알렉스가 그녀를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러나 이내 아델라인의 마음을 꿰뚫어 본 알렉스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뭐, 한번 찾아보시죠.”

저번에는 관사에 필즈먼이 갑자기 찾아오기도 했고, 두 사람도 파트너로서 사교 행사에 참여하던 중이었기에 제대로 알렉스의 관사를 구경할 기회가 없었으니.

그렇게 두 사람은 알렉스의 관사가 있는 황궁으로 향했다.

* * *

코앞까지 다가온 추수제에, 황궁의 사용인들도 행사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었다.

황태자의 친위대는 제식 훈련에 한창이었으며, 시종들은 이리저리 움직이며 청소하고 무너진 부분을 보수했다. 요리사들은 추수제에 내놓을 음식들을 미리 준비하고 식자재를 들여오고 있었다.

아델라인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알렉스에게 말했다.

“문득 생각이 들었는데요.”

“무슨 생각?”

“황궁에서 치르는 연회의 규모만 반으로 줄여도 구호소 사정이 더 나아질 거라는 생각이요.”

아델라인은 멋쩍게 웃으며 알렉스를 바라봤다. 어제 구호소의 장부를 나이아와 함께 점검하다 보니, 이런 생각들이 자꾸 떠오르는 것 같았다.

“뭔가… 귀족 영애답지 않은 생각이라, 알렉스에게만 말하는 거지만요.”

아델라인이 부끄럽다는 듯 얼굴을 붉히며 말하자, 알렉스는 손을 잡으며 말했다.

“뭐, 그런 모습도 저는 나쁘지 않습니다.”

알렉스는 아델라인의 손을 잡은 채로 방향을 틀어 외진 길로 들어서며 말했다. 소란스럽고 번잡한 길보다는, 두 사람만 있을 수 있는 한적한 길이 더 좋았다.

“그냥… 다른 귀족 영애들이 사교계에서 가면을 쓴 채 수다를 떠는 것보다, 직접 현장에서 부딪혀 가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내는 모습이.”

알렉스는 아델라인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더 좋더라고요. 어느새 응원하게 되고.”

“그, 그래요?”

알렉스의 말에, 아델라인도 따라 미소를 그렸다. 자신을 응원한다는 알렉스의 말에, 마음속에서부터 기쁜 감정이 솟아났다.

“저는 알렉스도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그 말에, 알렉스가 아델라인을 바라봤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는 표정. 아델라인이 알렉스의 얼굴을 보며 말을 이었다.

“알렉스는 부하들을 데리고 엄청난 일을 몇 번이나 해냈잖아요. 그러면서도 크게 다친 사람도 없었고.”

아델라인은 알렉스의 깊고 푸른 눈동자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저번에도, 직접 세이드의 아지트로 들어갔다면서요. 관사가 감시당하고 있다는 걸 알고 밖에 있던 대원들을 동원해 아지트를 처리하고.”

아델라인은 다시 앞을 바라봤다.

“저라면, 당황한 상태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헤매다가 그대로 세이드의 계획에 끌려 들어갔을 거예요.”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알렉스는 계속 걸어가며 아델라인에게 말했다.

“우리는, 라이플 여단은 절대 패배하거나 굴복해서는 안 되니까요.”

그러자, 아델라인이 알렉스를 바라봤다. 알렉스가 아델라인에게 군사학을 가르쳐 주던 첫날, 그는 자신에게 이렇게 가르쳤다.

‘군사학은 실패와 패배의 학문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패배의 고배를 삼키며 만들어 온 학문입니다. 그러니 실패와 패배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만큼 성장할 테니.’

실패와 패배를 두려워하지 마라. 알렉스가 알려 준 가르침이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은 패배하면 안 된다니.

“…왜요?”

아델라인이 조심스레 묻자, 알렉스는 아델라인의 질문에 답했다.

“라이플 여단은 지금까지 대부분의 전장을 승리로 장식했습니다. 세계 최강의 경보병부대라는 호칭은 그 때문에 만들어졌죠.”

알렉스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그 승리의 기록 중에는 ‘피로스의 승리’라고 부르는, 패배와 차이가 없는 승리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승리를 이어 온 이유는.”

알렉스는 잠시 말을 끊고 아델라인을 바라봤다. 아델라인의 얼굴에는 의문보다 걱정이 더 많이 깃들어 있었다. 그녀는 왜 그들이 승리를 이어 나가야 하는지가 궁금한 게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알렉스는 얼른 장난스러운 표정을 얼굴에 덧씌우며 말을 마쳤다.

“그래야, 멋있으니까요.”

아델라인은 알렉스의 급변하는 표정을 봤다. 멋있으니까요, 라고 한 방금 대답은 거짓말일 것이다. 분명 아델라인이 모르는, 그리고 알렉스가 밝히고 싶지 않은 정답이 있을 것이다.

아델라인은 순간 알렉스를 추궁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델라인은 알렉스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그의 어깨를 주먹으로 툭툭 치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알렉스가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건, 자신도 굳이 끄집어내고 싶지 않았으니까.

“뭐에요 그게, 유치하게.”

“진짜라니까요?”

“거짓말 같은데.”

그러자 알렉스는 미소를 지으며 아델라인에게 한 문장을 읊어 줬다.

“남자라는 생물은, 색깔 리본 한 토막을 얻기 위해 처절하게 싸우는 생물이니까요.”

“알렉스도 그런 생물인가요?”

아델라인은 알렉스를 올려다봤다. 알렉스도 훈장이나 명예를 위해서라면 처절하게 목숨을 바쳐 가며 싸우게 되는 걸까.

“알렉스도… 훈장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바칠 건가요?”

아델라인의 걱정스러운 표정에 알렉스는 고민했다. 어떻게 해야 아델라인의 걱정을 덜어 낼 수 있을까.

알렉스는 잠시 고민한 뒤, 아델라인에게 말했다.

“뭐, 라이플맨이라는 종족은 조금 특별해서, 훈장을 달고 다니기 싫어하는 종족이기는 합니다. 하도 우리가 훈장 달고 다니는 군인들만 쏴서 말이죠.”

그 말에, 아델라인은 알렉스를 바라봤다. 이해가 잘 안 되기는 했지만, 어찌 되었건 훈장이나 명예 같은 것을 위해 알렉스가 위험한 일을 자처하지 않을 거라는 건 이해되었다.

“그럼… 뭐, 다행이네요.”

아델라인은 알렉스의 손을 잡고, 어느새 눈앞으로 다가와 있는 관사를 가리키며 말했다.

“자, 오랫동안 걸었으니 차 한 잔은 줄 거죠? 혹시나 맹물만 주면 실망할 거예요!”

“당연하죠. 솔잎차 괜찮죠?”

두 사람은 그렇게 앞을 지키고 있던 라이플맨의 경례를 받으며 관사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들을 지켜보는 한 시선이 있었다. 황실의 시녀복을 입은 그녀는 들고 있던 오페라글라스를 접은 뒤, 뒤로 돌아 빠르게 걸어갔다.

그 시녀복에는, 황후의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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