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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엑스트라는 생각보다 대단했다-61화 (61/200)

61화 벽 너머 벽

아델라인은 하늘을 바라봤다. 하늘에는 목화솜 같은 조각구름이 아델라인의 눈 만큼 맑은 하늘색 도화지 위를 떠다니고 있었다. 고개를 바로 해 주변을 둘러보자, 푸른 들판과 그 위에 올려진 테이블이 있었다.

테이블 앞에 서로 마주 본 채 놓여 있는 의자. 두 의자 중 하나를 살짝 빼 그 자리에 앉자, 눈앞에 파스타가 나타났다.

그것도 빙의 전에는 거의 매일 먹다시피 했던 로제 파스타. 면이 머리카락같이 얇기는 했지만, 아델라인은 옆에 있던 포크를 들고 파스타를 먹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상했다. 파스타를 입에 넣으면 넣을수록, 자꾸 면발이 입 밖으로 빠져나갔다. 고개를 들어 반대편을 보니, 알렉스가 장난스레 면발의 반대편을 포크로 잡아당기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알렉스으…….”

아델라인이 그래도 끝내 간신히 면을 입에 넣고 알렉스를 부르자, 그는 미소를 지으며 면발의 반대쪽을 말아 놓은 포크를 아델라인에게 내밀었다.

“아, 해 봐. 아델라인.”

알렉스의 말에, 아델라인은 입을 벌렸다.

“아―”

쏙. 알렉스가 말아 놓은 스파게티가 그대로 아델라인의 입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아델라인의 얼굴에는 절로 미소가 피어났다.

“맛있어?”

“네! 로제 스파게티, 좋아해요.”

덜컹!

돌부리라도 밟은 건지, 마차가 크게 흔들렸다. 그러자 알렉스의 어깨에 머리를 얹고 자고 있던 아델라인의 눈도 덩달아 떠졌다.

“흐음…….”

아델라인은 무의식적으로 눈을 비비며 머리를 들었다. 그러자 옆에 앉아 있던 알렉스가 아델라인을 향해 물었다.

“일어났어요, 아델라인?”

알렉스는 그녀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자 아델라인은 자신이 방금까지 머리를 얹고 있던 게 어디였는지 깨닫고는 볼을 붉게 물들일 수밖에 없었다.

잠시 반대편 창문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며 허겁지겁 머리를 만지고 상태를 정돈한 뒤, 아델라인은 알렉스를 향해 한껏 달아오른 얼굴로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미안해요, 많이 피곤했나 봐요.”

“미안하긴요. 피곤했다는 건 다 아는데.”

알렉스는 그리 말하며 아델라인의 맞은편, 원래 앉아 있던 자리로 가려 했다. 그러나 때마침, 또다시 마차가 덜컹거리며 그의 움직임을 저지했다.

“…그냥 앉아 있어요. 다칠라.”

아델라인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알렉스의 손을 붙들며 말하자, 알렉스는 결국 반쯤 일어났다가 다시 앉을 수밖에 없었다.

잠깐의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알렉스가 입을 열었다.

“많이 벅차고 힘드실 겁니다.”

알렉스의 목소리에는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델라인이 알렉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걱정되기는 해요. 제가 그 자리에 앉아 있는 한, 제 몫은 해야 할 텐데.”

“걱정 마십시오.”

알렉스는 아델라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포기하지 않는 한, 대부분 그 자리에 맞는 1인분은 하게 되어 있습니다. 의지가 있다면 말이지요.”

알렉스는 자신도 피곤한 듯 눈가를 연이어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며 말을 이어 나갔다.

“꽤 많이 힘든 일을 겪을 겁니다. 아무리 임시 위원회라 한들, 그 자리에는 명망 있고 경력 있는 인사들이 들어가게 될 테니까요. 각계각층에서 인정받은 이들이 위원이 될 것입니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듣고 보니 더 자신 없어지는 데요. 그중 몇몇은 절 못마땅해하는 이들도 있겠죠?”

끄덕.

알렉스의 대답에, 아델라인도 하하… 하며 헛웃음을 흘렸다. 갑작스럽게 이런 큰 자리를 맡을 줄은 몰랐다. 물론 자신이 처음에 적지 않은 일을 해냈지만, 이 일을 계속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일이 어느 정도 정리되면, 다시 평범한 귀족 영애의 삶으로 돌아가 평소 같은 나날들을 보낼 거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어느새 자신은 점점 더 높고 두꺼운 벽을 마주하게 되었다. 이번에 자신의 앞에 나타날 벽은 얼마나 높고 두꺼울까. 아델라인의 마음속에 걱정이 가득 들어차기 시작했다.

갑자기 심각해진 아델라인의 표정을 본 알렉스는 아델라인의 손을 잡은 손에 살짝 힘을 주며 말했다.

“잘하실 수 있을 겁니다.”

어느새 마차는 황궁 앞에 멈춰 섰다. 창밖의 풍경을 확인한 아델라인은 알렉스의 손을 천천히 놓으며 그를 향해 말했다.

“수업은… 일정이 또 바뀔지도 모르겠네요.”

“내일 수업 있으니까, 내일도 수업 힘들면 미리 알려주세요.”

“알겠어요.”

대답을 들은 알렉스는 마차에서 내린 뒤 아델라인을 향해 손을 저었다.

“들어가요.”

“알렉스도 가서 좀 쉬세요. 많이 피곤할 텐데.”

알렉스는 고개를 끄덕인 뒤, 황궁으로 들어갔다. 그의 뒷모습에서는 하룻밤을 꼬박 새운 사람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의 정갈함이 묻어 나왔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아무렇지도 않겠지만, 아델라인은 그 모습을 보며 어쩐지 불안하고 슬퍼졌다.

저렇게 멀쩡하던 사람이 언제든지 쓰러질 수 있다는 걸 황후 암살 미수 사건 직후에 봤기 때문에, 아델라인은 더더욱 알렉스가 걱정되었다.

아델라인이 창문을 열고 알렉스를 향해 외쳤다.

“알렉스!!”

꽤나 멀리 갔음에도 목소리를 들은 건지, 알렉스는 몸을 돌려 마차를 바라봄으로써 부름에 응했다.

“몸조심해야 해요! 푹 쉬고!!”

알아들은 건지, 알렉스는 손을 살짝 이마에 가져다 대면서 장난스레 경례를 해 보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하곤 돌아서 갔다.

잠시 뒤, 아델라인이 탄 공작가의 마차도 황궁 앞을 떠나 저택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알렉스는 멀어지는 마차를 향해 다시 한번 돌아봤다. 아델라인이 떠나간다는 생각을 하니, 왠지 모르게 마음 한편이 허전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때, 알렉스의 머리에서 잊고 있던 무언가가 있음이 떠올랐다. 알렉스는 관사로 돌아가며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관사 안으로 들어와서, 낮잠을 자기 위해 집무실 한편의 침대에 누웠을 때도 그 고민은 떠나지 않았다.

그때, 알렉스의 눈에 달력이 들어왔다.

“아… 오늘 식사 당번…….”

달력을 보고 식사 당번 차례가 왔음을 확인한 알렉스는 하품을 쩍쩍, 하며 다시 집무실을 나섰다. 아무리 중대장이라도 식사 당번은 제때제때 해야 했다. 낮잠도 못 자고 식당으로 가자, 주방에서는 서너 명의 라이플맨이 열심히 밥을 차리고 있었다.

“난 뭐하면 되는 거냐?”

알렉스의 물음에, 양파를 다지던 외인 소대의 라이플맨이 칼로 감자 바구니를 가리키며 알렉스에게 지시를 내렸다.

“저기 가서 감자나 좀 깎아 주십쇼. 뢰스티 해 먹을 겁니다.”

“좋네.”

감자를 채 썰어 그걸 팬케이크처럼 부쳐 먹는 음식. 외인 소대가 들어오니 메뉴가 풍성해진 느낌이었다. 같은 감자라도 삶은 감자나 으깬 감자보다는 좀 더 품을 들여 색다른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으니.

알렉스는 한 번 씻은 감자가 한가득 쌓여 있는 바구니 앞으로 가, 식칼을 들고 감자를 깎기 시작했다. 다른 한쪽에서는 베이컨 대신 쇠고기를 얇게 썰어 굽는 동시에 라이스 푸딩을 끓이고 있었다.

알렉스는 감자를 다 깎은 뒤 채썰기 시작했다. 그때, 할 일이 없는 건지 석간신문을 들고 식당으로 들어온 스워포드가 알렉스의 맞은편에 앉았다.

“오늘은 뭐 한답니까?”

“뢰스티 해 먹는댄다. 할 일 없냐? 식칼 하나 집어 들고 와.”

“아, 좀 봐주십쇼. 머스킷에 라이플에 석궁까지 정비하느라 몇 시간 동안 손이 강중유에 절여져 있었는데.”

스워포드는 그리 말하면서 신문을 펼쳤다. 이제 막 배달 온, 오늘 자 석간지였다. 스워포드는 잠시 신문을 훑어 내려가더니, 알렉스를 바라봤다.

“중대장님. 질문 있습니다.”

“말해.”

“오늘 부의장이랑 이야기하면서 무슨 일 있었습니까?”

“왜.”

“로피츠 여사가 재건위원회 위원으로 추천받았다는데요.”

스워포드가 신문 기사를 보여 주며 말했다. 부의장인 그린우드가 직접 기자들 앞에서 밝힌 내용의 파급력은 컸다. 그들이 한밤중에 세이드와 벌인 수도 한가운데에서의 총격전도 신문 1면을 차지하지 못할 정도로.

수도에서의 총격전은 전례가 없지 않지만, 20대의 젊은 귀족 영애가 국책 사업의 일원으로 참여하는 건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사례였다. 찾으면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반적인 건 절대 아니었다.

그러나 알렉스는 태연하게 감자를 깎으며 말했다.

“그렇게 된 거지, 뭐. 우리가 언제까지나 주시할 수는 없고. 차라리 눈에 확 띄게 하는 게 맞아. 그나저나.”

알렉스는 어느덧 수북이 쌓인 감자 껍질을 한쪽으로 치우며 스워포드를 향해 질문했다.

“덫, 그거 진짜 작동하는 거 맞냐?”

알렉스의 물음에, 스워포드는 신문을 대충 접어 식탁 한쪽에 놓으며 알렉스를 향해 말했다.

“중대장님께서는 덫을 놓을 때 작동 안 하는 거로 놓으십니까. 작동은 합니다, 작동은.”

“…질문을 고치지. 반응이 오기까지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

알렉스의 물음에, 스워포드는 어깨를 으쓱였다.

“저야 모르지요. 하지만, 그리 오래는 걸리지 않을 겁니다.”

스워포드는 1면을 차지한 기사의 한쪽 끝을 가리키며 알렉스를 향해 말했다.

[수도 남부의 빈민가 전체를 배경으로 한 이 사업의 규모는 장기적으로 수십억 파운드에 달할 거로 예상되며, 다양한 가문과 기업에서 입찰을 준비 중이다.

그중 중공업에서 선두를 차지한 스틸웰 공업과 유서 깊은 가문 중 하나인 루멘시아 백작가가 유력 후보로 손꼽히고 있다.]

“이런 큰 건, 이런 큰 사업 앞에서는 실탄이 결국 중요한 거지요. 공식적으로 투입되는 자금뿐만 아니라, 알게 모르게 여기저기 기름칠할 곳이 많으니까, 더러운 돈을 세탁하려 들 겁니다.”

“그러면, 앤트워프 해운의 자산도 상당수 매각될 수 있겠군. 일부러 가짜 장부를 쓸 때 앤트워프 해운 관련 항목은 누락했으니까, 감시망에 들어가 있지 않다고 판단할 거야.”

“분명 자금 흐름에서 다 드러날 겁니다. 금융가에서는 기록을 남기지 않으면 죽는 역병이 돌고 있으니까요.”

알렉스는 새로 깎은 감자를 바구니에 올려놓으며 목소리를 낮춰 질문했다.

“그럼, 세탁을 마친 돈들은 어떻게 잡아내지. 만약 ‘가설’이 맞다면, 우리는 다시 잘린 꼬리만 손에 쥐는 꼴이 될 텐데.”

가설.

루멘시아 백작가가 엮여 있다는 가설. 그 가설을 전해 들었던 스워포드는 살짝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그게 문제이긴 합니다. 돈세탁을 하는 작업장이 어딘지는 찾을 수 있어도, 그 돈이 어디로 가는지는 확실치 않죠. 발뺌도 어렵지 않고.”

스워포드는 그렇게 말하며 알렉스를 바라봤다.

“그래서 중대장님이 해 주셔야 할 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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