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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엑스트라는 생각보다 대단했다-60화 (60/200)

60화 사람들 앞에서

덜그럭, 덜그럭.

마차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그래서 그렇게 된 거군요…….”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게 맞다면, 존재감이 있는 사람은 조용히 처리하기 힘드니 알렉스가 내게 이 자리를 권한 건가 봐.”

아델라인의 말에, 나이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일리 있는 말이긴 해요. 공녀님께서 맡아도 큰 문제는 아닐 테고요. 하지만…….”

나이아가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아델라인을 향해 말했다.

“그 말인즉슨, 공녀님을 향한 관심이 늘 거라는 말과 같아요. 그 관심이 늘어난다는 건, 공녀님을 주시하는 사람들도 많아질 거란 뜻이에요.”

나이아는 아델라인의 손을 잡고 그 손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그마한 흠결도 부풀리려는 사람들도 있을 거고.”

“하지만 네가 옆에 있을 거잖아?”

아델라인의 말에, 나이아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 아델라인은 자신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아델라인이 나이아를 바라보며, 핀잔을 주듯 농담 삼아 말했다.

“그나저나 그린우드 부의장님 알고 있었으면 약점이나 좀 말해 주지. 그랬으면 덜 힘들었을 텐데.”

“하지만 해내셨잖아요? 약점 없이.”

“운이 좋아서였다고. 아직도 어떻게 그린우드 부의장을 설득했던 건지 나도 잘 이해가 안 돼.”

어느새 마차는 구호소 앞에 다다르고 있었다. 부의장을 향한 의전은 확실히 그 격이 달랐다. 수도사단의 군악대가 마차가 열리기도 전에 군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정장을 입은 알렉스는 먼저 마차에서 내려 부의장을 보조했다. 마치 보좌관인 것처럼 자연스레 녹아든 알렉스의 모습이 참 신기했다. 마차의 계단을 밟고 내려오는 그린우드에게 귀엣말을 들은 알렉스는 아델라인의 마부를 향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러자 마부는 급하게 자리에서 내려 계단을 깔고 문을 열었다.

아델라인이 먼저 나오고, 그 뒤를 나이아가 보조하듯 뒤따랐다. 알렉스는 아델라인과 나이아에게 자신의 옆 공간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린우드 부의장은 이런 자리가 익숙한 듯, 병사들의 장벽 너머로 손을 들고 질문을 해 대는 기자들을 향해 진정하라는 듯 손을 흔들고 있었다.

“부의장님! 오늘 기자 회견을 이곳에서 진행하겠다고 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오늘 수도 남부 이재민에 대한 정책 변화가 있습니까?”

“간밤의 총격전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질문들이 연이어 쏟아져 들어오고, 그런 기자들을 막아 세우던 병사들의 장벽도 점점 힘겨워지고 있었다. 한순간에 인파가 쏟아질 것 같은 위태로운 상황. 그러나 그린우드는 손을 흔든 뒤 기자들에게 말했다.

“오늘 이곳에서의 일정을 끝낸 뒤, 바로 이곳에서 기자 회견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그러니 기다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고 나서 병사들이 만든 길을 익숙한 듯 걸어 나가는 그린우드 부의장. 알렉스와 아델라인, 그리고 나이아는 그 뒤를 따라 구호소 안으로 들어갔다.

공원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천막으로 들어가자, 수도사단의 행정 장교들과 로피츠 공작가의 사람들이 각각 경례하거나 고개 숙여 인사했다.

“충성!”

“충성. 너무 늦게 온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군요. 헤네스 소장.”

“아닙니다. 방문해 주신 것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필즈먼과 비슷한 나이대의 군인이 바짝 긴장한 모습으로 답하는 모습은 뭔가 신기했다. 아델라인은 옆에 있던 알렉스를 향해 속삭였다.

“평소에는 여기 안 계셨는데.”

“의전 서열 10위의 인물이니까요. 사단장도 올 수밖에 없죠. 물론 의전 서열이라는 게 관습법의 일종이라 정확히 정해진 게 없긴 하지만요.”

“감이 잘 안 오네요. 10위라 하면.”

“뭐… 순서대로 나열해 보면. 황제, 황후, 황태자, 대주교 같은 상징적인 자리에… 다음이 수상, 의장, 대법원장 겸 법무 장관, 재무 장관, 육군성 장관과 해군성 장관이 공동 9위, 다음에 부의장.”

“필즈먼 대장님은 한번 나열해 보면 몇 위에요?”

“나란히 놓기도 힘들죠? 50위가 넘어가시니까. 10위권 내도 사실 배치가 애매해요. 누구는 육군성 장관과 해군성 장관 사이에 격차가 있다, 없다 가지고 싸우니까요.”

알렉스는 그렇게 말한 뒤, 아델라인을 슬쩍 바라보며 속삭였다.

“유치하죠? 다 큰 어른들이.”

그 말에 퍽 공감한 아델라인은 알렉스의 귀에만 들릴 정도로 속삭였다.

“그렇네요.”

그사이 보고를 마친 행정 장교단의 장교는 부의장의 질문을 받고 있었다. 알렉스와 똑같은 계급을 달고 있는 대위였다. 가끔 볼 때마다 휘하 간부들과 행정병들에게 엄격하게 굴던 대위도 부의장 앞에서는 한낱 청년 장교일 뿐이었다.

그렇게 일정이 끝나자, 그린우드는 고개를 끄덕인 뒤 아델라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 한 가지 더 알려야 할 소식이 있네.”

그린우드는 그런 뒤 아델라인에게 손을 살짝 내밀었다. 그러자 아델라인은 알렉스를 잠깐 바라봤다.

끄덕.

알렉스의 미세한 끄덕임. 다른 사람들은 보기 힘들었겠지만, 자신만큼은 확실히 보았다.

그 움직임에 확신을 얻은 아델라인이 그린우드의 손에 자신의 손을 얹고 한 발자국 앞으로 나왔다. 그러자 그린우드는 주변을 쭉 둘러보며 아델라인의 손을 살짝 들어 보였다.

“이번 남부 재건위원회의 위원으로 내정되어 있는 아델라인 폰 로피츠 여사일세. 다들 얼굴은 종종 봤으리라 생각하네. 지금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을 기자들에게도 말할 예정이지만, 실무자인 자네들에게 먼저 알리는 게 도리라 생각해서.”

그렇게 말하며 그린우드는 아델라인의 손을 놓으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러자 아델라인은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지금까지 함께 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귀족, 그것도 얼마 전까지는 로피츠 공작의 안하무인 외동딸이라 알려진 아델라인이 일개 행정병들까지 있는 자리에서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자, 알렉스를 비롯한 몇몇을 빼고는 모두 놀란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아델라인의 첫인상만 보면 겸손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진심인 듯한 아델라인의 태도에 공작가의 사람들을 시작으로 박수 소리가 하나둘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천막 안은 아델라인을 향한 박수 소리로 가득 찼다.

* * *

알렉스는 아델라인을 바라봤다. 어젯밤부터 마음고생이 심했던 건지, 덜컹거리는 마차에서도 창틀에 머리를 얹은 뒤 눈을 감고 자고 있었다.

알렉스는 그녀의 입으로 들어가려는 머리카락을 걷어 주며 그녀의 옆자리로 옮겨 앉았다. 원래라면 나이아가 앉아 있어야 할 자리이지만, 나이아는 몇 년 만에 재회한 은사와 함께 앞으로의 실무를 조율하고 있었다.

우연과 행운 덕분에 비어 버린 자리에 앉은 알렉스는 조심스레 아델라인의 손을 잡아 봤다.

온기가 좋았다.

아델라인의 손에서 전해지는 온기는, 수없이 많은 전장을 거친 끝에 어느샌가 만성적으로 차가워진 알렉스의 손을 덥히고 마음을 녹이는 듯했다. 아델라인의 온기가 너무 좋아, 알렉스는 자꾸 ‘놓아야지, 놓아야지’ 속으로 생각하면서도 그 손을 놓을 자신이 없었다.

알렉스는 결국 아델라인의 손을 잡은 채, 반대편 창문을 바라보며 고민에 빠졌다.

어제의 일은, 훈련을 보내 놓은 외인 소대와 1소대가 있었기에 양자택일의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도 도박이나 다름없었다. 훈련 나간 병력은 감시하지 못할 거라는 확률 계산과 베팅.

베팅에 쓰인 칩에는 아델라인의 안전도, 중대원들의 안전도 있었다. 만약 세이드가 조금 더 치밀했다면, 도박은 실패했을 것이다.

동시에, 알렉스의 머릿속에서는 다른 걱정이 피어올랐다.

다음에도 가능할까.

다음에도 이런 제3의 선택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올까.

만약 자신의 여력으로 상황을 무력화할 수 없게 된다면, 그래서 결국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자신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

단번에 결론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알렉스는 질문을 바꿔 보기로 했다.

어디까지 포기할 수 있을까.

재산과 명예. 그딴 건 아무래도 좋다. 돈이야 벌면 그만이고, 명예는 가져 본 적 없으니 아무래도 괜찮을 터였다.

알렉스 매닝햄, 자신의 몸. 그것 또한 아무래도 좋다. 솔직히 줘도 안 가질, 여기저기 축난 몸을 누가 원하겠냐마는. 그것 또한 내놓아야 한다면 기꺼이 내놓을 수 있었다.

군인이라는 이유로 와닿지 않는 명분으로 벌어진 전쟁에 투입되어 사선을 넘은 게 몇 번이던가. 아델라인과 자신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기꺼이 아델라인을 선택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하지만 동료들이라면. 자신의 옆에서 몇 번이고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라이플맨들이라면. 자신은 그때도 망설임 없이 아델라인을 선택할 수 있을까?

알렉스는 그들이 뭐라고 말할지 알고 있었다.

우리는 걱정 마라. 이래서 월급을 수십 파운드씩 받는 거다. 돈값은 해야 하지 않겠냐. 같은 멋진 말들을 내뱉으며 알렉스의 등을 떠밀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 왔으니 앞으로도 그렇겠지.

그렇다면 알렉스 자신은, 그 선택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동료들의 시신 앞에서, 같이 죽지 못한 자신을 원망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알렉스는 무슨 맛으로 입에 자꾸 넣는지 모를 그녀의 머리카락을 계속 입가에서 치워 주며 창문을 보는 척 유리창에 비친 아델라인의 얼굴을 바라봤다.

가만히 보면 날카로운 첫인상을 지니고 있지만, 알고 보면 모난 곳 없이 둥글둥글하고 귀여웠다. 보면 볼수록 더 보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때, 아델라인의 머리가 알렉스의 어깨 위에 턱, 얹혔다. 갑작스러운 무게감이 느껴지자, 알렉스는 고개를 돌려 아델라인을 바라봤다.

“알렉스…….”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알렉스는 못 들은 척 고개를 돌리며 귀를 가까이 가져갔다.

“흠냐… 좋아해요…….”

그 말에, 알렉스는 움찔! 몸이 잠깐 경직된 뒤, 아델라인을 바라봤다. 그러나 여전히 아델라인은 잠든 상태.

“잠꼬대였나.”

알렉스는 다시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잠꼬대가 아니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알렉스의 귀는, 어느 때보다 붉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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