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엑스트라는 생각보다 대단했다-50화 (50/200)

50화 수렵 허가

“…그래서 고대 제국은 백부장을 뿌리로 둔 군 조직체계를 통해 주변 야만인들과의 분쟁에서 적은 수의 병력으로도 효율적인 전투를…….”

알렉스는 아델라인을 바라봤다. 이미 아델라인의 정신은 나가 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자신의 얼굴을 향해 있었지 책을 향해 있지 않았다.

그 모습에, 알렉스는 책을 탁 덮으며 아델라인이 가장 원할 말을 했다.

“자자.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하죠.”

알렉스의 말에 정신을 차린 아델라인의 눈에 초점이 서서히 돌아왔다.

“아, 벌써 끝난 건가요?”

“왜, 아쉽습니까?”

알렉스의 물음에, 아델라인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수업이 끝났다니 좋기는 한데, 알렉스가 떠난다니 아쉽기도 하고…….

“아쉬우면 뭐 수업 한두 시간 정도는 더 할 수 있죠.”

그 말에, 아델라인은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뇨, 오늘 수업은 충분히 한 것 같습니다. 스승님.”

아델라인이 양손을 한데 모으며 고개를 숙이자, 알렉스는 그녀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보면 볼수록 귀엽고 재미있는 모습이 잔뜩 나왔다.

“좋아요, 그러면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잠깐 산책이나 할까요?”

알렉스의 제안에, 아델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서재를 나와 정원으로 가자, 약간 더위가 누그러들었는지 시원한 바람이 그들을 맞았다.

아델라인은 알렉스의 팔을 보며 물었다.

“팔은 언제 낫는대요?”

“며칠 지나면 부목 풀 거라고 합니다. 그때까지는 참아야겠지요.”

“아하. 그래도 다행이네요. 조금 있으면 푼다니까.”

아델라인의 말에, 알렉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정원에 핀 꽃을 눈에 담던 알렉스는 아델라인을 향해 물었다.

“문득 떠오른 생각인데.”

“네?”

“보라색 눈동자가 흔할까요?”

보라색 수국을 바라보며 묻는 알렉스의 물음에, 아델라인은 잠시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보라색 눈동자. 소설의 여주인공인 피오나의 특징 중 하나로서 묘사되어 있었다. 처음 보는 눈동자 색에 황태자가 관심을 가지기도 했고, 황태자와 피오나가 점점 가까워지자 이를 질투한 아델라인이 보라색 눈동자를 가지고 모함을 하기도 했었다.

뭐, 100년 전 즈음 사라진 마녀의 눈동자 색이 보라색이라고 했던가, 하면서 보라색 눈동자를 불길한 눈동자 색으로 몰아갔었지. 오히려 그것 때문에 아델라인이 황태자의 눈 밖에 나게 된 것이지만.

“흔하지는 않을걸요?”

아델라인의 말에, 알렉스는 그런가… 하며 다시 고민에 빠졌다.

“근데 보라색 눈은 왜요?”

“…이야기가 들려오고 있는 게 있어서.”

알렉스는 그리 말하며 고민에 빠졌다. 보라색. 보라색. 보라색…….

“뭐, 아직까지는 그냥 가설이라 부르기도 힘든 이야기이지만.”

알렉스는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정보들을 한편으로 치우며 아델라인에게 질문을 했다.

“저번 주에 이어 이번 주에도 수업을 했는데, 수업은 어떠십니까?”

알렉스의 질문에, 아델라인은 시선을 회피했다. 솔직히 말하면 도움이 되는 건 맞는데, 수업이 쉽지만은 않았다.

한국어로 배워도 어려운 것을 영어로 배우고 있으니, 아무리 아델라인에 빙의한 이후 영어만 써 왔다고 해도 어렵기는 매한가지였다.

“…다음부터는 다른 방식을 시도해 봐야 할 것 같군요.”

“무슨 방법이요?”

아델라인의 질문에, 알렉스는 눈웃음을 지으며 아델라인을 향해 말했다.

“그건 비밀.”

“에이. 그게 뭐예요.”

“궁금하면 다음 주까지 예습 열심히 하세요. 예습과 복습은 정말 중요합니다.”

마치 학교 선생님 같은 말을 한 알렉스는 시계를 봤다.

“아, 이제 슬슬 돌아가 봐야 할 것 같군요. 당직근무 들어가야 해서.”

알렉스의 말에, 아델라인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일하러 가는 거예요?”

“월급 받은 값은 해야 하니까요.”

알렉스는 아델라인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럼, 다음 주 수업 시간 때 봐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알렉스는 그리 말하며 아델라인의 손을 아쉬운 듯 한 번 어루만진 뒤, 손을 놓고 정문을 향해 걸어갔다. 얼마나 걸었을까, 알렉스는 갑자기 뒤를 돌아 다시 아델라인에게 다가왔다.

“아 참. 부탁할 게 하나 있었는데.”

“뭔가요?”

아델라인이 묻자, 알렉스는 그녀에게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안드레이에게, 브랜디를 마실 때가 온 것 같다고 전해 주세요.”

알렉스의 말에, 아델라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브랜디? 웬 브랜디? 알렉스는 아델라인을 바라보며 곧바로 말을 덧붙였다.

“그렇게 말하면 이해할 거예요. 그렇게만 말해 주세요.”

“알겠어요. 오늘 밤에 들어오니까, 전해 줄게요.”

아델라인의 말을 들은 알렉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럼.”

알렉스의 미소, 알렉스의 행동, 알렉스의 말.

그 모든 것이 평상시와 다른 게 없었지만, 문득 아델라인은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뭐라고 설명하기 힘든 느낌에, 아델라인은 뒤를 돌아 걸어가는 알렉스를 불렀다.

“알렉스!”

멈칫.

아델라인의 부름에, 알렉스가 멈춰 섰다.

“다음 주에, 다시 볼 수 있는 거죠?”

그 말에, 알렉스는 고개를 돌려 아델라인을 바라봤다. 알렉스는 아델라인을 향해 눈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그럴 겁니다. 아마.”

알렉스는 그 말을 남기고 다시 가던 길을 걸어 나갔다. 모든 것이 이상하지 않았음에도, 아델라인은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알렉스의 입은, 웃고 있지 않았다.

* * *

파견 중대 관사. 알렉스는 집무실에서 부목과 붕대를 풀고 거울을 바라봤다. 석궁의 화살을 맞았던 왼쪽 어깨. 겉은 아물었지만, 왼팔을 한번 돌려 보자 고통이 조금씩 느껴졌다.

“…쓰읍.”

알렉스의 얼굴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 옆에서 약들을 약포지에 담고 있던 스워포드는 알렉스를 향해 물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지 않아도 해야겠지.”

알렉스는 스워포드에게서 약포지를 건네받은 뒤, 서너 개의 알약들을 단번에 입에 털어 넣고 물과 함께 꿀꺽 삼켰다.

“우리밖에 할 수 없는 일이니까?”

스워포드의 말에, 알렉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밖에 할 수 없는 일이니까.”

알렉스는 창문 밖을 바라봤다. 황태자의 친위대가 다시 황궁 경비업무로 돌아오며, 그 축하연을 열고 있었다.

창밖으로 들려오는 노랫소리는 흥겹기 그지없었고, 하늘로 쏘아 올리는 불꽃놀이는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일하기 딱 좋은 분위기네.”

“그러게 말입니다.”

알렉스의 말에, 스워포드도 고개를 끄덕이며 화답했다.

황태자의 친위대는 적지 않은 인원이 해임되고 규모도 줄었지만 사라지지는 않았다. 한때는 폐지 여론까지 들끓던 상황이었지만, 시간이 적잖이 지난 만큼 여론도 잠잠해졌으니 슬그머니 다시 돌아와 복귀 기념 연회까지 열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도 이제는 우리보고 뭐라 그러지는 않겠지요. 자기들이 저지른 일이 있으니.”

“그렇지 않을까 싶은데. 뭐, 이제 우리도 더더욱 바빠질 테니까. 대원들은?”

“식당에 모여 있습니다.”

스워포드의 말에, 알렉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 뭉치의 서류를 챙기고 집무실을 나섰다.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서로 수다도 떨며 각자 할 일을 하고 있었을 대원들의 방들은 하나같이 싸늘하고 조용했다.

알렉스는 복도를 지나, 식당으로 들어갔다.

대원들은 모두 자리에 앉아서 식당으로 들어오는 알렉스를 바라봤다. 대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기도 전에 손을 들어 경례를 멈춘 알렉스는 식당 한가운데에 멈춰 섰다.

“밥들은 잘 먹었나?”

“예 그렇습니다!”

알렉스의 물음에, 대원들이 일제히 답했다. 특별히 소리를 크게 낸 것도 아니지만 100명 가까이 되는 대원들이 목소리를 함께 내자, 식당 안이 울릴 정도의 소리가 알렉스의 귀를 울렸다.

“좋다. 알 놈들은 이미 알고 있겠지만, 최근 의회와 내각에서는 프랑크 왕국에 대한 주전론이 점점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알렉스는 천천히 병사들을 주욱 둘러봤다. 이미 대부분이 그에 대해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 큰 동요 없이 알렉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냥 대회, 수도 남부 방화, 그리고 이번의 성 조지 병원까지. 세 건의 사건에서 발견된 프랑크 왕국 양식의 마법은 이러한 주장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정보는 아직 대중에 퍼지지 않았지만, 퍼진다면 전쟁은 피할 수 없겠지.”

그러자 병사들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들도 알렉스와 마찬가지로 전쟁을 좋아하는 이들이 아니었다. 모든 이들이 전쟁을 겪었고, 전장의 진짜 모습을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본부장께서는 다른 가설을 가지고 계신다. 프랑크 왕국도, 우리 정부도 아닌 제삼자가 갈등과 혼란을 조장하고 있다는 가설.”

알렉스는 집무실에서 가져온 서류를 자신의 앞에 앉은 노먼에게 건넸다. 베르티에가 일주일 전 건네주었던 ‘보름달 계획’ 에 관한 보고서였다.

어떤 연구이고, 어떻게 처리되었으며, 그중 몇몇 마법사들이 어떻게 탈출했는지까지 적혀 있는 보고서. 대원들은 차례대로 옆 사람에게 그 보고서를 건네받아 읽고는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다.

보름달 계획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충격적이었지만, 베르티에가 지휘하는 볼티져들이 마법사들을 추적하다가 흑마법에 당했다는 내용은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보고서를 읽은 대원들은 알렉스의 말에 더욱 집중했다.

“만약 그 가설이 사실이라면, 그리고 우리가 제대로 된 증거를 찾아내 해결하지 못한다면.”

알렉스는 대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는 그 어떤 합리적인 이유도 없는 공허한 전쟁을 하게 될 것이다.”

보고서가 한 바퀴 돌고 나자, 다시 그 보고서를 건네받은 노먼은 알렉스에게 보고서를 건넸다. 그걸 건네받은 알렉스는 보고서를 한 손에 들어 보이며 대원들을 향해 말했다.

“사냥 대회, 수도 남부 방화사건, 그리고 성 조지 병원 사건까지.”

알렉스는 세 개의 사건을 읊은 뒤, 대원들을 바라봤다.

“세 개의 사건 전부, 우리를 향한 도발이고 공격이라 보고 있다. 우리의 역량을 시험하고, 우리의 약점을 찾아내려 하고 있다. 우리를 향한 공격은, 언제든지 우리의 가족과 지인을 향할 수 있고, 이미 실제로 우리의 주변인을 노리는 중이다.”

그 말을 듣자, 대원들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상부에서 수렵 허가가 떨어졌다.”

알렉스는 대원들의 눈빛을 주욱 살피며, 그들을 향해 말했다.

“첫 사냥은 내일 오전 3시. 준비 잘할 수 있도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