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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엑스트라는 생각보다 대단했다-46화 (46/200)

46화 서점에서

“넓네요.”

아델라인은 서점의 문을 열고 들어오며 그 안을 둘러봤다. 옆에 있는 다른 가게들과 달리 큰 통유리창 하나 없는 이 서점은 한여름의 바깥과 비교하면 어둡고 약간은 서늘했다.

“시원하다…….”

아델라인은 잠시 눈을 감고 한껏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식히며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책을 다루는 장소답게, 분위기는 공기와 마찬가지로 차분하고 편안했다.

발소리, 책 넘기는 소리, 속삭이는 소리. 서점 문 바깥에 있는 한낮의 활기찬 번화가와 비교하면 정적이나 다름없는 수준이었다. 뒤이어 따라 들어온 알렉스는 문을 닫으며 아델라인에게 속삭였다.

“따라와요.”

그 말에, 아델라인은 말없이 쫄래쫄래 알렉스의 뒤를 따라갔다. 서가마다 명패가 붙어 있었고, 서가마다 사람들이 서 있었다. 그 서가들과 사람들을 지나쳐 서점의 깊숙한 한 지점으로 가자, 사람이 없는 서가가 나타났다.

[군사학]

알렉스는 그 서가에서 책 하나를 집어 들고 후루룩 훑어보았다.

“개정판이긴 해도 제가 보던 것과 차이가 별로 없긴 하군요. 한 번 읽어 보시지요.”

아델라인은 알렉스가 건넨 책을 펼쳐 보았다. 그러자 아델라인을 강타한 것은 고급어휘의 물결. 나이아에게 열심히 배우고는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먼 그녀였기에 금세 머리가 어지러워져 왔다.

“많이 힘드십니까?”

“…대체 이걸 언제 보신 거예요?”

그러자 알렉스는 곧바로 답을 하려다가, 서점에 들어오기 전 아델라인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리고는 입을 급히 다물었다.

‘못 하는 게 없으니까 거리감이 느껴져서요. 뭔가 같은 사람이 아닌 것 같아.’

물론 임기응변으로 간신히 넘겼지만, 아델라인이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중인지 엿보기에는 충분했다.

너무 잘난 척하는 것처럼 느껴졌을까. 알렉스는 잠시 고민한 뒤, 그녀에게 답했다.

“열여덟 살 때, 임관 준비할 때 간신히 다 읽고 임관 시험 쳤습니다. 자칫하면 재수할 뻔했어요.”

“아하.”

그 말을 들은 아델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렉스도 사람이었구나. 아델라인은 문득 자신의 고3 생활을 떠올리며 딴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눈동자는 책으로 향해 있었으나, 의식은 책으로 향해 있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간 시간이 흘렀을까, 수시 여섯 개 탈락과 수능 나군, 다군 탈락으로 재수학원을 알아보던 그녀에게 주어진 가군의 눈물겨운 4차 추합까지 회상을 마친 아델라인은 뒤늦게 풀어진 동공을 다시 집중시켜 슬쩍 옆을 바라봤다.

알렉스는 다른 책을 집어 들고 천천히 읽어 보고 있었다. 저건 무슨 책일까. 군사학인 것 같기는 한데.

아델라인은 잠시 알렉스를 바라보다가 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때, 책 너머로 어떤 한 책의 표지가 눈에 들어왔다.

『호더빌 공성전. 정예란 무엇인가』

그 책의 표지에는 알렉스가 거의 항상 입는 녹색 제복이 그려져 있었다. 직감을 건드리는 듯한 느낌에, 아델라인은 자신도 모르게 알렉스를 바라봤다.

알렉스는 여전히 책에 집중한 상태. 아델라인은 슬쩍 손을 뻗어 책을 펼쳐 봤다.

[라이플여단에 대해]

흡.

아델라인은 자신도 모르게 책을 덮고 숨을 참았다. 그러나 이런 자신의 모습이 더 어색할 거로 생각한 그녀는 다시 조심스레 책을 펼쳐 내용을 읽어 내렸다.

알렉스가 속한 라이플여단에 대한 내용인 것을 소제목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왠지 알렉스의 뒤를 캐는 것 같은 느낌. 뭔가 잘못된 행동을 하는 것 같은 느낌에서 비롯된 초조함으로 인해, 그녀의 눈에는 단어 하나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아델라인은 결국 표지를 덮고 다시 알렉스가 건네준 책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나 이미 붉어진 얼굴과 쿵쿵 뛰고 있는 심장은 도저히 가라앉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괜찮아요, 아델라인?”

어느새 책을 다 본 듯 손에 든 책을 원래 자리에 꽂아 놓은 알렉스가 아델라인을 보며 질문을 했다. 그러자 아델라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책이 살짝… 어렵네요. 처음 읽어서 그런가.”

간신히 둘러대며 알렉스의 질문에 답한 아델라인은 책을 내려놓으며 알렉스에게 말했다.

“일단 이걸로 배울 거라고요?”

“네. 기본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니 처음은 이거 하나면 될 겁니다. 이번 교재는 제가 사지요.”

알렉스가 그리 말하며 아델라인의 손에 들린 책을 집어 들고 카운터로 향했다. 그사이 아델라인은 심호흡을 해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천천히 눈앞의 책을 펼쳤다.

[호더빌 공성전에서, 라이플여단은 정예부대가 무엇인지 입증했다. 특히 그 특징이 돋보였던 것은 호더빌 요새의 점령 직후였다.

큰 피해를 내고 요새 내로 진입한 아군이 항복한 적군과 민간인들을 상대로 총구를 겨눌 때, 당시 현장에 투입되었던 1대대장 스튜어트 중령과 선임위관 알렉스 매닝햄 대위는 곧바로 휘하 대대원에게 명령을 하달해 아군을 진정시키려 했다.

그러나 아군이 쉬이 진정되지 않고 여기저기서 일방적인 학살이 벌어지자, 스튜어트 중령과 매닝햄 대위는 아군을 향해 총구를 겨누는 극약처방을 실시했다. 병사와 부사관은 물론이고 장교까지.

4차 돌격대로 편성된 17연대 또한 병력을 통제할 연대장과 참모 등의 고급 장교들이 요새포에 의해 전멸한 상태였다. 요새 내의 민간인 구역으로 진입한 그들은 아군의 희생에 복수하고자 했고, 1대대의 개입이 이뤄지기 전까지 적지 않은 민간인 사상자를 발생시켰다.

그러나 이들은 매닝햄 대위의 개입을 통해 ‘진정’되었다. 그들의 무장은 강제로 해제되었고, 심지어 장교들은 검까지 빼앗기고 말았다. 예법에 어긋난 일이지만, 이후 매닝햄 대위는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한 사령부에 의해 혐의없음 처분을 받았다.]

아델라인은 그 내용을 읽은 뒤 다시 책을 덮었다. 뭔가 으스스한 기분이 들어 뒤를 돌아보자, 알렉스가 어깨너머로 자신이 읽던 책을 바라보고 있었다.

“뭘 읽고 있는 겁니까?”

알렉스의 속삭임에 아델라인은 흠칫 몸을 떨었다.

“놀랐잖아요. 인기척 좀 내요.”

아델라인은 그렇게 말하며 책을 자리에 두었다. 하마터면 목소리가 크게 나올 뻔한지라, 아델라인은 간신히 심장을 진정시키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알렉스는 그녀의 손을 잡은 뒤 또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미안해요. 책은 배달을 맡겼으니 오늘 내로 올 거예요.”

“고마워요. 자, 이제 슬슬 나갈까요?”

아델라인의 제안에, 알렉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볼일은 끝났으니까.

아델라인과 알렉스가 밖으로 나가자, 서점 안의 시원한 공기가 금세 그리워지는 더위가 그들을 강타했다. 몇 걸음 걷지도 않았는데, 아델라인의 이마에서는 땀방울이 조금씩 맺혔다.

“흐아…….”

“날이 많이 덥군요. 어디 들어가야 할 듯합니다.”

알렉스는 그런 그녀의 이마를 손수건으로 닦아 주며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게요… 그러고 보니 지금 시간이 몇 시쯤이죠?”

아델라인의 물음에, 알렉스는 회중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

“12시 반. 점심시간이군요.”

사람이라는 게 참 신기했다. 알렉스의 말에, 아델라인의 배가 꼬르륵, 울리며 허기가 찾아왔다. 아델라인은 갑자기 자신의 배에서 울린 소리를 듣고 얼굴을 붉혔지만, 그 모습을 본 알렉스는 아델라인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밥이나 먹으러 가죠. 주변에 적당한 식당이 있을 텐데.”

“저긴 어떤가요?”

아델라인도 알렉스와 같이 주변을 둘러보다가 길 건너편의 한 가게를 발견했다.

흰색과 빨간색과 초록색이 올려진 원형의 판. 저게 의미하는 건…….

“저기로 가 볼까요?”

아델라인이 그 가게를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알렉스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걸음을 옮긴 그들이 가게의 문을 열자, 아델라인의 예감대로 맛있는 냄새가 코를 간질였다.

역시. 예상대로 이곳은 피자 가게였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종업원이 두 사람을 창가 자리로 안내했다.

“주문하시겠습니까?”

종업원이 특이한 억양으로 묻자, 아델라인은 메뉴판을 펼쳐 메뉴들을 훑어보았다.

“일단 이거랑 이거로 주세요.”

“알겠습니다, 손님.”

아델라인의 주문을 받은 종업원은 계산서를 테이블 한쪽에 걸어 둔 뒤, 주방으로 향했다. 그사이 주변을 둘러본 알렉스는 아델라인에게 질문을 했다.

“어떤 음식을 시키셨습니까? 이런 곳은 처음이라.”

“맛있는 거로 시켰어요. 아, 저기 온다.”

주문을 마친지 얼마나 되었다고, 종업원이 그들의 테이블에 피자 두 판을 내려놓았다. 하나는 마르게리타, 하나는 고르곤졸라 피자였다.

“맛있게 드십시오.”

식기를 놓은 종업원이 꿀을 담은 종지까지 내려놓고 떠나자, 아델라인은 미소를 지으며 알렉스를 바라봤다.

알렉스는 피자를 처음 보는 듯, 멀쩡한 오른손으로 포크를 들고 어찌 먹어야 할지 이리저리 견적을 대보고 있었다. 반대로 아델라인은 능숙하게 앞접시에 피자 한 조각을 올려놓고 손으로 피자를 접어 한 입 베어 물었다.

아델라인이 오물거리며 맛을 음미하는 걸 본 알렉스는 조심스레 포크를 내려놓고 아델라인을 따라 마르게리타 피자를 손으로 집어 한 입 베어 물었다.

“…맛있다.”

알렉스는 내심 감탄하며 계속 피자를 먹었다. 마치 피자를 처음 먹는 듯한 반응에, 아델라인은 알렉스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거 처음 먹어 봐요?”

“처음 먹어 보는 거지요. 수도에 올라와서는 계속 바빴으니 외식할 틈도 없었으니까요.”

“다행이네요. 한 손으로 먹을 수 있을 만한 음식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겨우 발견했거든요. 입에 맞는다니 다행이에요.”

그 말에 알렉스는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석궁에 팔을 맞는 바람에, 훈장 수여식 때 추기로 한 춤도 못 춰서 미안했는데. 여전히 아델라인에게 배려를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더욱 미안해졌다.

“마음 쓰이게 해서 미안해요.”

“미안하면 빨리 나으세요. 자, 입 벌려 봐요.”

아델라인은 고르곤졸라 피자를 한 조각 덜어 내 꿀에 찍고는 알렉스에게 내밀었다.

“아―”

마치 어린아이에게 먹으라고 건네는 것 같은 행동에 알렉스의 귀가 붉어졌지만, 이내 아무 말 않고 턱, 아델라인의 손에 들린 피자를 한 입 베어 물었다.

마르게리타 피자와는 다른 맛에, 알렉스의 표정이 놀람으로 가득 찼다. 그러자 아델라인은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물었다.

“맛있죠? 고르곤졸라 피자는 꿀에 찍어 먹어야 맛있더라고요.”

알렉스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입은 부지런히 오물거렸지만, 그의 귀는 식을 기미가 없었다.

그렇게 사이좋게 이야기를 나누는 그들을, 누군가가 창문 너머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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