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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엑스트라는 생각보다 대단했다-45화 (45/200)

45화 재정비

알렉스의 집무실. 알렉스는 눈을 살짝 감은 채 왼손을 책상에 올려놓고 있었다. 작은 수술용 칼날이 그의 손등을 스치고, 그 틈새에 핀셋의 머리가 들어가 얇은 실을 주욱 끌어당겼다.

실을 뽑은 팩은 알렉스의 손등을 살펴본 뒤,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손등은 거의 다 나았습니다. 연고는 그래도 한주 더 바르십쇼. 왼팔은 한참 남았으니 되도록 쓰지 마시고.”

“알겠어, 알겠어.”

알렉스는 한숨을 쉬며 왼손 손등을 바라봤다. 어느새 왼손은 방금 실밥을 빼내기 위해 팩이 살짝 가른 부위를 제외하면 거의 다 아물어 있었다.

팩은 알렉스의 손등에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은 뒤 도구와 약상자를 챙겨 집무실을 나섰다. 알렉스는 그를 손을 들어 배웅한 뒤, 신문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내각, 빈민가 재정비 정책 시작.

다수당의 추경 제안… 남부당은 ‘신중’.

수도사단의 수도 진입. 경비대와 함께 치안 유지 작전 수행.]

그동안 빈민가는 거들떠보지 않던 신문이 이례적으로 빈민가의 상황과 관련 지원 정책을 쏟아 내고 있었다.

알렉스는 다 읽은 신문을 책상 한편에 접어 둔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그의 집무실 문을 누군가가 두드렸다.

똑똑.

“무슨 일이야.”

그러자 문을 열고 스워포드가 머리를 내밀었다.

“중대장님, 신문 다 읽으셨습니까?”

“어, 가져가라.”

알렉스는 그렇게 말하며 거울을 보며 머리를 다듬었다. 스워포드는 알렉스의 책상에서 신문을 주섬주섬 챙기며 물었다.

“어디 선보러 가십니까?”

“선은 무슨. 책 좀 사러 간다.”

그러자 스워포드는 알렉스의 왼팔을 바라보며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다.

“석궁 맞은 데는 괜찮습니까? 한 대 맞으면 훅 가는데 보통.”

“죽진 않았잖아. 그리고 부업 하나 하게 돼서, 나도 준비해야 할 게 있어.”

“아, 저번에 로피츠 영애… 아니, 이젠 여사구나. 암튼 그거 말입니까?”

스워포드가 신문을 들고 읽으며 묻자, 알렉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제복을 가다듬었다.

“허가 떨어졌으니 슬슬 준비해야지. 그나저나 스틸웰 공업은 재정비 사업에 뭐 한대?”

스워포드는 그 질문에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집 나온 지 꽤 되었는데 그걸 제게 물으시면. 애초에 저는 사업이 어떻게 굴러가는지도 모릅니다.”

“그것도 그런가.”

알렉스는 스워포드를 향해 몸을 돌리며 물었다.

“어떠냐.”

그러자 알렉스를 위아래로 훑어본 스워포드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갈아입을 제복이 없어서 아껴 둔 새 제복 어거지로 입은 부상병이요.”

“말은.”

알렉스는 아직 멀쩡한 오른손으로 스워포드의 옆구리에 퍽, 주먹을 꽂았다. 그러자 스워포드는 숨이 턱 막히는 소리를 내며 허리를 숙였다.

“끄으으… 아니 솔직하게 말해도 그러깁니까?!”

그때, 노먼이 반쯤 열려 있는 집무실 문을 밀고 들어왔다. 그러자 알렉스는 노먼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 부중대장. 요즘은 어때요. 적응은 잘해 가는 중입니까?”

“부중대장이라는 말이 아직은 어색합니다. 일단 업무는 다 익혀 뒀지만, 몇몇 부분은 재확인 중입니다.”

“뭘 재확인 중이십니까?”

알렉스가 묻자, 노먼은 알렉스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제가 오기 직전에, 며칠 동안 내리 소시지를 드셨다는 기록이 나와서. 혹시 누가 부식을 몰래 먹고 그렇게 쓴 게 아닐까 확인 중입니다.”

움찔.

그 말에 알렉스와 스워포드 두 사람의 몸이 움찔거렸다. 그러자 노먼은 무언가를 눈치챘는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이제 그렇게 신경 안 써 주셔도 된다고 여단 본부에 말했는데. 어차피 세속주의자로 몰려 쫓겨 난 신세인 거 알면서 그러신 겁니까.”

“그리 말해도 신경이 안 쓰일 리가 없지 않겠어요. 남도 아니고. 돼지고기 힘들어한다는 거 다들 아는데.”

알렉스의 말에, 노먼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자신을 향한 배려가 느껴졌기에, 노먼은 알렉스에게 말없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노먼이 알렉스의 책상에 장부를 내려놓았다. 지금껏 인수인계를 위해 붙들고 있던 보급품 장부일 것이다.

그 장부를 펼쳐 훑어본 알렉스는 마지막 확인란에 자신의 서명을 한 뒤 올려놓았다. 알렉스는 제복 코트 주머니의 회중시계를 꺼내 본 뒤, 곧바로 집무실 문을 향해 걸어갔다.

“나 갔다 온다. 좀 늦을 수도 있어. 중위도 잘 부탁할게요.”

“다녀오십쇼.”

“다녀오시지요.”

알렉스는 옷걸이에 걸린 모자를 챙겨 쓰며 복도로 나왔다. 일주일간 2교대로 돌아가며 고생했던 병사들은 간만의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누군가는 내기에서 진 건지 책을 읽으며 침대에 누워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누군가는 밀린 빨래를 하는 중이었다.

알렉스는 그런 그들의 모습을 한 번씩 눈에 담은 뒤 관사를 나가 황궁을 가로질렀다. 제1 수도경비대가 황궁을 경비하는 모습은 영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 풍경을 뒤로하고 황궁 정문으로 나서자, 길 건너편 가장자리에 세워진 마차가 눈에 들어왔다.

알렉스를 창문으로 본 건지, 그 마차에서 아델라인이 내려 그에게 손을 살짝 들어 보였다. 알렉스는 길을 건너, 아델라인에게 다가가 인사했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일주일 만이네요. 그동안 잘 지냈나요?”

그러자 알렉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오늘 왼손의 실밥을 뺐습니다. 일주일만 더 연고 바르면 손등은 나을 겁니다.”

알렉스의 말에, 아델라인은 미소를 지었다. 알렉스의 부상이 다 낫지 않았다는 건 제복 소매로 집어넣지 못한 그의 왼팔만 봐도 알 수 있었지만, 자신이 안 좋은 표정을 지으면 알렉스는 역으로 자신을 걱정할 것 같았기에.

“다행이네요. 그럼 갈까요?”

“좋습니다. 간만의 휴일이니 즐겨야겠지요.”

알렉스는 그리 말하며 아델라인에게 오른손을 내밀었다. 원래는 왼손을 내밀었겠지만, 그의 왼손은 지금 부목에 매여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오늘은 서점을 가는 건가요?”

“서점에서 책을 살 겁니다. 어떤 책이 맞을지는, 직접 표지를 만져 보고 내용을 훑어봐야 느껴지는 것이니까요.”

알렉스의 말에, 아델라인은 알 듯 말 듯 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도, 그 이전 생에서도 책과는 그리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 오히려 핸드폰이 더욱 가까웠지.

“책을 좋아하나 봐요.”

“어릴 적부터 읽어 왔습니다. 좋은 분이 계셔서 기회가 많았습니다.”

“좋은 분이요?”

알렉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분은 항상 제게 말씀하셨죠. 글을 익히고 책을 읽으라고.”

알렉스는 거리를 걸으며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저녁때마다, 저와 다른 아이들을 불러 글을 가르치고 책을 읽히셨습니다. 그때는 한 자, 한 자 배워 나가는 게 얼마나 재미있었던지.”

“아하. 좋은 분이시네요.”

아델라인이 그렇게 말하자, 잠시 아델라인의 반대편을 바라보던 알렉스는 이내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좋은 분이셨죠. 그래서 지금도 계속 책이나 신문을 읽으려 노력하는 편입니다.”

알렉스와 아델라인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점점 번화가로 들어섰다. 나이아 이야기, 안드레이 이야기, 스워포드 이야기 등으로 이야기꽃을 피우던 중, 알렉스는 아델라인을 향해 자연스레 물었다.

“군사학이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군사학이면… 군대를 다루는 학문. 아닌가요?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사전적으로는 맞습니다. 근데 그 안에는 전략, 전술, 군수, 군사행정, 장비와 무기, 전쟁사와 외교, 법과 경제까지. 수많은 내용이 포괄적으로 담겨 있죠.”

아델라인이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내용에, 그녀는 충격받은 얼굴로 알렉스를 바라봤다. 군사학이라는 게 그냥 병사들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가 아니었어?

“그런 학문들을 전부 적용해야, 군대가 군대로서 기능할 수 있게 됩니다. 단지 배우는 사람이 적어서 강사를 구하는 게 힘든 게 아니지요.”

“그걸… 다 배워야 하나요?”

아델라인이 살짝 두렵다는 표정을 지으며 알렉스를 바라봤다. 그러자 알렉스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군사학이란 돈을 예술적으로 낭비하는 학문입니다. 그래서, 그중에 유용한 것 몇 가지만 가르쳐 드릴 겁니다.”

“몇 가지만요?”

“저처럼 변호사 시험 치실 겁니까? 아니면 현역 장교가 되실 겁니까? 그럼 다 가르쳐 드리고.”

알렉스가 묻자, 아델라인은 고개를 저었다. 변호사가 될 생각은 없었다. 변호사 시험이 운전면허증도 아니고…….

잠깐.

저처럼?

아델라인은 놀란 눈으로 알렉스를 바라봤다.

“변호사였어요? 알렉스 당신이? 어떻게?!”

“시험을 쳐서, 겠죠?”

알렉스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표정으로 태연하게 그녀를 자신의 품으로 살짝 끌어당겼다.

훅!

아델라인이 있던 자리로 짐을 잔뜩 진 한 남자가 지나가는 것을 본 알렉스는 품 안의 그녀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왜, 일전에 제가 말했잖습니까. 암시장 갈 일 있으면 부르라고. 가서 법적으로 문제 될 수 있는 것들을 알려 줄 수 있다고.”

“그게… 그런 의미였어요?”

“어엿하게 변호사 협회에 회비도 내고 있는 성실한 회원이랍니다.”

알렉스는 그리 말하며 아델라인을 품 안에서 놓아주었다.

“여기저기 써먹을 일이 많아서 임관하자마자 공부했지요.”

“얼마나요?”

“한… 반년 정도?”

“휴직하고요?”

“휴직을 어떻게 합니까. 일은 계속해야지. 뭐… 북부 국경에서는 국경경비대 일만 도우면 되니 조금 시간이 넉넉했지만.”

알렉스는 그리 말하며 ‘참 쉽죠?’라는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리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 저거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붓을 잘 잡는 수염 아저씨가 저런 표정을 지은 걸 봤었는데.

“…….”

아델라인은 잠시 알렉스의 손을 놓은 뒤, 반 발짝 정도 거리를 벌렸다. 아델라인이 말없이 거리를 벌리자, 여유로운 미소가 넘치던 알렉스의 표정이 당혹감에 굳어 가기 시작했다.

“왜… 거리를 두는 거죠?”

“알렉스가 너무 잘나서요.”

“네?”

“몸도 잘 써, 머리도 좋아, 부하들도 잘 따르고.”

아델라인은 슬쩍 고개를 돌리며 알렉스에게 들으란 듯 중얼거렸다.

“못 하는 게 없으니까 거리감이 느껴져서요. 뭔가 같은 사람이 아닌 것 같아.”

“…….”

아델라인은 가게의 쇼윈도에 비친 알렉스의 표정을 바라봤다. 유리에 비친 알렉스의 얼굴은 시무룩 그 자체였다.

아델라인은 그 표정을 눈에 담으며 남몰래 미소를 지었다. 알렉스의 어쩔 줄 몰라 시무룩한 표정은 정말 뭐랄까… 어휘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을 준다. 평소의 모습과 다르게 갭이 커서 그런가.

그때, 아델라인의 바로 앞, 골목길 모퉁이에서 한 사람이 불쑥 튀어나왔다. 아델라인보다 머리 두 개는 더 큰 남자가 한눈을 판 채 그녀를 향해 다가오자, 순간 놀라 몸이 굳어 버린 아델라인이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그때. 아델라인의 팔이 훅 당겨지며 몸이 끌려갔다. 당장 누군가와 부딪힐 거로 생각했던 아델라인의 어깨에, 포근하고 따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두근두근.

“괜찮아요?”

아델라인의 귀에, 알렉스의 목소리가 속삭여 왔다. 그러자 아델라인의 귀가 화악 붉어지며 감았던 눈이 절로 떠졌다.

한 가게의 쇼윈도를 보자, 자신은 어느새 알렉스의 팔에 감겨 그의 품에 꼭 안겨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마치 알렉스가 한 팔로 뒤에서 그녀를 끌어안은 모양새였다.

아델라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의 귀에 옅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아델라인은 알렉스의 품에서 벗어나려 몸을 움찔움찔 움직였다.

그러나 알렉스의 오른팔은 너무 굳건해서, 결국 그의 품에서 벗어나지 못한 아델라인은 가만히 알렉스의 행동을 기다렸다.

그때, 알렉스의 목소리가 그녀의 귀를 간질였다.

“이래도, 아직 거리감이 느껴져?”

알렉스의 물음에, 아델라인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결국, 아델라인은 알렉스가 원하는 답을 나지막한 목소리로 뱉을 수밖에 없었다.

“미안해요…….”

“에이, 뭘요.”

그 대답에 만족한 건지, 알렉스는 아델라인의 몸을 감싸 안았던 팔을 풀었다. 그러나 아델라인의 손만큼은, 알렉스의 손에 굳게 잡혀 있었다.

“자, 서점까지 갈 길이 멉니다.”

어느새 평상시의 얼굴로 돌아온 알렉스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제 조금 서두르죠. 들어가면 시원해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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