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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엑스트라는 생각보다 대단했다-37화 (37/200)

37화 주재무관과 파견 장교

알렉스는 정장을 갖춰 입었다. 어느새 붉은색 제복보다는 훨씬 익숙해진 옷을 입은 그는 서류 가방을 챙긴 뒤 집무실 바깥으로 나갔다.

그러자 오늘도 어김없이 소시지를 입에 물고 꾸역꾸역 넘기는 대원들이 보였다. 스워포드도 예외는 아니었다.

알렉스는 그들을 스쳐 지나가며 물었다.

“오늘 오는 거냐?”

“오늘 저녁에 도착한답니다. 지금 보급 담당하는 놈들은 목매달 준비 하고 있다는데요.”

“왜?”

“외인 소대 병력 장비가 제식 장비가 아니라서 일일이 규격 외 장비 등록하며 과로사하느니 깔끔하게 먼저 간다고요.”

보급 담당들의 엄살 어린 시위 소식을 들은 알렉스는 피식 웃으며 스워포드를 향해 말했다.

“말은. 갈 땐 가더라도 이번 달 결산은 맞춰 놓고 가라 그래.”

“알겠습니다.”

짓궂은 농담이 오간 뒤, 알렉스는 관사를 나섰다. 오늘은 저녁에 아델라인과의 일정이 있었지만, 그 전에 잡힌 비공식적인 일정도 있었다.

알렉스는 황궁 정문으로 나선 뒤, 마차를 잡아 올라탔다. 문간에 선 안내원에게 동전으로 요금을 지불한 그는 창밖을 바라봤다.

사냥 대회. 그때 있었던 ‘사고’. 그때 알렉스가 대원들과 함께 잡은 늑대를 분석한 결과가, 자칫하면 지금까지의 긴장을 단번에 열전으로 확대할 수 있는 내용이 손에 들려 있었다. 물론 확실한 건 없지만, 그래도 갈피 정도는 잡을 수 있는 내용이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일상을 눈에 담았다. 이상적인 모습은 아니었다. 부와 빈의 격차가 명확하며, 신분의 격차가 뚜렷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이런 일상이, 이런 평화가 깨질 수도 있었다. 단 몇 시간 내로.

알렉스는 프랑크 왕국의 대사관 앞에서 내려, 대사관 맞은편의 커피 하우스로 향했다. 그 안으로 들어가 살짝 돌아보자, 이내 만나기로 한 사람이 시야에 들어왔다.

“여기네, 알.”

알렉스와 마찬가지로 사복을 입은 베르티에가 카페오레를 홀짝이며 알렉스를 향해 살짝 손을 들어 보였다.

그러자 알렉스는 그의 맞은편 자리에 앉은 뒤, 점원을 향해 주문했다.

“카페오레로 한 잔.”

“알겠습니다.”

점원이 멀어지자, 알렉스는 베르티에를 향해 안부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군, 미셸.”

“자네도.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겉으로만 보면 두 신사의 일상적인 대화였지만, 그 속은 달랐다. 녹색의 안광은 푸른색의 안광을 만나 몇 번이고 충돌했다.

이내 점원이 알렉스가 주문한 카페오레를 내려놓고 물러나자, 알렉스는 몸을 천천히 기울여 잔을 집어 들고 그 맛을 봤다.

“평범하게 바빴지. 일이 하나 더 늘어서 말이야.”

“그렇군. 그럼, 본론으로 들어갈까. 날 부른 거면 가벼운 일은 아닐 테니.”

베르티에가 잔을 옆으로 치워 놓으며 제안하자, 알렉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서류 가방을 열어 몇 장의 종이를 꺼냈다.

이 종이의 내용을 보증할 수단은 하나도 없었다. 흔하디흔한 서명 하나도 없는 종이였지만, 그걸 건네받은 베르티에는 신중한 눈으로 그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그러니까, 그 들개가 프랑크산 와인을 마셨다고.”

“그것도 군납 포트와인을 말이지.”

베르티에는 심각한 표정으로 알렉스를 향해 말했다. 사냥 대회 때 출몰했던 그 늑대의 몸에서, 프랑크 왕국 양식의 마법. 그것도 군용 마법진이 발견되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문서에는 그 어떤 조사기관의 표식도 찍혀 있지 않았지만, 알렉스를 통해 정보를 제시할 만큼 필즈먼은 이 정보에 대해, 그리고 이 정보를 도출한 집단의 분석력을 신뢰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베르티에의 머리가 아파 왔다.

“…….”

프랑크 왕국의 주재 무관 단장 보좌관이자, 프랑크 육군의 경보병 장교인 베르티에. 그가 참가했던 사냥 대회에서 프랑크 왕국의 마법으로 강화된 늑대가 폭주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전쟁으로 반사 이익을 볼 수 있는 집단들과 연이 있는 의원들과 언론사들은 주전론을 부추길 것이다.

그리고 내각은, 지지도 유지에 손해될 게 없는 전쟁의 열기를 부추기면 부추겼지, 진압하려 들진 않을 것이다.

파비앙 왕국도 마찬가지. 여러 악재가 연이어 터지고 있는 왕국의 집권 세력은 내부의 불만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전쟁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다. 그러면 그 끝에 남은 건…….

전쟁.

순식간에 계산을 마친 베르티에는 알렉스에게 질문을 던졌다.

“자네 아버지의 의견은 어떤가.”

베르티에가 알렉스의 상관이자 육군 서열 1위, 필즈먼 대장의 의중을 물었다.

“포트와인을 만드는 양조장이 문을 닫았다는 것 정도는 아는 분이니, 아직 들개를 좀 더 살펴보고 계시는 중이지. 입단속도 함께 하는 중이고.”

필즈먼이 신중론을 택했다는 걸 전해 듣자, 베르티에도 한결 마음이 놓이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의 손가락은 초조함을 여실히 내보이고 있었다.

베르티에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한숨과 함께 알렉스를 향해 말했다.

“양조장은 문을 닫았고, 일하던 일꾼들은 대부분 제 자리를 찾아갔지만.”

그는 품속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 알렉스에게 건넸다.

“몇몇 일꾼들은 사라지고 말았다네. 가족들도 함께.”

알렉스가 건넨 서류와 마찬가지로, 그 봉투에는 어떠한 표시도 되어 있지 않았다. 봉투에서 종이를 꺼낸 알렉스는 종이의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그동안 마법이나 약물을 통해 동물을 이용한 생체 실험을 진행하던 학자들과 마법사들의 명단이었다. 알렉스는 그 이름들을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

“최근 제국 곳곳에서 아동 연쇄 납치가 발생했다지. 그중 얼마나 찾았나?”

그러자 종이를 봉투에 넣고, 그 봉투를 품속에 넣은 알렉스는 손가락으로 슬쩍 수신호를 보냈다.

3. 3할. 이미 지방 행정 조직의 둔중한 관료 체계를 뚫고 의회와 군부에게 소식이 전해졌을 때는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였다.

그나마 수도에서는 전직 육군 장교 출신인 휘태커 경감과 함께 보조를 맞추어 움직일 수 있었지만, 지방 영지 같은 경우에는 행동에 큰 제약이 걸렸다.

“그쪽은?”

알렉스가 묻자, 베르티에는 한숨을 쉬며 답했다.

“우리보다 낫군.”

그는 자조적인 미소를 띠며 손가락을 하나 펴서 흔들어 보였다. 1할. 인구수도, 영토도 큰 만큼 찾는 건 더 어려웠을 것이다. 거기다가 연이어 악재까지 터져 중앙의 힘이 점차 약화하고 있으니 더더욱.

“우리도 일꾼들을 찾아보지. 하지만… 장담은 못 하겠네.”

“아네, 그저 우리 본가의 상황도 전해 달라는 뜻이었네. 오늘 떠난다고 했나, 자네 아버지는?”

알렉스가 고개를 끄덕이자, 베르티에는 계산서를 챙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말씀 좀 잘 전해 주게.”

베르티에가 커피 하우스를 떠나자, 알렉스는 베르티에가 건넸던 종이가 있던 책상 위를 바라보며 홀로 앉아 카페오레를 홀짝였다. 우유로 커피의 쓴맛을 중화했다지만, 그 씁쓸함은 알렉스의 입 안을 오래도록 맴돌았다.

프랑크 왕국과 글로나스 제국. 구대륙의 양대 열강이 같은 시기에 같은 문제를 품고 있었다.

과연 이게 우연의 일치일까.

알렉스는 잔을 비운 뒤, 커피 하우스 한편의 벽시계를 바라봤다. 이제 슬슬 다시 관사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고 아델라인을 만날 시간이었다.

가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난 알렉스는 마차가 멈춰 서는 정류장 벤치에 앉았다.

욱신.

알렉스가 앉자마자, 긴장이 풀려 버린 다리가 고통의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다리가 굳어 버린 채 움직이지 않았다. 무릎을 송곳으로 쑤시고, 발목을 톱으로 잘라 내는 듯한 고통이 하반신을 장악했다.

식은땀을 흘리며 고통을 억누르려 노력할 때, 알렉스의 앞에 마차가 멈춰 섰다. 사람들이 내리고 또 올라탔지만, 그동안 알렉스는 벤치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그 모습을 의아하게 본 마부가 그를 향해 물었다.

“안 탈 거요, 청년?”

그러자 알렉스는 고개를 가로저은 뒤 자신의 다리를 주먹으로 콱 내리찍었다. 그러자 뜻대로 안 따라 주던 다리에 간신히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알렉스는 자리에서 비틀거리며 일어난 뒤, 출입구 옆의 봉을 꽉 쥐고 간신히 올라탔다.

안내원에게 동전 몇 개를 건네 요금을 치른 그는 문간의 빈자리에 풀썩 앉았다. 오늘은 왜 이리 아픈 걸까. 비라도 내리려는 걸까.

알렉스는 소매로 식은땀을 연신 닦아 내며 턱 끝까지 차오르는 고통을 가다듬었다. 숨을 연신 몰아쉬자, 간신히 고통이 가라앉았다.

알렉스는 창문 유리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봤다. 눈에 핏줄은 붉게 튀어나와 있었고, 온 얼굴이 땀투성이였다. 잠시 자신의 못난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알렉스는 헛웃음을 흘렸다.

‘그러니까. 제게는 아직 파트너가 필요하다고요.’

아델라인의 목소리가 자신의 귓가에 맴돌았다. 머릿속으로 되뇔수록 그 목소리가 너무 달콤하게 느껴져서, 아직 다리에 남아 있는 고통도 녹아 없어지는 것 같았다.

어쩌다 이런 감정을 가지게 되었을까.

처음에는 분명 안 좋게 만났던 것 같은데, 어쩌다가 이렇게 이상한 감정을 지니게 되었을까.

자꾸만 선을 넘고 싶고, 자꾸만 더 가까워지고 싶었다. 함께하는 시간이 좀 더 많았으면 좋겠다.

“…차라리 참모부로 갈 걸 그랬나.”

일전에 들어왔던 참모본부의 제안. 참모본부의 자리는 돈으로도 구할 수 없는, 누구나 원하는 자리였다.

참모본부에 발을 들이는 것은 출세 가도에 발을 들이는 것과 같았다. 참모부에 속한다는 것 자체가 그 사람의 능력을 입증하는 만큼, 귀족들이라도 함부로 참모본부의 참모들을 꾸짖을 수 없었다.

만약 자신도 참모부로 갔다면, 아델라인에게 좀 더 편하게 다가갈 수 있었을까?

계속해서 임무에 투입되는 라이플맨보다는, 번듯한 레드 코트와 반짝이는 훈장을 걸친 참모가 좀 더 좋았을까?

그 고민은 계속해서 알렉스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황궁으로 돌아와, 땀에 젖은 양복을 벗은 뒤 관사에서 연미복을 챙겨 입고, 다시 약속 장소인 황궁 정문 앞에 서서 아델라인을 기다릴 때까지도.

언제부터일까. 먼저 약속 장소 앞에 나와 회중시계를 바라보며 기다리는 일이 전혀 짜증 나지 않게 된 건.

오히려 그 시간이 기다려지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시간이 흘러갔다. 회중시계의 분침이 6을 지나쳐 7로 향하던 때, 알렉스의 앞에 마차가 멈춰 섰다.

“늦어서 미안해요! 어서 타요!”

이번에도 늦은 아델라인이 창문 바깥으로 얼굴을 내밀며 외치자, 알렉스는 자연스레 마차에 올라탔다.

“이번에는 뭘 하다 늦으신 겁니까?”

“일하다가요.”

그러자 알렉스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일을 하십니까?”

“그래요, 밥값은 한다고요.”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힐 것 같은 아델라인이 일을 한다는 말에, 알렉스는 몸을 기울여 그녀를 바라봤다.

아델라인은 그런 알렉스의 행동에 얼굴을 붉혔지만, 곧 들고 있던 파우치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 알렉스에게 건넸다.

공작가의 인장이 찍힌 봉투를 받아든 알렉스는 아델라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게 뭡니까?”

그 말에, 아델라인은 당연한 걸 묻느냐는 눈빛을 보내며 그의 질문에 답했다.

“계약서요.”

“네?”

“계약서. 일주일에 한 번씩 수업하는 조건의 계약서예요.”

알렉스는 곧바로 봉투를 뜯었다. 그러자 아델라인이 말한 그대로의 내용이 담긴 계약서가 드러났다.

일주일에 한 번씩, 사격과 검술 그리고 군사학을 가르쳐 줄 것. 일이 생기면 이유는 말해 주지 않아도 되니 미리 알려 주기만 할 것.

그 뒤로 보수나 조건 같은 게 붙어 있었지만, 눈 깜빡할 사이에 그 조항들을 읽고 맨 아래의 서명란에 서명했다.

사사삭.

알렉스가 순식간에 서명을 마치고 아델라인에게 그 서류를 건네자, 아델라인은 놀란 표정으로 계약서를 받아들었다.

“다 읽은 거 맞아요?”

알렉스는 창밖을 바라보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아델라인은 계약서 중간에 있는 조항을 짚어 내 그에게 물었다.

“제4항. 뭔지 알…….”

그러나 알렉스는 아델라인이 질문을 마치기도 전에 답했다.

“제4항. 교습비는 매달 1일, 현금 혹은 송금환의 형태로 을에게 지불되어야 한다. 이때 갑은 을에게 수령확인증을 요청할 수 있다.”

알렉스가 깔끔하고 정확한 답을 내놓자, 아델라인은 신기하다는 눈으로 알렉스를 바라봤다. 어떻게 이걸 한 번에 다 외워서 답을 할 수 있지.

아델라인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자, 알렉스는 아델라인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확인받듯 말했다.

“계약, 한 겁니다?”

그 목소리에는, 바로 앞에 있는 아델라인도 알아채기 힘든 설렘이 아주 조금 묻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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