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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엑스트라는 생각보다 대단했다-36화 (36/200)

36화 음유 시인의 노래

아포가토를 맛있게 비운 알렉스와 아델라인은 다시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2시가 지나 해가 조금씩 기울자, 그늘은 조금 더 넓어졌고 공기는 조금 더 선선해졌다.

“월급은 얼마나 받아요?”

“하루에 수당 이것저것 더하면 1파운드 10실링 정도 받습니다. 일반적인 보병 대위의 2.5배 정도.”

그러자 아델라인은 머릿속으로 실링과 파운드를 이리저리 조합해서 계산하기 시작했다. 1파운드는 20실링, 1실링은 12펜스… 대략 하루에 30실링… 한 달이 30일…….

“45파운드?”

“조금 넘죠. 작전이 빈번한 달은 60~70파운드까지 뛰고. 물론 매달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지만요. 식비며, 약값이며…….”

“세상에.”

자신의 용돈보다 큰 월급에, 아델라인은 대단하다는 듯 바라봤다. 두 사람은 어느새 거리를 지나 강변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강변의 강둑으로 난 길에는 산책을 나온 사람들, 그리고 분주하게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어느 정도 일정한 거리를 둔 채 거리 공연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느 곳은 몇몇 사람들만이 서서 노래를 듣고 있었지만, 어느 곳은 사람들이 벽을 이루고 있어 연주자의 얼굴이 보이지도 않았다.

“우리도 한 번 가 보죠!”

인파에 관심이 생긴 아델라인은 알렉스의 소매를 살짝 잡아끌며 그를 바라봤다. 알렉스는 고개를 선선히 끄덕이며 그녀의 인도를 따랐다.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자, 사람 장벽에 막혀 있던 노랫소리가 들렸다. 물론 황궁에 있는 연주자들과 비교하면 약간 부족했지만,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건 그 선율이 아니었다.

누구랑 누가 사귄다더라.

누가 황실 경마대회에서 어떻게 우승을 거뒀더라.

누구랑 누가 싸웠다더라.

가운데에서 현악기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음유 시인은 여러 가십을 노래의 선율을 빌려 연주하고 있었다. 황궁에 발을 들이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대신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전해 주는 것이었다.

그때, 연주를 마친 음유 시인이 허리를 살짝 숙였다. 그러자 노래를 듣고 있던 이들은 악기 케이스에 구리 동전 한 닢씩 던져 성의를 표했다.

비록 노래의 반절도 듣지 못했지만, 알렉스는 기꺼이 지갑을 꺼내 구리 동전을 한 닢 던졌다. 그러자 어느 정도 돈이 모였다고 판단한 음유 시인은 다시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자, 그럼. 혹시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십니까?”

그가 묻자, 한 사람이 손을 들고 시인에게 물었다.

“혹시 얼마 전에 황궁에서 있었던 소란에 대해 아는 게 있나, 제3 수도경비대가 자리를 비웠던데?”

그러자 음유 시인은 고개를 살짝 끄덕인 뒤, 현악기를 고쳐 잡고 선율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여름 때마다 그 문을 열던 5월 궁, 어째서 이번에는 문을 닫았을까.

제국 각지에서 모인 선남선녀들, 영문도 모르고 더운 여름의 열기에 목만 타들어 갔다네.

그러나 목만 타들어 가면 다행이지, 황태자의 체면도 함께 불길에 던져졌으니.

친위대의 화려한 제복도, 지엄한 황실의 위엄도 그 불길을 막을 수 없었다네.

여름 때마다 선보이던 황태자의 화려함은 어디로 갔을까.

그곳에는 밋밋한 흰색과 검은색의 수도경비대원만 자리를 차지했네.”

노래의 구절을 유심히 들은 아델라인은 꽤나 정확한 정보에 흥미로운 시선으로 음유 시인을 바라봤다.

황태자가 근신 처분을 받고, 친위대가 황실 경호 업무에서 배제되며 그 자리를 수도경비대가 채웠다는 정보도 포함돼 있었다.

아델라인은 알렉스를 바라봤다. 그러나 알렉스는 그저 음유 시인을 향해 시선을 고정할 뿐, 그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화마에 휩싸인 5월 궁에, 어두운 뒷골목의 그림자가 드리웠네.

꼭두각시 병정 인형의 시선이 향한 곳은 귀부인들의 화려한 옷차림.

그 화려함에 눈이 멀었으니, 보이는 게 있었을까.

그러나 눈이 멀지 않은 이들이 있었으니, 이들은 사냥꾼의 후예들이라.”

움찔.

알렉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러나 음유 시인은 계속해서 이야기를 해 나갔다. 사람들은 어느새 노래에 모든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가녀린 아녀자의 손이 어둠을 거두자, 때아닌 사냥이 시작되었고.

번뜩이는 암기는 묵빛 납탄에 꺾이고, 둔탁한 망치는 진녹색 면직에 가로막히니.

죽을 목숨 살았으나, 죽은 양심은 살지 못했고.

지나가다 도운 엽사는, 감사 한 번 못 받았다네.”

그 노랫말에 아델라인은 알렉스를 당황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음유 시인의 이야기는 거의 정확하게 5월 궁에서 있었던 일을 그리고 있었다.

알렉스는 한숨을 쉬었다.

“누군가가 일부러 퍼뜨린 모양이군요. 미뤄지던 훈장이 왜 갑자기 결정된 건지도 알겠고.”

그 말에, 아델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보를 흘려 소문이 돌게 하고, 그 소문으로 의회 내부의 흐름을 틀어 버린 거군요.”

“그렇게 보는 게 맞을 것 같네요, 아델라인.”

그들이 나지막이 목소리를 낮춰 대화하는 와중에도 노래는 계속 흘러갔다.

“그 엽사는 대체 왜 감사를 못 받았을까.

물에 빠진 사람을 구했을 뿐인 그는 왜 감사를 못 받았을까.

그 엽사가 무슨 피를 물려받았기에, 그 엽사가 어떤 길을 걸어왔기에.

그 엽사는 칭찬 한마디 받을 수 없었던 걸까.

그 사람 눈에는 뭐가 보였기에 고맙다는 말 한마디 못했을까.

그 눈에는 아들을 잃은 별 모양 담벼락이 아직도 어른거리나.”

마지막 구절을 들은 알렉스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그 얼굴을 본 아델라인은 알렉스의 귀에 천천히 속삭였다.

“이제, 그만 갈까요, 알렉스? 더 이상 들을 이야기도 없을 것 같네요.”

“그럴까요.”

아델라인이 그의 팔을 감싸고 살짝 뒤로 물러서자, 알렉스의 표정도 한결 차분해졌다. 그러나 아델라인은 여전히 그의 팔을 끌어안은 채 걸어가며 말했다.

“오늘은 놀기 바쁘니까요. 자, 다른 데도 가 보죠.”

아델라인의 말에, 알렉스는 한결 풀어진 표정을 하고 있었다. 비록 아델라인은 알 수 없는 감정이 표정에서 느껴졌지만, 그녀와 함께 있는 게 더 좋다는 표정이었다.

“그러지요.”

그들은 다시 산책을 이어 나갔다. 할 이야기는 많았다.

“안드레이랑 얼마나 알고 지냈어요?”

“레이크 하사와는… 대략 10년 정도 알고 지냈지요. 나이아를 알고 지낸 것도 비슷하고.”

알렉스는 과거를 회상하며 질문에 답했다.

“그때는 저도 비슷한 부사관이었어서, 서로 할 말 못 할 말 다 하고 지냈죠.”

“아하… 안드레이도 요리 잘해요?”

그러자 알렉스는 고개를 저었다.

“그놈은 식사 당번 면제였습니다. 그만큼 다른 일을 해야 했지만, 입에 넣는 것만큼은 절대로 그놈에게 맡기지 않았죠.”

“뭐야. 그랬던 거예요?”

뭐든지 잘할 것 같았던 안드레이의 또 다른 면모를 알게 되자, 아델라인의 의외라는 듯 신기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제가 왜 요리 실력이 늘었겠습니까. 그놈이랑 밥해 먹으려니 저만 요리하고 있었으니까 그렇지요. 언제는 소금 달라고 하니 설탕 주고. 차 마시게 설탕 달라고 하니 소금 주고.”

그러자 아델라인은 하하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안드레이에게 그런 에피소드가 있었다니, 정말 사람 속 모를 일이었다.

“이야… 한번 물어봐야겠네요.”

“제가 말했다고는 하지 마십쇼.”

“에이, 안 그래요. 제 입 그렇게 가볍지 않거든요?”

“못 믿겠는데. 유서라도 써 둬야 하나.”

알렉스의 짓궂은 농담에, 아델라인이 그의 몸을 팍팍 때렸다. 알렉스는 아델라인의 손에 얻어맞으며 엄살을 부렸다.

“아고고, 사람 잡는다.”

“안 아픈 거 알거든요? 엄살은.”

그러자 알렉스는 다시 태연하게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리고 미소를 지으며 아델라인을 바라봤다.

“약간 아쉬운데요.”

“뭐가요?”

“이제 사교 시즌도 거의 다 끝나 간다는 게요.”

“그래서요?”

아델라인이 천진한 표정으로 묻자, 알렉스는 살짝 놀란 눈으로 아델라인을 바라봤다.

“뭐… 우리… 사교 시즌까지 함께하기로 한 거 아니었나요?”

“그랬었죠. 근데요?”

아델라인이 너무 당당하게 묻자, 알렉스는 헛웃음을 내뱉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제가 괜한 말을 한 것 같군요.”

“그래요. 저는 아직 당신이 많이 필요하다고요.”

아델라인은 알렉스를 향해 손가락을 꼽아 가며 말했다.

“사냥 대회 상품으로 받은 리볼버 쏠 줄도 모르고. 아직 군사학에 대해서는 하나도 모른다고요. 군사학 가정교사는 구하기도 힘들고. 그리고 연회가 잡히면 춤은 누구랑 춰요?”

손가락을 계속 꼽아 가며 한참을 재잘재잘 말하던 아델라인이 알렉스를 향해 마지막 문장을 마무리 지었다.

“그러니까. 제게는 아직 파트너가 필요하다고요.”

그러자 알렉스가 화악, 얼굴을 붉혔다. 자신을 올려다보는 아델라인의 모습은 알렉스의 마음을 한껏 뒤흔들어 놓았다.

왜 이럴까. 이 감정은 뭘까.

아델라인을 만날 때마다 느끼는 이 감정은 뭘까.

얼마 전까지는 그냥 아델라인의 ‘호의’를 위한다는 감정이었는데, 지금에 와서는 ‘호의’라는 단어도 어울리지 않았다.

알렉스의 머릿속에서 자꾸 ‘사랑’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알렉스의 동료들이 말하던 연애 이야기, 결혼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러나 알렉스는 함부로 그 단어를 끄집어낼 수 없었다. 사랑한다고 함부로 말할 수 없었다. 이 감정에 대해 확신할 수 없었고, 확신한다고 하더라도 입 밖으로 내뱉을 용기가 없었다.

“파트너.”

알렉스는 그 단어를 되뇌어 봤다. 그 이상으로 넘어가고 싶다는 충동이 계속해서 알렉스의 심장을 두드려 왔지만, 그에게는 그럴 용기가 없었다.

언제 눈먼 총탄과 칼날에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게 그들의 삶이었으니까. 명령이 떨어지면 쏟아지는 포탄도, 달려드는 기병대도 버텨 내야 하는 게 그들의 삶이었으니까.

아델라인에게 책임지지 못할 말을 할 정도로 염치가 없지는 않았다.

“파트너. 좋군요.”

결국, 알렉스는 미소를 지으며 아델라인에게 답했다.

파트너. 그래. 지금으로서는 파트너도 과분한 것이겠지.

알렉스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표정을 꾸민 뒤 아델라인에게 말했다.

“그러면,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알렉스는 허리를 약간 숙이고 아델라인의 손을 잡고 손등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파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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